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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29화 (129/303)

〈 129화 〉 종전

* * *

총리들이 모여있던 왕성 지하 벙커는 아주 조용했고 어두웠다.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 교회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믿기에는

스스로가 너무나 잘나신 양반들이었기에 그들은 교회보다는 벙커를 택했다.

물론 그 판단은 아주 현명하다고 볼 수 있었다.

황제가 죽지만 않았더라면.

플로라가 마력을 다루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플로라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 유레크로스 군은 사기가 떨어졌다.

동시에 한가지 목표를 새로 부여받았다.

'저 여자만 어떻게 죽일 수 있다면.'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죽일 수 있는 여자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사람도 한가득이었다.

플로라는 무너진 성벽따위는 바라보지도 않았다.

당당히 정문으로 걸어가 말했다.

"열어."

이미 성 내부를 장악한 미리타엔의 군사들이 문을 열면 그제서야 플로라는 안으로 들어갔다.

"죽어라!!"

뒤에서 습격을 강행했던 유레크로스 병사 하나가 검을 빼들고 달려나왔지만

그 움직임은 플로라에게 닿기도 전에 멈췄다.

"어...?"

플로라는 그를 한번 돌아보고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듯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온 몸을 옥죄는 감각을 느낀 병사가 발버둥을 쳐보지만 기절하지도 못한 채로

대로변에 쓰러져 움찔거린다. 적응되지 않는 고통을 가하는 붉은 마력을 알아챈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플로라는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 걸어갔고, 은신중이던 유레크로스 군의 화살비에도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그녀 주변으로 검은 막이 생기고, 화살은 마치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르륵 사라져버렸기에 막이 걷히고 나서 도도한 표정으로 걷는 그녀를 아무도 막지 못했다.

처음 검은 막이 생긴 것은 그녀가 대공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당시였다.

"담배값을 그렇게 인상하고도 뭘 또 에라옥신을 통제한단 말이냐!"

느닷없이 회의장 가운데서 발포된 총에 놀란 플로라가 눈을 질끈 감은 순간이었다.

검은 막이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자신의 발끝에서부터 솟아오른 검은 막. 그것은 그녀의 그림자였다.

"어...?"

총을 쏜 자도, 막아낸 플로라도 당황한건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자신이 쓰다듬던 검은 고양이 애니가 총을 발포한 상인을 노려보고 있었고,

애니의 목걸이에 박힌 붉은 구슬이 빛나고 있었다.

애니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거대했던 증기기관 로봇이 자신에게 목걸이를 걸어주었던 일을.

분명 무슨 의미에서 달아주었는지는 몰라도 따뜻한 마음이었겠지.

애니는 몰랐지만

그 구슬을 처음 만들었던 여자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러게. 뭐, 잘은 몰라도 소원같은거 빌면 한번 정도는 들어주지 않을까?

마법의 기본은 욕망과 마력이니까. 욕망만 있다면 어렵지 않을거야.'

그리고 그 총이 발포된 순간 애니는 무의식적으로 빌어버린 것이다.

에리아가 남긴 마력에게, 자신의 계약자를 지킬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그때부터였다. 죽음으로서 발동하던 저주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사역마 고양이는 그 순간

혈구에 담겨있던 마력에 공명해 마력적성을 개방하게 되었다.

에리아가 유레크로스에서 마도병을 가르치던 방식과 유사했다.

강제로 마력을 체험시키고, 그 몸에 마력을 이해시켜 적성을 높이는 일.

다만 플로라는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역시 그분이 주신 고양이는 특별하구나."

그것이 플로라의 감상이었다.

사실 애니의 마법은 플로라의 마력을 사용하는 일이었다.

계약자의 마력을 사용하는 일은 사역마에게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력을 꾸준히 사용한 플로라의 마력회로는

근육처럼 천천히 강화되기 시작했다. 마력의 사용량에 따라 그릇이 커진 것이다.

본인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시시때때로 강화되고 있었고,

그 결과 플로라는 급격한 마력성장을 이루어내게 되었다.

그것이 애니와 플로라가 겪은 일상이었고, 에리아가 의도하지 못한 첫 성장이었다.

