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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73화 (173/303)

〈 173화 〉 선택

* * *

성연 마카를 돌려보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지가 돌아왔다.

"금방 오셨네요?"

"하하... 사실은 이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방해되지 않도록요.

그래서 성연님이 돌아가시고 바로 저도 돌아온 겁니다."

"이야기를 들으신건가요?"

"그럴리가요. 그게 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면 걸렸을 겁니다.

다만 어떻게든 성연님을 진정시켜 돌려보냈다는 것 정도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아도 알겠더군요."

"그정도는 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앞으로 여기서 근무하시면서 애로사항이 꽃필지도 모르겠네요."

"네? 저 말입니까?"

그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며 내게 되물었다.

"농담이에요."

내가 그렇게 말하고 웃자 그는 식겁한 듯 말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주세요...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일에는 확실히 이 아이의 공이 크군요.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직 초소 안에 망가지지 않은 게 있을 겁니다."

전체적으로 망가지고 찌그러진 초소에 들어가서 이곳저곳을 한참 헤집던 조지는

잠시 후에 작은 공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전에 초소에 두 명이 근무하던 당시에 차고 놀던 공입니다. 이제는 필요가 없을테니

그 아이가 가지고 놀면 딱 좋겠군요."

"고마워요."

나는 공을 받아서 삐삐에게 넘겨주었다.

삐삐는 잠깐 공을 가지고 놀다가 가만히 바라보고 툭툭 건드렸다.

그러더니 공을 붙들고 꼬리로 말아쥐더니 꼭 껴안은 채로 옆으로 발라당 엎어졌다.

"하하, 아무래도 어떻게 마음에 든 것 같습니다."

"그러네요. 다행이에요."

삐삐는 공을 껴안고 있다가 나를 바라보고 공을 내밀었다.

"이거 왜?"

"삐!"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일단 공을 받았다.

삐삐는 뭔가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삐삐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삐삐는 내가 던진 공을 쪼르르 달려가서 주워오더니 다시 내게 내밀었다.

삐삐는 내가 공을 던져주면 몇 번인가 공을 다시 주워오더니 나에게 공을 내밀지 않고

나를 바라보면서 멀뚱멀뚱 서 있었다.

"왜?"

그제서야 삐삐는 다시 바닥에 공을 내려놓고 공을 껴안아서 둥글게 몸을 말았다.

"시러!"

뭘 하자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아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삐삐가 뭘 원하는지 아직 도무지 알 방법이 없어서 나는 삐삐를 잠시 놔두고

조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제 저는 마운틴 엘프 부족과 대화를 좀 해보려고 해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아야!"

삐삐가 내 발을 물었다.

아직 이도 조그만한 입으로 야무지게도 물어서 이빨자국이 남았다.

"야! 너 누가 물래!"

"시러!"

"대체 뭐가 싫다는거야 너 이리와."

생각해보니까 용은 어떻게 혼내야 할지 모르겠다.

정적강화로 행동교정을 할 수 없을 때는 부적강화를 이용하라고 했었지.

처벌도 마찬가지다. 정적 처벌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으면 부적 처벌을 해야한다.

"너 이제 안쓰다듬어줄거야."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한건지 홱 돌아 숲쪽으로 걸어가는 삐삐는 몇걸음 갈 때마다

뒤를 흘끔 돌아보며 내 표정을 살피다가 내가 별다른 행동 없이 가만히 앉아서

삐삐를 구경하고 있다는걸 알고 나서 가지고 있던 공을 가지고 다시 내게 돌아온다.

그리고 공을 내게 다시 내밀고 나서 말했다.

"죠아..."

표정을 보면 전혀 좋은 표정이 아닌데, 아무래도 반성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대체 뭘 해주면 되니..?"

삐삐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공을 바라보다가

한번에 몸을 쭉 펴고 폴짝 뛰어올랐다.

"삐!"

"이게 뭐지...?"

조지도 가만히 바라보다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꼭 뭔가 펑 터져나온 것 같지 않나요? 너무 귀엽네요."

"펑 터져나왔다라... 공... 아!"

나는 공을 집어들고 삐삐를 바라보았다.

"자, 잘봐 삐삐. 이거 알 아니야."

