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늙은 골초
* * *
엔시온의 저택을 나와서 나는 발레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데레코즈 대공에 대해서 들어본 것 있어?"
"저에게까지 하달되는 명령에는 대공에 대한 견제는 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구하시는 정보는 제공해드리기 어려울 것 같네요."
"게비디는 대공에 대한 견제도 하던거야?"
"아무래도 정적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는 해야 하니까요.
콜로세움의 입지는 미리타엔 내부에서도 상당히 큰 편이기 때문에
여러 귀족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것 역시도 사실이니까요.
물론 도덕이나 윤리적인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그랬겠지."
그런 대화를 나누며 거리를 지나가면 또 고통으로 점철된 신음소리를 질질 끌며
기이한 형태의 자동차가 등 뒤에서 나타났다.
"끄아아아..."
그런 소리를 내며 지나다니는 차량에 시선을 돌리면 발레리아가 말한다.
"하리지 백작이로군요."
"이 나라는 뭔놈의 귀족이 이렇게 많아?"
"노예의 수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수입니다."
자동차는 상당히 느긋한 속도로 나아가는 편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아니었다.
분명 기계로 이루어진 자동차는 맞는데 땀을 뻘뻘 흘리는 노예들이
목줄로 자동차를 끌고 있었다. 노예는 하나같이 여성들이었고
날도 더운데 하나같이 왼쪽 발목에 무거운 족쇄를 달고 있었고,
눈은 안대로 가려진 채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핏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데도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는 이유는
그녀들의 입에 채워진 재갈 때문이다. 분명 성인용품으로 나온 구가 달린 재갈이다.
그 의아한 모습에 궁금증이 생겨서 나는 발레리아에게 물었다.
"기계로 만들어진 자동차잖아? 마차가 아닌데 왜 저걸 끌고 있는거야?"
"악취미입니다. 저 바퀴를 잘 보세요."
그 말에 바퀴를 바라본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바퀴가 반대로 돌고 있었다. 그러니까, 차는 후진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아니 왜 저런 짓을..."
"하리지 백작의 남편은 과거 노예와 사랑에 빠져 백작을 소홀히 했습니다.
백작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 노예의 사지를 잘라 창관에 팔아버렸고,
이후 남편은 백작에게 질색하게 되어 침소에도 함께 들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다못한 하리지 백작은 그날로부터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자신보다 예쁜 여성 노예는 모조리 사들여 저런 식으로 괴롭히는 겁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트집을 잡아 사람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고 하더군요."
"그런건 어떻게 아는거야?"
"유명해졌으니까요. 하리지 백작의 남편이 그녀의 집착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와
사람들에게 그녀의 본성을 폭로했습니다. 그 이후로 남편은 파혼당하고 미리타엔을 떠나 도망쳤고
하리지 백작만 남아서 저런 행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무섭네 정말."
나는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조용히 그녀의 차를 피해 지나쳤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자동차의 문이 열리고 나를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 느껴진다.
"흐으음...."
나를 보고 잠시 고민하는가 싶던 그녀가 손짓으로 날 불렀다.
그녀의 손짓에 별 생각 없이 다가간 내 멱살은 대뜸 그녀에게 붙들렸다.
내 멱살을 난데없이 움켜쥐고는
내뜸 반쯤 쉰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씨발... 날... 보고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너...너는...."
"뭐?"
"하여튼... 얼굴만... 믿고 이렇게... 건방진 년이...."
잘 들리지도 않는 말로 뭐라고 중얼거리는 그녀의 손목을 쳐 떨궈내고
늘어난 옷을 정리한다. 그러면 그녀는 다시 나를 바라보면서 바르르 떨었다.
"내가... 말을 하는데도... 듣지도 않고... 이..."
아무래도 정신상태가 정상은 아닌 것 같아 그녀를 뿌리치려고 하는 그 순간이었다.
쿵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잠깐 그녀가 덜컹거렸다.
발레리아가 그 모습을 보고 충격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맙소사..."
그제서야 내가 본 광경도 놀라운 것이었다.
쾅 소리를 내며 뒤에서 나타난 차가 그녀의 차를 과감하게 들이받은 것이다.