그리고 지금, 애니는 성장한 플로라를 도와 그녀를 가학공으로 만들고,

나아가, 제국의 황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애니는 그림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가 존재한다면 그 영역을 자유롭게 늘릴 수 있었다.

제국의 뒷골목에서 맨데일을 피해 다니던 기억.

그리고 죽음으로 느꼈던 구원과 두려움.

그것들은 작은 고양이의 마력적성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처음 애니가 죽어 저주를 남기던 시점부터 그림자의 마법은 깃들어 있었다.

다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계약자로부터 마력을 이어받아 마법을 사용하게 되고 나서는

애니와 플로라는 공방이 완벽한 마법사가 되어있었다.

사라졌던 화살비는 어느새 그녀의 발 밑에서 자라난 그림자에서 다시 쏘아지기 시작했다.

화살을 쏜 자들이 오히려 화살로부터 도망치는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며

게비디는 침을 삼켰다. 이제 정말 자신이 플로라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탓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진정으로 그녀의 성장을 놀라워했다.

플로라가 황제가 되고 나서 자신에게 내린 대공이라는 직위에 어떻게든 어울리는 일을 해내리라고

그렇게 다짐하며 전방에서 화려하게 날뛴 것이기도 했다.

에리아가 원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플로라의 이름은 점차 알려지고 있었다.

지하벙커에도 그림자가 존재하는 이상, 플로라와 애니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공격은 의미가 없었다. 검, 창, 심지어는 폭발물까지도.

플로라는 단지 전방향으로 마력을 얕게 흩뿌리는 것만으로 애니와 감각을 공유할 수 있었고

애니는 날아오는 방향으로 그림자를 전개하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역시 이런 나라 하나 부수는데 전차까지 필요없었지?"

그렇게 살가운 농담이나 던지면서 걷는 플로라의 옆에서 머쓱한 표정으로 게비디가 대답한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왜 유레크로스에서는 중전차나 화기가 나오지 않는 걸까요?"

"글쎄, 화기는 그렇다고 쳐도 기병은 있는 국가였는데.

전차가 있었을텐데."

"없습니다."

대답은 전방에 홀로 선 남자에게서 돌아왔다.

"너는 누구지?"

플로라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존이었다.

그는 양 손을 비우고 홀로 플로라의 앞에 섰다.

플로라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내 이름은 존. 유레크로스의 훈련대장을 맡고있습니다."

"훈련대장?"

플로라의 표정이 얼어붙기 시작한다.

검붉은 버건디색 마력이 존을 덮으면 강제로 그가 무릎을 꿇는다.

"우리 무령을 교관으로 보내놓고 태연하게 내쳤다는게 너냐?"

"사죄하겠습니다... 그건... 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허억..."

"계속 말해보시지."

플로라가 잔뜩 화가 나서 강제로 그를 끌어오기 시작했다.

바닥의 잔해 위로 무릎을 긁으며 그가 끌려왔고

고통을 견디며 말을 이었다.

"유레...크로스는 기병이 사라졌습니다... 전쟁이 나지 않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빈포드가 은퇴하고...기병을 위한 말은 효율이 떨어진다는... 의견 때문이었지요...

말은 모두 처분했고... 그 자리를 마차가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기사들의 전유물이었던.... 말은 이제 거리를 활보하게 되었고,

그 말들마저 죽은 이후에는... 기계로 그 자리를 대체해왔습니다..."

존은 그렇게 말하며 울고 있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보면서 플로라는 그에게 건 마법을 해제했다.

"그래서?"

"기병이...허억...허억.... 사라지고 나서는 포병이었습니다...

화력이 강한 것은 인정하지만 도리어 화약을 관리하는 비용과 피해를 감당하는 것이

군을 유지하는 것보다 위협적이라는 말도 안되는 의견에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총리놈들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전쟁을 겪지도 않은 이들이 탁상공론으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무기를 구입해야 한다는 말에는 기사의 정신이니 명예를 운운하며

검과 활로 무장시켰으니 패배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기병, 포병, 그리고 다음은 공병이었습니다. 전쟁에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 효율이 지나치게 떨어진다는...하하...그딴...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걸 왕이 승인했나?"

"왕은 정치에 무심했습니다.

왕권은 스스로 내던지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하고 의원을 뽑아 내각으로 돌리더군요.

