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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58화 (158/303)

〈 158화 〉 작은 구원자

* * *

거리를 걷다보면 북적이는 골목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는 것이 보인다.

딱히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따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곳으로 걸어가면 거기에는 한 크레페 가게가 있었다.

노점상을 펴두고 줄을 선 사람들에게 크레페와 함께 작은 웃음을 전하는 정도의

근처의 다른 가게들에 비하면 상당히 소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가게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고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섞였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앞에서 천천히 줄어가는 사람들의 인파를 제치고

크레페 가게 앞까지 도착하면 젊은 점원이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어서오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제일 잘 팔리는 걸로 주세요."

"네, 잠시만요!"

점원은 빠르게 크레페 하나를 만들어 내게 건네주었다.

"4페킷입니다."

나는 가만히 그의 손을 바라보다가 1델짜리 지폐를 건넸다.

그리고 크레페를 베어물고 나서 말했다.

"이 뒤로 줄을 선 사람들 몫도 계산해주세요."

"25분까지네요. 일행이세요?"

"아뇨."

그렇게 대답하고 나는 가게를 떠났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뒤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러려니 했다.

나는 가로수길 공원 벤치에 걸터앉아서 가방을 열었다.

퀴트씩이나 하는 돈을 휙휙 던져대다보니 델 지폐는 그저 종이조각 같았다.

"후우..."

가방을 열면 천각룡의 알이 들어있다.

천각룡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더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애초부터 워낙에 희귀한 종이기도 했고,

요즘 들어서는 모험가들도 이전보다 수준이 떨어지기도 해서

천각룡은 고사하고 안티움을 구하는 일도 어렵다고 하니까 말이다.

내가 산게 과연 정말 천각룡이 맞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무턱대고 사기는 했는데 이제 이걸 어떻게 길러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디다 팔자니 이런걸 사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이걸로 음식이나 해 먹기로 했다.

키우지도 못할거 먹기라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 먹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차라리 이 근방의 식당 중에서 제일 잘 하는 곳을 찾아가서 이걸 요리해 달라고 하는 게

제일 현명한 선택 같았다. 괜히 요리도 못하면서 이걸 붙들고 있어봐야

데레코즈 꼴밖에 더 나지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품을 팔아 이 주변에서 제일 요리를 잘 하는 가게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자 맡은 요리의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결국 질문을 바꿔 알 요리를 잘 하는 가게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제서야 하나같이 이상한 요리는 '그 형씨'가 잘한다며

나를 독특한 가게로 이끌었다.

가게는 다소 독특한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가게였고 흡사 동부 지역의

야성적인 느낌이 있는 바베큐 전문점 같았는데, 마침 자리가 있기에

그 자리에 앉으면 웨이터로 보이는 점원이 나와 물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잠깐 셰프를 뵙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셰프께 여쭤보고 다시 돌아오지요."

그렇게 말한 웨이터가 잠깐 주방 너머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함께 들렸다.

내가 가방에서 알을 꺼내고 있으면 머리 위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또 뵙네요. 오랜만입니다."

내가 고개를 들면 익숙한 거구의 남자가 서 있었다.

"퓨어하트씨?"

"하하, 반갑습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나요?"

"아, 우연이에요. 식사를 좀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하하! 이건 인연이군요. 그래서 저를 보고 싶다고 하신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아, 다른게 아니고 어쩌다가 귀한 알을 얻었는데 혹시 이걸로 요리를 해 주실수 있을까 해서요."

나는 그에게 천각룡의 알을 내밀었다.

그는 잠시 그걸 들고 바라보다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한 번도 요리한 적이 없는 알이네요. 어지간한 식재는 다 다뤄본 편인데.

잠시만요, 금방 요리해서 돌아올게요. 혹시 이런 알이 더 있을까요?"

"없어요. 그게 전부라서요. 그나저나 오늘은 유창하시네요?"

"제 가게니까요. 주방에 자스민 티 정도는 넉넉히 준비해뒀죠.

요리에도 쓰이니까요. 이 식재를 요리하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기쁘네요.

오랜만이기도 하고,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편하게 드시고 가셨으면 좋겠네요."

"아, 감사합니다."

그는 내게 알을 건내받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상당히 적었는데, 아무래도 식사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도 식사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웨이터가 물과 에피타이저를 가지고 돌아왔다.

에피타이저로는 식전 빵과 간단한 샐러드였는데 그냥 보기에도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샐러드에 들어간 빨간건 뭔가요?"

"라즈베리를 개량한 겁니다. 당도와 산도를 중점적으로 신경써서 만든 것으로,

엄선한 녀석들로만 골라서 산지에서 공급받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 이 빵에 들어간건..?"

"고급 필레미뇽을 사용한 겁니다. 얇게 저며서 페이스트리로 감아서

내부에 각종 허브를 섞어내 반죽하고, 무늬를 잡아서 직화로 구운겁니다.

테즈불 허브를 비롯해서 샤프란까지 들어갔습니다.

옆에 따로 제공된 소스에 찍어드시면 됩니다."

"이건 드레싱이고, 이건 베리 위주로 된 소스같고, 이건 머스타드.

이건 발사믹 식초 맞죠?"

"네. 그렇습니다. 남부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를 수입해서 만든 와인 4종을 배합해

산도를 조정하고 당도를 낮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예약 없이 이렇게 들어올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하나같이 신경을 많이 쓴 고급 음식 같았다.

내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던 웨이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본 매장은 개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지 않아서 조금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홍보도 따로 하지 않았고요. 저희 셰프께서 그러길 바라셔서요."

"왜죠?"

