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친절로 포장된 순수한 악의
* * *
데레코즈는 기분좋아보이는 미소를 띄우며 콧노래를 불렀다.
창밖으로 희뿌연 연기를 뱉어내면서 중얼거리다가
기어이 차가 저택에 도착하고 나면 먼저 내려 나를 에스코트하듯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게 저택에 들어가려고 보면 이미 저택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크고 우락부락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게비디였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그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옷을 억지로 부여잡은
와이셔츠 단추 사이로 불끈거리는 가슴근육을 내비치며 말했다.
"네가 왜 여기있어?"
내가 그렇게 물으면 데레코즈가 여유롭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불렀습니다. 무령님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많지는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이 친구가 얼마 전에 대공이 되었다고 하기에 함께 식사자리를 마련해보면 어떨는지 해서 말이지요.
엔시온 대공도 부를까 하다가 이미 식사를 했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부르지 못했습니다."
불길하다. 아마 엔시온이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들 이 자리에 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그런 어렴풋한 생각이 살짝 감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저택으로 안내했다.
데레코즈의 저택은 전체적으로 자줏빛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다른 대공들에 비해 유난히 화려하고 역동적인 장식이 많았다.
실용성 측면에서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그렇게 꾸미기로 한 모양이었다.
벽에 걸린 여성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 제 아내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여자죠."
상당히 나이가 들어 주름이 보이지만 기품이 있어 보이는 여자는 어딘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림을 그릴때 화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찡그린 얼굴을 그대로 내비치는 바람에
화가 역시 그녀의 얼굴을 그대로 그린 것 같았다.
"표정이 썩 좋지는 않은데."
"그림을 그리기 전날에 제가 술을 좀 많이 마셔서 화가에게 조금 늦게 도착했지 뭡니까.
아내가 그렇게 일어나라고 저에게 닦달을 해댔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렸으니
조금은 기분이 상했을 법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잘 해줘. 그나저나 지금은 어디 있어? 안보이는데?"
"거리에 나갔습니다. 쇼핑을 하고 싶다기에 하인을 붙여 주었습니다.
여기 잠시 앉아서 기다리고 계시면 금새 요리를 만들어 돌아오지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앞치마를 걸치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와장창 하는 소리, 무언가를 갈고 있는 것 같은 소리, 도마 위를 경쾌하게 두드리는 칼 소리.
여러 복잡미묘한 소리들이 주방에서 섞여 나기 시작했다.
재료의 향이 코를 찌르고 돌아오면 우리는 데레코즈가 없어도 상당히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무령님."
"대체 게비디는 왜 여기 있는거야?"
"그가 말한 대로입니다. 대공이 되고 나서 정식으로 초대받은 일입니다.
그래도 무령님께서 함께 식사를 하신다고 하기에 곧장 달려 왔습니다."
"결국 나야?"
"부정하지는 못하겠군요. 그런데 표정에 가득 담긴 그 경계는...?"
"데레코즈의 음식은 먹지 말라는 제보아닌 제보가 있었거든.
그래서 혹시 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물어본거야."
"저는 또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요."
서로 추측아닌 추측만 간단히 던지는 우리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와 발레리아는 한껏 긴장해서 침을 넘겼다.
쟁반을 열면 각종 화려한 요리가 늘어서 있었다.
이걸 먹지 말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저는 취미가 이런 거라서요.
요리를 대접하는걸 좋아하니 말입니다.
드시지요."
그렇게 여유롭게 말한 데레코즈는 먼저 나이프를 들고 부드럽게 고개를 잘라낸다.
태연하게 먼저 입을 대는 모습을 보고 나도 왠지 경계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정말 문제가 없는건가 해서 큰 각오를 하고 물었다.
"이거 어떻게 만든거야?"
"일반적인 음식 재료에, 특제 소스를 넣었습니다.
몸에 해로운 재료 따위를 사용하고 저녁식사에 초대할 리 없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음식을 입으로 집어넣었다.
이미 그가 주는 담배도 물었는데, 여기서 뭐가 얼마나 더 나빠지겠는가.
어...?
