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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191화 (191/303)

〈 191화 〉 낡은 허파의 파괴자

* * *

삐삐는 고래에 올라탔다는 것을 상당히 기뻐했다.

물론 덕분에 고래가 잠수를 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내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고래의 크기를 계산해서 그 주변에 위압을 계속 뿜어냈다.

그렇게 방향을 유도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마력을 소모했다.

간만에 정말 마력이 쪽쪽 빨려나가는게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꽤나 한참을 유도하며 고래를 타고 나아갈 수 있던 근간에는

언젠가 다니엘씨에게 받았던 전자극도가 있었다.

"물꼬기!"

삐삐는 고래 등에 탄 채로 바다를 내려다보며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구경했는데,

그마저도 내가 위압으로 주변을 봉쇄한 탓에 꽤 거리가 있었음에도

물고기를 발견하고 상당히 들떠하는 모습을 보니 하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우리가 그럼에도 고래를 타고 엠페레스까지 가지 못한 이유는 사람들의 혼란 때문이었다.

텔레프란 대륙으로 이어지는 중간지점에서 고래를 보내주고 빙결 포션을 던져

순간적으로 바다를 얼려가며 달려야 했다.

발을 헛디디면 등에 업은 삐삐가 빠질테니 멈출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엠페레스의 부두나 항구로 도착하지 못했고, 엠페레스 서부의

넓은 갯벌에 도착했다. 하필 내릴 때 발이 미끄러져서 갯벌에 그대로 바지를 더럽혔다.

다행히 아프지는 않았지만 바지는 진흙으로 질척해졌고, 삐삐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신나게 웃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 길목에서는

아주 오래 전에 설치된 것 같은 낡은 쉼터가 있었다.

쉼터라고 거창하게 말은 했으나 아무리 돌아봐도 그 안에는 쉴만한 작은 벤치와

겨우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오는 작은 급수대 뿐이었다.

급수대에는 낡고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몇 십년 전 쯤의 날짜와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게 이 낡은 쉼터의 전부였다.

나는 그곳의 터를 조사하다가 아주 예전에는 이곳에 등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점점 기술이 좋아지면서 해류를 타고 엠페레스 내부까지 들어오는 선박이 많아지며

불시착하는 배들이 줄어들면서 이 곳은 점차 버려지게 되었다는 것 같다.

벤치에 적힌 엠페레스 서쪽 부두라는말로만 그 의미를 겨우 짐작했지만.

숨을 고르고 나서 다시 엠페레스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늙은 남자 하나가 갯벌위에서

나무 판자를 썰매 삼아 질질 끌고 다니며 그 위로 패각따위를 모으고 있었다.

"뭐야. 이 근방에서 꽤 오래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뭐, 반갑네. 그렇게 말은 해도 내가 뭘 해 주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아, 네... 안녕하세요."

늙은 남자는 이미 허리가 상당히 굽어 있었고, 머리는 겨우 옆머리만 앙상하게 남아있었으며,

팔에는 힘이 없는 듯 잔근육이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마른 뼈에 거죽만 들러붙어 있었다.

"이 갯벌은 이제 나 정도가 아니면 찾지 않는곳이 되었단 말이야.

네가 뭘 봤건간에, 내 존재는 다른 이에게 알리지 말아주면 좋겠군.

이 갯벌의 존재도 말이야. 난 이 갯벌이 오염되기를 바라지 않거든."

그렇게 말하며 그는 판자 위에서 적당히 조개 몇 개를 골라 내게 휙 던졌다.

"그 안에 진주가 있을거야. 내다 팔면 돈이 좀 되겠지.

나야 진주같은데에는 흥미가 없으니까 그걸 받고 날 모른 척 해줬으면 싶군."

나는 반신반의하며 그에게서 받은 조개를 하나씩 열어보았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하나씩 씨알 굵은 진주가 들어있었고,

삐삐가 흥미를 보이기에 진주는 삐삐에게 주었다.

"당신은 누구시기에 이런 곳에 계시죠?"

내 질문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

"뭐어야... 너 나를 알고 찾아온게 아니었구나?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아암... 내 이름 말이냐? 까먹었다.

오랫 동안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었거든."

그는 그렇게 말하고 이미 누런 이를 드러내며 이죽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판자 위로 몸을 얹어 발로 갯벌을 밀며 나아갔다.

