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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69화 (169/303)

〈 169화 〉 때 아닌 캠핑

* * *

숲을 뛰어다니던 붉은 아가미 수렁톱니를 잡고 나서 초소에 틀어박힌 엘프들을 빼냈다.

조지는 그 틈바구니에 끼어 멍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씩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하면서도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렇게 수렁톱니가 초소 앞으로 뛰어나올 줄 알았으면 괜히 찾겠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는건데.

"하아... 오늘 정말 다사다난한 하루네요. 일단 같이 들어가시죠."

"아, 네. 일단 저 생선 좀 정리하고요."

"저 괴수를 따로 정리하시는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우리 애 먹이려고요. 혹시 생선 요리 할 줄 아시는거 있으세요?"

문득 말하다가 생각난 이야기이긴 한데 과연 이걸 먹여도 되려나 하는

그 찰나의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못 먹을 걸 주는 것도 아니고 혹시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어느정도는 케어해 줄 수 있을테니까 과감히 먹이기로 했다.

그리고 뭐 원래 붉은 아가미 수렁톱니라는 어종 자체는 육식 어종이다보니

기본적으로 살이 연하고 맛이 좋다고 했으니까.

"간단한 정도라면 가능합니다. 너무 대단한걸 기대하시면 부응해드리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회나 구이, 간단한 찜요리 정도는요.

그런데 저런 생선은 푹 고아서 탕을 내는게 제일 낫지 않을까 생각은 드네요."

나는 그의 말에 괜히 입에는 얼마 대지도 않을 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문짝이 날아가 너덜너덜한 초소는 안쪽도 살짝 찌그러져 퀭해보였다.

도저히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은 초소 안에 놓인 내 가방을 가져왔다.

"오늘은 어디 다른 곳에서 보내야 할텐데 조지씨, 혹시 갈 곳은 있나요?"

"하아... 없군요..."

우리의 대화를 들은 건지 시도라가 말했다.

"그... 그럼 내 집으로 가세나! 그리 넓진 않더라도 세 명 정도 지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거네."

그 말에 나와 조지씨 둘 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역시 말을 꺼내놓고 머쓱한지 고개를 살짝 떨군다.

"이제 와서 무슨 생각으로 우리를 초대하는거야? 아무리 뭐라고 해도 삐삐는 못 넘겨.

그리고, 가자고 하면 우리가 옳다꾸나 하고 따라갈 줄 알았어?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그렇게 말하면 옆에서 조지가 맞장구를 쳤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거부하고 싶지 않지만 맡은 일도 있고,

무엇보다 나중에 업무상으로 문제가 생길 겁니다.

엘프를 쏴버리기도 햇고, 서로 적대하는 입장이기도 하잖습니까.

이래서는 성연님께서 오셨을 때 입장이 난처해집니다. 거절하지요."

시도라는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 간단히 뜻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내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데 이야기라도 잠시 같이 나눌 수 없나?

서로 입장이 있으니만큼 양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기야 하겠지만은

이야기를 해봐서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조지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 뒤에 계신 분들과는 합의가 된 건가요?"

불만스런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마운틴 엘프들도 마지못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조지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임시로 캠프를 세워보겠습니다. 여러분들 전원을 모시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엘프분들 쪽에서도 두 분 정도만 오시면 어떨까요? 네 명 정도가 적당할 것 같은데."

시도라는 뒤돌아보며 엘프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세나.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없나?"

그녀의 말에 코가 상당히 큰 엘프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가지요."

"오, 야르누프. 그래, 잘 왔다."

야르누프라고 불린 그 엘프는 과묵한 편이었지만 만약 입을 열었다면

금방이라도 이쪽으로 욕을 했을 것 같은 험악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야 별 상관 없었는데 조지가 나를 바라보며 정말 괜찮겠냐고 묻기야 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조지는 남은 엘프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2대2로 인간과 엘프 모두 인원이 채워졌으니 남은 엘프분들께서는 돌아가 주시죠."

그가 그렇게 말하면 엘프들도 시도라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돌아갔다.

그 힘 빠진 발걸음은 마치 죽을 동료를 버려두고 돌아가는 이들 같았다.

