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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32화 (132/303)

〈 132화 〉 데릭

* * *

고통. 그리고 허탈감.

아이를 자궁 밖으로 밀어내는 어머니의 순간은

생각했던 것만큼 밝지 않았다.

겨우 긴 숨을 토해내며 그녀가 아이를 낳았을때,

피범벅으로 젖은 이불 위로 그녀의 눈물도 한방울 흘렀다.

"축하드려요 산모님."

그렇게 말하며 아이를 든 여자가 겨우 지친 얼굴로 산모에게 아이를 안긴다.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채워지는 충족감. 방금 막 내 안에서 내보낸 것을 스스로 안은 감정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막 얻은 여자에게는 조금 색다르게 다가왔다.

"산모님 웃으시는거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웃으시니까 보기 좋네요~"

"고마워요."

"아이 이름은 뭘로 하시겠어요?"

여자는 오랫동안 불리지 않은 자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셰린느라는 이름은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거부감이 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린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녀의 존재는 린이었다.

이름은 곧 존재다. 자아이며, 운명에 귀속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녀는 잠깐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피드가 좋겠네요."

"네, 그럼 아이 이름은 피드 린이죠?"

"린은 어디서 붙은거죠?"

"아, 밖에 계신 분들께서 린 아가씨라고 부르시기에 성이 린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요?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맞아요, 성."

"아, 그럼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려주시겠어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아직 그녀는 스스로의 이름을 말한 적도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자신은 남작 부인도 아니고, 이단의 주교도 아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아무리 괴로웠더라고 해도,

그 모든 순간을 잊지 않고 싶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말했다.

"제 이름은 셰릴 린이에요. 셰린느라고 불러주세요."

모든 순간을 기억하기로, 버리지 않기로 그녀는 다짐했다.

그 순간 그녀는 스스로를 셰릴 린이라고 확신했다.

쫒겨다니는 이름이 아니라 정말 자기 스스로 개척해낸 성취라고 느끼면서.

그리고 병상에 누워서 그녀는 시간의 흐름을 그저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 세계를 엉망으로 만들지도 모르는 계획을 세우고는

그걸 이루기 위해서 발악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옅게 웃었다.

그녀의 퇴원은 3일이 걸렸다.

사실 더 오래 입원해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거울을 이용해 미리타엔으로 보낸 옐로가 구해온 포션을 벌써 6병이나 마셨다.

몸은 생각보다 금방 회복되었다.

그녀가 퇴원을 결심하고 피드를 받아들었을 때,

어딘지 모르게 그녀는 욕망을 느꼈다.

순수한 욕망. 자신이 이루어낸 것에 대한 열락인지, 아니면 자신도 몰랐던 성욕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느꼈다.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이 사랑이 모성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신을 품으려고 했던 여자였다. 영혼 하나를 품는다고 달라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가진 기억이, 그의 인생이 느껴졌을때, 그가 자신을 보듬는 감각에

그녀는 잘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존재를 처음으로 만난 것 같았다.

비록 만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만난 관계또한 아니었기에 서로의 시작은 불안함이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고로 인해 잠시 두 사람이 하나였던 순간 동안,

둘은 확신했다. 그저 평범을 바란 두 사람이 멀리 있던 완벽을 쫒으려고 했을 뿐이라고.

그리고 지금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가까이에 있던 평범을 잡은 둘에게

이제 먼 완벽은 필요 이상의 사치였고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

이제 어찌 되던 상관 없어졌다. 만났고 낳았으며 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에리아와 지내며 느낀 가장 커다랗고 예리한 감상은 하나였다.

도덕과 윤리는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존재라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그건 그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멈출 수 없는 유혹이었다. 거부하지 못할.

그래서였을까, 아들을 품에 안은 그녀는 다음날 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졌다.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품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을 아이의 위협은

이제 그녀의 피부에 매섭게 다가왔다. 너무나 연약한 아이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포기할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자신이 품고 싶었다.

부디 이제는 평범하게 살 수 있길 바라면서 그녀는 누구보다 평범하지 않은 일을 계획했다.

"아가씨, 여기입니다."

"여기가 그..."

"네, 다르말록의 제단입니다."

"조사 고마워 그린."

"당연한 일일 뿐입니다 아가씨."

그녀는 제단에 자신의 아이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피를 사용해 제단 앞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르말록을 품기로 했을 때부터 계획했던 일이니만큼

방법이 적혀있던 책은 수백 수천번은 보았다.