그 의원들은 그렇게 돌린 군자금으로 배를 불렸고, 기어이 군을 버렸습니다.

유레크로스의 군대는 보병과 군수물자를 담당하는 병사들, 레인저, 의무병 정도입니다."

"그걸 우리에게 말해주는 이유는 뭐지?

병과가 제대로 갖춰졌다면 지지 않았을 거다.. 그런 이야기인가?"

"아닙니다...항복할테니 병사들을 거두어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용서가 안되는데."

"마도병의 훈련은 전적으로 에리아 무령에게 맡겼습니다.

총리들이 기어이 그녀를 체포하고 수감시키기 이전까지는..."

"하... 그래서 지금 군인이 국가를 배신하겠다는건가?"

"제가 알던 유레크로스는 망한지 오래입니다."

플로라는 멈춰서서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이딴 것들이나 잡겠다고 바다를 건ㄴ... 후우우...."

착잡한 표정을 하고 화를 내던 그녀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테르도어 대성당."

"예...?"

"테르도어 대성당은 공격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존은 그 말을 듣고 아들 조니와 살아남은 병사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교회로 피신하던 그에게 조니가 말했다.

"아버지, 부관은 어디에 있어요?"

"해백이...? 분명 멀로이님께서 지원으로 쓰시겠다고... 이런 씨발... 구해와야겠군.

다들 가자! 목적지는 정부청사 탑이다!"

그렇게 그들은 정부청사 탑으로 달려갔다.

죽더라도 멀로이와 류해백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 게비디는 일일이 닫힌 문을 뜯어내며 지하로 플로라를 안내했다.

플로라가 지하에 도착해 철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서는 총리들이 한데 모여

갑옷을 입은 채로 권총을 들고 있었다.

그 수는 고작 6명. 남은 4명은 진작 나라를 떠나버린 것이었다.

"총은 금지했다고 들었는데, 제들 목숨은 귀하다 이건가?"

게비디와 플로라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거기 익숙한 얼굴들도 있구나. 회의에서 보았었지.

죽고 싶지 않다면 총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라."

그 말에 대꾸하는 이는 없었다.

어떻게든 갑옷은 입었으나 제대로 장비한 이는 없었다.

하나같이 헐거운 갑옷을 바라보면서 플로라는 그들을 속박했다.

마력의 사슬이 그들의 사지를 결박하고 나서 플로라는

그들의 머리에 강제로 고통을 선사했다.

발버둥치던 이들이 플로라를 향해 총을 발포하면 플로라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애니의 그림자 장막 사이로 총알은 사라지고 당황한 표정만 남았다.

"이런 이들이 총리였으니 나라 꼴이 이렇겠지."

"잠..잠깐! 왕의 위치를 알고 있소! 왕의 위치를 알려줄테니 우리는 놔주시오!"

"맞네! 황제여! 왕의 위치를 알려주겠네!"

그들은 총을 내려놓고 그제서야 플로라에게 협상을 제안했다.

"내가 협상을 받아들여서 좋은 경험이 없어서 말이다."

그렇게 말하고 손가락을 튕기면 제일 앞에서 묶여있던 총리가 눈을 까뒤집고

백안을 보이며 책상위로 쓰러졌다. 그의 코에서 주륵 피가 흘렀다.

뇌가 처리하기 어려운 고통을 부여해 강제로 폐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손에 피 묻힐 일 없이 적은 자극으로 죽일 수 있어 애용하는 방법이었다.

"더 떠들어볼 사람 있나?"

"....."

"너희의 처분은 무령이 한다. 이제껏 어떻게 행동했는가가 중요하겠지?"

그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총리가 셋. 나르딕과 그 주변의 둘이었다.

바로 어제 지하 감옥에서 에리아를 빼와 죽도록 구타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겨우 손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플로라 역시 그 광경을 보았지만 이를 꽉 악물고 참아냈다.

게비디는 그런 플로라를 바라보면서 침묵했다.

왕은 어떻게 되던 관심이 없었다.

왕이 백성을 버리고 떠난 시점에서 이미 신임을 잃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그다지 성군도 아닌 이를 굳이 잡아 죽이기도 싫었다.

두 번 다시 유레크로스로 돌아오지 못할텐데 말이다.

