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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61화 (161/303)

〈 161화 〉 굳어진 차별

* * *

마력을 넓게 산개한다.

바람따라 흔들리는 초목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마력을 찾는다.

저마다 고유의 마력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

잠시 안아들고 있던 삐삐를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가방앞에 살포시 삐삐를 두고 말했다.

"잠시 들어가 있을래?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야."

"삐이?"

삐삐는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결국 스스로 조심스레 가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방을 닫으면 안에서 조용히 가방 벽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별일 없겟지 생각하면서 나는 공기중으로 뿌려대던 마력에 조금씩 반발을 흘렸다.

서로 상충하는 마력이 반발하면 상당히 피곤해지게 된다.

억지로 마력을 덮어씌우는 것과 기본적인 틀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렇게 놓아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침식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꾸준히 고통을 받게 된다.

아마 삐삐도 가방에 들여놓지 않았으면 상당히 아파했겠지.

마력회로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중간에 틀어막혀 쿡쿡 쑤실테니까.

거기에 추가적으로 '무게'를 더한다. 무게는 마력에 방향과 힘을 정해 하중을 거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고통스러움과 동시에 몸이 무거워지게 된다.

나는 그 방향을 나로 설정해두었다.

즉, 내 쪽으로 자연스럽게 끌려오려는 힘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분명히 들리던 낮은 남자의 목소리는 점차 내게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풀숲에서 질질 끌리며 손으로 나무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만나서 반갑네요. 그런 꼴로 마주하고 싶지는 않으셨겠지만요."

"으으윽...!"

그들은 하나같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놓고서는 상황이 역전되고 나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로 겨우 몸에 힘을 주고 버틸 뿐이다.

나는 그들이 한데 모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나 둘 힘이 빠진 사람들이 아무리 버티려고 해도 끌려오는 모습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발을 땅에 박으려고 해도 흙을 파내며 질질 끌려오는 모습은 더욱 그랬다.

마침내 그들 모두가 내 주변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무게를 가하는 방향을 발 밑으로 돌렸다.

그리고 동시에 마법을 시전했다.

"비전 강타."

대번에 뒤통수를 마력으로 후려쳐진 사람이 하나둘씩 앞으로 고꾸라져 그대로 쳐박힌다.

풀숲에 머리를 쳐박은 채로 바르르 떨고 있는 사람들을 일렬로 줄세웠다.

"비전 강타."

"비전 강타"

"비전 강타"

"비전 강타"

.

.

역시 사람은 그렇게 간단히 변하지 않는다고 유레크로스에서 훈련시키던 것 처럼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기어이 무력으로 다시 눕혀주었다.

어떻게든 서 있던 사람들의 고개가 하나같이 바닥으로 쳐박히고 나서야

나는 내 앞에서 뒤통수를 보이는 그들에게 말했다.

"더 해볼래요?"

"....."

그들은 팔이나 다리를 움찔거리며 손에 든 무기를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들을 짓누르던 마력을 풀고 물었다.

"나는 해를 끼칠 생각도 없고 그냥 이 주변을 지나갈 뿐이라고요.

그냥 우리 애 밥좀 먹일 수 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어요."

"거짓말이다! 우리가 고작 그런 허술한 거짓말에 속을 것 같나!"

"이제 그딴 거짓말에 더는 놀아나지 않는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여전히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고개를 치켜든 그들의 모습을 보면 확실히 하이엘프와는 다르다.

연한 회백색 피부를 하고, 적갈색 머리를 늘어뜨린 그들은 상당히 개방적인 차림에

식물을 원재로 한 것 같은 옷감을 기반으로 하는 직물을 입었다.

"보기에는 마운틴엘프 같은데 맞나요?"

"침입자에게 알려줄 수는 없다!"

그들 중 선두에 있던 사람이 과감히 검을 들고 내게 달려왔다.

반응하기도 전에 복부를 노리고 칼을 휘두르는 그의 움직임은 상당히 예리하고 민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내가 피할 수준이라면 아마 다른 인간들에게도 피하는 일이 그닥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당히 몸은 좋아 보였지만 아마 이런 쪽에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아보이는 몸놀림은

내가 한껏 긴장해서 공격하려고 했던 전의를 확 꺾어버렸다.

보아하니 몸에 맞지 않는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보였다.

