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145화 (145/303)

〈 145화 〉 피와 뼈

* * *

사막의 모래가 바람에 날리고, 흙먼지를 맞으며 지하에서 로프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남자.

그리고 그 뒤를 여자가 따라 오른다.

"결국 그건..."

"응... 아마 결과를 봐야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일단은 샤르네아 시대에 묻힌것 같아.

샤르네아 말에 저런 인물이 죽었다는 기록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니엘은 지친 표정을 하고 고개를 젓는다.

"대체 그 안에 뭐가 있었을까..."

이리디나 역시 의문을 갖지만 확실히 알아낸 것은 하나도 없다.

둘은 잠시 그런 대화를 하고 손을 마주잡은 채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들의 공허한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유레크로스는 종전 이후 다양한 국적의 인원을 수용했다.

이들을 아울러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로 했고, 실제로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각지에서 난민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섞인 한 작은 소녀는 그 무리에 섞여들기위해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걸어왔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저 그런 생각을 막연히 한 소녀는 사막을 가로질렀고, 분지를 통해서

기어이 유레크로스로 도착했다.

그렇게 맞이한 유레크로스의 환경은 생각보다 아주 처참했고 어두웠다.

물론 상당한 피해를 복구해냈지만 그럼에도 밤이 되면 어두웠고,

아직 철거하지 못한 폐건물이 종종 보였다.

소녀는 열심히 동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 어린 나이였음에도 열심히 섞여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는 유레크로스의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처음에는 다소 의심을 샀던 그녀의 가족 역시

자연스레 그 공간에 녹아들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삼촌은 다소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음에도 덕분에 빨리 섞여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녀가 유레크로스에서 지낸지 시간이 꽤 지난 어느 밤.

소녀가 밤잠을 설치고 화장실을 찾았던 때였다.

그날은 왜인지 밝아보이는 달빛에 어스름히 비친 건물 사이에서

그녀는 검은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분명히 이쪽을 바라본 것 같은 느낌에 소녀는 살짝 몸을 떨었다.

어린 마음에 화장실은 커녕 한발짝 앞으로 나가기도 두려워진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차마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앙앙 울어버렸다.

그런 그녀의 흐느끼는 소릴 들었던 것일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잠이 안와?"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눈을 질끈 감은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긴장이 풀린건지 쭈뼛대며 다리를 베베 꼬아 선다.

그리고 귀까지 붉어진 채로 조용히 말한다.

"화장실...가고싶어..."

"괜찮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뒤에서 계속 보고 있을테니까.

혼자서도 잘 다녀올 수 있지?"

"응..."

그녀는 그렇게 감은 눈을 조심스레 떴다.

뒤에서 아빠가 보고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아까보다 훨씬 당당해졌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아빠는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건 그녀에게 있어서 상당히 낯선 일이었다.

늘 자신에게 좋은것을 해주려고 노력하던 아빠가 눈물을 보이며 처음으로 했던 사과였다.

그날 이후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끌어안고 유레크로스로 왔다.

그녀가 지칠 때마다 문득 그때의 기억이 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지쳐 보일 때면 늘 같은 말로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그래, 너는 네 불행을 주장할 권리가 있었지. 아빠가 지켜봐줄게. 혼자 할 수 있지?"

처음에는 싫었다. 바로 나서서 도와주던 아빠가 그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금새 적응했고, 아빠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 어린 나이에 철이 들 정도로 너무나 힘들게 살았고, 그래서 또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정말 무너질 것 같을때 아빠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그녀는 굳세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실리였다.

실리는 혼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탁탁 튀는 발걸음이 울리고, 그녀는 화장실에 도착해 볼일을 마친다.

그녀가 안심하고 볼일을 보고 나와서 해맑게 말했다.

"아빠, 다 했어. 이제 가자."

그러나 아빠의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주변은 어쩐지 아까보다 어두워보였다.

"아빠...?"

그녀가 그렇게 아빠를 찾아보지만 대답은 없다.

실리가 주변을 돌아보면 아까 보았던 폐건물 사이의 검은 무언가 사이에서

붉게 빛나는 무언가가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치 눈 같은 무언가가 그녀를 주시하는 것을 느끼면 실리는 조용히 침을 삼킨다.

그리고 천천히 발을 떼 집으로 돌아간다.

아빠가 보고 있을거라고 믿으면서, 아빠가 같이 있을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발을 뗐고, 마침내 구역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잘했단다 어린 아이야."

그제서야 소녀는 불길한 느낌에 다시 고개를 돌려 폐건물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아까보다 가늘어진 붉은 빛이 마치 실리를 향해 미소짓고 있는 것 같이

어스름히 흔들리고 있었다.

