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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30화 (130/303)

〈 130화 〉 업보의 무게

* * *

미리타엔이 승전보를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플로라와 대공들은 병사를 이끌고 돌아갔고

유레크로스 주민들은 저마다 총리를 욕하면서도 어떻게든 국가를 재건하고 있었다.

또한, 이번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이들은 왕을 포함한 어떠한 자리도 국민의 위에 두지 않았다.

그들이 부당하게 착취한 재산을 가지고 떠돌이 상인과 대장간을 대상으로 거래를 시작했고

빠르게 건물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단층 건물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복합 주택을 비롯한 새로운 건축 형태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외관의 미형을 추구하다가는 당장 거리에 나앉은 이들을 수용할 수 없기에

단조롭지만 효율적인 아파트를 건축했고, 기어이 국가를 빠르게 일으켜 세웠다.

물론 거기에는 내가 가르치던 견습 마도병들의 공이 컸다.

대다수는 전장에서 폭사했지만 개중 일부는 불구가 되긴 했지만 살아남거나,

천운에 따라 회복한 경우도 있었다.

재구축의 마법을 다루는 병사와, 기대를 받으면 강해지는 병사를 비롯한

각종 군인들이 재건에 뛰어들었고, 나는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내 마력이 고갈되면 그 날의 공사는 쉬는 것으로 했다.

그렇게 고작 4일만에 아파트는 유레크로스의 생존자 전원을 어떻게든 수용할 수 있게 되엇다.

물론 한 가구당 하나의 주택을 제공할 수 있엇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고

왕성이 있던 자리에 높다랗게 세워진 아파트에 억지로 끼워팔듯 가구를 배치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해 불안에 떨던 사람들은 서로 뭉치고 의지하며 이겨냈고

그 과정에서 어쩌다보니 발생해버린 수십건의 혼인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혼인을 한 사이는 함께 묶어 집을 배정해 주었다.

뭐 잃은 만큼 낳는다는데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국토 대부분은 퀭하니 비어있었고, 그 부분은 차차 인구수의 증진에 맞춰

새로운 건축양식으로 채워나가기로 이야기가 된 것 같았다.

총리의 비참한 최후를 눈으로 마주한 사람들은 더이상 총리라는 자리에 큰 미련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총리는 봉사의 의미가 강해졌고 임기가 끝나고 나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총리로서 재임한 기간동안 전년도 대비 국고 변화 및 국익을 통계로 산출해

그만큼 수치화된 일정 부분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변해버린 총리의 자리는 말 그대로 국정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자에 한해서

선택하는 간단하지만은 않은 자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누가 한 국가의 총리라는 이들이 모여 회의하는 곳이 고작 국립 도서관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존이 교회 부지로 마구잡이로 추가해버린 토지에 연병장을 비롯해, 도서관 같은 건물이 있어서

국가 주요 시설들이 다 남아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태풍같은 재건공사를 하고 있던 어느날이었다.

한 남자가 겨우 교회로 터벅터벅 걸어와 픽 쓰러졌고, 사람들은 그를 급히 교회로 옮겼다.

그가 눈을 뜬 것은 실려온지 2일차 되는 날 아침이었다.

내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 그는 익숙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어, 에리아 양.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러게요."

지친 표정을 보면 정말로 사막을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 그는 다니엘이었다.

고대의 분지로 간다고 하기에 헤어졌었는데 어쩌면 천운이라고 해야 할까,

유레크로스와 미리타엔간의 전쟁을 깔끔하게 회피했다.

"어떻게든 유레크로스로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네. 테르도어 대성당의 천장.

익숙한 천장이야. 아주 좋아."

그는 그렇게 중얼대다가 나에게 물었다.

"일은 잘 봤고?"

"네. 당연하죠. 다니엘씨는 무슨 일로 오신건가요?"

"나? 사람을 만나려고 말이지."

"그렇다고 하셨죠."

"아들이 있거든."

그가 그렇게 말하고 웃으면 제임스가 웃으며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리고는 다니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기어이 오셨네요."

"아들내미는 하나뿐이니까."

"데려오죠.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드님은 금방 데려오겠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고요."

그 말에 나는 제임스의 아버지가 다니엘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살짝은 실망했다. 상당히 유쾌한 성격이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죠. 참 말도 지지리 안듣는 아들이라니까. 고고학자나 같이 하려고 했더니

이렇게 성당에서 덜컥 성직자가 되겠다고 했을줄 몰랐으니까."

그리고 잠시 기다리면 제임스 신부의 손에 딸려나온 것은 데니스였다.

말도 어지간히 안듣는 꼬맹이라는 말에, 그리고 고고학자인 다니엘의 아들이라는 말.

그리고 데니스가 전에 했던 말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기 시작했다.

