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167화 (167/303)

〈 167화 〉 샘

* * *

나는 그를 따라 폭포 감시자의 초소로 향했다.

조지는 그곳에 마련된 허름한 모포를 꺼내 내게 둘러주었다.

이미 옷을 다 챙겨입기는 했지만 젖은 몸이라면 체온이 떨어지니 그냥 받아두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모포를 둘렀다.

조지는 나를 앉혀두고 앞에 구식 난로를 켜 주고는 내게 물었다.

"그 혹시 차는 어떤게 좋으세요?"

"아무거나요."

"그게 제일 어려운데 말이죠."

그는 잠시 뒤에 돌아와 내게 녹차를 건네며 말했다.

"녹차가 마침 재고가 많이 남더라고요.

분명 싸구려 녹차도 아니라서 맛은 괜찮은 편인데

이상하게 초소 감시자들한테 인기가 없어서 쌓여있다니까요."

나는 대답 대신 녹차를 한모금 마셨다.

말대로 썩 나쁜 맛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매력적인 맛도 아니었다.

조금 씁쓸한 느낌이 입에 남아서일까 자주 찾을 맛은 아니었다.

"그래서 괴수 이야기 말이죠.

과거에 교국에서는 순수의 폭포를 감시 관리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그게 아마 150년 정도 전인걸로 아는데 자세한 사항은 잘 모릅니다.

여하튼 그렇게 되고 나서 처음 감시자가 이곳으로 파견되고 나서

이 산에서 폭포를 점거하고 있던 마운틴 엘프들을 몰아냈습니다.

그 당시에도 상당히 저항이 거셌다고 합니다만

교국에서 파견된 팔라딘들이 굳건히 엘프들을 밀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곳에 초소를 세웠습니다.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지금에 와서는

다소 과격했다고 말해도 부정할 수 없을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벽에 걸린 엽총을 들어 등에 멨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야 없지만 그 당시에 엘프와 교국 측에서는 나름의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 증서야 지금도 초소에... 아, 여기있군요..콜록 콜록...!"

그는 삐걱이는 오래된 서랍 구석에서 빛바랜 종이 문서를 꺼냈다.

먼지가 한가득 쌓여있던 서류를 꺼내 털었고 날린 먼지에 콜록이면서도 서류를 보여준다.

"서류의 내용까지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기밀이니까요.

그래도 이정도면 충분하겠죠? 서류가 있어요. 그래서 엘프는 현재 이 구역을 교국에게 넘겼습니다.

이후로 초소에 감시자가 파견되어 꾸준히 일지를 적어 다음 감시자가 올 때까지

대기하는 식이죠. 일지는 다음 감시자에게 인수인계하는 식으로 이어지죠.

과거부터 내려오는 기록 내용을 전부 알려드릴 수도 없지만은,

아무래도 불공정한 조약이었나 봅니다.

그러니 엘프들이 꾸준히 조약이 무효라고 초소까지 찾아와 성을 냈겠지요.

엘프들은 빈번히 초소에 찾아와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초소 앞에서 대기하다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한 엘프가 기어이 철조망을 넘은겁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교국 측에서도 이런 상황이 올 줄 몰랐기 때문에

감시자가 정말 감시의 업무만 담당했다고 합니다.

감시자가 방심한 사이 엘프는 초소를 점거하고 문서를 찾았다고 합니다.

감시자는 당황해서 근처에 있던 책상 위 경고용 폭죽을 휘둘렀습니다.

엘프에게 맞는 순간 폭죽이 터졌고, 펑 하는 소리가 났겠죠.

아무리 경계용 폭죽이라도 그 지근거리에서 피격당한 엘프는 상당히 다쳤을겁니다.

서류에는 엘프 부상이라고 적혀있을 뿐이라 얼마나 중상이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 엘프들은 동료의 부상을 보고 강제로 초소를 점거하고 감시자를 포로로 잡아

교국을 상대로 협상을 요구했습니다."

"확실히 어려운 상황이네요.

분명 오해할 상황을 제공한건 맞는데 결국 그렇게 초소를 장악해버렸으니"

"네, 협상도 그래서 결렬되었습니다."

그가 엽총을 슬쩍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 엽총이 괜히 보급된게 아니니까요.

엽총은 사용 기록과 사유까지 꼬박꼬박 정리해서 별도로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어쩌면 오늘도 한발 쏠 뻔 했죠."

"저한테요?"

"상상해 보십시오. 웬 낯선 여자가 알몸으로 일반적으로 출입이 통제된

분쟁지역의 경계장소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놀라는게 정상 아닙니까?

