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탐색전
* * *
모건이 떠난 방에 앉아있으면 쥐포를 가져다 주었던 여성이 문을 두드리고 찾아와서 말했다.
"실례합니다. 혹시 이 방으로 제인 반 데어믹스 공작님을 모셔도 괜찮겠습니까?"
"네. 부탁드릴게요."
내 말에 그녀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뒤에 노파 하나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분명 나이가 상당해보이는 여자였다. 모건과 전화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 그와 동갑이거나 혹은 그보다 조금 나이가 어린 정도로 추정되는 연령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녀는 기품이 있었다.
그건 티들렌의 기품과는 다른 것이었는데,
티들렌이 올곧은 귀부인으로서의 기품을 보여주고 있었다면
그녀는 곧, 아름다운 여성으로서의 기품이었다.
늙었지만 결코 추하지 않고, 주름이 졌지만 그 미소에 아름다움이 배어있었다.
"날, 보고 싶다고 하셨다지요?"
"네. 과연 사람들 머리 위에서 노는게 누구인지 궁금했으니까요.
어디서 뵈었던가 했는데, 미술관에서 봤었더군요?"
"미술관이라... 네. 익숙한 장소였어요. 그런 이야기나 하려고 부르시지는 않았을텐데요.
아무튼 실례했군요, 제 소개를 하죠. 제인 반 데어믹스라고 해요.
반 가문의 가주를 맡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는 큰 의미도 없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내 요구 조건을 들어주세요.
더 엄밀히 말하면,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상당히... 뻔뻔하시네요. 요구 조건도 과감하시고.
그에 합당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으시면 따를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뭘 원하시는데요?"
"당신은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고 들었어요.
아무리 정보를 모은다고 한들 내게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죠.
에드먼드 브리깃을 살려줄 수 있나요?"
"사람을 살려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고,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제약이 많아요.
왜 그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거죠?"
"그건 아무래도 무령님께서 관여하실 부분은 아니지 않을까요?
뭐 거절하신다면야 협상을 더 이어갈 필요가 없겠네요."
"협상? 협상이라..."
나는 가만히 손을 모으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어딘가 나를 저 아래의 무언가로 보는 것 같았다.
"세상은 정보로 돌아갑니다. 기술도 물자도 정보를 기반으로 성장하죠.
예로부터 정보를 손에 쥔 자는 늘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니까요.
그 권리는 사람들을 정보로 묶을 수 있게 해주지요. 분류의 기준이 된다는 말이에요.
그 개인이 집단이 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사람들의 견제는 무의미해지기 시작하죠.
너나 없이 모두 집단에 끼어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테니까요.
정보의 부재로 이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소수여야 합니다.
그래야 정보의 불균형성이 가치를 형성하게 되니까요.
그건 그래요, 과거 연금술사들이 주장했던 등가교환의 법칙과 상통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확실히 정보는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자원으로서 활용되는 것이지만
자체만으로는 무의미해요. 정보를 독점하고 죽이는 것보다는 모두가 정보를 확인하고
유용한 대처를 통해 효율을 끌어낼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배치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효율 중시. 좋은 말이죠. 하지만, 그런걸 따질 거라면 귀족 자리는 내려 놓아야지 않을까요?
이해득실만 따져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비로소 그 정보의 활용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겁니다.
선택에 제약이 있는 자에게 정보란 상처에 뿌리는 소금과 같죠.
앞으로 3시간 뒤 이곳에 비가 내린다는 정보를 안다고 해도, 우산을 구입할 여유가 없는 사람은 비를 맞게 됩니다.
이 정보는 우산을 사거나, 비를 피할 수단이 있는 사람에게 한정해서 가치를 지니는 겁니다.
우산을 살 수 있어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는 유아가 있다고 하면, 그 우산이 필요가 있을까요?
홀짝 젖을 겁니다. 정보는 말이죠, 필요한 사람에게 올바른 형식으로 제공될때 가치가 있어요.
모두에게 공평한 양을 제공한다고 해서 과연 모두가 행복할까요?
우산을 사거나, 혹은 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거나, 나가지 않을 자유가 있는 사람이라야 말로
그 정보가 의미있다고 여겨질 텐데요. 정보의 적재적소라는건 그렇게 판단하는 거에요.
모두에게 공유해서 찾아가게 만드는게 아니라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전 그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소비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3시간 뒤에 이곳에 비가 내리게 된다는 정보를 제가 얻었다고 칠까요?
제가 사라지면 비가 오지 않나요? 아니죠? 이미 비가 내린다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전 남들보다 조금 먼저 알았던 것 뿐이에요. 저를 거치치 않고서도 누군가는 대비를 하고 우산을 사고 있겠죠.
그게 제가 모두에게 정보를 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유?"
"어떤 정보건 제 입을 통해 나간 정보는 출처가 생기기 때문이죠.
