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180화 (180/303)

〈 180화 〉 작은 날개의 비밀

* * *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내 질문에 발레리아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화연 출판사는 분명히 단지 출판사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엔시온 대공께서 무령님께 그 정보상의 이야기를 전하셨다면 말이지요."

"왜?"

"엔시온 대공께서는 학계에서도 상당히 망명높으신 학자이시기도 합니다.

혹시 푸른 별의 연구라고 들어는 보셨습니까?"

"푸른 별의 연구?"

"네. 푸른 별의 연구라고 약 12년 전에 논문으로 나온 연구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마력이 제거된 곳이 과연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마력이 배제된 세상이라고?"

"네, 물론 현대에 들어서는 영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져오는 마법이

그 기원을 마력에 두고 있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현대에들어서는 마력이라는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은 아시지요?

[그럼 왜 이전에 비해서 마력량 자체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마법을 다루는 이들이 적어졌는가.]

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분명 마력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자연상태로 존재하는 마력이 늘어야 하는게 아닌가.

라고 의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어?"

확실히 한번도 의문을 가진적 없던 이야기였다.

아니, 굳이 떠오른 의문을 연결하지 않고 내버려둔 이야기이기도 했다.

"마력 불신자들에게는 혹평을 받았지만 결국 학회에서는 이 논문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건 이레귤러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레귤러?"

"세계에 정해진 마력의 총량은 정해져있고, 이게 소실되지 않고 순환한다는 구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이 세계 내에서 사용되는 마력은 형태를 바꾸어 다른 세계,

혹은 다른 차원에 불규칙적으로 밀집되어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이론을 제시한 겁니다.

그리고 차원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마력이 과포화 상태인 장소가 있고, 그곳을 푸른 별이라고 제시했죠."

마력의 근간은 기록의 접근성을 차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차원과 세계가 기록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면 없을 이야기도 아니다.

"확실히 흥미로운 이론이기는 한데, 증거는?"

"이 세계 내에서도 존재하는 마력의 불균형성을 근거로 하는 가설입니다.

확실하게 이렇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무령님께서도 마력을 다루는데 능숙하신 분이시니 이해하지 않으십니까?

일반인의 수백, 수천명보다 더 막대한 양의 마력을 다루실 수 있으시니 이해가 어렵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삐삐 역시도 인간이라는 종족이나, 기타 마력에 무지한 종족과 비교해 마력 자체를 다루는데 익숙하지요.

이는 단순히 종족간의 마력 분균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를 토대로 하는 새로운 이론이 되는 것이지요.

마력 그 자체가 불균형한 밀집, 포화 상태를 보이는 것이라는 의미죠."

"그래서 이 이야기가 왜 나온건데?"

"엔시온 대공은 이 논문을 화연 출판사를 통해 냈습니다.

화연 출판사는 학회에서 주로 이용하는 논문을 비롯한 학술자료를 내는 출판사라고 말씀드렸지요?

학회 출신의 사람이 소개한 정보상이 학회와 유착관계가 있는 출판사를 위장신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정보를 관리하고 통제하려면 기본적으로 정보처리나 분류에 능한 고학력자의 집단이겠지요.

더욱이 마력의 사용에 익숙한."

"확실히...그럼 네 말은 정보상단의 우두머리는 분명히..."

"네, 학회 출신이겠지요."

머리가 당겨서 지쳤다.

가방을 열어 내려둔 커피를 마시려다가 어느새 다 마신 커피를 발견했다.

"발레리아, 설거지 좀 해줄래?"

"네, 그럴게요."

내가 건넨 보온병을 받아들고 그녀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설거지 정도야 내가 해도 되지만 굳이 그녀를 시킨 것은

내가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상단이 내게 거짓말을 할 가능성은 없나?"

내가 전화를 걸었을 당시 화연 출판사라며 극구 자신들의 존재를 잡아떼는 것은

테스트라고 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늘 나에게 진실만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말하지 않고, 계약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에서는

자유롭게 상대를 속일 수 있다는 조항이 의미하는 것은

내가 하는 질문 한번 한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전처럼 아예 마력을 분석해 생각을 읽어도 좋겠지만,

보는 눈이 많으면 불가능한 방식이기도 하고,

말단을 열어보는 것과 중직에 앉은 사람을 열어보는 것은 다르다.

