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162화 (162/303)

〈 162화 〉 우리 애가 싫다네요^^

* * *

내가 가방을 열고 삐삐를 다그치면 삐삐는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크게 뜨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몸을 움츠린다.

"삐이이..."

"후우... 미안해. 좀 놀라서 그런거야 괜찮아. 다른건 안마셨지?"

내가 그렇게 말하며 삐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하면 삐삐는 눈을 질끈 감는다.

내가 머리에 돋은 작은 뿔을 피해 조심스레 머리를 쓸어주면 삐삐는 그제서야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며 잠시 고민하는 눈을 하고서는 가방 한구석에서 구겨진 흰 종이를 꺼내왔다.

"이건 또 뭐... 아...! 이거 환단 포장지잖아..."

배가 고파서 환단도 몇 개 집어먹은 모양이다.

내가 가방 안에 넣은 환단이 몇개 있기는 했었는데,

대개 그냥 건강 보조용이라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삐이...삐...!"

"괜찮아. 그거 그래 먹을 수도 있지. 내가 그걸 거기다가 놓은게 실수야."

삐삐는 그 말을 듣자마자 옆에 있던 환을 또 하나 냉큼 까서 입에 넣었다.

"그렇다고 또 주워먹으라고는 안했는데... 그거 비싼거란 말야...

하아... 그래 뭐 원래 육아가 돈이 많이 든다고는 하더라..."

그래놓고 삐삐는 나를 바라보며 해맑은 표정으로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쨥쨥대며 단을 집어먹었다. 하긴 맛있기도 하겠지. 꿀을 섞어놓았으니까.

"이제 배불러?"

"삐!"

"그래, 이리 나올까 그럼?"

내가 손을 내밀면 삐삐는 쪼르르 손 위에 올라탄다.

그리고 늘 그렇듯 어깨까지 쪼르르 올라갔다.

여전히 삐삐에게 날개는 자라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반질반질한 광택을 내게 된 비늘이 조금씩 자라고는 있었다.

이미 주워먹어버린걸 뭐라고 하겠어.

어깨에 삐삐를 앉히고 마운틴엘프들의 숲 가운데로 들어가면

이미 앞에서는 나를 바라보고 앉아있는 무리가 있었다.

마을이라고 보기에는 건물 하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숲 가운데 텅 빈 공간에선

한껏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늙은 엘프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도 인간의 기준에서 70대는 족히 넘어보이는 외모를 한 그녀는

나에게는 잠시 눈길을 주는가 마는가 싶을 정도로 흘겨보더니

금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오오오....!"

그 순간 주변의 모든 엘프들이 긴장했고, 잠시 지나서 그녀는 내 앞으로 달려나왔다.

돌발행동이었는지 주변의 마운틴엘프들도 화들짝 놀라 그녀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늙은 엘프는 내 어깨 위에 앉은 삐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천신의 전령이시다!"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삐삐에게 예를 갖추는 모습에 내가 대꾸할 틈도 없이

주변의 마운틴 엘프들이 그녀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천신의 전령이시여!"

"뭔데?"

"삐?"

"다들 전령님과 그 종자를 정중히 모셔라!

어찌 감히 전령님을 몰라뵙고 무례를 저지르려 했던 점을 용서해주소서!"

삐삐는 앞에서 한껏 주접을 부리는 엘프의 모습에 질린 것 같았다.

"어쩐지 마력을 다룬다 했더니 전령님의 종자였군?"

"근데 그런것 치고는 우리 애라거나 하지 않았나?"

잠시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기야 했지만 결국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다만 그 결과가 '감히 천신의 전령님께 예를 갖추지 못한 싹수 노란 종자' 였다는게 문제다.

늙은 엘프는 내 앞까지 다가와서 말했다.

"제 이름은 시도라입니다.

마운틴엘프 부족의 장로직을 맡고 있습니다.

이제 천신의 전령은 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이어져내려오고 있었다니..."

"삐이?"

"전령님...? 뭐...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배고프다고 밥달래요."

내가 대신 대답하니 시도라는 금새 표정을 바꾸고 정색한 얼굴로 답했다.

"아, 그런가. 고맙네. 그 자네는 분명히 처음 이곳에 올 때 전령님의 식사를 위해서

우리 숲에 들어왔다고 했던가?"

"네. 그런데 마운틴 엘프가 왜 산이 아니라 숲에 살고있는 ㄱ.."

"그만, 내가 그걸 대답해줘야 할 이유가 있나?

전령님은 우리가 잘 돌볼테니 우리에게 맡기고 이만 돌아가게."

"무슨 소리를 하시는거죠?"

"말 그대로다. 네 마력이 전령님의 은혜라는걸 안 이상, 별 볼일 없는 인간에게는

우리도 큰 흥미가 없어. 꼭 이렇게 말을 해줘야 알아듣나?

