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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41화 (141/303)

〈 141화 〉 흩어진 뿌리의 흔적

* * *

식사를 마치고 나서 우리가 식당을 나오고 나면 그는 차분하게 나를 안내했다.

우선 미술관에 먼저 가보는건 어떻겠느냐고 추천했기에 나는 그를 따라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는 생각보다 더 친절하게 나를 가이드해주었다.

"엠페레스는 원래 이렇게 예술을 존중하는 나라였나요?"

"아무래도 그런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엠페레스는 젤데리스에서 떨어져나온 베델그 엠페레스왕이 세운 나라입니다.

어찌 보면 주변 국가들에 비해서 힘이 약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죠.

국력도 약하고, 정치적으로도 큰 힘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술적인 부분을 장려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예술적인 부분에서는 상당히 다양한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당연하고, 조각을 하는 사람이나 연극예술, 그리고 음악예술도 다양합니다.

그렇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이 상당했기 때문에 지금의 엠페레스가 생겨난 거겠죠."

"어쩐지 거리가 풍요로워보여서요."

"그래도 주의하셔야 합니다. 이 나라는 철저하게 6귀족이 만들어놓은 체제 아래서 돌아가는 편이니까요.

까딱 잘못해서 문화라고 생각해 발을 들였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원래 엠페레스 출신이 아니신 분들은 그만큼 더 순수하게 접근하시니 말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하 투기장을 비롯한 음지의 문화도 암암리에 용인하고 있으니까요."

"미리타엔만큼 노골적이지 않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미리타엔처럼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에는

사람이나 물자의 추적이 비교적 투명한 편이지만 엠페레스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묘한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경계는 늦추지 않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지하 투기장과 문화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잘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그는 주변을 살핀 후에 조용히 내게 말했다.

"왕과 백성들이 예술을 좋아한다고 모두가 그런걸 좋아하는건 아니니까요.

예술이나 문화는 제쳐두고서라도 그런 방법으로 즐거움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6귀족 중에서는 에그니아 공작이 그런편이죠. 사실상 왕성에서도 암묵적으로 허가하고 있고요.

저도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자의 뿌리가 미리타엔에 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그렇다고 하면 이해가 아예 안되는 것도 아니네요."

미술관 앞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커피나 음료를 들고

흥미로운 눈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 대다수는 이미 익숙한 것처럼 입관료를 지불하고 미술관 안쪽으로 들어갔고,

개중 몇몇은 질린다는 얼굴로 미술관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미술관 앞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음에도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둘러싸고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사람도 나타나기 시작하면 모건이 말했다.

"이런 광경이 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보입니다. 자, 들어가시죠."

그는 지갑을 꺼내 내 몫까지 지불하고 나를 미술관 안으로 이끌었다.

에드먼드 브리깃의 작품전 쪽으로 나를 데려온 모건은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하다가

저 멀리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해져서 입을 닫았다.

그리고 조금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한 점을 주시하더니

이윽고 표정에서 불쾌함을 지우고 옅은 미소를 띄운 후에 내게 되물었다.

"잠시만 혼자 감상하고 계시면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일이 생긴 것 같아서요."

"네, 천천히 다녀오세요."

그렇게 그는 내게 가볍게 목례하고 자리를 떴다.

그의 동선을 가만히 눈으로 흩으면 그는 한 나이든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홀로 서지도 못해서 젊은 남자의 부축을 받은 채로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바르르 떨리는 팔에 든 지팡이로 겨우 그 몸을 지탱하면서도 작품을 감상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연이 있어 보였지만 굳이 자세히 알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앞을 모건이 가로막으면 서로 머쓱한 분위기인지 입을 열지 않은 채로 눈빛만 교환하다가

무어라고 몇마디씩 뱉은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함만 흘렀다.

그러나 아까보다는 분명히 날카로워진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과열될 것 같아보였다.

나는 억지로 그곳에서 시선을 떼 작품으로 옮겼다.

작품명이 아버지인 그림은 상당히 마른 남자의 그림이었다.

