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오래된 연인의 이야기
* * *
사방에서 달려드는 개들이 짖어대는 난리통은 나름 장관이었다.
다만 그 대상이 나라는 것만 아니면 더 좋았을 텐데.
두마리 뿐이었던 검은 개가 짖는 것을 필두로 사방에서 우르르 달려나오는 개떼.
정말 말 그대로 개떼처럼 몰려오는 것이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하면서
나는 자기방어 목적으로 마력을 손으로 모았다.
그때였다.
"그만! 멈춰라!"
한마디였다.
단 한마디 말이 그 수많은 개들을 멈춰세웠다.
그 뒤로 나타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떼를 몰고 다가와서는
개들 사이에 둘러싸인 나와 진흙을 아직 덕지덕지 묻힌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무리가 갈라지고, 그 안에서 나이가 있어보이는 남자가 걸어나왔다.
겉보기에는 노환이 들 정도로 나이가 많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보였는데,
그럼에도 인지부조화가 올 뻔 했던 것은
그 나이든 남자의 몸이 너무나 우락부락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보면 인간이 분명한데 몸은 마치 오크와 같은 거구였다.
진한 구릿빛으로 탄 피부는 땀으로 젖어있었고, 짙은 수염이 턱을 덮고 있었다.
머리는 희끗했지만 탈모는 흔적도 없었다.
"무슨 일이지?"
남자의 한마디에 몸에 묻은 진흙을 채 닦지도 않고 남자가 머뭇대며 대답했다.
"그... 조난자 같은데, 늪에 빠진 것을 구해주었는데,
엠페레스에 가고 싶다고 하면서 따라와서..."
"그래, 그럴 수 있지. 조난자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덕을 베풀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것 역시 자명한 일이니 좋다.
그런데, 그렇다고 외부인을 데리고 우리의 영역으로 돌아온건 좋은 일이 아니었던 것 같구나."
"죄...죄송합니다 족장님..."
족장은 가만히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바닥에 쳐박은 남자에게 다가가
그를 손수 일으켜 세웠다.
"들어가서 쉬어라."
그렇게 말하고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모습은 인자해보이기까지 했다.
남자가 무리 사이로 사라지고 나서 족장은 나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그래. 길을 잃으셨다고? 이 국립 공원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입구가 정해져있던 것도 아니어서 들어오다보니 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어쩌다보니? 어쩌다보니라..."
그렇게말하고 그는 내 앞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는 나를 둘러싸고 한껏 경계중이던 개들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내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이 주변에 사는 분은 아니신가보군?"
그 말에 경계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선 내게 그는 허허 웃으며 내민 손을 다시 내렸다.
"내가 손을 내미는건 우호적으로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의미야.
그리고 덧붙여서 마법으로 허튼 짓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지."
흠칫 놀라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내 이름을 안다면 그렇게 나오지 못했을텐데.
소개하지. 나는 비고라고 한다.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나?"
"아뇨, 처음 들어요."
"하하하하!!"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뒤로 따라나왔던 사람들 역시 분위기에 편승하듯 따라 웃기 시작했다.
"여기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요?"
"암, 맞는 말이지. 맞는 말이고 말고."
그는 그렇게 웃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돌아가자. 저 손님은 정중하게 모셔라."
"네!!"
그들은 생각보다 우호적으로 나를 인도했다.
족장은 그 말만 마치고 무리의 앞쪽으로 사라졌다.
족장이 사라지고 나서 나를 바라보던 남은 무리는 비웃음인지 우스움인지 모를
애매한 웃음만 내게 헤실헤실 흘리면서 한마디씩 건넸다.
"운이 좋구나."
"좋았고 말고. 크하하...!"
"하긴 오랜만에 보는 도시사람인데 오래 보면 좋지 않겠어!"
"그건 그래! 또 저번처럼 위스키나 잔뜩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확실히, 그건 맛있었지..."
그렇게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를 보고 말한다.
"말 뒤에 타. 일단 데려가긴 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남자가 내게 내민 손을 잡으면 휙 나를 잡아올려 말 뒤에 태웠다.
말 꼬리가 찰싹이며 등을 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잘 잡으라고."
그렇게 말하고 서서히 다그닥대며 나아가던 말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금방 말들은 달리기 시작했고, 그 옆에서 수십마리의 개들이 따라 뛰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배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 내 어색한 모습을 즐기는 듯 옆에서 함께 달리던 남자들이
나를 보고 웃음을 참는 모습이 내게는 썩 창피했다.
말을 처음 타 본 내 모습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거겠지.
그래서 말같은걸 타고싶지 않았는데.
떨어져서 다치고 싶지는 않아 어떻게든 몸으로 말을 꽉 붙들었다.
그럴수록 말이 덜컹거리는건 더 잘 느껴졌지만.
나는 내가 말을 타면 멀미가 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말을 꽉 붙들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초반에나 좌우의 시선을 신경썼지, 점차 그럴 여유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렸을 무렵 드디어 선두에서 달리는 말들이 하나씩 정지하는걸 보고 나서
그제서야 나는 주변의 풍경이 아까와 사뭇 달라졌음을 알아챘다.
커다란 천막이 여럿 놓인 정말 말 그대로 유목민의 거처였다.
"으에에..."
"크하하하!! 저것좀 보라고!"