위태로워 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헉헉대며 숨을 고르고서는 바르르 떨다가 그대로 엎어져 헉헉대는 노인은

판자 아래로 기껏 모은 조개들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른 채로 괴로워했다.

"마마... 할부지 머해?"

"글쎄..."

삐삐도 그 모습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는지 그렇게 물었다.

나야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크게 흥미는 들지 않아

그를 뒤로 하고 바로 발을 떼려고 했으나 삐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발을 떼려고 해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 노인에게 시선을 고정한채로

계속 내게 되물었다.

"마마, 할부지 머해?"

"엄마도 모르겠는데?"

"무러보자!"

"물어보자고? 왜?"

"반네리 이모가 그래떠. 모루는거 무러바야 마니 또또캐진대."

"그래... 알았어. 가끔씩은 스스로 흥미를 가지고 탐구하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겠지."

"근대 마마, 할부지 머하는고야?"

"글쎄? 잘 모른다니까? 왜?"

"아니, 반짝반짝 하는데 반짝반짝 아나자나."

"뭐?"

삐삐의 반짝반짝은 마력을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게된 내가 다시 노인을 바라보면

그제서야 노인의 마력회로가 심히 불안정하다는 것이 보였다.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마력회로는 12번 척추에서 한번 꺾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노인은 12번 척추에서 끊어져 있는 마력회로에서 마력이 질질 새고 있었고,

흐르지 못한 마력은 억지로 붙들어놓고 있었지만, 몸 밖으로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있었다.

노인의 등이 굽은 탓인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수준의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임에도 그는 내색하지 않고

나무 판자를 질질끌고 나아갈 뿐이었는데, 다시 보면 허리쪽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었다.

근육? 혹은 물혹? 잘은 몰라도 그 비대해진 허리가 억지로 하반신을 몸에 묶어두는 것 같았다.

나는 삐삐를 데리고 다시 노인의 곁으로 걸어갔다.

"저기요 영감님."

그는 그제서야 고개를 뒤로 돌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나를 보고 말했다.

"아, 헉...헉... 아직 안갔냐? 더 줄 건 없는데 말이야..."

"그런걸 바라고 온게 아니에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게 말하면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상하다고? 그래.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이런 사람은 요즘 세상에 잘 없을 테니까.

괜찮으니 그냥 날 마음껏 비웃고 동정한 뒤에 기분내키면 돌아가라고."

비릿한 미소에는 아까 없던 여유가 있었다.

나는 그의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느낌. 내 키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높이에서

날 올려다보던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단단하다. 노인의 갸날픈 몸에서 나올 수 없는 그 이상한 감각에

나는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는 누구인지. 왜 이 곳에서 갯벌을 기어다니고 있는건지.

무엇 하나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의아하기도 했다.

"아, 만지지 말라고. 아프니까. 오래 전에 끊어져 물이 들어찼다고 하더구만.

아주 단단할거야. 림프... 뭐가 어쩌고 하더구만. 빌어쳐먹을 돌팔이 새끼.

뭐 알아듣지도 못할 설명을 해놓고서 말이야..."

"할부지 나쁜 말 안대!"

내 등에 업혀있던 삐삐가 불쑥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폴리모프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나도 상당히 놀랐다.

노인은 삐삐의 등장에 당황하지 않고 삐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삐삐는 오히려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노인에게 겁을 느낀건지 다시 쏘옥 내 등 뒤로 숨어들었다.

"용인가?"

그는 길게 묻지 않았다.

"네. 용이에요."

"아직 어리구만. 건강하게 잘 컸어."

나는 그의 대답에서 확신했다.

이 노인은 일반적인 인물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고.

"당신은 누구죠?"

노인은 가만히 눈을 꿈뻑이다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서 앉았다.

나무 판자위에 겨우 걸터앉아서도 바들대고 있었다.

"모르면 궁금해하지 말어. 서로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가지는게 그닥 좋지 않을텐데.

세상에는 말이야, 관심을 따라 행동하다가 불필요한 꼴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불필요한 꼴이라..."

"클클클... 그래, 그런거야. 뭐 그래도 관심이 있다면 이야기 정도야 몇 마디 더 나눌 수는 있지.

아이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구만. 그 조개들 좀 주워달라고.

저쪽에 내 집이 있으니까 거기서 이야기하지."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판자 위로 조개들을 긁어모으고는 다시 질척한 땅을 밀어내고

미끄러져갔다.

