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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77화 (177/303)

〈 177화 〉 또 하나의 우승자

* * *

삐삐의 폴리모프를 마주하고 우리는 삐삐가 마법을 다루는데 소질이 있다는 것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긴장이 풀리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뿔과 꼬리를 숨기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래서 발레리아는 삐삐가 인간일때 더 공부에 박차를 가하게 했고

삐삐는 본격적으로 커리큘럼에 글쓰기가 추가되었다.

이전까지가 그냥 받아쓰기였다면 이제부터는 독후감을 쓰게 된 것이다.

"손 아야야..."

"그래도 거의 다 쓰셨잖아요 삐삐. 조금만 더 쓰면 돼요.

무령님도 칭찬해주실거에요."

"마마가?"

"네, 당연하죠. 삐삐가 처음 쓰는 글인데 얼마나 좋아하시겠어요?"

"와아!"

삐삐는 펜을 들고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독후감을 다 썼다.

그리고는 그 노트를 들고 내게로 도도도도 달려와서 내밀었다.

"마마! 삐삐 다 해써!"

분명 글씨체는 엉망이었지만 삐삐는 생각보다 글을 잘 썼다.

자신의 소신과 감상을 적당히 공감이 가도록 쓴 편이었다.

물론 대상연령대가 삐삐와 같은 나이대에 한해서일 경우에 말이다.

"와! 진짜 잘했는데?"

나는 삐삐를 안아들고 토닥여주었다.

이제 생후 1개월도 안된 아이가 글을 써와서 칭찬해달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잘한거지 뭐겠어.

발레리아도 꽤 흡족했는지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꽤 늦어서 삐삐를 씻기고 먼저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발레리아는

두꺼운 노트를 한 권 가지고 와서 내게 건넸다.

"삐삐 교육중에 정리한 드래곤과 폴리모프의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걸 그 새 정리했다고?"

"네. 확실히 이전에 일하던 업무양보다 적은 편이라 수월했습니다."

"게비디는 평소에 뭘 시키는거야...?"

"무령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정리해서 그 행위가 미리타엔과,

나아가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 정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언제? 야! 그런건 말해줘야 하는거 아냐?"

"실제로 정리할 시간은 하루에 30분 채 남짓한 시간 뿐이었으니 꽤 고생했습니다.

제 업무도 봐야 하고 무령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조하기도 했으니까요."

"허어... 그래서 결론이 뭐였는데?"

"그냥 참 자유롭게 사신다 싶었죠 뭐."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할래? 나 술 땡긴다 갑자기."

"오랜만에... 가 맞습니까? 한 잔 주신다면 거절하지야 않겠지만요."

나는 픽 웃으면서 냉장고에서 맥주를 두 캔 꺼내왔다.

"웬일로 오늘은 위스키가 아니군요?"

"누가 위스키만 마신대? 아무튼 너나 나나 요즘 참 고생 많이 한다 그렇지?"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눈에 다크서클 내려왔거든?"

그녀는 후후 하고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건 그렇고, 내일 오후쯤에 손님이 오신다고 하던데요."

"내일 오후? 누구?"

"류해백이라고 하던데요.

'콜로세움에서 우승했다고 하더라고요.

무령님을 만나뵙고 싶다고 했다네요."

"나를?"

"네, 자세히는 모르지만 분명 무언가 목적이 있으니까 유레크로스에서

미리타엔까지 찾아온 거겠지요. 원치 않으시면 돌려보내시거나 거절하셔도 된다고야 하지만요."

"됐어. 얼굴이나 보자고. 목숨걸고 거길 이겨서 고작 내 얼굴 한번 보고 싶다시는데.

그 정도면 만나 주는게 예의야."

"역시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맥주를 마시고 나서 다시 물었다.

"이제 오늘도 다 끝나가는거지?"

"네. 저는 잠시 책을 읽다가 잘 것 같으니 먼저 주무세요."

"책? 왜, 뭐 있어?"

"삐삐를 가르치는데 부족함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관련 서적을 더 읽어볼 생각입니다.

"됐어. 애들이 그렇게 빨리 자라는게 아니잖아. 오늘은 그냥 자."

"저는 삐삐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저는 첫 만남부터 삐삐를 제압하려고 했습니다.

단검을 빼들기도 햇었고요.

비록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삐삐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무령님이나 삐삐는 오랜 시간을 살게 되실테고, 서로 특별한 애정관계를 쌓겠지만

저는 한낯 인간입니다. 더욱이 자연적으로 생긴 인간도 아니라 클론이죠.