"어...?"

그녀가 두려움에 한발짝 뒤로 물러나면 검은 무언가는 폐건물 외벽으로 천천히 걸어나온다.

달빛을 받아 검게 가려졌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녀는 그제서야 그 존재를 보았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차마 서로 닿지도 않고 바라보는 것이 고작일텐데

그렇게나 멀리 떨어진 공간임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그 모습은

해골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해골.

"넌 용기 있는 아이구나. 날 보고 두려워하지 않다니."

분명 아무리 봐도 멀리 떨어진 그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울리는 것 처럼 생생했다.

"아빠가 보고 있으니까."

그녀의 말에 그 해골은 기분나쁜 웃음소리를 내고 말했다.

"기특하구나."

그녀의 경계가 풀리지 않았지만 해골은 그런건 괘념치 않는 듯 폐건물 외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마침내 건물 난간에 선 해골의 등 뒤로 까마귀의 날개같은 것이 돋아난다.

해골의 눈두덩에 텅 빈 공간을 메운 붉은 빛이 잠깐 점멸하는것 같더니

해골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달 아래에서 그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버렸다.

소녀는 덜컥 그제서야 겁을 집어먹었다.

자신이 이제껏 대화한 상대는 괴물이다. 누가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소녀는 우선 아버지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집으로 들어서 아빠의 옆자리를 파고 들며 소녀는 아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소녀의 아빠는 조용했다. 마침내 소녀가 그를 흔들어 깨우고 나서야 그녀의 아버지는 눈을 떴다.

"하음... 이 밤중에 무슨 일이니 실리...?"

"아빠, 나 보고 있었지?"

"뭐?"

"보고 있었지?"

"그럼~ 아빠는 언제나 실리 보고 있지~"

이상한 분위기, 아빠의 잠에 젖은 목소리에 실리는 조심스레 묻는다.

"아빠, 잤어?"

"응... 아빠 좀 졸린데, 내일 일어나서 다시 이야기하면 안될까?"

"응...."

실리는 그렇게 대답하고 조용히 누웠다.

그러나 그녀는 알아버렸다.

그녀의 아빠는 자고 있었다는 걸. 그녀가 들은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었는지도.

실리는 오싹한 기분을 끌어안고 생각했다.

"이게... 불행한 건니...?"

이전에 자신에게 불행할 권리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던 여자의 말이 떠오른다.

두려운 경험이었지만 그녀는 분명히 또 한걸음 성장했다고 그녀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그녀는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리는 해골이 이리야스 산맥 중턱에 내려앉으며 말했다.

"불행할 권리라... 참... 내 이야기인가요. 그냥 영원히 쉴 걸 그랬지.

뭘 그리 집착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그의 검은 로브 속으로 사르르 녹아내리듯 날개는 사라지고

발 밑으로 무거운 족쇄가 다시 늘어진다.

살점, 근육 무엇 하나도 없는 존재는 일반적인 스켈레톤과는 확실히 다르다.

죽은 생물의 영혼이 성불하기 이전에 타락해 뼈에 들러붙거나,

혹은 골렘이 통제를 잃고 타락하거나, 정령의 일종이 뼈에 들러붙거나.

일반적으로 그렇게 탄생하는 스켈레톤은 하급 몬스터로 분류된다.

아무리 잘 쳐줘도 지능이 없기 때문에 위협적인 도구 하나 없는 뼈 괴물을

이기는 일이 여성에게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는 스켈레톤은 다르다.

이제껏 존재한 적 없었던 몬스터이자, 사람들의 시선에 거슬리는 괴물이다.

그럼에도 이 해골이 대중들에게 알려진다면 섣불리 이 해골을 토벌할 수도 없었다.

인류의 경계는 더이상 그 형태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는 점점 다양한 인종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오크와 엘프같은 인간과 생김새가 다른 생물 역시도

인종으로 분류했다.

그런 그들에게 퇴치해야 할 괴물이 언어체계를 가지고 나타나게 될 경우

상당한 사회의 혼란을 야기할게 분명했다.

누군가는 퇴치를 주장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 해골을 종으로 분류하려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이 해골을 연구하려고 할 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들은 절대로 스켈레톤의 권리를 존중하려 하지 않을 것이리라는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 소녀에게 정체를 드러내 버린 스켈레톤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딱딱거리는 턱 아래로 바람이 맥없이 새어나온다. 뼈 사이를 가르는 휑한 소리는

어딘지 모를 공허함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스켈레톤은 가만히 앉아서 산 속 한 가운데서 중얼거렸다.

"그래도 금방 찾을 수 있겠지..."