결국 조지는 천막용 천과 숲에서 공수한 목재 따위를 엮어 간이 캠프를 만들어냈다.

시간은 상당히 걸렸지만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네 사람이 들어가면 겨우 앉아서 이야기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시도라였다.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우선 묻고 싶은게 있네.

초소 앞에서 빛난 흰 마력은 뭐지?"

"마력..?"

조지의 의아한 어조에 확신을 가진 시도라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나를 바라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이제껏 그녀가 한 말 중에

제일 진중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무거웠다.

"그럼 역시 아가씨로군. 그 마력은 무엇이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내가 그걸 말해줄 이유가 없는데?

너희들 말대로라면 나는 그냥 전령님의 마력을 빌린 애송이잖아?"

"처음에는 그렇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어딘가 달라...

흰 마력을 하늘로 쏘아 터뜨리고, 마력과 함께 강하해서 목표를 공격하고.

그런 정도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하지만, 그 마력의 양 만큼은 그럴 수 없지.

출력이라는 건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영역이니까.

마력을 빌리는 행위는 즉, 다른 사람이 구현해놓은 상상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지.

마음껏 뽑아내려고 해도 결국 자신이 만들어놓은 이미지 만큼의 위력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마력 회로의 구성 자체도 다를테니 말이야.

어설프게 강한 마력을 이끌어내려고 해봐야 몸에서 받아들일 수 없어.

하지만, 그 빛은 달랐다. 강렬했고 눈부실 정도로 강한 섬광줄기.

빌린 마력으로는 아무리 천신의 전령님이라고 해도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더욱이, 홀로 그 괴수를 정리했지.

지금 저기 널브러져있는 저 괴수를 단번에 꿰뚫어 제압할 정도라면

그 마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압축시킬 수 있어야 해.

그런 세밀한 조작은 갓 태어난 새끼 용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건 완전한 오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내게 그렇게 말했었지. 아니, 말씀하셨지요.

나이도 어리다... 라고. 그런 압도적인 마력을 다루며, 용을 데리고 다니고.

천년 이상을 사는 엘프보다 오래 사는 존재. 당신은 천신이 아니십니까?"

무슨 개소리야 라고 받아치려고 했는데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도리어 웃음이 나올 뻔 한 것을 참아냈다.

"아냐. 난 그냥 오래 산 사람이야."

"그렇게 둘러대려고 하셔도 늦었습니다. 평범한 인간이 그런 마력을 다룰 수 있을리 없습니다.

이전의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무릎을 정중하게 꿇은 시도라는 내게 꼬박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내 옆에 있던 조지만 당황해서 내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나는 조지에게 그런 것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그런걸 들어줄리 없었다.

"어쩐지... 그 폭포 아래서 목욕을 하고 계시더라니..."

"아니라니까요...?"

시도라는 조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덕분에 천신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너를 용서하겠다.

다만 너를 호의적인 대상으로 생각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더 큰 대의를 위해 너의 죄를 굳이 묻지 않겠다는 말이다.

우리 엘프들은 너희 인간보다 훨씬 긴 수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수명을 고작 인간이 재단해 끝맺은 점은 절대로 좌시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 아이를 그저 내 가슴에 묻어두기로 하겠다...

내가 멋대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에 그 아이에게 미안할 뿐이지..."

조지는 뒷머리를 긁으며 무안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그 괴수를 잡으신 건가요?"

"음, 우리 애 먹이면 좋을 것 같아서 초소 밖으로 나왔는데요.

숲이 워낙에 넓기도 해서 마력을 산개했습니다.

그러다가 마력 반응이 느껴지는 곳에 그 녀석이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천천히 둘러보던 와중에 마운틴 엘프들의 마력이 한군데에서 강하게 느껴져서

가 보니 마운틴 엘프와 괴수가 대치중이기에 도약해서 등 위로부터 아래까지

마력을 모아서 회전시켜 파내버린거에요. 드릴의 원리랑 비슷해요."

들으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야르누프가 다시 내게 물었다.

"그럼 그 '우리 애'라는건..."

"삐삐 이야기지."

