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159화 (159/303)

〈 159화 〉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

* * *

이 용을 어째야 할까.

아무리 봐도 생긴건 천산갑 꼴을 한 도마뱀이다.

색이 유난히 빛나서 예뻐보이는 점만 빼면.

살살 쓰다듬은 등은 매끄럽고 딱딱했다.

결을 따라 매끄럽게 올라온 비늘끝은 조금 뾰족하고 광택이 나서

거기 비쳐보이는 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저렇게 생겼구나. 내가 알고 살아온 얼굴이 새로운 얼굴이 된다는 건,

뭐랄까 신비롭고 새로운 기분이었다.

"삐이익!"

녀석은 삑삑대며 내 손길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내가 쓰다듬을 멈추면 녀석은 몸을 살살 흔들면서 내 손길을 보채왔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괜히 이러고 있으니까 귀여운 것도 같았다.

"삐이?"

"그래, 정했어. 넌 이제부터 삐삐야."

"삑!"

"너도 마음에 든다고?"

"삐이익!"

물렸다. 삐삐가 마음에 안들었나?

그래도 꼬룡이보다는 낫지 않나? 삐삐랑 꼬룡이 둘 중에 고르려고 했는데.

소매만 무는 줄 알았더니 손등도 물 줄 아는 아이였다.

건강하네. 적어도 건강면에서 걱정할 건 없어보여서 다행이다.

"물지마. 먹을거 줄테니까."

그렇게 말했더니 버둥거리며 또 품안에서 파닥거린다.

벌써부터 고생할게 빤히 보인다. 내가 이래서 애완동물을 안키우는 건데.

결국 갓 태어난 꼬마용을 달래겠다고 힘싸움을 하고 있을 때쯤 요리가 나왔다.

상당히 삐삐를 배려한 것이었는데, 적당한 크기의 채소가 들어가

보기에도 맛있어보이는 고소한 우유가 들어간 스튜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향신료를 다채롭게 쓴 돼지의 통다리를 바삭하게 구운 요리,

패패루에 각종 채소와 허브를 입혀 찐 요리, 심해 생선을 매콤하게 조린 요리가 나왔다.

웨이터는 음식을 차분하게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우선은 두 분이서 드시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모자라시면 더 주문해 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막 내가 통돼지의 다리를 잘라 삐삐의 입앞으로 내밀면

삐삐는 내가 내민 조각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막 내가 조각을 덜어낸 돼지 다리를 잡고

거기에 고개를 쳐박고 먹기 시작했다.

"어머, 얘 좀 봐..."

알아서 잘 먹는게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서 나는 괜히 내밀었던 포크를 입으로 옮겼다.

그리고 심해 생선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지만 조금씩 살을 덜어냈다.

물컹거리는 질감이 과연 맛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걱정이 되었지만,

예상 외로 상당히 맛이 좋았다.

쫀득쫀득한 식감에 느끼하지 않은 매콤한 맛이 어우러지고, 위에 올린 향신채소가

시원한 느낌을 살려주었다.

내가 기분좋게 한 입 먹고 나서 다시 포크를 내리면 어느새 생선 조림에 얼굴을 파묻고

소스를 테이블 위로 튀겨가면서 뼈째로 생선을 씹어먹는 삐삐가 있었다.

"야! 다 튀잖아. 가만히 앉아있어. 내가 줄테니까."

결국 삐삐를 들어 간단한 마법으로 소스를 닦아냈다.

아무래도 비늘의 재질상 더러운 것이 내부로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기능도

있는 모양이었다. 매끄럽게 닦이는 모양이 꽤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식사를 방해했다고 생각했는지 내게 성을 내며 자꾸 애먼 포크와 손가락을 깨물던 녀석은

내가 직접 음식을 전해주자 내 눈치를 살살 보더니 그때부터는 입만 벌려서 음식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나야 뭐 배가 그렇게 많이 고픈 것도 아니었고 해서 삐삐를 먹이는데 주력했다.

내가 그렇게 자신에게 음식을 먹이는 걸 보고 있어서였을까,

삐삐는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을 입에 물고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내 앞에 툭 떨어뜨린다.

"나 주는거야?"

"삐잇!"

나는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바보처럼 이렇게 웃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게 또 그렇게 되더라.

그렇게 일방적으로 피딩을 시도하던 순간에서 서로 먹여주는 관계가 되고 나서는

테이블 위 음식이 사라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자 삐삐야."

삐삐는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 처럼 쪼르르 어깨에 올라탔다.

왜 동물들은 하나같이 내 어깨를 좋아하는 걸까.

