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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31화 (131/303)

〈 131화 〉 업보의 청산

* * *

종업원이 커피를 가져다준다.

내가 주문한 메뉴는 에스테리카였다. 헬렌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헬라레소를 주문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잔을 입에 가져가고 나서 한모금 커피를 넘긴 후에 말했다.

"콜린을 떠난 이유가 뭐야?"

"붙잡히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나를 완전히 바보 취급 하고 있었더라?

할머니가 어쩌니 해놓고서, 마녀는 너였다며?"

"미안해요."

"기어이 그렇게 날 속였어야 해? 내가 그러면 뭐 널 잡아가기라도 할 것 같았어?

하... 시발 기어이 그래 도망은 쳤으니 누군가는 널 쫒았겠지.

이유가 뭐야 대체? 우리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잘못은 제가 했어요. 불안해서 그랬어요. 평화가 깨질까봐...

그래서 도망쳤어요. 처음 가게에 성제가 찾아왔을 때, 두려웠고, 피해를 주기 싫었어요.

몰래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고,

기어이 등 뒤로 따라붙어 칼을 겨누는 사람을 보면 덜컥 겁이 나기 마련이잖아요."

"...."

"물론 감정적으로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것 말고는 내가 미안해야 할 이유는 없어요.

내가 큰 잘못을 한건 없으니까요"

"마르커스를 잃고 나서 나는 변했어.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아무 생각없이 웃고 떠들 수도 없어졌어. 밤에 잠도 안온다고.

마르커스의 낡은 공방은 문을 닫았어. 아무도 찾지 않아 먼지낀 곳을

기어이 상업조합에서 매입했고, 지금은 리모델링을 마쳐서 매물로 올라왔더라.

아무도 들어서지 않았어. 그럴만도 하지. 사람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데.

하필이면 또 군이 쏜 총이라고 몰려서 마르커스는 범죄자라는 인식이 남았어.

정작 유레크로스 군에서는 총도 허용하지 않는데.

범죄자의... 가게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저는..."

"그뿐 만이 아냐. 네가 지은 그 카페 건물, 마르커스 앞으로 돌려놨더라?

덕분에 마녀와 결탁해 마을을 팔아넘겼다는 오명을 안고 죽었어 마르커스는.

그 카페, 얼마전에 돈 많은 사람이 와서 샀다더라. 알아?

네가 마르커스에게 남긴건 하나도 없다고.

나도 그날 이후로 아틀리에를 접었어.

도저히 더는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아름다운 예술품을 못 만들겠더라.

배운게 그것 뿐인데 내가 뭘 하겠어. 그렇잖아? 넌 돌아오면 안됐어."

"미안해요..."

"차라리 내가 널 마음껏 미워하게라도 돌아오면 안되는 거였다고. 알아?

왜 그렇게 얼빵한 얼굴로 돌아와서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내 앞에서 사과를 하고 있는건데 네가!"

"....."

"마녀...였어...."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마르커스와 약속도 결국 지키지 못했네요."

"마르커스가 만들어준 로봇은 어쨌어?"

"대장간에 있어요."

"결국 마르커스의 유산을 그렇게... 역시 널 믿는게 아니었어..."

헬렌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떨어졌다.

뺨을 타고 닭똥같은 눈물이 흐르면 나는 그녀의 앞에서 고개도 들 수 없었다.

다 잘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죽여버리지 못했던 내게 따뜻했던 사람들이

내게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내가 이들을 괴롭게 했고, 나는 그걸 돌려받고 있었다.

차라리 쫒기는게 더 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지쳤다.

"난 그래도 우리가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요?"

"그 믿음을 배신한건 너야... 난... 마르커스는 널 믿었다고..."

"그래요. 그런거겠죠. 알겠어요."

애시당초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도 없었던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정말 콜린에는 내 편이 없다는 미묘한 확신이 들었다.

"감사했습니다."

"뭐...? 잠깐...!"

"커피 잘 마셨어요."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카페를 나왔다.

이전만큼 아쉽지는 않았다.

지금의 내게는 플로라도, 게비디도, 에스트로도, 제임스도 있으니까.

