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160화 (160/303)

〈 160화 〉 근데 나쁜 사람은 있을걸요?

* * *

엠페레스 북부로 이어지는 저주의 사막.

그 공간은 황량한 모래먼지를 날리며

방문하는 모두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메마른 바다이다.

분노의 사막과는 다른 굳은 땅만이 이곳에서 발버둥친 운명들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곳으로 발을 들인 이상 되돌아갈 수는 없다.

"삐이익!"

삐삐는 내 어느새 또 내 어깨로 쪼르르 올라가서는 바람에 날아갈뻔 하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그 가는 다리로 내 어깨를 꾹 붙들고 있었다.

"거기서 그렇게 오들오들 떨 거면 이리 내려와. 안아줄게."

"삐이?"

삐삐는 그렇게 말하면 내 손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섣불리 발을 떼지 못한다.

그저 내 손을 바라보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높은 곳도 무서워 하면서 왜 어깨는 그렇게 줄기차게 올라가는거야 대체.

올라갈때는 좋다고 올라가놓고 내려오라니까 무서워하는 것 좀 봐."

나는 손을 어깨에 올려 삐삐를 조심스레 옮겨 안아들었다.

어디 주머니에 넣으면 싫어하고 어깨에 올리면 무서워하고.

참 손이 많이 가는 도마뱀이다.

"갈까?"

그렇게 물으면 그제서야 삐삐는 기분이 좋아진 듯 '삐이이~!' 하고 울었다.

그날 알았는데, 삐삐는 너무 꽉 끼이는건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안는 힘이 조금이라도 부족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손가락을 툭툭 건드린다.

그러다가 내가 과하게 안는다 싶으면 바로 손가락을 깨문다.

적당히 엉덩이를 받쳐주는 느낌으로 편안하게 지낼 공간을 만들어줄 때만

성질 나쁜 고양이처럼 가르릉 거리는 모습이 귀엽지만 않았다면

정말 한소리 했을텐데.

사막을 걷는 일은 몇 번을 해도 좋은 경험이 아니다.

더욱이 보기보다 상당히 무거운 애완동물을 들고 횡단하는 일은 더더욱 추천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사막은 전자극도가 없어도 길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주변에 이정표로 이용할만 한게 많았다.

적어도 선인장과 회전초가 간간히 눈에 보이기는 하니까 말이다.

나는 위로 꾸준히 걸었다.

새로운 무언가가 보일 때까지. 그러나 메마른 대지는 결코 우리에게 새로운 낯섦을

그렇게 쉽게 선사해주지 않았다.

처음 발을 들일때 느껴졌던 것보다 더욱 강해진 열기는 바람에 섞여 내 몸을 달구고 있었다.

나 역시 나대로 힘들었지만 삐삐도 상당히 더웠으리라고 추측했다.

길을 걷는데도 자꾸 삑삑거리며 내 손가락을 힘없는 입으로 잘근잘근 깨무는 것을 보고

나는 소마법으로 작은 얼음을 만들어 꾸준히 삐삐에게 놓아주었다.

그러면 삐삐도 얼음을 끌어안고 쉬다가 얼음이 녹을때쯤 다시 나를 부르곤 했다.

이 작은 녀석에게는 상당히 피곤한 여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본디 목적은 당연히 교국으로 올라가는 것이었으나, 교국까지 나아가기에는

아직 남은 사막이 너무 많았다.

나야 밥이건 물이건 없어도 죽지 않으니 어떻게든 체력으로 밀고 가면 된다지만

갓 태어난 도마뱀에게 물과 식량 없이 얼음만으로 체력을 온존하고 교국으로 가자고 하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나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별 수 없이

교국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아까 되돌아갈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폼 잡았는데...

그러나 돌아가기로 한 길도 마냥 평탄하고 쉬운 길은 아니었는데,

날이 살짝 저물기 시작하면 동굴에서, 바위 틈에서 뱀이나 전갈 따위의

그런 생물들이 꿈틀대며 기어나오는 것이었다.

간혹 독수리 따위가 머리 위에서 날기라도 하면 삐삐는 유난히 떨며 몸을 웅크렸다.

그럴때마다 나는 마력탄을 쏘아보내 난데없는 사격을 해야 했다.