나무의 잔가지를 쳐내는 것과 밑동을 찍어내는 것은 다르니까.

마법식의 작은 부분이라도 잘못 건드린다고 하면 바로 회로 전체가 틀어지는

경우도 없다고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과연 그들이 솔직히 대답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보온병 아래 깔려있던 작은 병을 발견한건 그 때였다.

하나는 내가 직접 플라스크에 담아온 순수의 폭포의 물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클리나 프리스트노브가 내게 넘겨준 순수의 폭포수였다.

이걸 보니 그제서야 연구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마친 지금이 또 연구하기에 최적기라는 느낌도 들었다.

순수의 폭포의 물은 진실을 드러낸다고 재클리나가 말했지.

미리타엔에서 지내는 동안 장비가 있을때 연구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까 같은게 두 개네."

나는 두 병을 집어 방에 두고 연구를 시작했다.

폭포의 물을 조사하면 분명 천신이나 그에 준하는 비밀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엘프들의 문화나 종족적 특징을 이해하면 미리타엔에서 추진중인 포섭계획도 수월하리라 생각했다.

단순히 물로 뭘 그런 거창한 것을 알아내겠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물에 섞여든 것이 단순히 마운틴 엘프들만의 마력이 아니라고 한다면 오랜 시간 통제된 폭포에서

그 주인은 한정된 인물로 좁혀지게 될 것이다.

또한 물의 성분을 조사했을때도 일반적인 물과의 차이점이 존재할 수 있다.

물이 든 플라스크를 열면 익숙한 물냄새가 났다.

마운틴엘프의 마력 사이로 희끗하게 느껴지는 다른 마력이라고 해봐야

내가 몸을 담갔다는 증명 정도만 겨우 될 정도였고,

무슨 마력인지 특정하지도 못할 정도의 옅은 마력만이 그 흔적을 조금 남기고 있었다.

"물 관리가 거의 안됐네."

나는 투덜대며 다음 물을 열었다.

재클리나가 내게 준 물이었다.

물병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산뜻한 감각은 내가 방금 전까지 느꼈던 것과는 다른 물이었다.

조금 덜어 입을 대면 탄산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청량함이 있었다.

"어...?"

이거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물을 따로 분류해서 분할했다.

그리고 다시 마력을 분석했다.

내 마력을 밀어내며 입지를 공고히하는 마력은 이제껏 보았던 것과는 달랐다.

순수한 마력. 그것은 곧 다른 마력에 금방 물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깨끗한 물에 물감을 풀면 금방 원래의 투명한 색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오히려 물감이 섞이는 부분을 밀어내며 투명함을 유지하는 물이 있다면

당연히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이게 뭐지...?"

"삐이잇!!"

어느새 책을 읽던 삐삐가 달려와서는 연구중이던 물을 탁 쳐서 떨궜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물을 마셨다.

"삐삐야! 정말 놀랐잖아! 그거 얼마 없는 물인데!"

"삐삐꺼!"

삐삐는 삐삐꺼라는 말을 하고는 쪼르르 물병을 하나 더 집어 들어가버렸다.

물은 이제 처음 들어있던 양의 3분의 1정도 남았다.

"아, 재클리나가 그거 귀한거랬는데... 거짓을 드러내는 힘이 있다고...

지금은 변질된 순수의 폭포에는 그런 힘이 없단 말이야!"

스스로 말하다가 멈칫했다.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기시감 때문이었다.

[마력은 비늘을 통해 흡수되고 날개를 통해 관리된다.

정확히는 날개와 이어진 뼈와 장기를 이른다.]

[창공의 전령께서 마력을 베푸시고, 진실을 가려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마력을 다루고 위협과 혼란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 마운틴 엘프들이 했던 말이다.

마운틴 엘프들의 말, 거짓을 가리는 폭포수, 삐삐의 행동.

그리고 천각룡의 비늘과 날개.

"이어졌다..."

천신은 천각룡 그 자체였다.

거짓을 가리는 폭포수. 마운틴엘프들의 마력이 잠식되기 전의 폭포는

천신이 목욕을 하는 장소라고 했다.

그럼 분명 천신의 마력이 담겨 있어야 한다.

