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 사건과 정보
* * *
"CCTV랄게 있었나요?"
"네, 군수창고는 어떻게든 파손시킨 모양이지만 거리에 있는 것들 까지는 없애지 못하니까요.
더욱이 뒷골목에서 일어난 사태와 엮여서 증언이 꽤나 수월해졌거든요."
"증언이 수월해졌다?"
"카르고르 사건 기억하시나요?"
"아, 그 마부를 간살하고 모친을 죽였다는...?"
"사건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조사를 다시 해봤습니다.
우선 살해의 순서입니다. 일반적으로 성범죄가 발각되었을 경우에는
피해자와 범인이 같은 장소에 있고, 목격자가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둘을 마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고 대개 그런 경우라고 한다면
당연히 마부가 카르고르에게 더 가까울 겁니다.
왜 마부는 카르고르가 모친을 살해하고 나서 시간이 흐르고 죽은 것일까요?
그게 제 첫 의문이었습니다."
나는 커피를 내려 그에게 건네주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로, 마차가 수상합니다. 부자연스러운 위치, 그것도 골목 구석까지 쳐박힌 마차.
엠페레스로 떠날 배표를 구매한 사람들이 그 골목까지 들어가야 할 이유가 뭐였겠습니까.
그리고, 범행 후에 도주할 마차라는 수단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
그 말들을 죽일 이유가 과연 있었을까요?
마차를 몰줄 모른다고 해도 부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차라리 말 한마리라도 살려두었다가 고삐를 풀어 타고 도망치는 것이 자연스럽죠.
그는 견습이기는 했지만 군인이었으니까요. 기마정도야 가능했을 겁니다."
"사실 저도 짐작가는 부분이 없는건 아니에요."
"그리고 왜 피해자의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있었는가가 요점입니다.
조사 결과 얼굴을 뭉갠 것은 카르고르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른 제3자가 개입해 얼굴을 뭉갰다는 말이 되는 것이죠.
총리부인께서는 먼저 숨이 끊어지신 상태였고, 카르고르는 얼굴을 뭉갤 도구나 흉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상한 부분이 하나 생기죠. 바로 목격자입니다.
목격자는 카르고르가 모친을 죽이고 마부를 범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근처 거리의 골목이라는 골목의 CCTV는 모조리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근처에서 5분 거리에 떨어진 외진 골목을 촬영한 영상을 입수했습니다.
화이트 교관과 모르는 인물이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었죠."
"모르는 인물?"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대화까지는 녹음되지 않았습니다만 어딘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전쟁이 있기 얼마 전에 나타나 교관의 자리를 꿰차고, 사건이 있는 주변에 나타나서,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는 게눈 감추듯 사라져버린 자들입니다.
마력을 다룰 줄 알고 유레크로스의 교관을 할 정도로
어느정도 근력에도 자신이 있는 인물이라는 의미겠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커피를 한번 더 마셨다.
그리고는 살짝 지치는 듯 고개를 떨구고는 주머니에서 사진을 네 장 꺼냈다.
"이게 그 CCTV의 사진입니다. 보시면 화이트 교관과 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분명히 수상해보이지 않습니까?"
"수상하다고 하면 그렇기야 한데 이게 왜요?"
"카르고르 사건의 목격자는 근처에 수상한 인물은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또한 카르고르가 마력을 이용해 얼굴을 뭉개는 것을 보았다고도 말했고요.
그러나 의아하게도 지금까지도 유레크로스 군에서는 목격자를 일차 취조한 이래로
목격자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격자도 사라지고, 영상에 찍힌 교관도 사라지고,
의아한 제삼자가 나와있는데 의문도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다음 사진을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가 다음 사진을 내밀었다.
화질이 상당히 흐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했다.
화이트라는 자가 벽에 끼어있는 것 같았다.
"이게 네 번째 의문입니다. 아무리 화질이 흐리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벽에 물리적으로
끼일 수는 없는 겁니다. 아시겠지만요. 이건 모종의 마력인지, 혹은 조작입니다.
게다가 대체 화이트 교관이 무슨 목적으로 저 벽을 넘은건지 저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부분, 보이십니까? 작게 보이는 이 주머니에 삐쳐나온 건, 권총입니다.
