〈 120화 〉 에리아가 쏘아올린 작은 공
* * *
"이게 그 총이구나."
"확실히 마녀는 마녀야. 이런걸 만들어낸다니."
에리아가 두고 간 열 정의 총.
그걸 세세히 바라보며 분해하고 조사하는 두 명.
"이거라면 분명 아가씨도 장기적으로 사용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게. 두 정 정도만 더 있었다면 모두 마력총을 쏠 수 있었을텐데."
"아가씨한테 온 연락은 받았어?"
"응.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히 풀리지는 않을 것 같아.
그 멍청한 총리가 멋대로 마녀를 집어넣어버렸거든."
"하아... 써먹기도 힘드네. 적당히 기회봐서 쳐내는게 좋아보이는데."
"나도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살려보낸거지? 킬레리."
"아니, 애초에 우리가 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대체 정찰용 킬레리들은 무슨 훈련을 하는거야...?"
"일단 총들부터 챙겨서 빠져나가자고."
"그래. 나는 며칠 더 장단에 어울려 줄 테니까.
유레크로스에 마도병 같은게 남으면 안되잖아?"
"그래야지. 테르도어 대성당이 아직 건재하니까.
걱정 안해도 돼. 어차피 마도병에 대한 욕심을 그리 간단히 버릴 녀석은 없어.
나르딕이 생각보다 더 멍청하니까 괜찮을거야.
다 같은 영기술사라고 생각하니까 말이야.
사실 마력도 기술도 마녀를 이길수야 없지."
"그래, 그런데 그 년이 그렇게 순순히 잡혀들어간것도 난 불안해."
"그러게. 확실히 잡아두긴 해야지. 그래야 전쟁이 나지않겠어?"
"그래야 우리도 도르테우스의 신전을 붕괴시키고 자연스럽게 제단을 빼돌리니까."
"참, 이제껏 안하던 마도병 같은걸 육성한다고 설쳐선, 번거로웠지."
"그래도 다행이지. 우리중에 영기술을 다루는 녀석이 존재해서."
"하필이면 기만에 특화되어서 말이야.
어릴적부터 뒷골목에서 지내던걸 거둬주신 린 아가씨께
이런거라도 해드릴 수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너는 모를거야.
대충 마력폭주를 유도해서 싹 다 죽여버릴 생각이야.
우리 얼굴을 본 병사를 남겨두기도 뭐하잖아? 영기술은, 아니지. 마법은 묻혀야 해."
"역시 신화의 영역을 함부로 건드는건 우리까지야. 그 뒤로 나눠줄 몫은 없어."
"동감이네요. 그런데 넌 어떻게 기만같은데 특화된 마력을 가진거야?"
"마력은 익숙한 쪽으로, 쓰면 쓰는 쪽으로 닮는거니까."
"하긴, 소매치기부터 사기에 절도까지 너는 안해본게 없었으니까."
"놀리는거야?"
"아니, 우리쪽에서는 스페셜리스트라는 소리지."
"아무튼, 일 제대로 해. 너무 오래 여기 있으면 눈치챌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들이 사라진 낡은 창고에는 권총 10자루가 사라져있었다.
한편 유레크로스 동북지역 서지스에서는 몰래 배를 띄우는 움직임이 있었다.
작은 보트는 아주 빠르고 민첩했다.
부두를 통하지 않은 풀숲에서 여성 5명이 모여있었다.
"이번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그럼 각 자리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 보트에 올라타는 여자의 이름은 킬레리.
유레크로스라는 국가에 파견된 정찰용 비서노예다.
5명이 각자 정보를 수집해서 이를 정리하고 한명에게 몰아 미리타엔으로 보낸다.
이것이 늘 반복되던 정찰업무다.
한명이 보고를 하러 가더라도 남은 인원은 정보를 계속 수집해야 한다.
주에 한번씩 비밀리에 모이는 것이 일방적이지만, 이번에는 꽤 큰 사단이었다.
그녀들의 '마스터' 혹은 국가에 위협이 될 만큼의 중대사가 있는 날은 반드시 모인다.
그리고 한 국가의 재상급 되는 인물이 타국에서 불명예스러운 일로 포박당해있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아주 큰 명분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마스터'께 이를 전달하는 것이다.
작은 보트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미리타엔으로 복귀할 수 있다.
더욱이 그녀에게는 약품이 있다.
언제라도 혈액을 빠르게 뛰게 하고 체내 근육량을 순간적으로 증진시키는 약물이 그것이다.