제가 문을 열어둔 것도 아니고 맨 몸으로 절벽을 기어올랐다는데 말입니다."

"엘프들은 절벽을 기어오르지 않나보죠?"

"당연하죠. 그 친구들은 제게 총이 있다는걸 아니까요.

그리고 애초에 종종 초소에 와서 문을 개방해달라고 합니다.

제가 딱히 거절하지도 않았죠.

교국출신이기는 하지만 저는 신 같은걸 믿지 않아서요.

종교 문제에 엮여서 물놀이 좀 하고 싶다는 사람을 막는다는게 그냥 좀 웃기지 않습니까?

어차피 저 아니면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감시자들 사이에서는 대개 이런 편입니다. 쉬쉬하면서 묻는 것 뿐이죠.

아무튼 요점은 이 총이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당시 포로로 잡힌 감시자가 죽었거든요."

"죽었다고요?"

"엘프놈들은 인간과의 교류가 전무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갑자기 찾아와서 땅을 빼앗은 거라고 생각한다잖습니까.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엘프들은 포로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운이 나빴죠. 복숭아 알러지가 있는 감시자에게 복숭아를 먹여

그 탓에 감시자가 죽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그 때문에 교국에서는 다시 군을 파견했고 초소를 강제로 탈환했습니다.

그 과정중에 엘프가 40명 가까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교국 입장에서는 감시자의 사인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소로 지정된 폭포에서 엘프들을 몰아내는게 더 중요했겠죠.

그 때문에 엘프들은 또 한번 조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처절한 패배의 대가였죠. 그 조약은 그래서 별칭으로 복숭아 조약이라고 불렸습니다.

그 조약탓에 엘프들은 허가받지 않고 폭포에 나타날 경우 경고없이 즉시 사격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또한 이때 감시자들에게 총이 보급되며, 주기적으로 교국에서 인원을 파견합니다.

현재로서는 사성이 그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성이요?"

"네. 아마 내일 모레 또 파견을 나올 겁니다.

주요 업무는 엘프의 마을을 상대로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겁니다.

그렇게 말해도 엘프들은 꾸준히 와서 시위를 하곤 합니다.

제가 막 여기 부임했을 당시에만 해도 무력으로 시위를 하곤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정말 많이 평화로워졌죠."

"무력시위라고 해도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네. 대략 어디서 구해온 돌을 초소 밖에 던진다거나 욕을 한다거나 했지만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초소를 침략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마저도 과거 올리브 씨가 한번 정리한 이후로 팍 줄었죠.

올리브씨는 정말 자비가 없었으니까요.

성제였다고 했죠. 교국에서 파견한 분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걸 느꼈었습니다.

그게 과잉진압으로 처리되어서 이제는 성희님이나 성연님께서 주로 오시지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창밖을 슥 바라보았다.

"그래서 괴수는 언제 나오죠?"

"이제 곧 나옵니다. 성제님이 다녀가시고 난 후에 엘프들은 감정에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엘프들은 날마다 찾아와 제발 폭포를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와 종교간의 자존심은 섣불리 굽힐 수 없는 문제지요.

제가 재량껏 출입을 시켜주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습니다.

저는 정중히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문제가 터진 거지요."

"밤이라면 확실히 제대로 체크하기 어려웠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마침 이 초소에는 서치라이트도 없어서...

그날 밤에 엘프들은 기어이 폭포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엘프의 영토임을 증명하겠다고 거기에 다량의 마력을 풀었습니다."

"마력이라고요?"

"성연께서 확인해주셨습니다. 마력이라더군요.

하나의 마력으로 점철되어버린 구역은 결국 마력이 스며들어 장기간 고착화될 경우

누가 보더라도 마력이 스며들었음을 나타내게 된다더군요.

그렇게 되면 교국에서도 부정할 수 없을 명백한 증거가 폭포와 샘에 남아버리는 겁니다.

그 이후로는 국제적으로 물고 넘어지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아, 맞아요. 아라카스트에서도 특유의 담홍빛 토지로 구역을 나누고 영토를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만일 그런 식으로 샘물에 마력이 스며들어버리면 분명..."

"그 날 이후로 샘물이 산성이 있는 탄산수로 변했습니다.

자세히는 몰라도 그 근처로는 나무도 잘 자라지 않고요.

생각보다 많이 강하더군요. 어떻게 수중생물들이 멀쩡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하는 것보다... 아, 들어가 계셨으니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아, 알 것 같아요..!"

"그 마력이 주변 생물들을 변화시킨다더군요.

문제는 과한 마력으로 인해 샘 아래 살던 '붉은 아가미 수렁톱니'가 변해버린 겁니다."