가방도 폼으로 들고 다니는게 아닌데.

그래도 지금은 사이즈가 작으니까 이렇게 다닌다고 치지만,

나중에 자라고 나면 이렇게 데리고 다니는 것도 어려울 텐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계산을 하려고 하면 웨이터가 나와 물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네. 여러모로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하네요.

얼마죠?"

"오늘은 셰프께서 계산하신다고 하셨으니 그냥 가시면 됩니다."

"음 그럼 이건 팁이고요, 이건 셰프 앞으로 팁을 달아주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델 지폐를 5장씩 내밀었다.

내 생각에 아마 음식값은 그정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지불한 금액이었다.

"너무 많습니다. 이 가게는 그렇게 비싸게 팔 생각이 없어요.

적자를 감수하면서 하는 가게라서요."

어느새 내 뒤에 나타난 퓨어하트가 돈을 거절하며 말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주방에서 고생하신 것 다 아는데 어떻게 그래요.

그리고, 많이 드린 것도 아니에요."

"이러면 거절이 어렵군요. 다음에 또 들러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모라프루사 데 브리기아타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며 그가 작은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작은 샌드위치가 들어있었다.

"주방에서 보니까 그 친구가 상당히 잘 먹는 것 같더군요."

"아, 고맙습니다."

"요즘도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에리아씨."

나는 음식을 받아서 가게를 나왔다.

퓨어하트씨는 여전히 심성이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이쪽에서 무안해질 정도로 말이다.

이 나라에서 지내면 나도 이렇게 유순해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움.

그건 내게 있어서 이상에 가까웠다.

잠깐 그런 생각도 하다가 금방 정신을 차린 것은 내 어깨 위에 앉은 작은 용이

삑삑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하긴 이런 걸 달고 어떻게 평범하게 살겠어.

내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데 점점 새로운 문제만이 쌓여가고 있다.

아무리 착잡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평화로운 쪽으로 눈을 돌리고 싶은 거겠지.

나는 엠페레스 북부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평화에서 억지로 눈을 떼지 않으면 눌러앉고 싶다는 욕망이 솟을 것 같아서였다.

이곳이 아니라도 내 몸 뉘일 곳은 있기 마련이고, 이곳을 떠나야만 무언가가 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평화 좋지. 그런데, 일상에 변화가 없는 것을 평화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절대로 아니다'이다. 질리는 것과 익숙해지는 것은 한끗 차이다.

인간이 만족을 모르는 생물이라는 것을 확언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만족하기보다 스스로 고생하기를 택한것 뿐이다.

나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는 나를 돌아보더니 별 감흥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완동물 데리고 타면 안되는데."

"가방에 넣으면요?"

"그래, 뭐 그렇다면야."

나는 조심스레 삐삐의 엉덩이를 톡톡 쳐서 가방 안으로 유인했다.

잠시 나를 바라보면서 삑삑 울던 삐삐는 가방에 들어갔다.

"그래서 아가씨, 어디로 가면 되나?"

"북부로요. 엠페레스 국경 끝으로 부탁드릴게요."

"요금이 꽤 나올텐데 돈은 있고?"

나는 가방에서 돈을 꺼내 내밀었다.

확실히 많이 쓰기는 했는지 확연히 금액이 줄어있다.

그래도 아직 택시비를 낼 정도는 된다.

델 지폐를 여러 장 꺼내 보이자 그제서야 택시 기사는 돈을 흘겨보고는

말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잠깐 도시 외곽으로 빠지는가 싶더니 상당히 속도를 올리는 택시는

주변 풍경을 빠르게 바꿔가면서 달렸다.

"이렇게 빨리 가도 되나요?"

"그럼, 느리게 달리면 시간 아깝지.

내가 이 엠페레스에서 세 번째로 빠른 기사야."

"세번째요?"

"첫 번째 기사는 너무 빨리 달리다가 시간을 거슬러 버려서 이 시대에 없어.

두 번째 기사는 너무 빨리 달려버려서 날다가 기름 떨어져 죽었고.

살아남은건 나밖에 없다 이거지."

"풉...푸하하하....!"

기사는 내 웃음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건지 한껏 밝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여행 온 것 같은데. 이제 어디로 가나?"

"교국 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어요.

여행자라는걸 바로 알아보시네요?"

"엠페레스 사람들은 국경까지 가려고 하면 택시 같은거 잘 안타거든.

더 좋은 수단이 있는데 굳이 사설 택시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는 거겠지."

"더 좋은 수단이요?"

"겔데어스 상단에서 운영하는 서비스가 있어. 캐리버너였던가?

