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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52화 (152/303)

〈 152화 〉 검은 머리의 대공

* * *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하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차를 내왔고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오직 나에게 집중하며 나를 편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고

킬레리로써 훈련을 오랜 기간 받았던 발레리아 마저도 그녀의 대처에 놀라는 것 같았다.

"원래는 오전중에 오려고 했는데 좀 틀어졌어."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녀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

"찾아주신 것 만으로도 영광이지요."

"내가 온 김에 자그마한 선물을 하나 준비했는데, 마음에 들려나 모르겠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가방에서 포션을 하나 꺼내 그녀의 앞에 놓았다.

연한 황금색의 약품은 UTUI­Q67이라는 이름의 포션이다.

이제껏 가게에서 팔기에는 너무 고가의 약품이라 만들지 않았던 것이니 만큼

그녀가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건... 엘릭서로군요..."

"이걸 알아?"

"옛 문헌에 남아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분명 과거에 비해 전쟁의 규모나 빈도가 줄었지만

그래도 분명히 엄청난 물건임에 변함이 없습니다.

가격도 상당하겠군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하녀를 불러 포션을 넘기고는 자신의 금고에 그것을 보관하도록 지시했다.

"최근에는 엠페레스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편이지. 여행을 다니고 있거든. 알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그녀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다가 말했다.

"알고 싶은 것이라 하심은 어떤 내용에 관한 것인지요?"

"글쎄, 뭐든지..."

내가 말하고도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든지라니.

너무 적당히 대답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단순히 정보를 원하시는 거라면 정보상단을 이용하시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정보상으로 연결해드릴 수 있습니다."

"확실히 정보상에 흥미가 없다면 거짓말이지. 하지만 아무리 정보상이라고 해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정보가 있기 마련이니까."

"아마 소용 없을겁니다. 정보상은 생각보다 많은걸 알고 있으니까요."

"정보상이 많은 걸 알고 있어야 비로소 정보상이니까."

"조금 말장난 같이 들렸을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숨길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겁니다.

정보상을 모조리 처리하지 않는 이상 숨길 수 있는 비밀은 없으며,

그들을 영원히 처리할 수도 없겠죠."

나는 그녀의 말에 퍽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빈 말로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되물었다.

"연결해줄 수 있다고 했었나?"

"네, 그렇습니다."

"좋아, 연결해줘. 필요할 것 같으니까."

그녀가 고개를 짧게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게 양해를 구하고 잠깐 사라진 사이에 발레리아가 내게 말했다.

"저 대공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전부터 마스터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늘 마음에 드는 소리만 하지는 않더라도 말입니다."

"나도 그렇게 판단했어. 확실히 빈말은 하지 않을 것 같네."

발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에 돌아온 엔시온은 작은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정보상의 특성상 의뢰인과 공개적으로 대면하는 것을 피하고 있기에

종이에 접선 방법을 적었습니다. 이곳으로 가시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겁니다."

"고마워."

나는 그녀의 눈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명히 내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우호적인것은 태도 뿐이고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정말 싸늘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지만 그것이 그녀 나름대로의 방식이라고 생각되어

굳이 건드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검은 머리를 살짝 쓸어보이고 내게 물었다.

"그런데, 제가 들은 모습과 조금 차이가 있으신 듯 보입니다."

"좀 꾸며봤지."

"실은 오늘 모신 데는 제 개인적인 궁금증도 몇 가지 겸한 것도 있었습니다.

무령이라는 직책이 미리타엔에서 오랜 기간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시는지요?"

"대공이라는 말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겠지?"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본디 무령이라는 직위는 만들어질 예정에 없었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본디 무령의 초기 명칭이 워로드였다는 점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쟁에서 무력으로 공을 세운 자를 치하하기 위함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과거 전쟁중의 일입니다. 당시 황제의 독자셨던 황자께서 전쟁중 전사하시고

이에 황제께서 무령이라는 직위를 붙여 왕 바로 아랫직으로 앉힌 것입니다.

이후 황제께서 승하하시고 나서 적합한 자에게 황제의 자리는 계승되었지만

그럼에도 선대 황자의 면목을 세워주고자 한 것이지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사자를 위한 자리가 존재해서도 안되는 법이지요. 그 누구도 그 자리를 잇지 않았습니다.

다시말해, 누구도 진지하게 그 자리를 실존하리라 믿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 자리를 누군가가 받았다고 했을때 저는 당황했습니다.

그렇게 정해질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당연히 실권은 배제한 석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제껏 대공의 위로 앉혔던 사람은 없었기도 했기에 그게 맞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무령께서는 너무나도 미리타엔과 맞지 않으셨습니다.

대공을 가르치셨고, 기어이 그 욕망에 불을 붙이셨으며, 그러면서도 자비를 베푸셨고,

전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제껏 미리타엔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독보적이고

아주 이질적인 존재인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권력을 쥐었다는 점이 두려웠습니다."