"말 처음 타본 티 내는 것 좀 보라고, 귀엽구만!"
"도시 놈들은 말이나 타봤겠어? 마차나 탈 줄 알았지!"
내가 말에서 내려 겨우 숨을 고르고 있으면 주변에서 신기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에게는 내가 더 낯선 존재인가 보다.
"어이, 다 죽어가는 와중에 미안한데, 족장님이 찾으셔.
정리되면 제일 큰 텐트로 가보라고."
"에... 고맙습니다흐아..."
그들은 거처로 돌아오고 나서 내게 관심을 잠깐 보였을 뿐,
각자 자신의 천막으로 사라졌다.
결국 천막을 두고 밖으로 나다니는 것은 빨래를 하러 나온 여자들과
뛰어노는 아이들 정도였다.
간혹 아이들 한둘이 나를 발견하고 내게 다가오려고 하다가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들에게 제지당해 시무룩한 표정으로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내게는 낯선 경험이었다.
범죄자도 아니고 내가 이런 경험을 했을리가 없으니까.
어... 범죄자는 맞구나. 비슷한 경험도 해 봤던 것 같은데...
그냥 아이들을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어른들이 경계하는 대상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저 순수한 눈빛들이
참 오랜만에 내 기분을 좋게 했다. 경계심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그렇지 참."
그렇게 생각하니 확 누그러진 경계심에
나는 상당히 가벼워진 마음으로 제일 거대한 천막을 찾았다.
"왔군."
거대한 천막의 문을 넘기면 그 안에는 비고와 여자 셋이 있었다.
비고의 옆에 나란히 앉은 상당히 나이가 든 여자와 나를 바라보고 경계하는 젊은 여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딘가 어두워보이는 얼굴을 한 중년의 여자였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걸 보자마자 머뭇거리던 젊은 여자는 그 자리에 멈춰서
나와 비고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저...저는 가보겠습니다..."
비고가 고개를 까딱하며 나가보라고 허가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나가는 여자를 보며
어쩐지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고가 날 바라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엠페레스로 가고 싶다고?"
"네."
"좋은 곳이지. 여자들도 예쁘고. 안정적이고, 음... 좋은 곳이고 말고."
그렇게 말하며 수염을 쓸어내린 그가 자신의 옆에 앉은 나이든 여자를 바라보면
여자가 조금 눈을 가늘게 뜨고 비고를 째려본다
"여보..!"
"아이, 그렇게 보지 마. 내 나이에 당신 말고 누굴 만난다고.
그것도 주책이야."
"주책은, 아직도 남자 구실 잘하잖아. 아주 나이가 무색하게... 괜찮다고는 하지만
정말 힘만 쓸데없이 남아돌아서 어디로 시선을 돌릴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만 해 여보, 손님이 보잖아."
"왜, 보면 안돼?"
"흠흠... 아니, 아냐..."
어째 어딜가나 남편들은 잡혀 사는구나...
그 모습을 보아하니 정말 이 유목민들과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왜라고 확신할수는 없지만 어쩐지 익숙한 광경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입꼬리가 올라갔는지 넋을 놓고 있었더니
어느새 다가온 음침한 여자가 내게 귓속말로 조용히 말했다.
"표정관리 하세요... 만만한 사람 아니니까..."
그 말이 다시 누그러졌던 내 주의를 일깨웠다.
내가 다시 표정을 펴고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 표정을 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비고는 나를 바라보고 다시 말했다.
"일단 여유가 되면 데려다 줄 수도 있다. 엠페레스정도야."
"고맙습니다."
"하지만 조건을 확실히 해야겠지. 우리 부족에 들어와라."
"네?"
"난 네가 우리 부족에 들어오길 원한다는 말이다.
요즘 세상에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기껏해야 영기술이니 뭐니 하면서 장난이나 치는 녀석들과는 다르겠지."
"저는 그런거 할줄 모릅니다."
그 말에 싸늘하게 표정이 굳어지는 비고가 말했다.
"모른다? 그걸 지금 믿으라는건가?
우호적으로 대화하려는 사람에게 불신을 심어주는건 그다지 좋은 판단이 아니야.
지금은 나 역시 부족으로 들어오라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에 대화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지만,
혼자서 우리 부족을 적으로 돌리면 상당히 피곤해질텐데?"
마른 침이 목 너머로 넘어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비고가 다시 말했다.
"판단 잘하는게 좋을거야. 다시 묻지. 정말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른다고 잡아뗄건가?"
"후우... 그래요, 쓸 수 있어요. 그런데, 왜 부족으로 저를 초대하려고 하시는거죠?
저 말고도 이미 부족에 여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많이 있지. 사실이다.
하지만 마법을 쓸 수 있는 자는 이제 몇 없다.
도시 놈들은 마법을 다루지 못하니까.
끽해야 영기술도 사라져가는 마당에 마법을 쓰는 자의 존재는 큰 선물이지."
"마법에 대해서 상당히 잘 아시는 모양이네요."
"우리 유목민이 왜 이곳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나?
고작 말과 양따위 목초지가 필요해서 온 것 같아 보이나?
아니지, 그런건 사료로 대체할 수 있다. 우리는 마법을 간직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배척된 자들이라고도 할 수 있지.
과거 마녀사냥 이후로 떨어져나온 무리가 이곳에서 사는 거다.
기술과 편리함을 거부하고 마법을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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