제 짧은 수명에 언젠가 제가 삐삐와 함께하지 못할때,

삐삐가 저를 나쁜 사람, 위협적인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이 싫습니다.

물론 지금도 삐삐가 싫어하는 공부를 시키고야 있지만서도요.

삐삐가 저를 따르기야 하지만 그건 사탕 때문인지도 모르고요.

그러니 저는 더 잘 가르쳐야 합니다. 더 잘 알려줘야 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좋은 사람' 일 필요가 있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삐삐가 저를 잊어버리더라도

'자신에게 공부를 처음으로 가르쳐줬던 사람'은 잊어버리지 않도록요."

"발레리아."

"네...?"

"공부를 가르쳐 줄 뿐인 사람에게 어린아이들은 이모라는 말을 하지 않아.

선생님이라고 하면 모를까. 그리고 우리 삐삐는 말이지, 내 경험상.

싫어하는 사람은 손끝 하나 닿은 것도 학을 떼는 아이야.

그리고 사실, 나도 처음 만났을 때는 삐삐를 먹으려고 했거든.

너나 나나 별반 다르지 않아."

"무령님...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자도록 할까요."

"그래, 그리고, 주말에는 삐삐 데리고 소풍이라도 가자."

"네... 알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꿈은 꾸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는 왠지 몸이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오전에는 가게를 내가 보기로 했고, 오후에는 가게를 닫고 류해백을 맞기로 했다.

가게를 열고 삐삐는 발레리아에게 맡겼다.

오전에 제일 먼저 온 손님은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가게 맨 앞줄에 서서

내게 손을 흔들며 들어왔다.

조금 서운하다는 티를 팍팍 내는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샤인."

"오랜만이겠죠. 그렇게 안봤는데 실망이에요."

"죄송해요 급한 일이 생겨서..."

"분명 내가 다음날 또 온다고 했었는데... 서운해요 정말?"

"정말 죄송해요. 저도 무령이다보니까 예상치 못한 일에 불려갈 때가 있어서 그래요.

저도 직원을 괜히 쓰는게 아니라구요."

"후... 알고있어요. 안다구요 그런건. 어쩔 수 없죠.

정말 저한테 그렇게 사과를 해 주실줄 몰랐네요.

정말 다른 귀족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와서 그냥 서운하다고 말하는 것도

중간에 말문이 턱 막혀버리잖아요."

"그러라고 그런거에요 후후..."

"이런..."

"그래서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나요? 제가 한잔 살게요."

"그래요? 그럼 제일 비싼걸로요."

"어떻게 또 제일 비싼게 마침 가게에 있는 줄 아시고..."

"운 하나는 따라 주거든요."

나는 UTUI­Q67를 준비해 컵에 1회 복용량을 따라주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 그녀는 그 정체를 알고 있엇다.

"오... 여긴 이런 것도 팔아요?"

"네. 마침 우연히요."

"이런것 까지 기대한건 아니었는데. 정말 이걸 제가 마셔도 된다고요?"

"원하셨잖아요."

"하...하하... 고맙습니다. 잘 마실게요."

그녀는 대번에 그걸 들이켰다.

잠시 고개를 목 뒤로 젖히고 심호흡을 하는가 싶더니

상당히 개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래서 다들 엘릭서 엘릭서 하는군요. 비싼 값은 제대로 하네요.

살면서 이런걸 먹는 날도 다 오네요."

"저도 비싸서 자주 못 먹어요."

샤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그렇겠네요.

제가 알기로는 이거 한 잔에 어지간한 집 한채 값은 가볍게 호가한다던데요."

"죽지만 않으면 뭐든 살려내니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사실 요 며칠새 미리타엔을 돌아보며 느낀건데,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생기가 있더군요.

좀 더 거리가 밝아진 느낌입니다. 하리지, 크레마르, 젤렌지 3인의 기행이 사라진 것부터

나아가서는 혼란과 무질서의 국가가 과학기술과 약학의 국가라는 느낌으로 변해왔으니까요."

"저도 그런 부분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그녀는 후후 웃으며 말했다.

"본론을 이야기할게요. 교국으로 오지 않으시겠어요?"

"교국으로요?"

"교국에서는 당신의 능력을 높이 삽니다.

미리타엔에서 썩기는 아깝다는 의미죠."

"그런 겉치레 말고 본심은요?"

"여기서 썩으나 저기서 곪으나 큰 차이 없을거에요.