다만 두려운것은 언젠가 이렇게 또 인연이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게 되지 않을까

내가 거기 익숙해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해답을 내렸을 때, 애시당초 늘 그랬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억지로 집착하고 있을 뿐이었다.

참 오랜만에 서지스의 거리를 걷다가 보이는 옷가게에 들어갔다.

가능한 한 화사한 옷을 골랐다. 흰 셔츠에 노란 바지를 구매했다.

쥐색 칙칙한 망토를 벗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내 머리색과 어울리는 밝은 느낌이었다.

어둡게 입고 다니지 않으면, 밝게 입으려고 하면 그럴 수 있는 거였다.

나는 한껏 편안해진 기분으로 거리로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하늘은 묘하게 파란 것 같았다.

갖은 핑계를 대며 유레크로스, 콜린, 서지스로 돌아가려던 내 모습은

그저 과거에 머물러있을 뿐이었다.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마력을 끌어모았다.

천천히 몸에 힘을 빼고 마력을 집중하면 조금씩 간지러운 감각이 몸을 맴돈다.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 머리칼이 어깨를 넘어 자란다.

마침내 손이 겨우 닿을 등 정도까지 머리가 길어지고 나면 그제서야 나는 눈을 떴다.

내 이미지를 더는 음침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쩐지 조금은 더 당당해진 것 같았다.

내 잘못도 아니면서 죄책감에 사과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제는 누구 하나 증명해줄 사람도 없는 일이니까.

내가 마음을 정하고 서지스를 떠나려고 할때 눈에 들어온 헬렌의 모습은

마르커스의 유지를 이어 스팀엔진을 두드리는 모습이었다.

결국 아틀리에를 져버리고 대장간의 기술자로 돌아온 것 같았다.

가게를 처분하고 모은 돈으로 아마 콜린을 떠나 서지스에 정착해 가게를 낸 것이겠지.

콜린에서 있었던 추억이 싫어졌거나, 마르커스가 떠올랐거나 결국 그녀 또한 콜린을 떠났다.

가볍게 웃어보이고 밖으로 나왔다. 서지스 옆에 우뚝 솟은 석산을 바라보면서

나는 괜히 처음 콜린으로 가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도 이 산을 넘었었지.

살짝 몸을 풀고 산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발끝에 닿은 단단한 돌의 감각.

옛 기억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내 여행이 시작된 곳이니까.

이제는 타고 없어진 집부터,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곳이니까.

그렇게 나는 아라카스트를 향해 출발했다.

.

.

.

.

.

.

왠지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울먹인 적도 처음이었다.

알아주길 바랬고 이해할거라 생각했다.

괜히 붉어진 눈시울의 울분을 커피잔과 함께 목 뒤로 애써 넘겨보려 했다.

하지 못한 말이 목 밑에서 응어리진 것 같았다.

꽉 막혀 나오지 않았다. 왠지 자꾸 울컥이며 화가 끓어올라

까딱하면 정말 넘쳐버릴 것 같은데, 왠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조금씩 새고 있는 건지 아니면 녹고 있는건지.

나는 그녀에게 멋대로 입을 움직여 화를 토해내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지냈는지 그녀는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다만 사과를 연신 쏟아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짜증이 났다.

마르커스의 로봇은 오래 전에 손을 놓았던 자신이 보기에도 걸작이었다.

그랬기에 아까웠고 그녀가 그 로봇을 가지고 갔다고 들었을때

한편으로는 아쉬움과 함께 짧은 만족감도 들었다.

그건 아마 마르커스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이나 같이 지냈으니 모를 수 없었다.

성제 올리브는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기어이 누군가를 찾던 그가 발견한 건 작은 소녀였을 것이다.

에리아가 쫒기기 시작한 날, 분명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주시하던 눈빛을 느끼지 못한 것도 아니었고,

오며가며 보이던 날선 사람들이 섞여들어오는 것도 느꼈다.

그녀가 마녀라고 모두에게 들리도록 떠들어댄 올리브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다 알고 있었다.

"기어이 그렇게 날 속였어야 해? 내가 그러면 뭐 널 잡아가기라도 할 것 같았어?

