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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85화 (185/303)

〈 185화 〉 학부모 면담

* * *

너무나 조용했고 또 싸늘했다.

"마마... 삐삐 무서..."

삐삐는 내 옆에 꼭 붙어 있었고, 상담소의 넉넉한 테이블에는

엔시온 대공이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고 표정을 정리하며 동시에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그... 이름이 삐삐라고 했나?"

엔시온이 먼저 삐삐에게 말을 걸었다.

"또 보네. 언니는 저번에 말했던 대로 엄마 친구란다."

"아줌마!"

순간 표정에 미소가 잠시 사라질 뻔 한 것을 목격했지만 엔시온은 침착하게

다시 웃음을 억지로 띄웠다.

삐삐가 말했던 눈은 안 웃는다는 말을 알 것 같았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되짚어보면 시작은 엔시온 대공이 가게로 보낸

작은 손편지였다. 삐삐에게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다는 내용과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찾아가고 싶은데 괜찮겠느냐는 내용.

그래도 알아서 잘 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불렀건만,

생각보다 더 무섭다.

"마마! 친구?"

삐삐가 나를 돌아보며 그렇게 물어보았다.

"엄마 친구...아마 맞을거야."

삐삐는 내 대답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엔시온을 바라보며 볼을 부풀렸다.

엔시온은 몰랐겠지만 순간 폴리모프가 부실해져서 등에 날개가 작게 툭 튀어나오는 탓에

내가 톡톡 두드려주면 다시 쏘옥 들어간다.

"친구아냐! 아줌마! 반짝반짝 안해!"

그 말에 엔시온도 당황해서 날 바라보며 되물었다.

"반짝...?"

"삐삐는 거짓말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대공님.

반짝반짝하지 않으면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발레리아가 정리해주면 그제서야 엔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시 말해주마. 나는 대공이란다. 이 나라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사람이지.

무령님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친구...는 아니구나. 직위의 차이가 있으니."

"삐이..."

삐삐가 그렇게 말하면 엔시온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이 아이는 어떤 생물인지요?"

"무슨 소리야?"

"대개 사람에게 삐삐라는 이름은 잘 붙이지 않습니다.

그건 애완동물 혹은 반려동물의 이름이라고 사려됩니다.

또한 이 아이가 말버릇처럼 말하는 삐이라는 말은 아마 울음소리겠지요.

폴리모프가 가능한 것으로 보아 영물일 터이고, 거짓과 참을 구별하는 것은

마력을 통한 작용이겠지요. 무령님께서는 남편또한 없으시니 자녀분일리 만무하고..."

"그게 중요해?"

"네..? 저는 단지 이 아이의 생태나 특성에 따른 먹이나 기타 준하는 물건을 선물하고자..."

"그래서 지금 삐삐가 내 딸이 아니다 그런건가?"

엔시온은 바로 내 표정을 보고 고개를 정중히 숙였다.

"실언을 한 모양입니다. 실례했습니다."

"그래, 다음번엔 이러지 않도록 조심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삐삐를 바라보았다.

삐삐는 나를 보고 있었다. 여지껏 삐삐 앞에서는 되도록 상냥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삐삐는 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마...?"

"응, 괜찮아 삐삐."

나는 삐삐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머리칼이 자연스레 손에 흐트러지면 삐삐는 간지러운건지 기분이 좋은지 까르르 웃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더니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것처럼

엔시온은 가지고 온 가방에서 작은 팔찌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삐삐에게 살짝 건네주었다.

"언니랑 화해하지 않을래 삐삐?"

"화해?"

"응, 언니가 예쁜거 줄게. 삐삐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만들어온 팔찌야."

가운데에 복숭아 씨앗같은 커다란 에메랄드가 박혀있었다.

팔찌는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에메랄드의 주변으로 촘촘하게 자수정이 박혔다.

"죠아! 삐삐 친구!"

삐삐는 엔시온이 꺼내든 팔찌를 받아서 나에게 물었다.

"마마, 이거 해죠."

나는 그 팔찌를 삐삐의 팔에 묶어주었다.

"마음에 들어?"

"죠아!"

"그럼 앞으로 엔시온 이모랑 친하게 지내는거야?"

"음... 죠아!"

발레리아는 삐삐가 웃는 사이에 조심스레 삐삐에게 말했다.

"삐삐, 대공님께 뭐라고 말해야하죠?"

삐삐는 엔시온에게 꼬박 배꼽인사를 했다.

"고마쯉니다."

"음, 천만에...별건 아니었다."

엔시온은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에 웃음을 참는것이 드러나 있었다.

