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181화 (181/303)

〈 181화 〉 이단자와 배교자

* * *

다르말록의 숭배자들.

그들은 과거 미리타엔에서 분화된 이교도들이자, 아르간티아를 배척하는 이들이다.

현 체제를 붕괴시키고 혼란을 야기하며 그 여파로 다르말록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곧 다르말록의 신봉자를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전 세계에 3개 종파와 그 신자들이 암부에서 활동하며 혼란을 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활동이 대폭 늦춰진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몇 달 전부터 그들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미리타엔의 새 무령이라는 존재였고

다른 하나는 유능한 신도였던 C, 세실 린이 그 위업을 등지고 돌아선

배교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세실 린의 배신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또한 그러리라고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늘 세상을 저주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다르말록에게서 찾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웬만한 신도들과 사제들보다 그녀 혼자 꾸린 별동대가 더 많은 일을 해 왔기에

일각에서는 다르말록이 아니라 그녀를 보고 교단에 발을 들인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신보다 더 지지도가 높은 그녀는 지속적인 견제를 받으면서 교단에서 버텨야 했다.

그녀는 그랬기에 다르말록의 교단에 속한 이교도들을 동료라고 생각지 않았다.

오직 다르말록에 더 강하게 의지하게 되었고, 그랬기에 그녀는 갖은 외압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활동이 화려하고 열성적임에도 쉽게 지위를 높이지 못하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해버렸다.

처음으로 그녀가 다르말록이 아닌 누군가와 공감했고,

아픔을 나누며 그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휘하의 이교도를 모두 희생하며 맡았던 대장간에서의 테팔레스 화산 분화사건 이후,

그녀는 홀연히 교단과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교단에서는 당연히 그녀를 찾아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미 그녀에게 넘어가버린 위상거울은 쉽사리 그녀의 행방을 추적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교단은 왜 그녀가 다르말록을 등지게 되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고,

머지 않아 테팔레스 화산 분화 사건의 생존자에게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르말록께서 나타나셨었다고 했나?"

"네, 그러셨습니다. 붉은 인영으로 타오르시며 저희에게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단 말이지?"

"C께서 오랜 기간 독자적으로 연구하신 강신의 주술이었습니다.

신적인 존재와 영적인 존재를 드러내는 주술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게 가능하다니, 그럼 C는 다르말록신을 이미 만났다는 의미인가?"

"저희도 잘 모릅니다. 대장간 근처 분노의 사막에서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고

그 휘하에서 알하던 자들 역시 사라졌습니다."

교단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조사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확실해지는 배반의 증거에

결국 그들은 그녀를 배반자로 간주하고 말았다.

어째서 교단을 떠났는지에 대한 것은 묻지 않는다.

그저 이미 퍼진 교단의 신자들에게 한마디를 덧붙일 뿐이었다.

배신자를 죽이라는 말 뿐이었다.

그녀는 빈번히 도망쳤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교단에서 성과를 아예 올리지 못한 것은 또 아니었는데,

그녀가 도망치기 직전까지의 잠시간 즐기는 일상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

피드 린이 그것이었다.

"결국 그 여자도 어쩔 수 없군요."

"어머니가 되고 나서 교단을 은퇴한다니. 어찌보면 참으로 어리석군요."

"그런데 과연 그 아이가 누구의 자식이란 말입니까?"

"확실히 그 점은 의아하군요. 그렇다는 건, 우리가 그 아이를 다시 데리고 돌아올 수 있다면

그건 곧, 그녀를 다시 교단에 묶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그들은 바로 피드린을 얻어낼 방법을 강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를 찾아가 부탁하시지요."

"그라고 하면 그 놈 말입니까?"

"아니오, 이제는 그 딸년이 한다고 하더군요."

잠시간 회의가 중단되었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떠들던 이교도들은 잠시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결정된 사항에 교단의 사도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곧장 출발해 내해를 도는 배에 탑승했다.

교단의 사도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에 자연스레 녹아있기도 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저 인상이 좋은 남자일 뿐이었다.