차는 덜컹 소리를 내며 휘청였고 후진을 하던 차를 억지로 부여잡아놓던 노예들의 발은
기어이 차를 따라 뒤로 질질 끌려간다. 목줄에 이어진 고삐가 그녀들의 숨통을 조이고
켁켁대는 소리와 발버둥치는 노예들이 허우적댄다.
그리고 그 틈에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뒤를 돌아보며 하리지는 괴로운듯 소리쳤다.
"어떤 자가!! 내 차를 들이받아!!"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치는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서 마치 신화속의 밴시와 같았다.
뒤에서 그녀의 차를 들이받은 고급스러운 차의 문이 열리고 안쪽에서는 중년의 남성이 느긋하게 걸어나온다.
시가와 에라옥신 파이프, 담배를 모두 입에 물고 느긋하게 내린 남자는 차를 한번 바라보고 말했다.
"부숴."
그 말에 남자의 차 뒤를 따르던 차 여섯 대의 문이 일제히 열리며 남자들이 쏟아져나왔고
우르르 달려가 하리지의 차를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차를 부수라고 명령한 남자는 느긋하게 서서 담배와 에라옥신 파이프, 시가의 연기를 뒤섞어 하늘로 쏘고는
바닥에 하나씩 그것들을 지져껐다.
그러고는 나와 발레리아의 앞까지 걸어와서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에 무령님을 뵙습니다. 데레코즈 인사드립니다."
"아, 반가워... 이런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무령님께서 엔시온 대공의 저택에 들르셨다고 하시기에 저 역시 한번 찾아주십사
직접 차를 끌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딜 건방지게 말을 함부로 하는 친구가 있다니.
아무래도 엔시온 대공은 자기 구역의 관리가 벅찬 모양이로군요, 하하하!!!"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나를 자기 차로 안내했다.
"타시지요,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내가 분명히 내일 가겠다고 하지 않았었나?"
"당연히 가택으로 모신다는 의미였습니다.
저야 한가하니까요. 아, 저 친구들도 일처리가 마무리된 모양이군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뒤로 포박당한채 질질 끌려오는 하리지가 보였다.
하리지는 그들에게 붙들려 억지로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무...무령이라니... 그런거 없었잖아... 나한테 이야기도 안했잖아...
왜 나만 당해야 되는데? 씨발 너희는 맨날 쳐웃으면서 왜 나는 산책도 못하는데?"
자기 잘못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모습에 진력이 나서 괜히 한숨을 쉬었다.
입씨름 할 생각도 없어서 그냥 적당히 돌아섰다.
"적당히 가는 길에 풀어줘. 눈치가 있으면 봐줬다는것 정도는 알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리지는 다시 그들에게 어디론가 끌려갔으나
거리의 노예들은 그녀를 동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동차에 묶여 질식해 죽어가는 여성들을 어떻게든 구해
그녀들과 함께 거리의 골목골목으로 사라져갔다.
개중 탈출하지 못한 몇몇 노예가 거품을 물고 흰자위를 띄우며 쓰러져있었는데
노예중 일부는 그런 이들도 어떻게든 목줄을 풀어 거리 안쪽으로 데리고 사라졌다.
"안타깝네. 동정심인지 동질감인지 하는 그런 느낌인가?"
내가 그렇게 말하면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던 데레코즈가 가만히 말했다.
"그건 아닐겁니다. 저들이 가난한 노예게층이라고 해서 성욕도 가난하진 않거든요.
오히려 어지간한 자들보다 더 지독하고 혐오스러운걸 선호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 말에 잠시나마 펴졌던 얼굴은 삽시간에 구겨진다.
불쾌함이 밀려왔다.
"정말이라고?"
"아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겁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히 안타깝고 처참한 모습이 되어 골목 한구석에 버려진
여자의 싸늘한 시신을 보며 나는 죽어서도 쉬지 못한 그녀의 모습에 애도를 표했다.
"노예에게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건 좀 안타깝네."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데레코즈가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불을 붙여
입에 물고는 연기를 바닥으로 뱉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그래."
꼬르르륵....