그는 시도라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시도라는 그런 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리고 내게 물었다.

"이런 부탁을 드릴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번만 도와주시지요.

이제껏 당신을 기다려온 이 불쌍한 마운틴엘프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당신이 떠나시고 나서 엘프들은 분열했습니다. 이제껏 마운틴 엘프는 마력을 지키는 것 외에

생존할 수 있는 방식이 전무했고 모멸받고 핍박속에 하루하루를 견뎌가며

오크의 습격과 인간의 배격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부디 해결책을 알려주시지요."

"나는 너희가 말하는 신이 아니야. 더욱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강한 힘이 있지도 않고.

하지만 그럼에도 한가지 조언을 하자면,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혼자 무언가를 해내기 힘든 마당에

뭐 하나도 없는 약소 종족이 따로 떨어져 나와서 인간을 척지고 있는데

뭐가 될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기지.

너희 내가 숲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나한테 화살부터 날려놓고

이제와서 배격이라고 해봐야 와닿는게 없어.

언제까지 신만 찾을 거냐고 내가 말 했었지? 내 말은 들어먹지도 않으면서

무슨 자꾸 조언을 해달래. 생각해보니까 짜증나네?"

"그건..."

"너도 알잖아. 신 같은건 없다고. 신을 숭배해야 할 이유는 없는거야.

그 숲을 나와. 엠페레스로, 유레크로스로, 미리타엔으로, 교국으로.

먼저 발을 옮기고 섞여들 자세가 되어있어야만 무언가가 변하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죽은 수렁톱니를 단검으로 갈무리해 씻어냈다.

아무래도 살짝 건조시켜서 건어물 느낌으로 만든 후에 가지고 다니기 용이하도록

만드는게 좋아보였다. 혹시 몰라 뼈나 가죽, 눈알같은 부위도 다 따로 모아 핏물을 씻어내고

뭉쳐서 말리기로 했다. 나중에 잘 갈아서 환단으로 만들면 삐삐에게 먹이기도 쉬울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비려 보이거나 먹을 수 없는 부위 같아보이면 따로 잘라내 입에 가져다 대본 후에

잘 모아 따로 버렸다. 주로 강가에 흘려버리면 물고기들이 콕콕 달려들어 먹는 것 같았다.

또 다른 괴수가 탄생하지 않겠느냐며 조지가 걱정하기는 했지만 그럴 일 없으리라 못박았다.

어차피 대부분은 내장이나 지느러미, 생선 이빨 따위의 못먹을 부위 정도인데 그 정도에 든 마력으로

얼마나 강한 괴수가 나오겠냐는 것이다. 나는 손질을 마치고 먹을 수 있을만한 부위를

하나 하나 잘 분리해서 꼬챙이로 꿰어낸 후에 끝을 구부려서 걸었다.

그리고 볕이 잘 드는 곳에 하나 하나 널어둔 후, 조지에게 부탁해 지키도록 했다.

시도라는 내가 분리한 생선 살을 보면서 괜히 군침이 도는 것처럼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괴수라지만 그래도 마운틴엘프의 마력을 한가득 품고 있었던 녀석이니만큼

어디가서 함부로 먹을 수도 없는 녀석이기도 했고, 그 마력을 재흡수한다는 것은

마운틴엘프에게 둘도 없는 이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다 말리고 나시면 저희도 조금은... 주시는 거지요?

저도 한입 정도는 그 맛을..."

"전부 몇 조각인지 세어 놨는데, 다녀와서 하나라도 없으면 조금 서운할 것 같아요.

잠시 숲속을 돌아보고 올 테니까 잘 지켜주세요. 아, 저기 놔둔 뼈나 가죽도 같이요.

잘 지켜주시면 돌아와서는 맛있게 식사할 수 있겠네요."

"아하하... 걱정 마시죠. 제가 잘 감시 하겠습니다. 한 조각도 빠짐 없이요!

1g도 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말리는 의미가 없잖아요."

"아... 그렇군요. 여하튼, 믿고 다녀오시죠!

물기만 빼고 나머지는 변화도 없도록 해 두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뒤를 맡기고 숲으로 향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깨어날 삐삐를 위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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