"붉은 아가미 수렁톱니가 뭐죠?"

"아, 어종명입니다.

붉은 아가미를 달고 있는 녀석인데, 샘 밑바닥을 기어다니며 바위틈에서 사는 녀석이죠.

원래는 작은 미꾸라지나 수중 벌레를 잡아먹는 정도의 크기를 보이는 녀석인데,

과한 마력으로 인해 크기가 급증해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커져버렸습니다."

"그게 괴수인가요?"

"그렇습니다. 붉은 아가미 수렁톱니는 이 폭포아래에서 수중 생물을 잡아먹고 있어요.

원래보다 더 커지기도 했고, 지느러미가 기어다니기 좋게 진화했습니다.

종종 육지로 기어올라오기도 하더군요. 오래 버티지는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만

펄떡대며 이 근방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기겁을 한다니까요.

이미 총알을 여러 발 맞추기는 했는데, 피부 자체도 질겨지고 해서 흥분시키는 것 외에

유의미한 효과가 없더군요. 아예 통제하는게 상책이라 지금도 문을 통제한 겁니다.

그래서 폭포로 가는 방법은 그 문을 열지 않고서는 없다고 한 거였습니다만,

기어이 그 절벽을 기어올랐을 줄은 몰랐습니다."

"잡을 수는 없는 건가요?"

"몸집이 커진 만큼 시력이 떨어지고 둔해졌지만 워낙에 거대해서 잡을 수가 없더군요.

이제는 산짐승도 유인해 고꾸라뜨려 잡아먹습니다.

그 놈이 사슴을 한 입에 집어삼키는걸 보신다면 놀라실 거에요.

그래서 이번에 성연께서 그 녀석을 처리하겠다고 파견을 나오신 거고요."

"엘프쪽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엘프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마력으로 인해 성장에 어느정도 도움이 되는 일은 있어도

저런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르쇠로 일관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저희측에서 물으면 그게 천신님의 분노를 산 거라고 하는 답변만 돌아오더군요."

그는 컵을 홀짝이더니 망원경을 가지고 폭포쪽을 몇 번 바라보다가 망원경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수시로 확인을 해 줘야 합니다.

놈이 올라왔을때 총으로 제때 탄밥을 먹여줘야 다시 어슬렁거리면서 샘 안으로 돌아가거든요."

"크기는요?"

"대략 4~5미터 정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 크기가 저 작은 샘 안에 들어간다고요?"

"놀랍지만 그렇더군요."

"왜 나는 잠수도 했는데 그 안에서 못 봤지...?"

그렇게 말하자 조지는 마시던 차를 코로 뿜으며 내게 외쳤다.

"그...그 안에 없었습니까?!"

"어... 그랬을...걸요?"

그는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열어 탄약을 챙겨들고

옷 위로 조끼를 하나 더 걸치더니 종이에 싸인 물건과 확성기를 챙겨들고

벌컥 문을 열더니 정신도 없어보이는 모습으로 달렸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 이 밖으로 나오시면 안됩니다!

함부로 나왔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절대 나오지 말고 여기 가만히 계세요!"

쾅 소리가 나게 문이 닫히고 홀로 앉은 초소에서 나는 멍하니 앉아서 차를 홀짝였다.

나오지 말라니까 나가지는 않았다. 괜히 하지 말라는 일을 굳이 하면 일이 터지더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랬다.

괜히 하지 말라는 일은 안하는게 맞다. 혼자였다면 또 모를까,

지금은 내 옆에 삐삐도 있었으니까.

"저 사람도 피곤하겠네."

느긋하게 앉아서 시간도 떼울 겸 데릭이 주고 간 노트를 펴 읽기로 했다.

[천각룡의 진화는 대개 얼마나 강대한 마력을 받아들이느냐, 그리고 어떤 부분을 진화하고,

얼마나 진화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천각룡의 진화를 위해서 필수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마력이니 만큼,

진화에서 마력은 '자원'으로서 작용한다고 보는 편이 이해하기 좋다.

자원으로서 가진 마력이 많을수록 더 여러 곳을 세밀하게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얼마나 건강하게 자랐으며 얼마나 문제없이 성장했는지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마력을 소모해 진화를 마친 후에는 체내의 마력을 생존에 필요한 정도를 남기고

대부분 소모한 상태가 된다. 단순히 식량을 공급하는 것도 좋지만,

마력을 지닌 생물을 포식하는 것으로 더 빠른 회복효과와 더불어 진화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마력을...지닌.... 삐삐야, 다녀올게."

잠시 뒤, 숲속 초소에서는 쾅 소리를 내며 화려한 백색 빛이 하늘로 뻗어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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