머리가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입에서 느껴지는 아득한 감각.
"직접 만든 음식입니다."
그 순간 빠르게 옆을 돌아보면 얼굴이 창백해져서 굳어버린 발레리아가 보였다.
이건 독이나 공격이 아니다.
"아하하...호...혹히... 이허...우이 알오 우후 운혁 잇혀?"
내 질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의아한 표정을 띄우며 그는 포크를 분주히 움직인다.
내 표정, 그리고 발레리아와 게비디의 표정은 거의 동일한 상태였다.
억지로 음식을 씹어 목 뒤로 밀어넣고 그의 얼굴을 다시 바라본다.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에게 대접한 적 있어?"
"있었지요, 엔시온 대공과 플로라 황제께 대접했습니다."
"그 혹시 그 사람들이 뭐라고 안해?"
"엔시온 대공은 입맛이 없었는지 조금씩 모든 메뉴를 집어먹고 급한 일이 있다고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피드백을 들을 시간이 없었군요.
황제께서는 몸매 유지를 하셔야 한다고 많이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라도 먹일까 했더니 황제께서 고양이는 그런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고양이를 잘 몰라서 아쉽게도 대접할 수 없었습니다만 황제께서 아쉬워하시는 것도 같으니
다음번에는 고양이도 먹을 수 있을 음식을 해보려고 합니다."
게비디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럼 혹시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안하던가?"
"음, 하녀들은 맛있다고 하더군. 아주 내 음식을 좋아한다네."
게비디는 진지하게 진실을 말해주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 표정은 정말 진지해보였는데, 얼마나 심한 정도였느냐 하면
내가 콜로세움에서 우승해서 무령직위를 받았을 때도 저만큼 고민하지는 않았었다.
"어때? 입맛에 맞나? 넉넉히 만들었으니 많이들 들게."
눈치도 없는 데레코즈가 행복한 미소를 띄며 그렇게 말하면 게비디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나머지는 다 포장해주게. 킬레리들이 좋아라 하겠군."
나는 킬레리들이 진지하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발레리아의 표정을 보아하니 킬레리들도 저 음식을 좋아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절대 먹지 말라고 한 이유가 대번에 와닿는다.
살면서 정말 이다지도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혹시 아내는 뭐라고 했는지 궁금한데."
"저희 아내는 너무 사치스러운 성격입니다. 집에서 요리를 해 먹으려고 하지 않아요.
반드시 과시하듯 밖에 나가서 먹으려고 하는 바람에 지친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고 크게 신경쓰지도 않지만 가끔 집밥이 그리울 때가 있잖습니까."
"그 혹시 오늘 아내는 어디로 간다고 했어?"
"글쎄요, 집에 손님이 온다고 오랜만에 실력발휘를 하겠다고 했더니
그럼 예쁜 옷이라도 사서 입어야겠다며 나가버렸습니다."
아, 요리만 못하는게 아니라 눈치도 더럽게 없는 편이구나.
그제서야 깨달았다. 손님이 이제 막 온다는데 옷을 산다고 나갔다는 건,
도망칠 명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밖에 안되는 것 아닌가?
나중에 나와 게비디를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왜 그 자리에 없었느냐고 물었을때,
소식을 듣지 못했다거나, 예쁜 옷을 입고 마중을 나가려고 했다거나
하는정도로 둘러댈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이 남자는 해맑은 얼굴로 우리에게 순순히 불어버렸다.
아내가 왜 화난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하나 둘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나는 말 대신 포크를 내려놓았다.
"잘 먹었네."
"그, 많이 안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좀 더 드셔도 됩니다."
"나도 업무 특성상 뭘 많이 마시고 해야 해서 말이지.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기야 했지만,
아까 엔시온 가에서도 이것 저것 많이 먹어서 배가 그닥 고프진 않았어.
그보다 엔시온가에서 들은 이야기나 조금 할까 하는데...
게비디, 너도 그렇게 먹지만 말고 내 이야기를 좀 듣지 그래?
그렇게 먹기만 하려고 온 거 아니잖아?적당히 눈치 봐서 내려놓을 타이밍인거 안보여?