천각룡의 비늘은 마력을 흡수하고, 경도가 높아 공격을 흘려보낸다고 했다.

그게 체내 마력이 비늘을 강화하는 형태라면 말이 된다.

체내 마력회로를 흐르는 것이 순수한 마력이기 때문에

어떤 마력적성이든 흡수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너무나도 순수한 마력이 몸을 뒤덮었기 때문에

다른 마력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밀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한다면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폭포라는건, 천각룡의 순수한 마력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고, 내가 만든 순수함의 포션에 삐삐가 반응했던 것은

자신의 마력과 상응하는 성질을 조우했기 때문에 몰랐던 적성이 개화한 것이겠지.

그리고 지금 그 물을 마주했으니, 본인의 체내에 흐르는 마력과 같은 마력적성과

성분을 마주한 삐삐는 폭포수가 자신의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자기 몸과 똑같은 감각을 마주했으니까.

즉, 순수의 폭포에 담긴 마력은

순수한 [마력]이 아니라, [순수함의] 마력이었다.

그것이 천각룡의 마력이기 때문에 뿔이나 비늘이 손상되고 날개가 없는 천각룡은

마력을 다루지 못해 무리에서 배척당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미 마력의 순도를 조절할 기관이 없어 체내 마력회로가 변질될 테니까.

체내 마력을 언제든 순수한 형태로 돌릴 수 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성장기에 다양한 마력을 흡수하는 것으로 강해지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맞아들어간다.

마력적성이 맞지 않아 마력회로와 신체에 가해질 부담을 한순간에 없애버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천신이 천각룡을 데리고 다닌다는 말은...

폴리모프한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겠지...

"하여튼 엘프새끼들이 문제였네 결국."

그런 순수한 마력을 가진 숲 전체를 마운틴 엘프들의 마력으로 덮었으니

삐삐가 거부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연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클리나가 내게 준 물을 가지고 일어나 삐삐에게로 향했다.

"삐삐, 문 열어줄래?"

"마마?"

삐삐는 문을 조심스레 열어주고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표정에 살짝 겁을 먹은게 보인다. 오들오들 떨면서 고개는 숙이고

눈만 살짝 올려본다.

"삐삐꺼... 물..."

아무래도 물을 가져갔다는걸 혼내러 온 줄 아는 것 같았다.

"물이 삐삐꺼야?"

"삐삐꺼야..."

"그래, 그러면 삐삐 가져. 이것도 줄까?"

내가 폭포수를 내밀면 삐삐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삐삐 가져도 대?"

"응, 삐삐꺼 맞아."

준다니까 오히려 불안했는지 내 눈을 바라보다가 내가 삐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그제서야 안심한듯 내 손에 들린 물을 가져갔다.

"삐삐꺼!"

그렇게 말하면서 물을 꼴깍꼴깍 마셔대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나는 다른 적성의 마력을 다룰 때 체내의 마력을 다루지 않고 대기중의 마력에 즉석으로

적성을 부여하는 식으로 마법을 사용하곤 했다.

대장간에서 마카와 싸울때 특히 그런 면을 보이곤 했었는데,

삐삐를 보면서 마력 활용의 새로운 지표를 본 것 같았다.

앞으로 삐삐는 더 중요한 일을 맡게 될 테니까.

우선 그러기 위해서라도 빨리 삐삐에게 마력을 다루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폴리모프야 우연히 본능적으로 알아냈다지만 언제까지나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용들의 브레스는 결코 고차원의 마법이 아니다.

다만 체내에 축적된 엄청난 마력에 아주 간단한 용 특유의 마력적성을 섞어

전력으로 내지를 것 뿐인 마법의 일종이다.

더 간단히 설명하면, 강아지에게도 마력적성이 있다면 왕왕 우는 소리에 적은위력이나마

브레스가 섞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개 용은 성장하고도 그정도 마력을 다루는 편이다.

수천년을 산 용이나 겨우 발전된 마법을 사용하는 수준이다.

애초에 현 인류의 주소를 보면 그것도 대단한 수준이겠지만,

나는 우리 삐삐를 그렇게 만들 생각이 없다.

나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생각했다.

폴리모프가 완벽해지면 바로 뼈의 저택으로 출발하겠다고.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