플로라는 죽은 병사들의 시체를 한데 모아 불에 태웠다.

시체의 산을 이룬 것이 유레크로스 광장에서 타올랐다.

본디 광장 주변에는 팔거리가 있었다. 건물들로 빼곡히 들어선 가운데 텅 빈 광장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더없는 장소였다.

그러나 지금, 그 팔거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무차별적인 폭발로 거리 전체의 건물을 부숴버린 탓이었다.

제국군이 들이닥친 해로를 통해, 고대의 분지부터 페세티아까지 이어지는 최단거리.

그 길목부터 유레크로스 왕궁까지의 모든 건물이 박살나있었다.

간혹 남은 건물도 있었으나 그 내부는 이미 건물로 기능이 불가능한 정도였다.

오히려 남아있기에 재건에 방해가 되는 건물들 뿐이었다.

그 가운데서 타오르는 시체의 산은 밤이 되어도 꺼지지 않았다.

마침내 플로라가 종전을 선언하고 나서 교회에서 에리아가 걸어나오면

미리타엔의 병사들이 하나같이 모여들었다.

"스트레스는 좀 풀렸고?"

에리아의 첫마디였다.

플로라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플로라, 게비디, 그리고 엔시온과 데레코즈가 있었다.

그러나 황제에게 말을 놓는 무령을 바라보며 아무도 이를 의아하게 여기지 않는다.

모두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나와보지도 않으시고..."

"나오면 뭐 달라져? 그나저나 걔들은 뭐야?"

"아, 총리라고 있던 사람들 잡아온 거에요."

"그래? 음... 적당히 풀어줘."

"네?"

"이 상황에 남아있는 유레크로스 국민들이 과연 이 사람들을 총리로 인정할까?

사람은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은 절대 잊지 않아.

그런데, 제국에게 대항할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럼 이 분노가 어디로 향하겠어?

상황을 만든 사람은... 어, 나르딕 여기있네."

"마녀..."

"난 널 용서하지 않아. 하지만, 벌은 내가 주진 않을게."

에리아는 가볍게 손가락을 그어 피를 낸다.

그 피는 가볍게 튕겨져 나르딕의 몸 위에 떨어지고

스르륵 그의 몸 안으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네 수명, 저기 쌓인 병사들 보여? 저 병사들의 수만큼 늘어났어.

저 병사들이 너를 원망하기에 충분하도록."

그 말은 아주 잔잔하게 전해졌다.

제국의 황제에게, 제국의 대공들에게, 그리고 유레크로스의 사람들에게.

나르딕은 묶여져 광장에 세워졌다.

모든 이들이 지나다니며 그에게 돌을 던졌다.

돌은 늘 그 주변에 널려 있었고,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리고 잃은 사람들의 빈자리로 인한 분노와 슬픔에 그 양심을 버렸다.

그들의 도구는 처음에는 돌, 그리고 그 다음은 더 큰 돌, 나중에는 총과 몽둥이로 변했다.

나르딕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될때까지는 고작 6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를 죽인 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비서였다.

카르고르는 그 이후로도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떠한 벌도 받지 않았다. 그 스스로가 증오에 증오를 거듭 쌓을 뿐,

누구에게 무엇도 하지 않았다. 이미 전우들은 모두 죽은지 오래였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제는 그의 곁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부는 그를 미쳤다고 했고, 일부는 그에게 배알이 없냐고 했다.

그러나 카르고르는 이후로 부서진 폐건물 하나에 숨어살며 사람을 피해 살았다.

이후로 그를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비록 상황과 환경은 달라졌지만 적어도 더는 떨지 않아도 되었다.

이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전쟁 하루전,

존이 미리 유레크로스의 주민들을 발빠르게 교회로 대피시켰기 때문이고,

총리들을 거치지 않고 그 주변 토지와 군의 연병장을 교회부지로 헐값에 팔았기 때문이었다.

토지 증서를 내세운 교회 주변으로 사람들이 임시 거처를 만들어 지냈기에

당시 부근을 매서운 속도로 박살내며 전진하던 데레코즈는 한숨을 내쉬며

"당했구만..."

이라는 말을 남기고 그들을 방치해야 했다.

유레크로스의 사상자는 병사를 포함해서 국민의 38%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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