죽은자를 살리는 흑마술부터, 저주와 기원. 그 끝에는 기어이 영혼과 시간의 개념이 적혀있다.

금지된 주술이라고 했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의 핏값으로 버려졌던 책을 처음 주운 일을

그녀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때 내 손에 십자가 없어서, 그래서 불완전하게 낳았지만... 괜찮아...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줄게...

엄마가... 많이 연습했거든..."

그녀가 제단 위에 그린 마법진은 피드의 기억에도 익숙했다.

다만 그곳에 죽은 첼이 없었다는 차이가 있었다.

"이전에는 만들어진 제단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말록의 제단이니까,

괜찮을거야... 모험가도, 늙은 기술자도... 연습했을 때는 다 성공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를 따라 들어온 하인들이 쓰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씁쓸함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확신에 찬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비 되었습니다."

그 말에 그녀는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녀린 손으로 얼굴을 살짝 어루만진 그녀는 입술을 살풋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물었다.

"여러분....아니, 너희... 그걸로 괜찮겠어...?"

"마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가씨,

아가씨께서 구해주시지 않았다면 저희는 진작에 미리타엔 어딘가에서

개만도 못한 삶을 살다가 죽었을 겁니다. 여기서 죽는것도 안식이라고 생각하면

영 못할 것도 아니지 싶습니다. 하하... 아직도 꼭 이교도 티를 못 벗었습니다."

"얘들아..."

"마지막이 되어서야 말을 놓아주십니까... 하하... 행복하십시오 아가씨."

그렇게 말하고 퍼플과 브라운이라고 불리는 두명이 마법진 가운데 선다.

셰릴 린은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떨리는 목소리로 주문을 외운다.

종치는 자들의 기억이라는 책에 적혀있던 주문이었다.

시간에 간섭하는 계열의 마법은 많은 대가를 필요로 한다.

그건 사람의 목숨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람의 목숨을 제물로 대상의 시간을 가속하는 주술.

이번에 그녀가 준비한 제단은 그를 위한 제단이었다.

수명과 시간을 강탈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자신을 위해서 오랜 시간 따라와준 부하를 희생하는 것은 그녀로서도 큰 희생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욕망은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외운 주문에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하고, 천천히 피어오르는 연기는

시야를 검게 가리기 시작한다. 매케한 연기가 방을 메우며 소용돌이치면

셰린느는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눈물은 그리움과 아쉬움, 미안함을 타고 흘렀다.

마침내 눈물이 다 떨어지고 나면 갈라진 목에서 뻣뻣한 기도만 흘러나올 뿐이다.

이제 그녀가 섬기는 신은 없음에도 그녀의 절박함은 그녀를 기도하게 했다.

방을 뒤덮은 연기를 마시면 천천히 눈 앞이 흐려지기 시작하고

셰린느는 이윽고 바닥에 쓰러진다. 눈꺼풀이 무겁게 닫히면 그제서야

의식이 끊겨버리고 만다.

그녀를 흔들어 깨우는 손길, 그리고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 감각.

체온, 냄새, 감촉. 모든 것이 낯선 새로운 존재가 느껴진다.

그러나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그곳에 있는 것은 설렘이었다.

눈을 뜬 그녀의 앞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린과 나체로 선 피드가 있었다.

적갈색 머리를 장발로 늘어뜨리고 거뭇한 수염을 보이는 남자가 보이면

그녀는 잠시 멍하니 그와 눈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는 그를 끌어안았다.

"성공했어..."

"그래..."

왜 그랬던 것일까 설명하지 못했다. 셰릴 린은 옷을 벗었다.

어쩌면 처음 그를 만난 순간처럼 흥분으로 가득찬 그녀는 옅게 웃었다.

"그때도 이랬지?"

"그랬지."

"아들..."

"모성이 상당하던데."

"느껴졌어?"

"그럼. 충분히."

"이제 난 아무것도 없는 칙칙한 여자야."

"알고 있어."

"같이 있어줄거지?"

"버려진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건 알고 있으니까."

"역시, 귀염성이 하나도 없는게 내 아들 다워."

둘은 제단을 등지고 몸을 섞었다.

도의적 시선은 버려두고 격하게 시간을 보내며 둘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했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허덕이고 말라가면서도 그들은 죽음을 목전에 둔 미리타엔의 노예들처럼,

어쩌면 마른 목을 축이는 사막의 조난자처럼 서로에게 집착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를 시간이 지난 후에야 둘은 제단 밖으로 나왔다.