아마 무령님께서 만드셔서 유레크로스에 선물하신 10자루의 권총이겠죠."
내가 침묵하면 그는 다음 사진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사진입니다."
거기에는 조니와 카르고르가 찍혀 있었는데, 조니는 조금 더 성장한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고,
카르고르는 창백한 얼굴로 삶의 의지를 잃은 것 같아 보였다.
"상당히 대조적이네요."
"대조적이라, 그럴겁니다.
조니는 아버지인 존 훈련대장님께 인정받아 정식으로 기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카르고르는 실종되기 하루 전날의 모습이죠."
"실종되기 하루 전이라고요?"
"네, 카르고르는 현재 실종된 상태입니다.
유레크로스 거리를 전전하며 숨어다니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기야 했지만
현재에 와서는 유레크로스를 떴다고 판단하는 인물이 더 많은 편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사람이 죽었는데,
피해자의 신원은 확인이 되질 않고, 목격자는 사라졌으며,
범인으로 지목된 유력한 용의자는 실종상태입니다. 게다가 새로운 용의자는 영기술사입니다.
벽을 넘는다는데, 해결된게 아무 것도 없는 이 사건이 판결이 내려져 해결된 사건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럼 네 번째 사진은 뭐죠? 가져오셨잖아요."
"아, 이건 저도 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무언가 불길하고 수상한 느낌이 들어서
그냥 한번 찍어 보았더랬습니다. 왜인지는 저도 모르지만 그 있잖습니까?
이게 그 순간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의 감 말입니다."
그가 내게 건넨 네 번째 사진은 분명한 위화감이 있었다.
화이트가 혼자 선 사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서 있는데 눈만은 찍는 시점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마치 자기가 찍힐 것을 알고 있는 것같은 느낌 말이다.
어딘가 어색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분명 눈은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데 얼굴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이 사진에 담긴 비밀이 또 있습니다."
"네?"
"이 사진에 찍힌 장소. 어디일 것 같습니까?"
"글ㅆ... 이거 미리타엔이잖아요?"
"네, 더 정확하게는 이 앞 삼거리죠.
이 작은 가게를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 카메라를 발견하고 웃은 거고요."
"그렇다는 이야기는 이건 CCTV가 아니라..."
"네, 제가 찍었습니다."
"언제죠?"
"4일 전입니다. 가게 문은 닫혀있었죠.
혹시 이 사진 속에 위화감이라던가 수상한 부분, 더는 없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그게 그렇게 바로 보일리가... 있네요.
이 사진 뒤편에 작게 찍힌 이거 보이시나요?"
"이건... 창문인가요?"
"아뇨, 이 거리에 저런 창문은 없습니다.
저건 창문이 아니라 거울이에요."
"그렇지만 누가 거울을 집 밖 외벽에 붙인단 말입니까?"
"있어요. 그런 여자가 한명."
또 그 여자다. 셰릴 린.
그리고 아마 이 여자가 여기 찍혔다는 이야기는 분명 이근처에 다른 무언가가 찍혔을 것이다.
"찾았다."
"또 뭘 찾으신 겁니까 에리아씨."
"여기 모퉁이 사이에서 삐져나온 이건 뭘로 보이세요?"
"공인가요?"
"공같이 생기기는 했죠. 얼핏 보면 구분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달라요. 이 색과 재질은 족쇄추입니다.
아주 구시대적인 족쇄죠."
"미리타엔에서는 아직도 족쇄같은걸 사용합니까?"
"귀족들의 취향에 따라서 쓰는 곳도 있다고는 하던데 대중적이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 족쇄는 아마 제가 아는 사람이 쓰는 물건일겁니다.
이름이 해백이라고 하셨나요?
해백씨, 이 사건에서 손을 떼기를 추천드릴게요.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거에요."
"이미 어느 정도는 각오 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유레크로스를 떠난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유레크로스의 군부대의 교관을 다시 찾는 중이었기 때문에
에리아씨께 부탁을 드린 겁니다."
"하지만 해백씨가 이 사건을 그렇게까지 조사하실 이유가 있을까요?"
"빈포드 락크루거.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정말 존경했었고요."
"아... 그 분의 아들이라고 하셨었나요..."
"아버지는 유레크로스와 미리타엔의 전쟁중에 돌아가셨어요.