그 자기를 버려두고 나간다는 아버지가 다니엘씨였다니.

"데니스...아버지가 다니엘씨에요...?"

"어때? 닮았지?"

억지로 붙들린 데니스는 밀어내려고 했지만 어딜 가나 아버지들은 다 그런걸까.

뺨을 맞대고 까끌한 수염에 아들의 얼굴을 문지르며 아들의 괴로움을 즐기는 것 같았다.

다니엘은 한참을 그러다가 데니스에게 물었다.

"아들, 아빠 안보고 싶었어?"

"뭐 늘 나갔다 왔다 하면서 이제와서 보고싶었냐고 물어보는 것도 찔리지 않아요?"

"윽... 하여튼 귀염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니까."

나는 대화하는 부자에게 음료를 건넸다.

가방에서 막 꺼낸 따뜻한 에레푸틴이었다.

다니엘은 그걸 받아마시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데니스는 입을 가볍게 적시고 난 후에 물을 마시며 대꾸했다.

아무래도 입맛에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점잖게 입을 헹구는 모습이 상당히 깔끔하다.

"그래서 어쩐 일로 이렇게 금방 돌아오신 거에요?"

"음, 말하자면 긴데... 어쩌다보니 탐사구역이 바뀌어버렸지 뭐냐.

고대의 분지를 조사하고 돌아왔단다."

"고대의 분지?"

"그래,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었지. 사람들이 그 장소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던

그 이유를 내가 좀 알아낸 것 같거든."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며 말하는 그의 말을 자르며 내가 물었다.

"또 뭘 찾아내셨길래 그러세요? 거긴 무슨 두꺼비 대신 뱀이라도 있었나요?"

"아니, 아주 재미있었다니까. 관이 하나 있었어. 아무래도 묘나 무덤 같은 공간이었던 것 같은데,

자세한 건 더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흥미롭던데. 아내를 불렀어. 이건 대발견이니까."

"관이라고요?"

"그래~ 관."

관이라고 하면 마냥 또 낯설게 들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주변에 뱀파이어 애인이 없었다면 그냥 흘려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왕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뭘 어떻게 해. 열어봐야지. 고고학자니까."

"그게 고고학자에요? 철이 덜 든 어린아이도 아니고."

"열어보지 않을 수 없는 디자인이었다고.

생각해봐,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고대의 분지라는 곳이 있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인데다가, 지하에 숨겨져있는 주제에

그 위로는 단단한 광물로 의도적으로 돔 형식으로 덮여있고,

들어가려면 바닥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 안에 있는게 검은 관이라면?

게다가 금수가 놓여져있었다고. 디자인도 화려했어."

"그래요, 알겠어요. 그래서 그 안에 뭐가 있었는데요?"

"나도 궁금해서 열었더니 그 안에는 해골 하나가 놓여있었어.

왼쪽 발목에 족쇄를 차고 있었지. 아마 과거에는 상당히 대단한 인간이지 않았을까?

검은 로브도 입고 있었어. 관과 같은 디자인의 금으로 수놓아진 무늬에

끝은 붉은 색으로 포인트가 들어가 있었다고.

그 길이도 상당해서 다리를 덮는 수준이었고. 그걸 들고 나오려다가 그냥 놔뒀지.

아무래도 그런건 나중에 정식으로 도구를 가지고 가서 조사해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분명히 그 안쪽까지 들어간건 좋았는데 거기서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훅 지나갈 줄은 몰랐어 나도.

밤낮이고 뭐고 볼 수가 없었으니까."

"그럼 빛은 어떻게 확보하신거에요?"

"내가 그 안쪽으로 들어갈때는 조명탄을 써서 들어갔고,

꽤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에는 조명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더라고.

헬라티움 광석이 있었어. 내부에 고인 물인지 아니면 그 사막에서 물이 어떻게 모인건지

반쯤 젖어 있더라고. 그래서 바닥이 빛이나고 있어서 찾을 수 있었어.

그것도 그닥 그렇게 밝지는 않았지만 앞은 보일 정도였지.

그 분위기가 마치 동굴 한가운데 버려진건지 갇힌건지 모를 정도로 음산해서

꼭 어릴때 들었던 마왕이나 모험이나 하는 그런걸 연상케했지."

"어련하셨겠어요."

그 말에 한숨을 쉬는 것은 나 뿐이 아니었다.

강제로 붙들려있던 데니스도 픽 한숨을 내쉬며 말을 붙였다.

"아버지는 변한게 없으시네요."

"아들내미가 저래 무뚝뚝하니 엄마가 웃을 일이 있어야지.

아빠라도 노력하는 거야 임마."

생각보다 애처가라며 웃는 제임스가 따로 그에게 방을 내주었다.