얇고 창백한 피부에는 핏줄이 비쳐보일 것 같았다.

겨우 사람의 뼛가죽 위에 살을 붙인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그 표정에서는 어딘지 모를 당당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서

묘하게 입체적인 느낌에 나도 기분이 나쁜 그림이었다.

아마 에드먼드 브리깃 공작의 아버지를 그린 것이겠지 생각하면

누군가의 소중한 인연이 기록으로 남는 것 만으로 미술관에 전시된다는 게

내게는 낯설고 놀라웠고, 부러웠다. 내게 특별한 사람이

그 순간에 모두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와 비슷하겠다고 생각하니

미술이라는 것에 상당히 흥미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밖에 그림은 사과나무와 들판을 그린 그림과 이 나라의 풍경이 있다.

애완견의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었고, 자화상이라고 제목이 붙은 그림에는

전체적으로 둥근 인물이 그려져 있었다. 아마 이게 에드먼드 브리깃일 것이다.

그 외에는 사과를 그린 그림과 작은 새가 그려진 그림 따위가 있었다.

그러나 내 눈길을 확 사로잡는 그림은 늙은 여자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제목은 '나의 어머니'였다. 한 추레한 여성이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아까 본 아버지의 그림과는 전혀 분위기가 달랐다.

아까 그 남자의 그림은 비록 깡마른 인상에 창백해보이고 날렵한 인상을 가진

당당하고 기품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 그림에 그려진 여자는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 모습에

금방이라도 비틀대며 쓰러질 것 같은 인상이었다.

얼굴은 깊은 슬픔이 푹 젖어있는 것 같았고, 상심으로 핀 다크서클과

억지로 지어보이는 미소를 담은 보는 것 만으로도 애절함과 안타까움이 드러나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돌아온 모건이 말했다.

"역시 이 그림이군요. 에드먼드의 최고 걸작품이라고 평가받는 그림입니다.

실제로 그의 모친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 그림에 담긴 사연도 상당하죠."

"사연이요?"

"말씀드렸던 그 40여년 전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를 제공하는 사건입니다.

정말 오래 전으로 돌아가게 되는군요. 저 그림은 정말 과장 없이 이 나라의 역사를 바꾼 그림입니다."

"역사를...바꿨다고요?"

"그게 예술의 힘이었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요. 아무래도 엠바고가 걸려있기 때문에

함부로 설명드릴수도 없군요. 그 당시의 기밀사항이니까요.

일반 국민들 역시도 그 그림에 숨겨진 비밀은 잘 모릅니다. 저야 그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었고,

에드먼드의 편지를 받기도 했었으니까 알고 있지만요.

이걸 타국의 무령께 섣불리 알려드리기에는 좀 무거운 이야기라서요."

"궁금하게 만들지 마셔야죠 그럼...! 센스가 없으시네요."

"그래서인지 에드먼드도 종종 저에게 재수없는 녀석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부정할수는 없군요. 실제로도 그런 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재수 없다는 이야기랑은 거리가 좀 있어 보이시는데요?"

"이제는 그런 장난을 치기에 너무 늙어서 기운이 없습니다.

이전만큼 즐겁지도 않더군요. 무엇보다 이젠 그걸 받아줄 친구도 없고요.

마지막까지 재수없는 사람으로 기억되었다고 생각하니 썩 기쁘진 않더군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왕들은 늘 불안에 떨어야 했고, 신하들은 그런 왕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 모든 불안은 무덤 앞에서 울리는 청명한 종소리와 함께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기열한 이들과 뒤집어진 여자와 뿔 달린 아이와 긴 꼬리 달린 노인이 거리를 달리고

그 뒤로 휠체어를 탄 남자가 울며 춤춘다. 나는 그 위에서 영원히 종소리에 맞춰 노래한다.

들어 보셨습니까? 과거에 금서로 지정되었던 종치는 자들의 기억이라는 책의 일부입니다."

"아, 알고 있어요. 소설책으로 위장한 흑마법서였죠?"