"이미 셰프께서는 성공한 식당이 많이 있으시니까요.

적어도 1년 전에는 예약을 해야만 겨우 식사할 수 있는 가게도 많습니다.

다만 교국과 오르그에 중점적으로 가게를 내시던 것을

지인의 부탁으로 이번에 새로 엠페레스에 오픈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지인분을 생각해서 언제든 여유롭게 드실 수 있도록 일부러 가게를 숨기고 계십니다."

"그 가게를 언제 세우신건데요?"

"한 3달 조금 안됐습니다."

3달이 조금 안되었는데도 엠페레스에서 독특한 요리 분야에서 최고를 뽑으라면

사람들이 이 가게를 추천할 정도라는건가?

벌써부터 요리에 많은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유명한 가게가 생각보다 많은가 보네요."

"그렇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아직 오크라는 종족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렇기 떄문에 먼저 나서서 셰프를 공개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사람들은 식당에는 관심이 있어도 의외로 셰프에는 관심이 없으니까요.

퓨어하트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 사람이 오크라는 것은 잘 모르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오크라는 사실을 듣고 나서는 오크가 요리를 한다는 사실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기도 하니까요.

스테레오 타입이겠죠. 오크는 늘 생식 혹은 바베큐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답답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으면 주방에서 쾅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웨이터는 나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셰프께서 문제가 생기신 것 같군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그는 즉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퓨어하트가 한손에 멀쩡한 알을 들고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에리아씨. 어떻게든 요리를 해 보려고 했습니다만,

이 알이 너무 단단하군요. 제 힘으로도 깨지지 않는 알은 처음 봤습니다.

어지간한 바위보다 단단하다는 의미인데, 어디서 이런걸 구하신거죠?"

"네?"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세상에는 정말 여러가지 생물이 사는 법이군요.

분명 알이라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힘을 줘도 깨지지가 않아요.

이대로 조리해봐야 씹을 수도 없을 거고요."

나는 허탈함에 알을 되돌려받았다.

나는 가만히 알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제가 깨볼게요."

나는 흔쾌히 OK사인을 얻어내고 퓨어하트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 알과 씨름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주방에는

톱과 망치와 같은 일반적인 주방에서는 흔히 보지 못하는 연장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연장들은 뭐죠?"

"아무래도 여러 식자재를 쓰다보니 필요해지더군요. 단단한 음식은 워낙에 많으니까요.

철갑만큼 단단한 육질의 가죽을 지닌 녀석들도 있고 말이죠.

그런데 이렇게 손도 못댈 정도로 단단한 알은 처음 봤습니다.

삶아도 보고 때려도 봤는데 도무지 흠집 하나 나지 않더군요.

"고생하셨네요."

그렇게 말하고 손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마력을 모아 때리면 분명 깨질거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내가 아무리 다양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내 마력의 근원은 생명이었다는 점이었다.

내가 마력을 모아 알을 내려친 순간, 알은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오, 이렇게 간단히 가르시다니..."

"아...아니에요..."

"네?"

"제가 한게 아니에요."

"그럼...?"

"이 녀석이... 부화한 거에요..."

모두가 당혹스러운 기색을 비칠때, 그 알이 깨지고

안쪽에서는 겨우 손바닥 만한 크기의 금빛 비늘의 도마뱀이 한 마리 기어나왔다.

마치 아르마딜로, 아니 천산갑과 같은 가죽은 단단하고 매끄럽게 몸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날개는 없었지만 등에 작은 돌기가 나 있는 모습은 분명히 자라면 날개가 생기리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아하하... 깨긴 했는데..."

"전 이걸 요리할 수 없어요. 물론 요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갓 태어난 생명을 눈 앞에서 봐 놓고서 죽일 만큼 잔인한 사람이 못 돼요."

"다행이네요. 저도 막 같은 생각을 했거든요."

내가 그런 대화를 나누면 막 태어난 천각룡이 삐익 삑 하는 소리를 내고

내 팔을 붙들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하하... 주문할게요. 여기서 제일 부드러운 요리로 주시겠어요?

이왕이면 갓 태어난 도마뱀이 먹을만한걸로요."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갓 태어난 천각룡은 삐익거리던 것도 잠시, 곧 내 품에서 얌전히 가르릉댔다.

그렇지만 내 옷 소매를 잘근잘근 씹는 일은 멈추지 않은 탓에

소매가 축축해진 채로 어설프게 그 도마뱀을 안고

요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야, 소매 물지마, 젖잖아. 그리고 너 자꾸 다리로 내 가슴 차지 마."

"삐익."

녀석은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꿈뻑거렸다.

본능적으로 나를 편안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마 자기를 부화시킨 마력 때문이겠지.

아니면 자기 알을 부수려는걸 구해준 꼴이라서 날 의지하는 건지도 모르고.

왜 하필 생각없이 거기서 마력을 쏘아대는 바람에 얠 부화시켜버린건지.

하기사 그냥 깨져서 요리로 구워지는 것보다는 나은 인생이기야 한데

나는 도무지 이 아이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막 난 애를 어디다가 입양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디다가 보낸다고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통제할 능력도 없을것이다.

무엇보다 암거래장 경매 출신인 아이가 두번 팔려가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인지 괜히 날 올려다보는 눈이 촉촉히 젖은 것 같았다.

"알았어. 얌전히 있어. 너도 배고플거 아냐?"

나는 그 아이를 쓰다듬어주면서 안고 있었다.

소매가 계속 젖어가는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뭐가 팔자에도 없는 애완동물이 자꾸 생겨 왜?

고양이는 뭐 그렇다 치겠는데... 얘는 어쩌냐고 정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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