그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고 어쩌다보니 다니엘의 간호는

데니스가 맡는 일로 결정되었다. 간호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한동안은 이 근처에서 회복에 전념하고 이후로 고대의 분지를 조사한다고 하는 그였기에

나는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나왔다. 언제라도 다니엘과 이야기 할 기회는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갈 길이 멀다. 유레크로스의 재건에 동참하기는 했으나

언제까지나 이곳에 발이 묶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날 저녁 나는 교회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유레크로스를 떠나기로 했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안감을 아직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내게 솔직한 감사를 보냈다.

덕분에 내가 출발하기로 한 시각이 생각보다 많이 늦춰졌지만 기분은 좋았다.

순수한 감사를 받아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의 배려를 하고 있다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정말 대장간을 망하게 한건지, 올리브를 죽였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인지, 혹은 다른 별개의 이유에서인지는 모른다.

다만 확실한건 나는 그들의 앞에서 대장간의 기술자들과 한마디도 섞지 않았고

그들 또한 대장간의 기술자에게 종종 나에 대해 묻는 것 같기는 했으나

나를 기술자와 대면시키지 않았다. 다만 올리브에 대한 사건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는데,

그런건 이제 어찌 되었든 신경쓰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차라리 그게 나에게도 편했다.

내가 다만 아직까지 궁금한 것은 카르고르를 함정에 빠뜨렸다는 그 마부의 이야기였다.

감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이 사건을 머리속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정했다.

유레크로스의 군대는 이날 이후로 대대적 개혁에 들어갔고,

그 선두로는 존과 해백이 선택되었다.

군의 본분은 적과 싸우기 이전에 국민을 수호하는 것이라는 말을 꺼낸 멀로이가

그들이 참 군인이라고 말했던 것이 시작이 되어 군은 그들을 필두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병기와 병과를 구하기 시작하며 천천히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레크로스는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만연하게 돌던

그 날 아침, 나는 유레크로스를 떠났다.

어디로 가야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아 우선은 엠페레스로 갈 생각이었지만

문제가 생겨버렸는데, 서지스에서유레크로스의 국가 붕괴 사건에 대해

나름대로 선을 그으며 난민을 비롯한 여행객을 원천봉쇄한 일이었다.

서지스의 도시 외곽에서 나는 그 경계를 지키던 경비에게 막혔다.

바로 앞에 서지스의 시내가 보임에도 나는 뒤로 돌아가야 했다.

덕분에 나는 서지스에서 배를 타고 엠페레스로 가려던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열심히 걸어서 도착한 서지스였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바로 방향을 꺾은 것은 아라카스트로 넘어가기 위해서였다.

서지스로 가는 길목이 막혔다고 하더라도 아라카스트는 아직 개방되어있으니까.

다만 그 더러운 엘프가 인간을 환영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더욱이 지금의 나는 제국의 무령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상황이라서

내심 걱정은 배가 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리던 내가 발걸음을 멈춘 것은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 때문이었다.

"멈춰."

내가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다만 한 편으로는 조금 그리운, 그리고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기에

나 역시도 반가움의 의미가 어느정도는 담겨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눈을 마주친 순간 나는 그 기대를 고이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기대한 목소리의 주인이었던 헬렌은 그 눈에 정적인 증오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헬렌..."

"여기까지 내려올 여유가 있었나봐. 마을을 버리고 떠난 줄 알았는데.

마르커스를 빼앗아가고 나서 이제는 뭘 가져갈 생각이지?"

"난 그런 적 없어요..."

"그래, 나도 알아. 다만 너를 오랫동안 보고 싶었다는게 중요하지."

"그건 저도 동감이긴 하지만..."

"그럼 더 볼 것 없잖아. 따라와. 이야기나 하자."

"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경비원에게 몇마디를 건넸다.

경비원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그녀와 내 시선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고 문을 열어주었다.

내가 그의 옆을 스쳐가면 그는 내게 작게 말했다.

"사고를 친다면 바로 쫒아내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따랐다.

그녀를 다시 만난건 어떻게 되었건 나에게 반가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콜린이 아니라 서지스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그녀가 내게 가진 증오나 분노를 바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어딘가 그녀가 아직 가지고 있을 작은 감정을 건드려볼 생각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녀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고 스승이었던 마르커스를 그렇게 맥없이 떠나보낸 나는

그녀에게 있어 용서할 수 없는 존재이겠지만 말이다.

"들어와."

작은 카페였다.

마치 내가 콜린에서 운영하던 카페와 비슷한, 어쩌면 그것보다 조금 더 작은 규모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종업원이 인사를 건넸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침내 테이블에 마주앉아서 그녀가 한숨을 내쉬면 나 역시 괜히 침을 삼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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