하... 시발 기어이 그래 도망은 쳤으니 누군가는 널 쫒았겠지.

이유가 뭐야 대체? 우리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괜히 따져물었다. 짜증이 난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피해를 주고싶지 않았다는 너무나 얼빠진 대답이었다.

거짓말이든 진실이든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대답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만이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무슨 말을 돌려줘야 할지 몰랐다.

멋대로 튀어나갈 것 같은 말들이 입안에서 빙빙 돌았다.

하지만 그 말은 나조차도 알아차릴 수 없었던 정리되지 않는 단어들과

깨진 감정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뱉으면 분명히 상처를 입힐 것이고

피가 흐를 것이라는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왜 내가 이런 말 하나조차 꺼내지 못해서 눈치를 봐야 하는지,

왜 나는 내 감정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지 답답했다.

그리고 아마 그건 내 앞에 앉은 저 작은 소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푹 숙인 고개를 겨우 들었다.

그 맑은 눈으로 내 눈치를 살피고 나서 결심한 표정으로 숨을 고른다.

이윽고 그녀의 목이 한 차례 꿀꺽 침을 삼키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면

제일 듣고싶지 않았던 말이 들렸다.

"물론 감정적으로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것 말고는 내가 미안해야 할 이유는 없어요.

내가 큰 잘못을 한건 없으니까요"

이 이야기를 들으려고 그녀를 앉힌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드시 들어서 확인해야 했을 말이기도 했다.

아마 저 말은 사실이겠지. 그녀가 정말 사과해야 할 대상이 있을까.

그러지 못할 사람이라는건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왠지 그 모습에

더없는 환멸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래, 잘못은 아니겠지. 하지만 세상에는 잘못이 아니라도

상처를 주는 일이 있다는걸 분명히 알고 있잖아.

내 하나뿐인 친구를 죽게 만든게 결국 너라는걸 스스로 알고 있잖아?

내가 바라는게 그런 말이 아니라는건... 잘 알잖아...

울컥 치미는 숨이 턱밑에서 걸린다.

겨우 참았던 말들을 밀어내고 뜨거운 한숨이 닫았던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다.

나는 배운 거라곤 기술 뿐이었고 선생이라곤 마르커스 뿐이었다.

그 투박한 남자에게서, 대장간에서 부딫히고 달궈진 내 입은

조리있게 말하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말하고 싶은 내용이 아닌 원망이 멋대로 흘렀다.

한번 터져버린 말은 멋대로 흘러 주체할 수 없이 소녀를 찔렀다.

보였다. 그녀가 울것 같은 표정으로 한껏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게.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왜 다시 나타나서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닌데. 차라리 너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었는데.

"미안해요..."

그 말이 쏟아지던 내 말을 턱 막아세운다.

할 말이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너무 무거웠다.

이 책임은 내것이어야 했다.

차라리 다시 눈에 띄지 않았다면 그냥 내팔자라고,

그냥 내가 운이 없는 거였다고 생각했을것이다.

그랬다면 가끔은 생각날때 먼저 떠난 마르커스를 생각하며 욕이라도 해볼텐데.

차라리 내 앞에 네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혹은 아무도 없었다면

그랬다면 다른 누군가를 대신 미워하며 잊을 수 있었을까.

"차라리 내가 널 마음껏 미워하게라도 돌아오면 안되는 거였다고. 알아?

왜 그렇게 얼빵한 얼굴로 돌아와서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내 앞에서 사과를 하고 있는건데 네가!"

상처가 내것이 아니길, 그러길 바랬다. 하지만 결국 내것이고,

이 소녀는 그저 엮였을 뿐이다. 내 상처를 흩뿌리고 있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감각은 달가운 것이 아니다.

아버지에게 배신당하고, 어머니에게 버려지고, 스승까지 눈앞에서 떠나보냈다.

어쩌면 이 아이가 아니라 내가...

"마녀... 였어...."

그제서야 다시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이 여린 아이가 어떻게 그 먼길을 돌아 다시 서지스로 돌아왔을까.

많이 고생했을텐데.