그제서야 본 그 엘프는 상당히 젊어보이는 외모의 소년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막 18살 정도 되어 보였다.

"너..."

"히이익...!"

뒤로 주저앉아 천천히 뒤로 몸을 빼는 모습을 보면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바지에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애처로워보이는 표정을 하고

머뭇매녀 뒤로 물러서려고 하는 모습에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안내해줘. 공격하지 않을게."

"안...내...?"

"마을이 있을 것 아냐."

그렇게 소년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면 뒤에서 다시 호통치는 소리가 들린다.

"속지마라 칼베드웨! 그런건 거짓말이다!"

"아...."

"어쩔 수 없네."

나는 가방을 살짝 열어보였다.

그 순간 나를 경계하는 눈이 늘어난다.

본격적으로 나를 적대하기 시작하는 눈들은 내 손 끝의 가방을 향한다.

그러나 그 적대심을 불시에 종식시키는 생물체가 그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가방 틈으로 고개를 빼고 내 앞에 서 있는 마운틴 엘프 무리를 보고 삐삐가 말했다.

"삐익!"

그 순간이었다. 경계가 풀어진 그들의 얼굴이 삐삐를 바라보다가

다시 내게 시선을 옮기고 긴장이 풀린 눈으로 무기를 내려놓은 것은.

"우리 애 밥좀 달라고."

"정말... 그것 때문인가...?"

"그렇다고 하잖아."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있더니 무언가를 이야기하다가 다시 내게 말했다.

"미안하게 됐다..."

나야 실컷 때렸으니 사과같은건 필요없지만 우선은 그런 것으로 해뒀다.

"물론 우리쪽의 피해가 결론적으로 훨씬 크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나를 쏘아보는 그 눈초리에 나는 피식 웃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 말을 들을 생각을 한번이라도 했으면 이럴 일이 없었죠?

이제와서 피해를 주장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니리라 믿어요.

하이엘프들은 상당히 피곤하게 했거든요."

내 말에 그들은 불만을 가득 담은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기는 했으나

결국 입을 다물고 나를 안내하기로 한 모양이다.

나는 그들을 따라 숲 속으로 걸었다.

푸른 풀들이 자란 길 끝에 무성히 자란 형형색색의 나무들은 마치

한가을의 낙엽보다 화려하게 불타는 듯 보였다.

산을 등지고 그 앞을 화려하게 나무로 뒤덮은 숲 사이로 걸으면

삐삐는 흥미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밝은 톤으로

"삐잇 삐잇!"

하고 울어댔고, 주변의 마운틴 엘프들은 그런 삐삐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런 귀여운 아이가 왜 인간과 다니는거지..."

"마력도 다루는 것 같던데, 인간에게 그 만큼의 마력이 허락될리가 없다...

분명 아직 우리가 모르는 엘프겠지..."

"저런 노란 머리의 엘프라고 하면 분명... 하이엘프쪽 아닙니까?"

"하이엘프 새끼들은 저런 고순도의 마력을 다루지 못해.

아마 소수 엘프의 장로쯤 하는 여자겠지."

"삐삐이~"

"아이고 귀엽다..."

"그래 그래, 여기있다~"

마운틴 엘프들은 삐삐를 쓰다듬는다고 주변에서 계속 말을 걸어볼 뿐이었지만

삐삐는 명백히 그들을 경계하고 가방 안으로 쏙 숨어들어갔다.

그러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제들끼리 내 욕을 한다.

하나만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다시 삐삐가 나오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면서

"어이구 그래 아저씨가 보고싶었져요?"

"무슨 소리야, 날 보러 나온거잖아. 어이구 이쁘다..."

이런 소리나 한다.

삐삐는 화가 상당히 많이 난 건지 삑삑거리다가 삐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몸에 붙어있던 비늘 하나를 휙 날린다.

상당히 딱딱한 강도의 비늘이 그의 이마를 딱 소리가 나게 때린다.

아직 성체가 아니라서 그런지 비늘은 이마를 때리자마자 부러져버렸다.

"아악!"

"꼴 좋다 병신 ㅋㅋㅋ"

"그러게 너 보러 나온거 아니라니까 괜히 설칠때 알아봤다 ㅋㅋ"

지들끼리 신난 마운틴 엘프를 보면서 나는 엘프라는 놈들과는 함부로 엮이지 말자고 생각했다.