그렇게 말하고 해골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동작 그만. 오래도 도망다녔구나 데릭. 잘도 눈을 피해서 숨어다녔군."

싸늘한 말에 데릭이라고 불린 해골이 고개를 든다. 그곳에는 검은 머리의 창백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지만 어딘가 위험한 느낌이 풀풀 풍기는 남자.

엘 블로프니거 에스트로였다.

"오랜만이네요. 아직도 살아있을줄 몰랐는데요. 요즘 세상에 뱀파이어가 그렇게 흔하지도 않을텐데

어떻게 아직도 살아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나야 뭐 어떻게든 방법이 있었으니까. 손가락에 반지 안보여?"

"하아... 이번에는 그냥 못 보신 걸로 하고 넘어가 주실 수 없습니까?"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아저씨 부탁이 워낙에 거절하기 쉬워야지."

"그 아저씨가 아직도 저를 찾아다니시는줄 몰랐는데요."

"첫번째 탈주자니까 눈에 밟히시는 거겠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닥 관심도 없어.

여기서 널 놓아주고 말고 하는 문제도 말이야. 다만 그냥 아저씨가 잡아와 달라고 하셨으니까

발견한 김에 잡아가겠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저는 허가를 받고 돌아온 겁니다."

해골이 뒤로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그래, 그러시겠지. 데릭 브라이어, 아르간티아 초국 출생.

추방자의 땅으로 방출되고 나서 마법 연구에 전념, 이후 현재 흑마법으로 전해져오는

대다수의 마법을 만들어낸 천재 마법사였었나?"

"그렇게 띄워주실 필요 없습니다. 벌써 그게 언제적인지도 기억이 안나거든요."

"아니, 그것 때문에 아직도 서적으로 남은 흑마법들이 골치를 썩인단 말이다.

피는 곧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너같은 놈들이 이름에 영혼을 묶어버리니까

자꾸 탈주자가 늘어난다더군."

"안타깝습니다. 원래 공개를 목적으로 만든 책이 아니었는데.

다들 그래서 제 이름이나 알까요?"

"아아, 유명하지. 피 한방울도 없는 몸이라서 그런가 추적도 쉽지 않던데."

"사실 그쪽에서는 그렇게 인기를 끌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었거든요."

데릭은 그렇게 말하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에 조금 당황한 것인지 에스트로도 물러났다.

"그래서, 목적이 뭐지?"

"별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냥 그 당시에는 죽음이라는게 두려웠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이 몸으로 돌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뭘 좋다고 이제 살덩이 하나 없는 몸으로 돌아왔겠습니까."

"그런 것 치고는 뼈에 강화를 상당히 많이 걸었는데?"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리고는 데릭이 말했다.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몇천년이고 지나다 보면 뼈도 썩기 마련이니까요.

강화가 아닙니다. 성분을 바꾼거죠."

"미친놈이..."

데릭은 뒤로 물러나서 말했다.

"아무튼 오랜만에 만난 김에 하나만 더 묻죠. 그녀는 어디 있습니까?"

"아직도 엘라를 만나겠다고?"

"네, 그녀에게 있는 생명의 마력이라면 분명 저를 다시 되살려줄테죠.

죽지 못하는 것과 살아 숨쉬는 것은 다르니까요."

"그렇게는 안되겠는데."

둘의 시선이 마주친다.

데릭은 '허허...' 하는 웃음을 흘리고 손을 모은다.

모은 손에서는 뭉게뭉게 검은 구름이 피어올랐고 매캐하고 탁한 구름은 금새 주변을 뒤덮는다.

어딘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따끔따끔한 감각이 어딘가 무겁다는 느낌을 주었다.

에스트로의 피부에 구름이 닿을 때마다, 그곳의 피부는 검게 변했다.

"하아... 번거롭군. 어째 몇천년을 도망다니면서 마법 하나 까먹지도 않았지?"

"아, 까먹었습니다. 그거 원래 닿으면 죽어야 되는 거거든요. 실력이 떨어졌어요."

그 말에 에스트로는 주변에 피를 터뜨리듯 뿌려 피로 주변의 구름을 전부 적셔 덮었다.

구름이 하나 둘 걷히기 시작하고 바닥에 흥건한 피는 다시 그의 발을 중심으로 수채구멍으로 빨려들어가는 물 처럼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에스트로가 흡수한 것이겠지.

에스트로가 구름을 걷어내고 주변을 둘러본다.

"이미 갔나."

주변에 이미 해골은 없었다.

발견할 틈도 없이 그렇게 도망친 해골을 두고 에스트로는 바닥의 평평한 돌에 걸터앉았다.

"이건 뭐, 아저씨를 볼 낯이 없겠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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