그런 것들을 상시 구비해다니는 킬레리는 위급할 때 스스로에게 그걸 주사한다.
수명을 대폭 깎아먹는 대신 정보의 전달은 더 빠르고 정확해진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해야만 남은 인원에게 새로운 정찰용 킬레리가 더 빨리 충원된다.
발각되어 사살당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임무 수행이 어려워진 킬레리의 수를 세
마스터에게 보고하고 나면 마스터는 그 인원만큼 킬레리를 새로 차출해 보낸다.
그리고 지금 한 킬레리가 자신의 목숨을 갈아내며 미리타엔으로 달리고 있었다.
뒤로 따라붙은 것이 유레크로스 정규군이라는 것을 모를리가 없다.
기사도 벌써 5명이나 붙은 것 같았다.
병사들이 배를 타고 자신을 뒤쫒는다는 것을 안 그녀는 배를 더 빨리 몰았다.
추격을 따돌리며 한참을 달리면서 국경을 넘어 미리타엔이 있는 퀘트로나스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는 것을 느낀다.
콜로세움의 문 앞. 어느새 날은 밝아 아침이 되었다.
아침 햇살에 맞춰 새들이 짹짹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거울을 보고 몸단장을 바로한다.
아무리 밤낮을 새고 달렸더라도 언제나 마스터의 앞에서는 단정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노예.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은 후에 집무실의 문을 두드린다.
"들어와라."
그 말이 떨어지면 예의바르게 문을 열고 들어간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중대사항의 보고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보고서를 통해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내용은?"
"무령께서 유레크로스에서 전범으로 체포당하셨습니다."
"뭐?"
게비디는 급히 보고서를 읽어내려간다.
"황제께 보고드려야겠다.
차를 준비해라. 그리고 너는 대공께 이 보고서를 그대로 전해드려라."
"알겠습니다. 유레크로스로 보낼 킬레리는 어떻게 할까요?"
"새로 뽑아서 인원 10명 맞춰. 이 개새끼들이..."
게비디는 그렇게 말하고 옷장에서 검은 옷을 꺼내 입었다.
울긋불긋하게 솟아오른 근육은 금방이라도 옷을 찢고 터질 것 같았다.
그 길로 게비디는 즉시 차를 타고 왕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시각,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자가 있었으니
빈포드 백작이었다. 평소 나르딕이라는 총리가 얼마나 자신을 혐오하는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엿먹이기 위해서 생각없이 일을 처리할 줄 몰랐다.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빈포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해백이 그의 손을 잡아 말린다.
분명 이대로 나가봐야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 해백을 가만히 바라보던 빈포드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어쩌면 좋을까."
"걱정 마세요 아버지. 분명 훈련대장께서..."
"훈련대장도 나도 나르딕 하나를 감당하지 못해서 이 사단이 나지 않았니.
넌 에리아라는 사람에 대해 모른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마녀라고... 불사의 존재라고 하던데요."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
"미리타엔 제국의 무령이지."
"무령...이라고요?"
"그래."
"그런 사람이 왜 유레크로스에...?"
"적국이라지만 사람까지 막는건 아니니까.
그리고 대장간 이야기를 보면 분노의 사막쪽으로 빙 돌아 온 것 같은데, 호위는 하나도 없다.
너라면 정말 아무 힘도 능력도 없는 여자가 혼자서 그 사막을 돌아올 수 있다고 보니?
그건 멍청한게 아니라, 자신이 있는거다."
"확실히 영기술이 대단한건 확인했지만요."
"대단? 규격외 전력이다. 애새끼들 훈련시키는 정도로 골렘을 만드는 여자다.
아마 장담하건데 마도병이 없는 유레크로스의 군대로는 그 여자 하나를 막을 수 없어."
"그런 여자가 왜 순순히 감옥에 들어간 겁니까?"
"그걸 모르겠단 말이지. 대체 뭘 꾸미고 있는건지. 확실한건, 이번 일이 잘못되면..."
"미리타엔과 전쟁도 각오해야겠군요."
"씨발... 이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각별히 주의를 줬던건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어떻게하긴, 국왕폐하께 간다."
빈포드는 오래 전 국왕이 자신에게 하사했던 검을 바라보았다.
상당한 명검이라고 말하며 그에게 반짝이는 검을 내려주던 국왕은 이제 없다.
그의 아들이 아비의 자리를 이어 왕좌를 지킬 뿐이다.