교단은 말단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경우 이중적인 지위를 가진 이들이 많았으니까.

각 국의 고위직부터 엔터테이너, 여러 자리에 그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숨어들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엠페레스에 도착하면 그는 여유롭게 내려 한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시간이 지났을까, 안쪽에서 느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네요.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꽤 중요한 일이 있는 모양이지요?"

"피드 린이라는 자를 조사해주시오."

"피드 린? 들은 적이 없는 이름인데...."

"정보상이 들은 적이 없는 이름이라...?"

'확실히 흥미롭긴 하네요. 조사를 해 보고 알려드리지요.

그나저나 오랜만에찾아와서 의뢰라니, 참 답지 않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건가요?"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늘 말씀드리지만 정보상단을 적으로 돌리는 일은 하지 않는게 좋아요.

아무리 아버지가 하셨던 것보다 모자라다고 해도 저희의 규모는 최고수준이니까."

"아무렴, 일을 못하시면 규모라도 키워서라도 알아내셔야지."

"비꼬는 건가요?"

"아, 그게 또 그렇게 들렸나? 여튼 잘 부탁하지."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 대답했다.

"하여튼 교단도 피곤하겠군요. 그렇게 궁금한게 많아서야."

"교단에 대해서는 이제껏 그랬듯 발설하지 않는 것을 추천하는데."

"걱정마세요. 아시잖아요? 저희 상단은 늘 고객과 대등한 입장에서..."

"아, 그렇군. 그랬지. 계약사항 외에서는 출처를 묻지 않는다.

그리고 속아도 할 말이 없다. 였나? 그래, 그렇게 계속 잘 피해가 보라고."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전 언제든 바로 정보를 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런 고객이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가치 없는 정보일 뿐이죠."

"가치 없는 정보라..."

"맞잖아요? 정보의 가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원하는가에 우선을 두니까요.

결국 우리도 돈을 기준으로 움직이니까요. 얼마나 위협적이고 치명적인지,

얼마나 가깝고 중대한 정보인지는 그 다음 문제일 뿐이고요."

"어쩌다 그렇게 된거지? 역시 그가 죽은 이후부터인가?"

그녀의 눈꼬리가 가늘어진다.

"아, 이거 실례. 그렇지만 알고 있지 않나?

그는 죽을 때까지 너라는 여자를 싫어했다고."

"그런건 나도 알아요. 다만 저를 자극해서 좋을게 없을텐데요."

"뭐, 이게 내 안좋은 습관이라서. 이번 달 비밀 보지비는 얼마지?

서약서라도 하나 적는 걸로 하지."

"저를, 못 믿는 건가요?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그런 식으로 희롱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난 그냥 사전에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야."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네요.

"하던대로 하자고 하던대로."

"참... 소름끼치네요. 아직도 그 작은 마을에서 사는 건가요?"

"하하... 나도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사람좋은 병신이나 연기하고 사는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모를걸.

C, 그 여자를 뒤봐주겠다고 거기서 얼마나 굴렀는데 결국 한번 제대로 안지도 못했으니까."

"그만, 루나르씨. 그런 이야기나 듣자고 여기 계속 서 있는게 아니에요."

"왜, 그럼 말보다는 바로 본게임으로 들어가는 편인가?"

"닥쳐요. 난 그런 짓 안하니까."

"아, 그래. 꿈에 그리던 왕자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성문을 뚫을 사람이 없는거로군.

그렇다면 뭐 거미줄 쳐야지."

짝 소리가 나게 후려쳐진 손날.

고개가 돌아간 남자는 붉게 부어오른 뺨을 붙잡고 비릿하게 웃는다.

"그래, 여전하구만 그 따귀."

"이제 돌아가시죠."

"하아... 그래. 그러자고. 잘 있어."

정보상단은 그날 이후로 꽤나 열심히 피드 린을 조사했다.

그리고 아주 단편적인 정보만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게 세실 린의 아들이라는 점과, 세실린과 비교해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아보인다는 점.