오히려 자유로운 점만 따지면 여기가 낫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보고 픽 웃었다.

"그럼 오늘도 전 허탕이네요. 아~ 기분이 너무 좋네요.

이렇게라도 풀고 가니까 말이죠."

"다음에 또 오세요."

"그래놓고 또 없으려고요? 막 일주일씩 문 닫고?"

"에이 어떻게 그렇게 또 못 먹여서 안달이세요?"

"원래 오고가는 감자속에 우정이 싹트는거에요."

"감자요?"

"주먹감자?"

그녀는 그렇게 웃고 냅킨을 한 장 뽑더니 글씨를 휘갈겨쓰고 내게 주더니 나가버렸다.

놓고 간 냅킨에는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달라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애도 아니고 쿠폰을..."

그 뒤로 몇 명 더 손님이 왔고 나는 능숙하게 대처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후가 되고 나서야 가게로 찾아온 익숙한 얼굴이 나를 보고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에리아 무령님."

"그러네요. 유레크로스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 기억이 없는 것 같아 좀 어색하네요.

반갑습니다. 류 해백씨. 이전의 아버님 일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는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하하... 네, 그렇죠. 괜찮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네, 저야 뭐. 유레크로스의 재건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도 유레크로스를 떠났기 때문에 뭐라고 알려드리기가 좀 뭐하네요.

저도 아버지의 유품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돌아봤습니다.

정말 이리야스 산맥을 따라서 걷기도 했고, 서지스와 콜린에도 다녀왔죠.

그리고 안카 숲을 들렀다가 이곳까지 올라온 거에요."

"안카 숲을 다녀 오셨다고요?"

"네. 환각이 상당한 장소였기에 눈을 감고 감각에만 의존했어요."

"그게 돼요?"

"되던데요? 하하... 중간부터 숨이 턱 막히기에 그 구간에서는 진땀뺐어요.

눈을 감고 달리자니 발에 뭐가 걸리겠고, 결국 의지가 나약해서 눈을 떠버렸지 뭡니까.

주변 환경을 배제하고 감으로만 달린다고 달렸는데 어떻게 같은 자리를 계속 빙빙 도는 겁니다.

정말 스트레스가 상당했어요. 보세요 머리 빠진거."

"그걸 어떻게 탈출하신거죠?"

"뭘 어떻게 탈출했긴요. 그냥 돌아 나왔습니다.

거길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 지날 것 같지가 않더라구요.

서지스에서 배 타고 해로로 미리타엔에 들어왔어요."

"아, 결국 해로로 오셨구나. 그럼 정말 안카숲을 지나 오신게 아니라 들렀다가 오신거네요?"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쉽게 할만한 경험은 아니니까요."

"알 것 같네요. 그래서 여기는 어떻게 오셨나요?"

"아, 혹시 이전에 교관으로 일하셨을 당시 잠깐 가르치셨던 병사들을 기억하십니까?"

"병사라면 마도병으로 훈련될 예정이던?"

"네. 조니를 비롯해서 그 친구들중 생존자를 추려서 별도로 부대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유레크로스는 기병, 포병 따위 병과를 만들기 어려우니까요.

정말 마도병의 가치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교국의 행보를 보면 언제 테르도어 대성당을 견제하기 위해

유레크로스에 군을 파견할지 모릅니다.

성마도부대를 이겨낼만한 병력은 현재 유레크로스에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게 다시 교관을 맡아달라는 건가요?"

"그게 베스트긴 하지만 저희도 염치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건 제가 할 생각입니다.

저에게 마력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를 영기술사로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사례는 됐어요. 하지만 마도병을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건 아니에요.

적성에 맞지 않으면 안될거고, 여러 모로 조건이 까다롭답니다."

"그건 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알려드릴 사항도 몇 가지 있었고요."

"사항이요?"

"유레크로스 군수창고에서 관리하던 권총이 10정 사라졌습니다.

어떤 의미인지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설마...?"

"네, 그 설마입니다. 범인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고요."

"나르딕의 잔당이나 카르고르인가요?"

"아니요, 그 자는 정말 죽지 못해 사는 폐인이니까요.

아마 범인은 무령님의 후임으로 온 교관일 겁니다."

"화이트였나요? 이름이 독특해서 기억이 나네요."

"네, 아마 그 자일 겁니다. CCTV에 찍혀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겠네요. 뭐 드시겠어요?"

"커피로 부탁드리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에스테리카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는데 이야기가 또 길어질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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