"네? 그게... 소설이 아니었습니까..?"

그는 아마 그 책의 비밀은 몰랐던 모양이다.

눈을 크게 뜨고 오히려 내게 반문하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책이 어떻기에 그 책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그 책의 저자가 엠페레스 출신이었습니다.

제가 젊을 때까지만 해도 도서관에서 일했는데, 지금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 사람도 죽은건가요?"

"네, 늙어서요. 천수를 누리다가 갔다고 해야죠.

아들도 훌륭하게 자랐고, 연세도 많으셨으니까요.

어째 공식적으로 죄 지으신 기록도 없죠."

"공식적으로요?"

"네, 금서를 쓴 작가로서 광장에 끌려가 책을 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서

그의 모든 책을 불태우고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요.

불쾌함과 기이함이 가득해서 그렇지 문학적으로도 상당히 가치가 높은 소설이었거든요.

저도 개인적으로 외워버릴 정도로 많이 읽었습니다. 설마 그게 흑마법서인 줄은 몰랐지만요.

그걸 읽고 나면 영기술이라도 쓸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아뇨, 그렇게 간단한 책은 아니니까요."

모건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손을 풀며 말했다.

"다음 관으로 넘어가시죠. 더 좋은 작품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좋긴 한데 개인적으로 해설을 듣고 싶은 작품이 있어요."

"그러시다면 설명해드리죠. 어떤 작품인가요?"

"저기 있는 저 아버지라는 작품이요. 깡마른 인물로 보이는데요."

모건은 다시 표정을 구기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나와 그림을 잠시 번갈아 바라보앗다.

그리고 짧은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저 인물은 에드먼드 브리깃의 부친이셨던 에스트릭스 브리깃입니다.

공작 작위를 받으셨고, 국가의 기틀을 세운 가문으로서 이어져내려온 브리깃의 가주 이셨어요."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느낌이 상당히 차이가 있어서 에드먼드 브리깃의 일생이 궁금해지네요.

혹시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건가요?"

"에스트릭스 브리깃 공작은 그의 아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저택에서 내쳤습니다. 이때 에드먼드 브리깃은 아직 학생이었습니다.

그 에드먼드 브리깃은 저택에 남기보다는 어머니를 따라가기를 택했고,

그녀가 과로와 병으로 세상을 뜨기 이전까지 그녀의 곁을 지키며 엠페레스의 작은 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하면서 종종 제가 일하는 신문사에 그림을 투고하며 살았습니다."

"상당히 기구하게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그래서 두 그림의 분위기가 이렇게 다른거네요.

확실히 에스트릭스 공작의 그림에는 우아한 의복과 장식이 많은데 반해

사람 자체가 보여주는 느낌은 당당함 사이에 어딘가 불쾌함이 섞여있어요.

고급스러운 사람인건 알겠는데 아들에게 그다지 좋은 아버지는 아니셨나봐요."

"그건 아니었을 겁니다."

모건은 확신에 차 조금은 불쾌함이 섞인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의 심기를 자극한 것 같아 나는 바로 사과했다.

"그런가요, 저는 잘 몰라서 실언을 했나봐요. 이해해주세요."

"그렇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좀 예민했군요.

혹시 목은 마르지 않으십니까? 이 앞에 카페가 있는데 한잔 어떠신지요?"

"저야 좋아요."

우리는 그림을 더 감상하지 않고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그의 시선 끝에 놓인 지팡이를 든 여성이 자꾸 눈에 밟혔다.

과연 누구기에 이 남자가 그렇게 경계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자꾸 자화상 앞에서

글썽이며 눈물을 훔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관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빼진 않았다. 모건이 들어서 좋을게 없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다.

모건은 내게 무언가를 여전히 숨기고 있다.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다고 내게 말해주면서도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차라리 솔직하게 비밀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주고 있었기에 호감 이미지가 깎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답답했다. 알려주지 않으면 알아내면 되는 일이라고 스스로 고무하며

나는 지금은 한발 물러날 때라고 생각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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