"확실히 어떤 의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것 같은데.

나도 솔직히 말해서 이런 자리까지는 필요 없었어.

그냥 아무도 나를 건들지 못하게 해 주겠다는 뜻이었던 것 같아서

실질적으로 무령 뱃지를 달고 나서도 공식적으로 무언가를 한 적도 잘 없기도 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거야. 나는 너희의 자리를 침범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내가 이 나라와 맞지 않는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거든."

"다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미리타엔에는 무령님께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미리타엔은 폭력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아시겠지만.

국격이라는 것이 없고 그 이미지가 최악으로 절하되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겁니다.

이제껏 이 문화가 변하지 않은 것은 개개인의 인식이 이미 그렇게 변화해 왔기 때문입니다.

몇 번인가 혁명이 있어왔음에도 굳건한 체제 위에 그 차별과 폭력이 합리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차별이 사라질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공공연히 드러나있는 것과 은연중에 일어나는 것은 명백히 다릅니다.

그것이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이 국가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사람들이 인체 실험과 연구보다 포션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무령이 보이는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귀족들의 행보를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귀족들은 권력을 가진 무령을 견제할 수 없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 행동 자체가 무의미하고 자신에게 해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이지도 못하고 죽일 수도 없으며 애초에 이길 수도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구조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미리타엔이, 그리고 플로라 황제께서 이제껏 없던 무령을 최선의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만 위에 세워진 국가라도, 언제든 탈피하고 발전하여 섞여들 기회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만의 생각이야?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거야?"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령님, 당신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지요.

저는 알고 있습니다. 황제께서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저는 황제께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건 말 그대로 심장을 붙들린 것 같은 감각입니다.

무거운 욕망과 집착이 억지로 제 사고를 황제께 못박았습니다.

집착과 사랑, 그리고 존경이 묶여 저를 강제로 복종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상대에게 종속되고 싶다는 감각. 내 모든 것을 바치고 싶다는 본능 말입니다.

그걸 거절하고 싶지 않다는것이 아마 제일 위험하겠지만요.

저는 그때 느꼈습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이 감각을 아마 황제께서도

무령님께 느끼고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플로라를 구속하려고 한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플로라의 마력 적성에 당한 것을 오해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반박하기 위해서 멈칫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녀가 반응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손을 부드럽게 들어보였다.

그 손에 들린 작은 열쇠는 빛을 받아 반짝였다.

"열쇠가 제 손에 있는데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열쇠를 손으로 꾸욱 쥐더니

금속으로 만들어진 열쇠를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버렸다.

그리고는 구겨진 휴짓조각을 던지듯 아무렇게나 휙 내던진다.

"스스로 벗어나기를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그럴리가. 내가 콜로세움에서 뛰었을 때 어땠는지 네가 몰라서 그런거야."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책상에 다시 앉아서

다시 자세를 고쳐잡고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여튼, 황제폐하를 움직이기 위해서, 그리고 이 나라를 바꾸기 위해서는

당신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나라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야?"

"문제라고 해야 할까요, 솔직히 말해서 문제라고 보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결국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방식은 이제 낡았고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지금의 방식대로 물리적인 폭력으로 지배하는 것은

이전만큼의 효율을 내지 못한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자본의 폭력을 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착같이 암시장을 전전하고 밀수 및 밀매를 단속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어떤 말인지는 알겠어. 그러면 너는 어차피 내가 각국을 돌며 여행중이니까

그 사이사이에 꾸준히 변화를 만들어주길 바라는 건가?"

"현실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은 아니네. 긍정적으로 생각해볼게."

"감사합니다."

그녀는 잔을 비우고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데레코즈에게는 들르셨습니까?"

"아니? 아직."

"그자가 뭐라고 하든, 절대로 그자가 주는 음식을 드셔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드셔야겠다고 하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으나, 되도록 주의하십시오."

"먹어서는 안된다?"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그녀의 비장한 표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궁금하기도 했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그녀의 말을 경청했던 이유라면 하나다.

나는 불로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기야 하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약품의 효과나 질병에 면역이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언젠가는 자연치유가 되기야 하겠지만서도, 꼭 치유의 범주 내에 들어맞는 약품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

"이야기 하기도 두렵군요. 차마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입니다.

그자는 그걸 즐깁니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 괴랄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보다 더 천진한 표정으로 묻습니다.

그러고 나면 어느 순간부터 기억을 잃으실 겁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순수한 악의의 증명이라는 말이 딱 맞겠군요. 그자의 수법입니다.

무엇보다도 그자의 그 불길하고 기분나쁜 얼굴을 보면 두번 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으실 테지만,

여튼, 귀족들 사이에서는 유명합니다. 반드시 먼저 타인에게 먹여 보시고

무사할 경우에 입을 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아니 뭔데 그래... 사람 무섭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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