택시나 비슷하지 뭐. 그런데 우리 택시는 거리에 따라 요금을 내는 방식이잖아.

그 서비스는 주변 운수송업체와 제휴를 맺어서 말이지,

훨씬 싼 가격에 이동할 수 있거든.

왜 그런거 있잖아. 가던길에 태워다 주는 느낌이라고.

어차피 공간은 남으니까 말이야. 해로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일반 시민들도

자율적으로 신청하면 개인용 자차로도 할 수 있다더구만.

그 뭐라더냐... 카풀? 그렇게 부르던 것 같던데."

"아..."

"그러니까 이 나라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은

어지간히 겔데어스 상단에 거부감이 있는 귀족이 아니면,

외지인이라는 결론 둘 중에 하나라고 밖에 할 수 없지."

"겔데어스 상단이면 6귀족의 겔데어스인가요?"

"외지인이라더니 이상한 부분은 또 알고있네.

맞아. 가주였던 케이 겔데어스는 죽었지만 그 사후에 6귀족이 재정비 되면서

겔데어스는 귀족이 아닌 상단으로 변모하는 기색을 보였고,

실제로도 아직 엠페레스와 모종의 유착관계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확실히 공격적인 마케팅과 상업방식을 택했거든.

이 주변에 중소 규모 상단은 전부 씨를 말릴 기세로 확장사업을 이어나가고 있어.

확실히 이러니 저러니 가타부타 말을 얹어도 케이 겔데어스 그 사람이 성격 좋은 사람이 맞았던거지.

이제와서 그 사람 하나 없다고 국가 사업 전반이 이렇게 먹혀버릴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이제는 여유와 낭만의 국가라고 불리는 이 나라서도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사연이 생긴거지.

물론 아직 식당이나 카페를 비롯한 요식업에는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았지만."

"그럼 지금 상단은 누가 오너죠?"

"오너라... 오너랄게 있나? 다 주주들이 물고 뜯는거지.

겔데어스가 그나마 지주였는데 그 양반이 젊을때 간 이후로는

진짜 주식회사라는 식으로 겔데어스 본가와는 꼬리를 자르고

이제껏 밑물에서 놀던 새끼들이 국민들 고혈 빼는거지.

나도 가끔 아가씨같은 사람들이나 택시 타주는거지,

이제 두어달 뒤면 나앉게 생겼다고.

이제 씨발 내가 뭐가 아쉽겠느냐는 말이야. 당장 내일 모레 나앉겠는데.

그래도 아가씨같은 손님이 꾸준히 있기라도 하다면야 좋겠지만."

"그래도 대외적으로는 평화롭고 여유롭잖아요?

미리타엔이나 유레크로스에 비하면 살기 좋은 편이죠."

"걔들은 그래도 말이야 죽어가는게 눈에 보이니까 동정이라도 받겠지만,

우린 아무도 알아주지 않거든. 그대로 나앉아서 굶어도 눈에 보이지도 않아.

그냥 노력이 부족해서 경쟁에서 진거라고 하면 다들 수긍해버린다고.

이제와서 새로운걸 찾으라고 하면 우리는 추진할 힘도 자본도 없는데

겔데어스 상단은 자꾸 우리를 말려죽이려고 하잖아.

에휴 내가 손님한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아무튼 계속 갑시다!"

기사는 답답했는지 창을 조금 내려 열고 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선선한 바람이 창 안으로 들어오면 나는 기사에게 물었다.

"그 혹시 동물에 대해서 궁금한게 있을때는 어디에다 물어보는게 좋을까요?"

"동물? 아, 아까 그 도마뱀? 글쎄,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 유레크로스에 가면 생물이나 자재에 빠삭한 사람이 있다던데,

이름이 뭐더라..."

"유레크로스요?"

"그래, 가끔 신문이나 잡지에 글 투고하는 늙은 영감님 있어.

교수라고 하던데 은퇴하고 산속에 박혀사는걸 보면 아마 돈 한번 기깔나게 벌었을거야 그치?"

"그렇겠네요. 누굴까요."

대화는 끊어졌다.

택시는 한참을 달렸고 국경 끝에 도착하면 그는 나를 보며 이를 드러내 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네. 다음에 엠페레스에 또 오라고.

여유가 되면 그때까지도 내가 아직 운전사를 하고 있길 빌어줘.

그럼 잘가라고!"

나는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가방에서 삐삐를 꺼냈다.

삐삐는 상당히 답답했는지 나오자 마자 내 손을 물었다.

"아! 그만물어, 이 도마뱀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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