이래서 인간들은... 몇년 살지도 못하는 주제에 섭리를 거스르려하고

결국 장수 종족의 발목만을 틀어잡고 공멸하기를 기도하는 더러운 자들이지..."

"그게 무슨...?"

"우리 엘프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지?

전령께서 빌려주신 힘을 가지고서 말이야.

인간이 마력을 다룰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게 아니었는데."

"저기요?"

"아무튼 이제 넌 돌아가거라. 자, 전령님. 이리 오시지요."

시도라는 손을 뻗어 삐삐의 앞으로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뒤로 마운틴엘프들이 과일을 비롯한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하나 둘 잔치대형으로 쌓여가는 음식들을 보면서 미리미리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안된다고

교육하지 않은 나를 탓했다.

삐삐도 시도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뒤에 쌓여가는 음식에는 확실히 흥미가 동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어서 오시죠.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손을 뻗은 시도라의 표정에는 주름 사이로 들뜬 흥분이 서려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삐삐도 당연히 소름을 느낀 모양이었다.

"삐이익...!"

삐삐는 쪼르르 도망치듯 그 손을 피해 내 반대쪽 어깨로 옮겨왔다.

그리고는 가시 비늘을 날려 그 손을 탁 때린다.

시도라는 자신의 손을 치고 떨어진 비늘을 주워들고 가만히 바라보더니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걸 품에 챙겨넣었다.

"건강 상태도 아주 좋은 모양이군요.

보통 그 정도 상태일때는 몸에서 떨어지면 비늘이 부서지는게 정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쨌건 해치지 않을 테니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시 손을 뻗는 시도라의 손목을 낚아채 쳐낸다.

동시에 그녀의 품 안에서 비늘도 빼내 부러뜨렸다.

"애가 싫다잖아요."

"너... 이렇게 자꾸 여기서 얼쩡거릴건가..?

썩 좋은 구경은 못할텐데."

"자꾸 너 너 하는데... 너 몇 살이냐?"

"뭐...뭐라고...? 이 건방진 자가...!"

"몇 살이냐고."

"1840년 하고도 7년을 살았네. 자네와 같은 인간과는..."

"아 나 이거 나이도 어린 새끼가. 나이를 잊어버릴 만큼 산 사람 앞에서 주름을 잡아?

그래놓고 예의가 뭐가 어째?

진짜 엘프란 놈들은 좋게 봐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니까."

짜증이 난 내가 발을 구르면 시도라도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파악하고 뒤로 주춤 물러선다.

마침 주변에 마력도 많아서 다루기도 편했다.

엘프라고 꼴에 땅에 마력을 모으기는 해둔 모양이었다.

몸에서 찬란한 순백의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그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바닥에서 마력을 모조리 빨아올리면서 마법을 시전했다.

"마력 충격장."

손에서 뻗어진 마력은 점차 공기중으로 흩어져 퍼지고 있었다.

주문 시전을 위해 부적을 실시간으로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주술을 적은 부적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가방 한구석을 메우던 부적들이 고온수에 넣은 각설탕처럼 녹아간다.

그리고 동시에 주변에서 모여드는 마력이 주변 범위를 덮으며 경계를 정하기 시작한다.

장막 안의 대상의 정신에 강제적으로 쇼크를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거냐...?!"

"멈춰라!!"

"그런다고 멈춰줄 거였으면 모으지도 않았지."

"미친...놈이..."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다 말고 결국 마력을 흩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소용돌이치며 손 안에서 반발하던 마력덩어리는 사르륵 녹아 사라진다.

한참 마력을 끌어올리던 중에 내가 마력을 흩어버린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저 버릇없는 엘프들 앞에 떨구면 물리적 피해 없이 공포를 새겨버릴 수 있었다.

"삐이..."

그러나 나와 꼭 붙어서 내 마력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바르르 떨고 있는 존재가 있어서.

조용히 말하며 어깨 위에서 두려워하는 삐삐의 떨림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고보니 삐삐 앞에서는 한번도 진심으로 마력을 끌어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넌 진짜 삐삐한테 감사해라. 삐삐덕에 살려주는거니까.

애가 싫어하니까 안하는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시도라는 어버버 하며 말을 잇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떨었다.

그 뒤로 달려온 마운틴엘프들이 나와 삐삐를 둘러싸고 경계자세를 잡는다.

내가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돌아서면 등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졌다.

"아..."

등에 박힌 것은 화살이었다.

분명 마력침식을 목적으로 하는 도구였다.

내 몸 안으로 조금씩 흘러들어오는 작은 마력조각을 보면 모를수가 없다.

"제 마력도 아닌 것으로 그렇게 주제도 모르고 날뛰면 안되는것이다!