내가 마력을 살짝 손에 모아줘도 공은 변화가 없다.

그 모습을 보던 삐삐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정말 '철퍼덕' 소리가 어울릴 법한 자세를 하고 엎어졌다.

나는 삐삐를 안아들고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그래, 모르니까 그럴 수 있지. 이번엔 봐줄게."

조지는 그 모습에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아무튼 저희는 가볼게요."

"네, 반가웠습니다. 살펴가세요. 하아... 저 초소를 어쩐다..."

끝에 뭔가 못들을 이야기가 섞인 것 같지만 애써 모른척 하고 다시 산을 내려왔다.

삐삐가 이제 이전보다 상당히 덩치가 커져서 무거워지는 바람에 삐삐를 안고 걷는게 어려웠다.

덕분에 삐삐를 다시 내려놓고 나란히 걸으면 삐삐가 아까 물었던 내 다리를 혀로 핥아준다.

"괜찮아. 안아파."

"삐..."

삐삐를 데리고 마운틴 엘프의 구역까지 돌아가는 일은 상당히 오래 걸렸다.

늘 숲과 산을 앞마당처럼 드나들던 엘프들과 달리 나는 산길보다는 포장된 도로와

이동수단이 더 익숙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지 모를 무렵일까, 옆에서 나란히 걷던 삐삐가 나를 바라보며 톡톡 내 다리를 건드렸다.

"왜? 또 뭐 있어?"

내가 물으면 삐삐는 내 가방을 물고 아래로 내렸다.

내가 가방을 열어주면 삐삐는 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바둥대다가 가방 안으로 쏙 빠졌다.

가방에 마법 처리를 해 놨기에 망정이지 찢어졌다면 꽤 고생할 뻔했다.

아마 목이 많이 말랐던 건지 들어가자마자 포션을 찾아서 마시기 시작하는 삐삐는

이번에는 내가 마시지 말라고 했던 포션을 피해 골라마셨다.

그리고는 가방 안에서 포션을 두 손으로 붙들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마치 하인을 부리는 귀족과 같은 표정으로 빨리 출발하라는 듯 말했다.

"삐~!"

그래, 내가 돌봐줘야지 어쩌겠어.

결국 나는 삐삐는 가방에 넣은 채로 계속 걸어야 했다.

하산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올라올때는 가파른 길이었지만

내려갈때는 거의 미끄러지듯 내려갔기 때문이다.

결국 다 내려와서는 거의 가속도를 못이겨 달리는 모양새였다.

"이제 엘프들을 불러야 하는데..."

시도라라면 알아보겠지 싶은 생각에 마력탄을 하늘로 쏘아올려 터뜨렸다.

얼마 오래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금새 화살이 날아와 발 앞에 박혔다.

그 끝에 묶인 쪽지를 직접 펼쳐보면 그곳에는 정갈한 글씨체로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우리는 인간과 얽혀 좋은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야르누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우호적으로 대할수록 인간들은 우리를 만만히 봅니다.

물론 장로님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며 천신님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엘프들에게는 엘프의 방식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구역을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교국과는 이미 척을 지고 살았고, 우리의 역사에서 서로 터울 없이 지낼 수 없는 감정의 골이 생겨버렸습니다.

유레크로스의 이야기는 들었으나 그곳 역시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문명에 섞여드는 것으로 우리의 문화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문화와 정체성을 그저 흘려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엘프가 하나의 엘프가 아니듯이, 인간이 하나의 인간이 아니듯이. 우리는 다양할때 비로소 가치가 있습니다.

섞여들지 않는 것 역시 우리의 특성이며 인간들이 그걸 배척이라고 표현한대도

우리는 그것이 배척이 아니라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

너무나도 많은 걸 포기하고 녹아들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효율성을 추구하고 편리함과 안전함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운틴엘프는 산을 떠나는 순간 더이상 마운틴 엘프가 아니게 됩니다.

마운틴엘프로서 살아가지 못하는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정체성은 타 문명과 종족의 비아냥과 시선에 굴하지 않는 것이고

또한 그래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마운틴 엘프들은 시도라 장로님과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겠지요. 장로님은 변화를 제시하셨고,

우리는 거절했습니다. 시도라 장로님은 마력 과포화의 영향으로 인해 요양중이시며

현재 실무를 보실 수 없는 상태이십니다. 회복에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점을 양해바랍니다.