이미 붉게 달아오른 뺨은 말할 것도 없었다.

"흠흠... 그렇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니 더 못줄 것도 없구나.

아끼는 것이지만, 이것도 가져도 좋아."

그렇게 말하며 엔시온은 작은 향수병을 내밀었다.

새 것도 아니었기에 무슨 의도였는가 싶었지만 그녀는 나름 주도적이었다.

"내가 애용하는 향수란다. 뭐... 내가 보고 싶을 때마다 향을 맡아도 되겠지."

그렇게 말하는 엔시온을 보고 웃음을 참는 발레리아는 조용히 사라졌다.

내게는 아직 청소가 부족한 곳이 있다고 했지만, 아마 본 목적은 웃음 참기 실패겠지.

"아, 그리고 삐삐."

"응?"

"나는 아줌마가 아니라, '언니'란다."

"반짝반짝 안해. 아줌마야."

"푸크흡...!"

나도 터졌다.

아니 이건 웃기잖아.

"무령님...!"

"삐...푸흡....삐삐야... 이모...이모라고 불러..."

"이모? 반네리 이모?"

"발레리아 이모는 발레리아 이모고, 이 이모는 엔시온 이모야."

"엔시니모?"

"응, 엔시온 이모라고 부르면 돼."

"아라떠!"

삐삐는 그렇게 말하면서 엔시온을 바라보는가 싶다가

폴짝 뛰어 책상 위에 올라가 말했다.

"이모 나쁜말 지지야!"

"그래... 안하도록 노력하마."

"마마가 나쁜말 지지래."

삐삐는 그렇게 말하고는 책상에서 내려와 방으로 들어간다.

"어디가?"

"반네리 이모 놀아져야대. 이모 안그러면 '침해'대."

"침해? 뭐가 침해된다는거야? 사생활?"

"마마는 그것도 몰라?"

"ㅁ...미안..."

삐삐한테 혼났다.

삐삐는 그렇게 말하고 발레리아가 들어간 방으로 쏙 들어간다.

문이 닫히기 전에 방심이 풀린 건지 폴리모프가 사르르 풀리며 노란 꼬리가 살랑거리는게

보였지만 엔시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애가 참 귀엽긴 한데 당돌해."

"참... 어머니를 많이 닮은 듯 싶사옵니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는데... 뭐랄까 왜 칭찬같지가 않을까..."

"당연히 칭찬이지요. 그나저나 정보상인과 연락은 하셨는지요?"

"어, 일단 연락 정도는. 말단이지만."

"긍정적이라고 보실 수 있겠군요. 연락에 성공하고 말고의 차이는 꽤 큽니다.

워낙에 까다롭고 깐깐한 자들이라서 꼬리말기는 귀신같이 잘합니다."

"너도 엮인건 아니고?"

"확언드리기는 어렵겠군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얻어내는지 저는 알 길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눈. 눈에 엮인 마력은 분명히 그녀가 원하던 그렇지 않던 그 중간에 끼어있었음을 의미했다.

"이용당한 거겠네 그럼. 너도 모르는걸 네가 자진해서 당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 결국 저도 엮여 있었군요. 그럼 기껏 제가 준비했던 수단이 그닥 그들에게

놀랍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하면 또 패배한 느낌이 든단 말입니다."

"그래서 풀어주잖아. 네 성격에 당하고는 못사는거 아니었어?"

"저를 그리 오래 보지 않으신 것 치고는 상당히 정확하다고 말씀 드릴 수 있겠군요.

저를 도구로 사용하려고 했다니 꽤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어느정도 놀아나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서 말인데, 화연 출판사는 뭐 하는 곳이야?"

"화연 출판사 말씀이십니까? 모처럼이고 하니 관심이 있으시면 제가 하루 정도 시간을 비워보지요.

학계에서 영향력이 꽤나 있다 싶은 이들은 모두 친분이 있기도 하니 괜찮을 겁니다."

"그럼 근 시일 내로 약속을 잡아줄 수 있을까?"

"그러시지요."

"아, 그리고 하나더. 학회 출신이거나 소속인 유명인이 누구 있는지 알려줘."

"학회는 그닥 흥미로운 곳이 아닙니다.

대다수가 연구에 집중하고 세간의 주목보다는 연구가 증명되는 것을 원하는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세사에서 나름 이름을 날린 사람이라면, 이리디나 교수라거나, 아니면 저 엔시온 대공.

혹은 멀로이 교수나 제인 박사, 리쿠르트 박사 정도겠군요."

"리쿠르트 박사?"

"아, 그는 독보적인 인물입니다. 독학연구의 권위자이지요.