결국 밤이 찾아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발화부를 붙여 불을 지피고

마력으로 주변의 땅을 자극해서 억지로 그 위로 땅을 솟아오르게 만들어

고지대를 만들었다. 주변의 생물들이 위협하지 못하게끔 주변과는 확연히 다른 높이로 솟아오른 땅에

그제서야 삐삐는 조금 안심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삐삐는 그리 놀라워 하지 않았는데,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게 대단한건지 아닌지도 모르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했다.

혹시 몰라서 삐삐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흙을 둥그렇게 융기시키고 삐삐가 들어가기에

적합할 정도의 구멍을 벽면에 뚫어주었다.

내버려 두면 알아서 들어가겠지 싶어서 놔뒀는데 기껏 지어둔 숙소를 앞에 두고

나를 멀뚱히 바라보기에 내가 얼음을 여러개 만들어 구멍 안으로 쏙쏙 던져넣어주고

손가락으로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걷는 시늉을 해서 구멍 안으로 손을 넣어보이고 나서야

삐삐는 이해했다는듯 그 안에 쪼르르 들어가더니 고개를 구멍 밖으로 빼고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불안해보여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자. 어디 안갈테니까."

그렇게 말해줘도 삐삐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잠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졸다가 고개를 맥없이 떨군다.

그러다가도 중간중간 잠에서 깬건지 아니면 잠꼬대인지

삐이이... 하는 소리를 내곤 해서 괜히 나는 그런 삐삐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야 잠을 잘 필요는 없었으니까.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삐삐는 겨우 감았던 눈을 확 떴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발견하고 나서야 열심히 뛰어서 내 어깨로 올라왔다.

그리고 밤새 불안했던건지 어깨에서 내 뺨을 핥아대는데, 묘한 보람이 느껴졌다.

그래 이 맛에 키우지... 이 배은망덕한 녀석이 드디어 나를 좀 좋은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 같아서 좋았다.

결국 나는 삐삐를 다시 품에 안고 얼음을 꼬박꼬박 넣어주며 다시 길을 떠났다.

하루를 편히 자고 일어나서인지 기운이 좀 생긴 것 같은 삐삐도 어제보다 밝아보였다.

내가 위로 들어올린 땅과 삐삐의 임시 숙소로 활용된 땅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한참을 걸었다. 확실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삐삐가 조금 배가 고파보였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배고파?"

"삐이..."

공복과 탈수. 썩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기운이 회복되었다고 하더라도

공복을 참는건 어린 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곤란했던 것은 사막 전체에 자욱하게 낀 아지랑이와 신기루였다.

분노의 사막에서도 아지랑이와 신기루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삐삐는 자꾸 신기루를 보고 나를 이끌어댔다. 저곳으로 가야 한다고 삑삑거리며 성을 내는 삐삐에게

저건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고 말해주는 것도 너무 피곤했다.

얘가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건지 정말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어느 쪽으로 걸었는지도 잊을 무렵에 나타난 거대한 산맥을 바라보면서

내가 순간적으로 '저곳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멀리 떨어진 공간으로 보인 파릇파릇한 땅은 사막을 벗어날 통로라고 생각했다.

사막과 초원 사이의 유난히 억센 풀이 자라기 시작하는 공간.

하나둘 초목이 피어나는 땅을 보면서 홀린듯 그곳으로 다가간다.

"삐삐야, 조금만 참아. 저쪽으로 가면 분명 시원한 물이나 먹을게 있을..."

어느새 삐삐는 피곤했는지 다 녹아가는 얼음 위에 기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더위를 먹은 건지도 모르겠다. 확실한건 그래도 큰 문제 없이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점이다.

숨에 따라 나오고 들어가는 작은 배를 보면서 나는 긴장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아프거나 괴로운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사막 내부로 깊이 진입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사막으로 깊이 들어갔더라면

아마 나오는 것만도 시간을 상당히 소요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그 끝에 발을 걸쳤을 뿐이었다.

발을 걸치자 마자 느껴지는 광활한 기운 속 꺼림칙한 순수함.

그리고 그 앞으로 떨어지는 날카로운 화살이 나를 한걸음 뒤로 물러나게 했다.

"요즘 시대에 화살이라고...?"

내가 그런 말을 하자 마자 화살 끝에서 퍼지는 미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그 기운을 알고 있었다.

곧바로 화살로부터 거리를 벌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화살이 꽂힌 바닥이 순간적으로 색을 잃는다.