순혈이니 정통이니 하여튼 별 이상한데 꽂혀서 자존심만 더럽게 높아서

개념이고 싸가지고 바람따라 나울나울 흘러간 것 같은 종족이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엘프를 싫어하는건데

그럴 때마다 사회운동가 같은 사람이 하나씩 나와서는 엘프혐오니 종족 평등이니

레이시즘이니 하고 있으니 열이 받을 수밖에.

그나마 하이엘프는 페마르라는 수단이나 제공하고 있으니 그 마력 중독자들에게도 거래가 붙는 거겠지만

마운틴 엘프는 문명을 거부하고 틀어박혀서 구역을 침범하는 이는 죄다 적대하고 있으니

가끔 외교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절도 결국 쌍욕을 뱉으며 돌아가곤 한다.

인류에게 남은 소마법 이상의 마력을 다룰 수 있다 정도의 차별점을 빼면

이들에게는 그다지 메리트도 없다.

인간들이 소마법을 다루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져서 그렇지만,

인간들이 소마법을 아직 다룰 수 있는 이상 이들은 그저 어우러지기 힘든 존재일 뿐이다.

인간들에게 공포와 전쟁, 그리고 그 단순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오크도

모라프루사 데 브리기아타를 통해 그 일부 정도는 빠르게 인간들과 화합을 하고 섞여들 수 있었는데,

엘프들이 그렇지 못했다는 것만 봐도 대강 어느정도 윤곽이 잡힌다.

선발로 한명 인간사회에 녹아들 엘프가 없었다는 이야기냐 하면 절대로 아니다.

지금도 몇몇 엘프는 모험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절대 인간과 파티를 맺지 않고 오로지 엘프들끼리 모여 다니며

인간을 등한시하고 우월감을 내비치는데 주저함이 없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같은 사회속에 공존하면서도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적의 적은 동료이기 때문에

오크들이 인간들과 소통의 여지라는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오크는 마치 스톡을 우리는 거대한 고기처럼 고기가 절대로 물과 섞일 일은 없지만,

천천히 맛과 향이 섞이고 있는 모습처럼 일부가 천천히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엘프는 물과 기름처럼 섞인 것 같아 보여도 겉돌며 절대 섞이지 않는 것이다.

나야 뭐 이런 생각이 굳어졌으니 바뀔 일은 없어보이지만,

삐삐는 아직 그렇지 않은데 저렇게 들이대면

과연 어린 아이의 기억에 어떻게 남을지 궁금하기는 했다.

아마 벌써부터 삐삐에게 공격하는 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상황이니

썩 좋은 방식으로 기억에 남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삐삐는 잔뜩 경계하며 스스로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가방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삐삐를 생각하면 이건 상당히 큰 변화다.

당연히 내 새끼처럼 정이 들어버린 삐삐가 이렇게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하면

내가 보기에도 불편하기 마련이다.

"우리 애가 부담스러워 하니까 다들 좀 떨어져줄래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가시돋힌 말이 돌아온다.

"뭐라고? 우리 마을로 안내해주고 있는데 지금 오히려 우리에게 명령하는건가?"

"역시 바로 쫒아냈어야 했어."

"인간들은 이렇게 이기적이라니까."

"잠깐이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했던게 후회되는군."

잠깐이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했을리가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지만

굳이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냥 삐삐로부터 안전거리를 유지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내가 삐삐의 가방을 살짝 열어보면 삐삐는 또아리를 틀고 꼬리를 입에 문 채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뚜껑이 열린 포션이... 어?

"삐삐야...?"

"삐이?"

"너 뭐마셨어!!!"

"삐익!!"

눈이 휘둥그래져서 나를 보고 자기가 뭔가 사고를 쳤다는걸 깨달은 모양이다.

"야! 너 뭐 마신거야...!"

"삐이 삑!"

삐삐는 긴장한 듯 나를 올려다본다.

뭐가 달라졌지 가만히 바라보며 포션의 상태를 파악했다.

저건... 언제 만들어둔 포션이지...?

그제서야 머릿속에 든 생각이 떠오른다.

"아! 저거...순수함 포션!"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삐삐가 가시비늘을 날렸는지 알게 되었다.

동시에 삐삐의 머리에 돋아난 작은 뿔도 함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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