내가 말하는데 고개를 쳐박고 먹기만 하고 있으면 내가 네 눈치를 보고 말을 끊어야겠어?"
나는 짐짓 짜증이 난 척 그의 나이프를 빼앗아 내려놓는다.
이렇게 말하면 게비디의 식사를 중간에 끊으면서도 데레코즈의 음식에 흠을 잡지 않을 수 있다.
설마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 불쾌하다고 자른걸 굳이 다시 먹이려고 드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무리 데레코즈가 눈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대공까지 올라온 사람이 그정도 센스는 있겠지.
처음에는 살짝 당황한 모습을 보이던 게비디는 내가 그의 나이프를 빼앗아들자 내 표정을 바라보았다.
게비디는 그 순간 내게 고맙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그 역시 억지로 씹고 있던 채소를 입 안에 품은 채로 조용히 고개를 돌려
데레코즈가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냅킨에 싸서 조심스레 버린다.
그를 도운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맛을 보고 어떻게 나 혼자만 살아나간단 말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잔인하고 치명적인 맛이다.
나나 게비디나 물리적인 공격으로 피해를 본 일이 거의 없는데,
하물며 신변의 위협이 있을 거라고 알고나서 마주한 음식임에도 이정도로 너덜너덜하니
억지로 꾸역꾸역 집어넣는 모습이 안타까워보여서 도운 것 뿐이다.
발레리아를 돌아보면 그녀는 이미 눈에 초점이 없었다.
"어..? 발레리아..?"
그녀를 툭툭 두드려도 보고, 흔들어도 보았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내가 마력을 살짝 흘려넣어 각성시키고 나면 그제서야 어버버한 얼굴로 일어나서
머쓱하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면목 없습니다.
무령님을 보필해야 함에도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있었다니.
아, 식사가 준비된 것이군요. 잘 먹겠습니다."
아무래도 애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여서 나는 발레리아를 저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포크는 잘먹겠다고 말한 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그 어느 음식도 쉽게 찍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어... 손이 움직이질 않는데... 이게..."
그녀의 당황섞인 말에 게비디가 호통을 친다.
"무령님 앞에서, 대공들이 식사하는 자리에 노예가 겸상을 하려 든단 말이냐?"
그녀가 멈칫하는 순간 나는 게비디가 상당한 배려를 했음을 알았다.
나는 그녀의 팔을 붙들고 가만히 안아주었다.
서로서로 돕고 산다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이런 곳에서 왕따시키는 것처럼 은밀하게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웃음이 나오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면
우선 변명거리로 던졌던 엔시온 가의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될 분위기다.
"됐어, 먹지 마. 괜찮아."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모양이었다.
손이 바르르 떨리면서 음식 위에 멈춰서면 그와 동시에 눈이 흔들린다.
동공은 이미 통제를 벗어난 상태고, 마침 호통을 치는 게비디의 말에
그녀 또한 상황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는 음식을 떠넣지 않고 한껏 움츠러든 채였다.
나야 상황을 알고 있으니까 도움이라는 걸 알지만, 그녀는 이게 뭔가 싶었으리라.
아무래도 아까 한번 음식을 먹고 나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서 등을 쓸어내려주면
그녀는 허공에서 바르르 떨던 포크를 내려놓고 조금씩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잔뜩 긴장했던 등 근육이 풀리고 그제서야 굳은 표정이 풀린다.
그의 요리는 분명 누군가가 한번은 진실을 알려주어야 할 맛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최악이었고,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은 맛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그가 마주하는 것은 적어도 오늘이 아니어야 했다.
이 분위기를 먼저 깨부술 수야 없으니까.
그리고 가타부타 말을 얹어봐야 본인은 맛있다고 잘만 먹는데,
굳이 우리가 방해할 필요가 있는건가 싶었다.
자기가 좋다는데 뭐 놔둬야지 그냥.
다만 나는 독한 담배가 미각을 저렇게 만드는구나 하는 괴이한 감상을 받아
앞으로는 담배같은건 입에 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담배랑 관련 없이 나는 요리같은건 할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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