물론 알고 계시겠죠. 단언컨대 전쟁은 분명 피상적으로는 나르딕이 원인입니다.
하지만 그 전쟁을 뒤에서 종용한 자들이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군요.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자세로 이 사건을 다루는지 아십니까?
분명 저는 처음에 에리아님께서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아시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미리타엔에 넘어왔지만 이제보니 에리아님을 둘러싸고 사건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본의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그래서 전해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범인도 누군지 알고 있는데 잡을 수가 없네요.
대체 뭘 꾸미는 건지도 전혀 모르겠고요."
"그러십니까. 혹시 괜찮으시면 누구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뇨,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 사람이 전쟁을 종용했다는 확증은 없으니까요.
추측이잖아요."
"저도 그 정도 사리 분별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선 카르고르 사건은 해결을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범인은 정해놓지 않으셨나요? 목격자라거나 카르고르를 수색하는 법도 있을텐데요.
너무 성급한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네요."
"후... 너무 흥분했군요. 확실히 그 말 대로입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한 잔 따라왔다.
"오늘 저를 만나자고 하신 건 이걸 전해주시려고 하신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부가적인 이유가 몇 가지 더 있기야 합니다."
"뭐죠?"
"빈포드 백작, 그러니까 제 아버지가 어떻게 저를 기르시게 된 거고,
제 이름은 왜 류해백인지... 혹시 여정중에 아는 사람을 만나시거든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는 사람이 나타난다면...요..."
"감사합니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하고 품에서 작은 공과 같은 것을 꺼냈다.
"특제 신호기입니다. 필요하실때 꾹 누르시면 제가 여기로 오겠습니다.
일회용이니 신중하게 사용해 주십시오."
"여기로 오신다고요?"
"네. 제가 알 수 있는건 신호기로 부터 호출이 있었다는 사실 정도라서요.
어디서 신호기를 울린 건지는 모릅니다."
"그렇군요."
"제 친구가 만들어 준 물건입니다.
그러면 이만 저는 가 보지요."
그렇게 말하고 류해백은 가게를 나갔다.
나는 그제서야 내게 정보들이 모여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눈을 돌리려 해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사건은 진행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무언가라도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건에 먹혀지고 말 것이다.
"후우..."
가방에서 잘 접힌 종이쪽지를 꺼내들었다.
이전에 엔시온 플라이트에게 받은 정보상단과의 접선 방법이 적힌 종이였다.
나는 가볍게 종이를 펴 보았다.
[우선 여기 적힌 연락처로 연락하십시오.]
그리고 적힌 전화번호 하나.
[상대가 무슨 말을 하던, 절대 대답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상대가 전화를 끊으면 같은 번호로 재 연락 하십시오.
두 번째 연락을 하고 나면 아마 다른 사람이 받을 겁니다.
역시 아무 말씀 마십시오. 그리고 나서 상대가 전화를 끊으면 다시 연락하십시오.
세 번째로 연락을 하시게 되어도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분명 새로운 전화번호를 일러줄 겁니다. 거기로 전화하십시오.
이게 몇 번인가 반복될 겁니다. 절대로 먼저 말을 꺼내지 마십시오.
말을 꺼내도 되는 것은, 전화를 받은 상대가 무령님의 이름을 먼저 꺼냈을 때 뿐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면대면으로 만나자고 날짜나 장소를 알려주어도
절대 거기서 안심하고 전화를 끊으시면 안됩니다.
그건 거짓말이니까요. 반드시 상대가 전화를 건 장소로 찾아올 겁니다.]
"까다롭네."
정보를 사고 파는 일이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치밀하게 대비하는 줄은 몰랐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수화음이 들리고 이윽고 달깍 소리와 함께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전화 받았습니다. 화연 출판사입니다."
침묵으로 일관했다. 침 삼키는 소리가 행여 섞여들어갈까 걱정하면서.
"여보세요? 누구세요?"
"....."
"여보세요? 야! 너 누구야! 장난전화를 걸어 짜증나게 바빠죽겠구만!"
남자는 화가 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괜히 전화가 끊기고 나서도 찜찜하다.
이게 맞나? 나는 정말 장난전화를 걸어버린게 아닐까?
무거운 느낌이 들었지만 여기서 물릴 수도 없었다.
나는 다시 같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