그러나 최근 몇 주간의 정보. 그 이상의 정보를 어디서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 조차도.

정보상단에 의뢰는 했으나 유의미한 정보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정보상단에서는 이렇게 정보를 구하기 힘든 인물이 새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피드 린을 요주의 인물로서 관리하며 그와 관련된 정보를 비밀에 부쳤다.

다만 그를 조사할 때마다 세실 린의 위치는 알아낼 수 있었으므로 꾸준히 그걸 교단에 팔았다.

그래서 교단에서도 사람을 보내 세실 린의 거처를 불시에 급습하곤 했다.

그렇게 그 과정중에 많은 세실 린의 부하가 죽어나갔다.

결국 세실 린은 계획을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인원도 그녀 본인과 피드 린, 마침 해외에 나가있던 블랙과 화이트 뿐이었다.

그녀는 엠페레스로 복귀해야 했다. 그녀는 왜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조사해볼 필요가 있었고, 결국 마력을 원천차단하는 것으로

자신의 위치를 숨기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암시장을 독자적으로 조사하고 거기 숨어들기에 이르렀다.

천각룡의 비늘이라는 소재를 얻어 전설로 전해지는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마력을 차단할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성가시게 따라붙는 교단을 따돌릴 테니까.

하지만 예상 외로 웬 올빼미가 그걸 눈 앞에서 채가버렸다.

무리를 조금 더 하면 따라잡을 수는 있었지만, 그랬다간 더 중요한 서적을 구하지 못하게 될 거란 생각에

중간에 포기했다. 그리고 그녀는 눈 앞에서 원하던 상품을 모두 놓쳤다.

그리고 그 날은 그녀에게 최악의 날이었다.

자신을 안고있는 남자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지 걱정했고, 성급한 태도 때문에

위치가 또 노출되었음을 걱정해야 했고, 원하던 것을 하나도 갖지 못했음에 후회해야 했으며

적을 또 하나 늘렸음을 직시해야 했다. 계획은 더 멀어진 것 같았다.

결국 그녀는 피드 린에게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위로 받으며 그의 사랑을 증명해달라고

몇 번이나 침대 위에서 뒹굴었다.

그게 그녀에게 있어서는 진통제와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따라 나왔다가 죽어가는 부하들과 점차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서늘해지는 부하,

그리고 여전히 피드 린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하.

그녀가 원하던 행복을 위해 처절하게 기어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제서야 오르고 보니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막막했고

처음으로 자신이 무능함을 통감했다.

어쩌면 뒤로 퇴보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숨을 죽여 창가에 기대 울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그녀의 눈물이 마르고 나서 다르말록의 교단에서 회의가 열렸다.

아주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회의중, 누군가가 처음으로 째깍 소리를 들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새로운 신자님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여기 서 있는 카르고르 형제입니다.

부모를 잃고 홀로 서서 다르말록께 구원을 요청하는 분이십니다."

회의가 진행되고, 정해진 순서대로 예배가 시작된다.

기도를 드리고 조용히 피의 서약을 할 쯤이었을까,

째깍소리에 섞여 조용한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째깍대는 소리가 몇 번 더 반복되었을 무렵일까,

피의 서약식 사이로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날 내버려둬...라고 말해도 듣질 않아서... 직접 왔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울린다.

"C다!"

"배교자가 돌아왔다!"

소란으로 얼룩진 회장에서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틱 하고 들린 작은 소리.

그제야 바닥에 흥건히 흐른 피를 발견한 이단자들은 그 위로 새로운 피를 더할 뿐이었다.

"불...! 불이 붙었습니다!"

"입구가 불탄다!"

"경전에 옮겨붙었습니다!"

"조각은! 다르말록의 목조상은 무사한가!"

"이미 소실된 것 같습니다!"

"씨발!"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유유히 웃는 한 사람만이 조용히 벽에 놓인 거울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다음날, 신문에는 짤막한 기사가 하나 실렸다.

[엠페레스 서부 광지 지하에서 화재 발생. 사상자 다수.]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