그 뒤를 따라가며 조개를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하면 삐삐도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내게 졸라댔다.

"삐삐도! 삐삐도 주술래! 잘 주술수 이써!"

"너 더러워지면 씻어야 하는데?"

"갠차나!"

이미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신나서 내려와서는 조개를 주우면서 머드에 몸을 뒹군다.

머드의 감촉이 상당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뭐 삐삐야 씻기면 그만인긴 한데, 선물받은 옷도 함께 머드로 더럽혀지고 있다는게 참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삐삐를 안아들고 옷을 벗긴 후에 다시 내려주었다.

어차피 폴리모프를 한 것도 아니고 덩치 큰 도마뱀 정도라면 옷이 없는게 더 자연스러우니까.

그렇게 노인의 뒤를 따라가면 갯벌 끝자락쪽의 작은 백사장이 있는 곳에서 노인이 멈췄다.

그 위에는 거창한 것도 아니고 주변의 조악한 나뭇가지따위를 엮어 만든 집이 있었다.

물론 겨우 누울 정도의 자그만한 크기였다.

노인의 키에 맞춰진 거겠지.

"내 집이야. 들어올 수는 없을거고, 아이고... 난 허리가 아파서 좀 누울테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말해보라고."

"영감님이 누구신지 궁금하네요."

"내 이야길 들어서 뭐하겠나? 재미도 없는데."

"그냥 그럼 잡다한 이야기나 해 주세요. 사는 이야기라던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정도요."

"이런 곳이라.. 그것도 그렇기는 한데 말이야.

그래도 의식주는 해결이 된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말이지. 이 안에 모포도 있고 말이야.

여차하면 이 부직포를 집 위에 덮거든. 아주 힘든 작업이지 말이야.

그리고 식량은... 아, 그래. 조개 가져온거 어딨어?"

내가 조개를 주운 것을 내밀면 그는 그걸 그대로 바위에 내부쳐 깨뜨리고는

살만 발라 먹었다.

익히지 않아 다소 비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

마치 오랜 시간 이렇게 먹어와서 이젠 익숙한 것 같았다.

"음, 그래. 이곳에서는 이게 일상이야. 물에 씻어먹어도 되고."

"물은 어디 있죠?"

"저기 보이잖아. 바다."

"탈수가 올 텐데요."

"그런걸 가릴게 어디있나? 짭조름한 맛에 먹는거지.

그 왜 가끔 가보면 두족류따위도 있는데, 다들 저주받는다느니 불길하다느니 해서

그 놈들을 잘 먹질 않아. 그것도 상당히 쫀득하고 맛있는데."

"두족류요?"

"문어나 낙지 같은것 말이야."

그는 거짓말 같은걸 하는 기색은 없었다.

왜 이런 곳에서 그런 것을 잡아먹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물을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 같은 그의 표정이 자꾸 아른거렸다.

엠페레스에서도 동떨어져 아무도 그의 거주를 모를 것 같은 이 갯벌에서

그는 낡아 불어터진 나무판자에 의지해 살고 있었다.

"쿨럭 쿨럭...!"

"괜찮으세요?"

"그럼, 괜찮고 말고. 이 바닥을 기어다니는 인생을 살다보니까 말이야. 가끔 걸음이 느리면 조수차에 물도 마시고

뻘도 먹고 하는 법이라서 말이야. 아마 말을 못해서 그렇지 장기는 이미 진작에 죽었을거야.

그래서 난 스스로 생각했지. 낡은 허파의 파괴자라고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런 이름 하나 있는게 뭔가 있어보이지 않은가?

파괴할거라면 말이야. 아무도 피해가지 않도록 늙고 병든 몸의 낡은 허파 정도가 딱 적당하지.

안그러냐? 크하하하!!"

그는 그렇게말하고 조개 껍질을 나무집 뒤로 던졌다.

그 곳에는 아마 수년째 버렸을 조개 껍질들이 쌓여있었는데,

하나같이 바스라져 고운 모래가 되어 있었다.

"이 백사장은 말이야, 처음에는 그냥 땅이었어.

내가 조개를 주워먹고 주워먹고 주워먹다보니까 어느새 이렇게 되어 있었지."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랑스러운 듯이 낄낄댔다.

이야기의 진전은 하나도 없었는데도 나와 삐삐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노인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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