저희 마운틴 엘프는 이대로 조금만 더 살아보겠습니다.

한순간에 바꾸기엔 여기에 너무 많은 것들을 묻었습니다.

다만 천신꼐서 우리를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점만은 기억하겠습니다.]

그렇게 적힌 걸 보고 굳이 뭐라고 더 말을 붙일 수도 없었기 때문에 돌아가려고

뒤로 돌면 화살이 하나 더 날아와 발 앞에 박혔다.

이런거 쏠 시간에 나와서 말로 인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든 위치는 숨길 모양이다.

아니면 이런 부분도 전통이나 특징으로 분류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두번째 쪽지를 펼쳐보면 아까와는 다른 글씨체로 적혀잇는 편지가 있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차후에 차차 적응해서 또 변화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전의 태도를 고수하고 교류를 일절 거절한다는 의미는 아니게끔

제가 모두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다시 찾아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떠나시는 길에 드실 수 있도록 간단한 음식을 준비했으니 어제의 연회장에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시도라]

생각해보면 시도라도 나름 사연이 꽤 길어 보였는데 저 정도로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제의 연회장이라고 하면 분명 숲 가운데 빈 공간에

넓게 드리운 것이겠지. 발걸음을 옮기면 그곳에는 통으로 구운 고기와 과일종류가 있었다.

바로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일일이 칼로 저며서 가방에 한장씩 집어넣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삐삐, 배가 부르지도 않은지 넣어주는 족족 집어먹었다.

어차피 얘를 먹이겠다고 챙기는게 맞긴 한데 말이지.

결국 나는 삐삐를 가방에서 빼내 풀어주었고,

삐삐는 고기를 다 비우고 나서야 배를 통통 두드리고 가방에 들어갔다.

"잘 먹었나보네."

흐뭇하게 웃으며 가방 뚜껑을 닫으려다가 이상한 포션을 발견했다.

어째 라벨이 붙은 건 내가 아는 포션인데 변질이라도 된 건지 내용물과 용량이 다른 것이었다.

"이런 포션은 만든 기억이 없는데?"

"삐이?"

연한 노란색의 찰랑거리는 포션이 병에 담겨있었다.

이 병은 투척용 병이 아니라 음용을 목적으로 하는 포션병이니 마셔도 된다고 만든 것일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만든게 아니다.

"이게 뭐야?"

미리타엔의 연구소에서 만든걸 받아온 거였나?

분명히 마력 반응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걸로 봐서 포션은 맞는 것 같은데

도무지가 어떤 포션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민해봐야 변할 것도 없겠다 싶어서 직접 마셔보기로 했다.

설마 뭐 죽기야 하겠어?

"ㅃ..삐!!"

삐삐가 당황한 것처럼 내 손을 양 손으로 꼭 붙잡는다.

"이런거 함부로 마시지 않아서 다행이네. 삐삐 말 잘들어서 착하고 좋아."

"죠...아?"

"응 좋아."

삐삐가 날 붙잡는 손을 풀었다. 힘이 약해진 손이 내려가고 나서야

나는 뚜껑을 열어 포션을 마셨다. 이 맛은 마치 조금 비리고 짠데, 씁쓸한 것도 같고, 오묘한 느낌이...

잠깐 맛을 보다가 이게 무엇인지 파악한 나는 콜록거리면서 모두 뿜어 뱉어버렸다.

"콜록 콜록! 어으!! 우웩...!"

"삐...삐...?"

삐삐가 날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이 포션같아보인 것의 정체를.

"삐삐야!! 오줌이 마려우면 말을 하지 그랬어!!"

"삐...삐익..."

삐삐도 왠지 살짝 뒷걸음질을 친다.

잘못한걸 아는 건지 아니면 내가 그런걸 마셨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건지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야! 네거잖아 이거! 네가 그러면 안되지!

먹여주고 키워주고 다 해줬더니 이제와서... 상처받는다...

하... 아무래도 삐삐의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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