"처음 기사단에 그 이름을 올릴 때 까지만 하더라도 정말 어떻게든 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짐했건만.
결국 내 실수로 왕국이 위험에 빠지다니. 이래서는 선왕을 뵐 면목이 없군."
벽에 걸린 그 검을 빈포드는 겨우 들어본다.
이제 이전만큼 힘이 없어 검을 든 손이 잘게 떨린다.
처음 기병대장을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이유, 더는 그럴 힘이 없기에.
기병대장으로서도 기사로서도 더는 이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껴서 그는 은퇴를 바랐다.
어렵사리 떨어진 허가에 백작위를 하사받은 빈포드가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한 것.
그건 자신의 갑옷과 검을 벗는 일이었다.
다시는 입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명예 그 자체였고
빈포드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차마 버리지 못해 놓아두었다.
그걸 벗은 빈포드는 정말 텅 빈 공허함을 느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늙은 몸을 저주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 검을 어쩌면 다시 손에 쥐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씁쓸한 조소를 지었다.
"존은 뭐라고 하더냐?"
"킬레리라고 하셨어요."
"킬레리?"
"네."
"뭘 보면서 그렇게 말하더냐?"
"공문입니다. 저잣거리에 붙은."
"그 에리아를 처형한다고 써붙인것 말이냐?"
"네."
"미룰수도 없는 노릇이군. 교회로 가야겠다."
"교회요?"
"기도나...드리련다."
빈포드는 그렇게 말하고 아들의 어깨를 두드린다.
"전쟁이 나거든, 내 갑옷과 검은 네가 쓰거라.
훈련병에게 지급되는 것보다 훨씬 좋을게다.
저 검은 갑옷은 말이다. 내 모든 긍지 그 자체니 말이다.
너를 분명히 지켜줄거다."
"아버지는요?"
"나야 뭐, 어디가서 죽을 실력은 아니잖냐?"
그렇게 웃는 빈포드를 바라보며 해백은 멍하니 그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어색함. 그리고 깊은 슬픔.
해백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4일차 아침, 연병장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다들 마녀의 신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네 명 뿐이었다.
전날 보좌관에서 해임당한 파울, 훈련대장 존,
그 아들 조니와 체포되어 수감중인 마녀 에리아였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나르딕이었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어딘가 날렵해보이는 남자.
전일 화이트라고 소개받았던 교관이었다.
에리아의 대체로서 들어왔고, 에리아보다 느슨했던 남자.
화이트 교관의 요구사항은 단 하나였다.
'마력을 발현하는 것.'
얼핏 보면 에리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력을 발현하는 것은 에리아 역시 강조하던 부분이었으니까.
그러나 차이점은 상황에 있었다.
에리아는 마력을 발현하고 그것을 집중시켜서 특성에 맞춘 효율성을 추구했다.
화이트는 그것과 달랐다. 압도적인 마력량으로 상대를 찍어누를 수 있다면
마력탄을 쏘는 것 만으로, 혹은 마력으로 강화한 신체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병사들은 당연히 화이트 교관에게 동조했다.
훈련이 험하지 않았고, 에리아처럼 세부적인 마력의 특징을 살려내는 것 외에
마력을 발현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 만으로 자신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니까.
에리아가 보여주었던 압도적 힘의 차이와 다르게 이 남자는 자신들에게 맞는 눈높이에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훈련이 끝날때마다 드는 마력회로의 뻐근함이 그들에게 훈련을 마쳤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잘 하고 있어. 마도병끼리의 전쟁에서는 마력을 더 많이, 더 오래 뽑는 쪽이 이긴다.
이견 있어?"
"없습니다!"
"그래. 그럼 너희가 먼저 해야될게 뭐야? 세세한 잔특성 붙이기? 아니면 물량차로 밀기?"
"후자입니다!"
"그래~ 자동화 공장이 흥하고 수공업이 망하는 거랑 비슷한거야.
너희가 하다못해 그만큼 정교하기라도 하면 몰라. 아니지?
군에서 개성을 추구해? 너희 싸울거잖아? 영기술로 장기자랑할거 아니지?"
"그렇습니다!"
"말귀를 잘 알아듣네."
마도병들의 가려운 점을 긁는다.
그들은 광대가 아니다. 라는 그 간단한 부분. 그들의 자존심을 추켜세우는 말.
그것만으로도 마도병들은 이 교관이 생각보다 실력있는자라고 믿어버리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일은 커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