애초에 죽일수 있을리가 없지! 그건 너의 마력이 아닐테니까!

빌린 마력을 가지고 말이다! 전령님께서 우리를 죽이게 놔두실리 없으니까!

그래! 그분은 우리를 선택하신것이다! 순순히 전령님을 내놓고 꺼져라 인간!

아니, 마력회로를 망가뜨려주마. 이곳에서 죽어라!"

나는 태연하게 등에 박힌 화살을 뽑아낸다.

그리고는 아직 피가 조금 흐르는 등을 가볍게 닦아냈다.

상처는 금새 아물테니 상관없었다.

대수롭지 않게 뽑은 화살을 툭 바닥에 던지고 삐삐를 다시 안아들었다.

"가자."

"삐!"

"ㅁ...멈춰라! 무슨...!"

"누가 말 놓으래?"

싸늘한 표정으로 다시 시도라를 쏘아보았다.

슬슬 정말 화를 크게 낼 것 같았다.

삐삐가 보는 앞에서 화를 내면 교육상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중간에 끊은 것 뿐인데 자꾸 이렇게 내 성질을 건드린다니.

"너는...! 아니, 당신은 지금 엄청난 죄를 짓는겁니다!

천신의 전령님을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데려간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전령님! 어서 돌아오십시오! 저희와 함께 이곳에서...!"

"아니 ㅇ..."

"시여!!!"

내 말을 중간에 자르고 들어온 날카로운 목소리는 가늘고 높은 것이었다.

동시에 내 품에서 빼액 소리를 지른 작은 생물체가 성을 내며 씩씩대고 있었다.

"삐삐야...? 너 말을... 어머머.... 어머..."

"삐삐! 전녕 셔!"

나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멍하니 서서 삐삐를 바라보다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눈물이 찔끔나오는 것도 같았다.

아까보다 조금 더 몸집이 커진 것 같은 삐삐는 명백히 시도라를 바라보며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들었죠? 애가 싫다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삐삐를 안아들고 돌아섰다.

"배고파 삐삐?"

"삐이!"

"말 잘하면서 왜 또 삐야?"

"삐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삐삐를 보고 말했다.

"삐삐야, 그럼 앞으로도 포션이랑 약 먹을거야?"

"삐...? 시여..."

"싫어? 먹어도 되는데. 먹고싶으면 먹어도 좋아."

"죠아..."

"그래? 그럼 포션은 이거랑 이거랑 이거는 먹으면 안된다?

나머지는 마시고 싶은만큼 마셔도 되고,

약은 어디보자, 아. 이거 먹으면 되겠다.

이거 먹으면 돼. 알겠지?"

"죠아!"

나는 삐삐와 이야기를 하며 숲을 가로질러 빠져나갔다.

중턱쯤 나왔을까, 뒤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잠시만 기다려주시지요."

내가 뒤를 돌아보면 시도라와 젊은 여성엘프 하나, 남성엘프 하나가 있었다.

그들은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시도라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다시 한번만 전령님을 저희에게 맡기기를 재고하실 수 없습니까?"

"이젠 인류의 시대야. 언제까지 신화를 끌어들이려고?"

"창공의 전령께서 마력을 베푸시고, 진실을 가려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마력을 다루고 위협과 혼란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마력이 희미해지는 지금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왜 기다려? 찾으러 가야지. 스스로 방법을 강구하고 인간과 섞여들어서

문화를 이룩할 생각을 하라고. 게을러 빠져가지고선 누가 다 대신 해주길 바라면서

뭘 이제와서 노력한 척이야? 너희가 찾아 헤메시던 전령께서 너희한테 질리셨다잖아.

혹시 이전에도 그런거 아냐? 알아서 해주시겠지. 마력만 있으면 뭐라도 되겠지 하면서

은혜로 포장한 봉사를 강요하다가 기어이 그렇게 말려죽인거 아니냐고."

"우...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약하고 신을 의지할때 우리는 하나로 규합될수 있었습니다..."

젊은 여성 엘프가 그렇게 말했다.

질세라 남성 엘프도 끼어들었다.

"그래요. 신께서 주시는 은혜를 당연시했던 우리의 과거를 청산하고 싶습니다.

이제라도 전령님께 은혜의 반이라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분명 신께서도 다시..."

"계속 그렇게 해봐. 의지하고 실망하고 배신당했다며 자책하고.

스스로 뭔가를 해 볼 생각은 한 번도 못한 채로 그렇게 밑바닥의 신만 찾아봐.

네가 신이라도 도와줄 생각이 들겠나 돌아봐봐.

이 전령은 내가 빼앗는게 아니야. 너희가 지키지 못한거지."

나는 삐삐를 안아들고 그들을 뒤로 한 채 떠났다.

천각룡은 전령이라고 불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로 안 채로.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