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142화 (142/303)

〈 142화 〉 카페 베어핏

* * *

작은 건물에 딸린 카페에는 베어핏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분위기는 깔끔하고 댄디한 느낌이 드는 빈티지한 공간이었고,

바리스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컵을 닦고 있었다.

"점점 어머니를 닮아가는구나 넬리스."

모건이 그렇게 인사하면 넬리스라고 불린 바리스타가 모건을 발견하고 인사를 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모건 할아버지.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럼, 넬라 누님한테도 오랜만에 인사드릴겸."

"매번 감사해요 정말. 어머니도 감사하실 거에요."

"도나텔리 씨는 아직도 현역으로 일하고 계시니?"

"아뇨, 이제 아빠도 나이가 나이니까요.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그만 두셨어요."

"누님이... 돌아가셨다고...?"

모건은 당황한 것처럼 주춤했다.

그 표정을 바라보고 넬리스 역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많기는 하셨었지..."

"적어도 늦둥이 시집가는 것 까지는 보고 가시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참... 착잡하네. 핫 모건 브랜드 6호 부탁할게."

모건은 그렇게 말하며 라운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나는 그 옆에서 어색함을 겨우 버티면서 따라 앉았다.

내게 화제가 몰리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나보다.

"그나저나 할아버지, 옆에 그 분은 누구세요?"

"내 손님이란다. 요즘 유명하신 분이지. 서비스 잘 해드리는게 좋을거야.

커피에는 상당히 예민한 미각을 가지신 분이셔."

"미각만 예민하시다면 환영이죠. 가끔 성격이 예민하신 분들이 오실땐 지치거든요."

상당히 직설적인 편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가게는 예상외로 조용해서

손님은 우리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 생각이 통한건지 모건이 조용히 노트를 한장 뜯어 글씨를 쓰더니 내게 넘겼다.

노트에 적힌 글씨는 다음과 같았다.

[이 카페는 특정 시간대에는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는요. 그래서 이쪽으로 안내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 말에 납득했다.

이 정도 규모를 유지하려면 손님이 구준히 온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망할 것이다.

손님을 받지 않는 시간을 정해두고 그때 휴식을 취한다는 방식은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물론 매출에 영향은 가겠지만.

"그래서 에리아씨는 어떤걸로 드실건가요?"

"저는 카페오레로."

"카페오레 좋죠."

그는 주문을 하고 나서 넬리스라고 부른 바리스타와 한참을 대화했다.

대부분은 넬라라는 여자와 도나텔리의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넬리스의 부모님인 것 같았는데 모건씨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 같았다.

나는 살짝 소외된 느낌을 받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커피가 나오고 나서 모건은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 드렸군요.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라 좀 들떴군요.

이 카페는 저 아이의 어머니였던 넬라씨가 운영하던 가게입니다.

지금은 그 딸이 물려받았고요. 건물주가 넬라 씨라서 유지비가 적게 들어

상대적으로 다른 카페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확실히 가격이 저렴한 편이기는 하네요."

"밤에는 술집도 겸하고 있습니다."

괜히 내가 공감대를 느끼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술집을 겸하는 카페라니 확실히 엠페레스는 나와 감성적인 측면에서 부합하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조금 더 흥미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술집이라고 하면 펍인가요?"

"네, 그런 편이죠. 주로 칵테일을 팔기는 하지만 말이에요.

이전까지는 도나텔리 씨가 바텐더로 일했습니다만, 현재로서는 은퇴한 모양이네요.

원래 둘은 별개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넬라씨의 건물에서 가게를 낸 두 사람이었죠.

그리고 둘이 결국 결혼을 했고요.그렇게 두 가게가 하나로 합쳐진 형태입니다.

지금도 두 사람의 단골이었던 손님들을 포함해서 엠페레스 내부에서 유명한 가게입니다.

6귀족을 비롯해서 상당히 유명하거나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은 한번씩은 들르거든요."