주변에 자란 풀들이 무채색으로 변해가다가 다시 수 초 이내로 돌아온다.

어쩐지 노르스름한 색이 살짝 덧칠해진 것 같은 풀들은 바람에 흩날릴 뿐이었다.

마력을 덧씌우는 마법. 아주 간단하지만 공격적인 마법이다.

각 생물이 가지는 고유한 마력체계를 일그러뜨리고 하나의 마력을 강제로 주입하는 행위다.

그러면 회로는 꼬여버리고 익숙하지 않은 마력에 적성과 맞지 않는 마력이 날뛰는 것이다.

바닥에 꽂힌 화살은 풀에 있던 극미량의 마력에 노르스름한 무언가의 마력을 주입했고,

그 풀이 마력의 속성을 띄게 된 것이다.

물론 저 정도라면 내가 맞았다고 하더라도 내게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건 누군가가 적의를 가지고 나를 해하기 위해서 화살을 날렸다는 점이었다.

"물러나라 인간. 여기는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미안해. 여기가 어딘지도 사실 잘 몰라. 사막을 막 벗어나서 그래. 내 애완동물이 굶었어.

식량도 물도 없어서 많이 피곤해하는 상태야. 도움을 받고 싶어."

"그건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구역을 침입하려고 한 자의 변명을 들어줄 만큼 우리는 자비롭지 않다.

발을 들이는 것은 용서치 않는다. 썩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들리는 두꺼운 남성의 목소리에 나는 빈정대듯 입을 열고 발을 앞으로 뻗는다.

"발, 들였다. 어쩔래? 숨어서 떠들지 말고 나와서 이야기 하지?

대뜸 사람한테 화살을 날려놓고 분위기 잡으면서 훈수하면 무서워 할거라고 생각했나본데, 나 화나면 재미 없을걸?"

"건방진 인간 주제에..."

건방진 인간.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 흥미로운 말이었다.

일단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는 정보를 얻었다.

언어를 구사하는 정도의 지능으로 봐서는 분명 인류에 속하는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은 하는데.

"너희 인간은 마력에 대응할 수단도 없는 주제에 이 순수한 영토에 발을 들이고,

마력으로 가득찬 숲을 더럽히려고 한다. 이제껏 얼마나 많은 대지가 너희의 손에 스러지고

피폐하게 사막으로 변해야만 했는지 모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을 지켜오기만 했다.

수많은 동포들이 우리를 버리고 떠나고

머저리같이 옛 풍습에 발이 묶여산다는 소릴 들어도,

하이엘프들이 순수한 피에 집착하던 순간에도,

많은 엘프들이 우릴 져버리고 인간의 문명에 홀려 떠나던 그 순간 마저도 말이다.

그런 자연을 지키고 마력의 순수를 지켜낸 우리에게

너희는 단 한번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수많은 창칼에 원한을 품어가며 서로 싸우고 죽이는 것만 일삼던 너희가 이제와서 다시 이곳을 찾았다고

우리가 반가움의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나?

네가 헤멘 그 사막 역시 인간의 산물이다. 너희가 일궈낸 영토는 고작 그런 정도라는 의미다.

이제와서 우리에게 손을 벌리고 도와달라고?

한 평생을 우리가 일군 대지의 풍요로움을 비하하던 너희가 말이냐?"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는데, 그냥 우리 애 밥 좀 달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

거기서 화가 났던 것 같다. 하여간 말로 하면 꼭 안들어먹고 화를 내야 하는 타입이 있다.

대개 그런 타입은 매가 약이기 마련이다.

아무리 법이 생기고 규칙이 생겨나도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주어진 손과 팔은

원초적인 자기 보호 수단임과 동시에 상황 해결을 위한 도구다.

애초에 그러라고 만들어놓은 것을 이제와서 쓰지 말라고 하면 모순일 뿐이다. 규칙이 먼저라고 말할수 있는건

힘이 없는 이들 뿐이리라.

질서는 서로 대화가 통할때 성립한다. 또한 상대가 나와 동등하다는 전제 위에서만. 즉, 규칙은 질서 위에서 존재한다. 동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조금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게 내 경험에서 나온 이론이다.

법보다 오래 산 내 개인적이고 지극히 이기적인 논리에 의한 결정이다.

말이 길었지만 결론은 하나다.

그러니까...

"너희, 좀 맞아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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