"마르커스가 만들어준 로봇은 어쨌어?"

"대장간에 있어요."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마르커스, 기어이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갔구나.

나 때문에 억지로 뛰쳐나온 고향을 하루에도 몇 번씩 그리워 했었다.

술을 마실때면 늘 대장간에서의 추억을 회상하던 사람이었다.

잘 된거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의 마지막 부탁을 그렇게 놓아버린 에리아에게

배신감도 느껴졌다.

만족감, 배신감, 분노, 슬픔, 울분.

내게는 대장간이 그저 마르커스와 함께하던 공간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곳에서 내가 본건, 들은건, 배운건 마르커스라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로봇이 처음 콜린을 떠날때, 마치 조카를 떠나보내는 느낌이 들었다.

대장간 사람들은 늘 그랬다. 너무 뜨거워서, 너무 단단해서.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지 못한다고. 보고 배운게 그런 것 뿐이라고.

그런 생각에 나는 코웃음을 치곤 했다.

그러나 어느새 나배주를 찾고 있는 나를 보고, 헬라레소를 찾는 나를 보고

나 역시 인정하게 되었다. 나 또한 그저 그런 대장간의 기술자였음을.

어쩌면 제일 큰 본심. 하지만 진심에서 제일 먼 발치의 차가운 말.

이미 대장간을 떠나버린 것 같은, 내 뜨거운 심정을 대변하지 못한

싸늘한 검같은 말이 흘렀다.

"결국 마르커스의 유산을 그렇게... 역시 널 믿는게 아니었어..."

"난 그래도 우리가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요?"

"그 믿음을 배신한건 너야... 난... 마르커스는 널 믿었다고..."

"그래요. 그런거겠죠. 알겠어요."

사실 지금도 믿고 있다고 말하면 되는데,

그걸 인정하는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걸 입 밖으로 빼는건

아마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고민하는 동안 그녀의 눈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모양이 변한다.

뭐라고 말하는건지 들리지 않았다.

먹먹하게 들리는 음성은 내 귀에 닿지 않고 웅얼대며 뭉개진다.

그녀가 입을 닫고 나서야 머뭇대며 문장의 형태를 갖춘 말이 들린다.

"감사했습니다."

"뭐...? 잠깐...!"

이게 아닌데. 결국 화만 냈다.

내가 마르커스의 친구였다고 그녀가 마르커스의 적이 되는 것은 아닌데.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많은데. 내 감정대로 마르커스의 마음을 재단해

저 소녀에게 상처를 준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커피 잘 마셨어요."

그녀가 떠났다.

잡을수가 없었다.

그럴 염치는 없었다.

가만히 앉아있던 카페에서 일어났다.

"계산해주세요."

"18페킷입니다."

"비싸네..."

"네?"

"아니, 아니에요..."

그냥 문득 유난히 싼 가격의 그 카페가 떠올랐다.

공방으로 돌아와서 의뢰받은 일을 시작했다.

그래, 일을 하다보면 잊혀지겠지.

서지스로 옮긴 공방은 소박했다.

종종 들어오는 농기구의 의뢰나 하다보면 하루가 저물었다.

마르커스는 이 일을 한평생 해왔다. 왜 그랬는지 이젠 알 것도 같았다.

그 우직함과 든든함이 보여주는 투박한 믿음 때문에 엄마도 날 그에게 맡긴거겠지.

아직 나는 마르커스를 따라가기엔 멀었다.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작게 마음에 자리한 생각을 마주했다.

"대장간으로 돌아가자. 이번 의뢰가 끝나면 대장간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다시 달궈지고 다시 두드려져서 다른 도구로 태어나듯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보면 뭐라도 알 수 있겠지.

엄마가 좋아했다고 한 대장간의 열기가 궁금해졌다.

조금 더 벼려서 지금처럼 뜨겁지 않을때,

조금 더 식어서 차갑고 날카로워지면

그때 다시 그 금발의 소녀를 만날수 있길 바랐다.

지금의 이 허전함과 답답함은, 그리고 사그라들 것 같지 않은 죄책감은

그때까지 잠시 안고 있을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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