"그정도로 유명한 가게군요."

그렇게 말하면 넬리스가 입을 빼꼼 내밀고 말했다.

"제가 또 한 미모 하잖아요?"

모건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그래, 넬라누님을 닮았으니까."

"오실 때마다 그 말씀만 하시네요. 우리 엄마 좋아하셨어요?"

"에이 설마, 나는 마음에 둔 여자가 있었단다. 비록 이뤄질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지.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너같은 딸이 있었을거란다.

누누이 말하지 않았었니 넬리스?"

"믿음이 안가니까 그렇죠.

신뢰가 가도록 말씀을 하셔야 제가 믿어드리는 척이라도 하지 않겠어요?

할아버지는 정말이지 매너있는거 말고는 아무 매력도 없잖아요."

"아니 이 쥐방울만한게... 내가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래.

그리고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아무리 그래도 할아버지 소릴 들을 정도는 아니지.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난 넬라 누님보다 젊다고."

"째째하게 그런거 따지지 마세요. 그러다 머리 벗겨진다?"

넬리스는 그렇게 말하고 우리 자리에 작은 조각케이크를 전해주었다.

아몬드가 박힌 스펀지 케이크는 보기에도 부드러워 보였다.

달콤한 시럽이 뿌려진 위로 체리가 올라가 있었다.

"저는 아까 식사를 충분히 해서 배가 고프지 않은데, 에리아 씨 드시죠."

모건이 그렇게 말하며 케이크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케이크 접시를 내 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먹을 수 있을때 먹는게 좋을걸요? 아, 하긴 먹을게 없던 적이 없으시죠?"

"저야 그렇습니다. 나름 유복하게 자라기도 했으니까요."

나는 포크로 크게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폭신..하네요. 맛있어요."

확실히 빵을 오랜만에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 마지막으로 먹었던 게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을텐데.

내가 조용히 케이크를 먹어치우는 것을 보다가 내 옆으로 다가와 앉은 넬리스가 말했다.

"되게 맛있나보다. 잘먹네."

그녀의 한 마디에 모건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그 모습에 보는 내가 다 안쓰러울 정도였다.

"귀여워라. 이름이 에리아야?"

"네, 에리아라고 부르시면 돼요."

차마 뭐라고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그자리에 굳어서 입에 커피를 머금고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모건의 눈빛은

내 시선을 살피고 있다.

나야 뭐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경악할만한 일이긴 할 것이다.

편안한 시간을 보내라고 일부러 데려온 카페에서 자신이 신경써서 소개한 아이가

타국의 무령에게 대뜸 말을 놓아버린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자신보다 나이도 한참 많은 데다가

국가적으로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국이다.

물론 그런 부분으로 따지면 나를 병풍세우고 신나게 둘이서 떠들던 모건도 괘씸하기야 하지만

적어도 면전에서 말을 놓고 귀엽다고 할 줄은 차마 몰랐겠지.

그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안되는 거였으니까.

"그래그래, 언니가 케이크 하나 더 가져다줄게. 앉아있으렴."

그렇게 말하고 넬리스는 기세등등해서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제서야 모건은 내 눈치를 살피며 커피를 목 뒤로 조금씩 넘기다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 아이도 알고 그런건 아닐테니 한번만 용서해주시죠.

제가 나중에 잘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아니에요. 케이크도 하나 더 준다는데요.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시다면 다행이지만..."

"귀엽다잖아요. 오랜만에 들어보는데요."

안절부절 하는 그의 얼굴을 보아하니 어째 커피가 더 솔솔 넘어가는 것 같았다.

나도 참 성격이 마냥 예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는데 하필 타이밍이 맞아서 화장실에 가고 싶어진건 문제라면 문제였다.

"저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은데 화장실이 어디죠?"

"저...쪽입니다. 가게 밖으로 나가서 옆으로 돌면 있을겁니다."

그렇게 말한 모건이 무거워진 표정으로 일어섰다.