울리는 내 뱃고동 소리가 우연히 겹친 순간,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돌아보며 묻는다.
"혹시 식사를 아직 안하셨습니까?"
"어..? 어어..."
"괜찮으시면 식사를 대접하지요. 아주 맛있을 겁니다."
나는 불안함에 발레리아를 살짝 바라보았다.
발레리아 역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의 동공이 바르르 떨리다 이윽고 진정이 되면 나는 그의 말에 멋대로 대답하고 있었다.
"사주는 건가?"
"아뇨, 저택으로 가시죠. 상당히 고급 식재를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무령님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훌륭한 요리가 분명히 나올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데레코즈는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묘하게 신이 나 보이는 얼굴에 서린 웃음이 왠지 아까 들었던 엔시온의 경고를
꾸준히 내 기억 위로 떠올리고 있었다.
절대 먹지 말라고 당부하던 얼굴이 겹쳐 보이기 시작하면
나는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거절의 의사가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먹어도 돼...?"
"물론입니다. 가시죠!"
그는 내 말을 긍정하며 차에 나와 발레리아를 태워 저택으로 출발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그 순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차 창을 반쯤 내리고는 밖으로 꾸준히 연기를 뱉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 말했다.
"죄송하게도, 제가 상당히 골초입니다.
끊어보려고 생각은 했는데, 그런다고 끊어질 거였으면 고생은 하지 않았겠지요."
담배는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말 대신 손을 뻗었다.
상당히 오랜만의 일이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한대 줘."
그는 잠시 내 눈을 보고 멍하니 꿈뻑이더니 물어왔다.
"피우셨습니까?"
"이전에."
"오랜만에 피우시는 거면 안피우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나는 피운다고 말을 했는데 아직까지 내 손에 시가가 들려있지 않은건 무슨 연유에서지?"
"바로 드리지요."
그는 내 손에 시가를 내려놓고 바로 앞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리고 시가의 끝부분을 잘라 버리고 내게 쥐어주며 말했다.
"편하게 피우시지요."
나는 시가를 받아들고 붙끝으로 자른 부분을 가져다댄 후에 불을 천천히 빨아들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담배는 기호품이라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것도 입에 댄 거니까 금지였던건가? 먹지 말라는 의미는 그런 뜻인가?
그러나 사고의 끝에는 해답이 아닌 포기가 달려 있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따지지는 않겠지.
체내로 무언가를 들인다는 행위를 표현할 거였다면 먹는다는 행위로 퉁치지 않았을 테니까.
먹는것과 피우는건 분명히 다른 행위라는걸 확신하고 나서야
나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적당히 넘겨 짚고 포기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피우니까 그런건지, 역시 기침만 엄청나게 쏟아내고 제대로 한모금 들이 마시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어딘가 머리가 띵 하게 몰려오는 매케한 감각 속에서 익숙한 느낌이 슬쩍 찾아들기는 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담배 한 두 개비로 상할 몸은 아니지만 몸이 상하는 것 같은 그 낡은 위화감이 오랜만에 목을 긁는다.
"켈록! 켈록! 오랜만에 했더니 이것도 피울게 못되네.
예전에는 어떻게 이런걸 좋다고 피웠었나 모르겠네."
"피우신 적은 있으신 것 맞으십니까."
"있다니까, 한... 몇 백년 전이던가...? 아 왜 생각이 안나지...
이런 적 없었는데..."
뭔가 머리가 멍해서 그런 거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저냥 넘겨버리고는
반 이상 남은 시가를 적당히 꺼뜨렸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에 나는 데레코즈에게 말했다.
"너무 많이 버렸네 오랜만에 피워서 안받나봐. 나중에 새 거 사줄게."
애매하게 연기만 흘리는 담배의 뒷부분을 쪽 빨아들였다.
새로운 담배를 사 주려고 하면 뭐가 어울릴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쯤,
그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웃는 얼굴로 고개를 흔들 뿐이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돈이라면 저도 많으니까요.
무령님께서 사주시는 담배라고 하면 흥미가 없는 것도 아니기는 합니다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픽 웃다가 겨우 빨아올린 담배연기를
그 얼굴 위로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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