실제로 만독불침의 영역을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다 라고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독학연구?"

"네, 사독부터 안티움, 화학성 독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독이나 마력 관련한 독에 관해서도

통달할 만큼 통달한 괴짜라고 합니다."

"재밌는 사람이네."

"재미라... 재미는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야?"

"그렇겠지요. 어떤 독에도 면역이 생기게 하기 위해서 어떤 독이든 만들어내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마력을 다루는데 한계가 있는 모양이기는 합니다."

"분명 엔시온 대공은 마력에 관련해서 연구했었지?"

"네. 그랬습니다."

그럼 물건이나 도구에 스며들어있는 마력의 재활용에 대한 연구는 해봤어?"

"예?"

"그게 정말 재밌는 연구인데. 아직 안해봤구나?

생각해보면 마법진도 그렇고, 마도구도 그렇고.

도구에 마법진을 그려넣으면 우리가 마력을 불어넣고,

그게 에너지로 변환되어 작동하는 식이지?

명확히 투입과 산출이 존재한단 말이야.

그러면 이 과정에서 투입량을 줄이고 산출량을 늘리는 효율성에 관해서는 연구가 당연히 있기 마련이야.

그 과정 중에서 증폭의 마력식이 발견되기도 한거고. 여기까지는 알지?"

"네. 알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그런데 단순히 투입과 증폭에 치중하면 안된단 말이지.

규칙이 있고 일정한 순서가 있으니까.

그러면 그 과정 중에서 우리가 사용한 마력의 재활용이 가능하다면 더 효율적으로 기관을 돌리지 않을까.

그런 부분에서 시작하는 연구거든. 여기서 분화한게 마법 해체식이고,

마법식의 효과를 순식간에 바꾸는 견제형 마법이야.

그래도 아직 투입과 산출에 따른 마력 작용은 모두 연구되지 않았다고들 하고.

뭐 워낙에 마력 자체가 완성이 불가능한 이론을 담은 학문이니까 그렇다지만."

"놀랐습니다. 그런 부분에서도 상당히 조예가 깊으시군요.

정식으로 학회에 가입하시는건..?"

"됐어. 너 애들 장난에 다 큰 어른이 껴서 놀면 그게 재밌겠어?"

"끄응..."

"아무튼 출판사 건은 잘 부탁하고, 삐삐랑 사이 좋게 지내.

이상한 말 좀 가르치지 말고. 진짜 혼나기 전에.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래, 더 뭐 하고 싶은 말 있어?"

"게비디 대공이나 에반제인 황제께서는 이곳에 들르셨는지요?"

"아니, 조만간 한번씩 만나야겠지.

네가 이전에 부탁했던 건에 대해서도 말이야."

"아...!"

"이번 기회에 우리아이들은 더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했으면 좋겠네.

자국민으로 편입할만한 종족이나 부족을 찾아내긴 해야 하겠지만.

플로라가 그 정도는 잘 해줄거고."

"그 말씀은...?"

"나는 기틀 정도만 닦겠다 이거지."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식사 하고 갈거야?"

"아뇨, 저도 집에서 식사를 해야 합니다. 기르는 동물들이 있어서..."

"너도?"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그렇게 울어대서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 그럼 잘 가고. 다음에 또 보자고."

나는 그녀를 배웅하고 등을 밀어주었다.

엔시온은 나가려다 말고 멈춰서 내게 묻는다.

"그 혹시 삐삐가 받고싶어하는 선물이 있다거나 한 것은 없습니까?"

"또 오겠다?"

"무령님의 따님이시라면 당연히 또 제 조카 아니겠습니까?

자주 들러 얼굴 도장은 찍어 두어야지요.

이제 막 친해졌는데 말이지요. 이 기회를 놓치기에는 아쉬우니까요."

"글쎄, 발레리아 말로는 가방이 가지고 싶다고 했다더라."

"가방이라... 알겠습니다. 혹시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고 하던가요?"

"몰라. 별로 그런 이야기를 안해서. 이따가 재워주러 갈때 꼭 물어봐야겠다."

"후후... 우선은 기억해 두겠습니다. 가방이라..."

엔시온은 삐삐와 친해질 거라는 생각에 들떠서인지 조금은 기뻐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엔시온이 저택에 돌아가서 집사에게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은 다음 질문이었다.

"집사, 그 혹시 아이를 낳으면 어떤가? 행복한가?

처음으로 아이를 끌어안는 감각은 어떠한가?

배우자가 집에서 기다리는 자네라면 알테지?"

그런 질문을 연거푸 쏟아내던 그녀는 덜컥 질문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아줌마... 아줌마라.... 결혼...해야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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