제단 앞에서 옷을 준비해 서있던 그린이 머쓱하게 말했다.

"상당히... 오래 걸리셨습니다..."

"얼마나 지났죠?"

"사흘입니다. 드실 것도 없으셨을텐데..."

"그러네요, 배가 고프네요. 가시죠. 식사를 해야겠습니다."

"그러실 줄 알고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린이 준비해온 음식은 대개 보존식이었다.

그들이 그걸로 배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양이었지만,

기어이 음식을 비우고 나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처음 그들이 그렇게 찾아왔던 것처럼, 다시 그들은 거울을 통해

다른 먼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한편 그시각, 고대의 분지 지하의 공동, 다니엘과 이리디나는 분주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여보, 정말 여기에 해골이 있었다고?"

"그렇다니까, 상당히 지위가 있어 보이는 해골이 있었어.

내가 이런걸로 자기한테 거짓말 할 사람은 아니잖아?"

"이런게 아니어도 거짓말 못하잖아 당신."

"그건 그렇지~ 여기 봐, 관은 있잖아?"

"관은 있네. 그럼 이상하잖아.

관은 열려있는데, 온 사람은 없고.

설마 해골이 스스로 걸어서 여길 나갔을 거라고 말하진 않을거지?"

"어... 그게 제일 설득력이 높지 않아?"

"여보! 당신 정말 바보야? 어떻게 그런 소릴 당당하게 하는거야?

고고학자아냐? 어쩌다가 이런 남자를..."

"이리디나..! 나 상처받아!"

"어휴, 그래 알았어. 일단 급히 불러서 돌아오기는 했는데,

흥미로운데 비해서 너무 깔끔해. 정말 당신이 나가고 나서 아무도 안 온것 맞아?"

"그럼, 누가 들어오면 반응하도록 경보기도 설치해놨잖아."

"하긴, 누가 들어온다면 무조건 울렸겠지."

이리디나는 가만히 관을 바라보다 말했다.

"이 관, 안쪽에 뭐라고 적혀있는데?"

"안쪽에?"

"뚜껑에 뭐라고 적힌 것 같아. 으... 무거워서 나 혼자서는 못 들겠어.

여보, 이것좀 열어줄래?"

"그래. 이런 힘쓰는건 내가 해야지. 우리 마눌님은 푹 쉬어."

"내가 쉬면 또 무슨 사고를 치시려고?"

다니엘은 무거운 관을 쿵 넘긴다.

돌로 만들어진 건지 헷갈릴 정도의 무게다.

당연히 여자가 들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였다.

관뚜껑의 안쪽에는 마치 못같은 것으로 긁은 것 같은 글씨가 쓰여있었다.

"어디보자... 이게 무슨 글자였지? 여보! 이것좀 봐줘."

"안그래도 보고있어. 이건, 어디보자... 젤데리스어인가? 아니고...

구 엠페레스어도 아니고, 아, 찾았다! 아르간티아 초어..."

"왜?"

"이거, 봐봐..."

"뭐가 어떻길래... 어디보자... 난, 아직 죽지 않았다...?"

다니엘은 아내를 바라보고 조용히 아내를 안아주었다.

이리디나는 그제서야 흠흠 헛기침을 하고 겁을 먹지 않았다는 양 그를 밀어낸다.

그러나 얼굴에는 살짝 홍조가 띄어있었다.

그리고 관을 다시 천천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까와 같은 웃음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관 바닥의 녹슨 철패에 적힌 글씨를 찾아냈다.

"죽지 않는 자, 데릭 브라이어 로드원을 봉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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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릴 린과 피드 린, 둘이 정사를 나누고 사라진 다르말록의 제단.

그곳은 피로 그린 마법진과 죽은 사람 두명분의 시체가 놓여있었다.

정리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피냄새가 자욱했고,

얼어붙은 시체는 썩지도 않고 굳어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아무래도 여기는 맞는 것 같은데, 금방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

여기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데..."

동굴 바닥을 긁는 쇳소리가 울린다.

스르륵, 스르륵 긁히는 쇳소리를 내는 커다란 족쇄는

살점 하나 없는 발에 묶여 질질 끌리고 있었다.

검은 로브를 두른 부자연스러운 모습의 해골이 죽지 않고 그 자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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