"혼자 갈 수 있어요."

"아...네, 그러시겠죠..."

꼭 내가 알아서 잘 이야기 하라고 자리를 비켜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해명을 하기로 했다.

"그, 방금 전의 그 일 때문에 가는건 정말 아니에요.

아시죠? 저 그런거 정말 신경 안써요."

"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말해 두겠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두죠."

"전혀 알아들으신것 같지 않은데요. 일단 다녀올게요."

"편히 다녀오시죠."

나는 그렇게 화장실을 향해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내가 나가자 마자 가게 안에서 모건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정말 애간장이 타기는 했던 모양이다.

저정도로 한숨을 내쉬면 오늘 꽤나 속 좀 쓰리겠는데.

아무래도 나이도 많은 분한테 괜한 오해를 사게 한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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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 났 다.

넬리스가 그럴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워낙에 넬라 누님을 빼다 박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직설적이고 단편적인 부분을 빼다박았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누님도 넬리스도 아무 대책 없이 일을 벌리는 타입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나빴다.

아무리 봐도 20살을 갓 넘은 것 같은 외모를 하고 와선,

마녀라고 그런 건지 원래는 정장이나 칙칙한 후드를 입고 다니던 사람이

어디서 저런 산뜻하고 하늘하늘한 옷을 구해와서 정말 요즘 아이들처럼 입었으니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고 생각은 한다만,

아무리 그래도 무례는 무례고 실수는 실수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끼어들 수도 없는 그 폭풍같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상황을 보고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저 아이도 알고 그런건 아닐테니 한번만 용서해주시죠.

제가 나중에 잘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그녀는 그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케이크도 하나 더 준다는데요.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시다면 다행이지만..."

"귀엽다잖아요. 오랜만에 들어보는데요."

소문이 사실이었던 것 같다. 미리타엔의 무령이 아닌 것 같은 너그러움과

친절함, 그리고 부드러움을 갖춘 여자. 그 말대로라고 생각했다.

겨우 한 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을까, 그녀가 말했다.

"저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은데 화장실이 어디죠?"

정신이 바짝 들었다. 목 뒤에서부터 식은 땀이 또르르 굴러떨어지는게 느껴졌다.

아무리 너그럽다고 해도 상대가 미리타엔의 무령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겨우 침을 목 뒤로 넘겼다. 심장을 입으로 뱉을 것 같았다.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입이 멋대로 무언가 대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 귀에 선명히 박히는 말이 있었다.

"그, 방금 전의 그 일 때문에 가는건 정말 아니에요.

아시죠? 저 그런거 정말 신경 안써요."

머릿속이 하얘진다. 아, 맞구나. 엄청나게 신경쓰고 있구나.

외교문제로 이어지지만 않았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말해 두겠습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두죠."

여기서 적당히 합의를 보고 용서를 구해보겠다고 한 말이었는데

그녀가 되돌려준 말은 예상과는 정 반대였다.

"전혀 알아들으신것 같지 않은데요. 일단 다녀올게요."

이걸로는 안되는 모양이다.

넬리스를 지금이라도 도피시키는게 맞는 선택인가?

그게 아니라면 넬리스에게 진실을 가르쳐주고 용서를 솔직하게 빌어봐야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번뜩이다 사라진다. 생각은 떠오르는데 그렇다할 명안이 없다.

어딘가 한 군데가 갈고리처럼 턱턱 걸고 늘어지는 바람에

상황에 알맞는 타개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괜히 상대가 미리타엔 출신이라는 점이 더 걸린다.

차라리 유레크로스나 교국이라면 대화를 시도해 보겠지만

미리타엔의 무령이 내 앞에서 그렇게 화장실을 다녀 오겠다고 시간을 비운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 길로 본국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랬다가는 단순히 사과의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아서 문제다.

나는 머리를 짚으며 넬리스를 호출하기 위해 테이블에 붙은 호출벨을 눌렀다.

"하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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