단순히 비가 온다더라 하는 정보는, 어떻게든 흘러갈 수 있습니다.
출처는 추측이 될 수도, 관절의 통증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그 사실을 이야기한 순간, 정보의 출처는 제가 됩니다.
틀리건 맞건 전혀 상관 없었던 정보가 그 순간 틀려서는 안되는 정보가 되는 겁니다.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 순간부터 그건 저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게 되니까요.
저는 정보를 다룰 뿐, 본질은 상인이에요. 이해하시겠어요?"
"네. 이해했어요. 모든걸 돈으로 보는 족속들과 말을 섞으려고 하는게 아니었는데.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죠?"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알죠.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수준보다는 확실히 많이요."
"후후후..."
나를 가지고 노는 것 같은 태도가 결코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보려고 했었다.
"죽일 생각인가요? 제가 죽는다고 이 거대한 시스템이 멈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난 이미 이 세상에 그리 큰 미련이 없는 사람이기도 해요.
말 그대로 자해를 제외한 모든 수단을 시험해봤죠.
미리타엔의 무령이 뭐가 다른지 보여주실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그냥 강압적으로 날 깔아뭉갤 수 있나요?"
나는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멈칫 당황하는 그 순간을 노리면서.
그리고 짧은 심호흡 후에 느껴지는 짧은 찰나의 마력.
그건 내게 날아온 그녀의 비장의 수단이었음과 동시에
역으로 내가 그녀를 칠 수 있게 만든 열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 눈을 다시 받아들이는 그 순간에
나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뭐...뭘... 한거죠...?"
"글쎄요. 내가 뭘 한걸까요?"
멍청하게 대화나 나눌 시간이 없었을텐데.
조금씩 버거워지는 것은 내가 아니다.
상대의 수단이 병렬의식군체로 인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나무를 쳐낼때, 잔가지를 아무리 쳐내봐야 나무에 큰 피해를 줄 수 없다지만,
그 밑동을 쳐낸다면 결국 천천히 말라죽는건 시간문제에 불과할 것이다.
더욱이 수많은 인원들에게 나누어진 정보들과 지식들을 혼자 관리하지 못하고
사고력과 계산 능력 모두를 분담해 처리하던 것마저도 불가능하게 되면
뇌에 가해지는 부담은 상당해진다.
"내가 확실히 바보같긴 했네요. 그래, 소수만 이득을 취하는 구조 좋죠.
내가 언제부터 남들 걱정을 그렇게 해주고 다녔을까.
등 따뜻하고 배 부르면서 그럴 여유가 생겼었나봐.
이젠 하다하다 이런 같잖은 마법 하나에 의지하는 여자한테 놀아나다니."
그녀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못하면 분명 그 정보량을 수용하지 못하고 뇌가 타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
그녀는 꽤나 오래 버티고 있었다.
"끄으으.... 하아.... 하아...."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내 그녀의 코에서 주륵 피가 흘러나왔다.
슬슬 감당하기 버거워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였다.
지금 여기서 제인이 죽어도 필요한 정보를 꺼내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미 그녀의 마법에 끼어드는 일은 거의 다 됐으니까.
그러나 굳이 그러지 않은 이유는 그녀에게 빚을 지워두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녀의 사고에 간섭하던 마력의 방해를 풀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헉헉대며 화장지를 거칠게 뽑아 코에 가져다 대고 나를 노려보았다.
"헉... 헉...."
"협상은 급이 맞는 사람들 하고나 하시고. 다시 물어볼게요.
마녀를 상대로 어떻게 마법으로 장난을 칠 생각을 다 하셨나 몰라.
아직도 내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나요?"
"모건....대체 무슨 짓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빠드득 이를 갈았다.
자존심이 상당히 강한 타입 같았다.
"차라리 여기서 날 죽여요."
"그럴 수는 없죠. 애가 보고 있는데."
"애...?"
그제서야 그녀는 다른 사람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내 뒤에서 꼼지락 거리는 작은 움직임을 발견하고 허탈하게 웃어보인다.
"그거였군요. 일주일씩이나 틀어박힌 당신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는."
삐삐는 내 뒤에서 쥐포만 오물오물 씹다가 드디어 다시 쏘옥 튀어나와서 말했다.
"지뽀 더져!"
금빛 용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바짝 든 채로 쏙 튀어나온 모습을 멍하니 모던 제인이
다시 나를 보고 말했다.
"어렵네요. 모든 것들이..."
"지뽀 더 업쪄?"
삐삐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가 죄다 집어간 쥐포를 뒤적이다가 그제서야 제인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깜빡이더니 두 발로 서서 손을 흔들고 말했다.
"안뇽!"
그 반응에 제인은 고개를 간단히 끄덕이고 말했다.
"당신이 어머니가 되었다는건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정보네요. 확실히.
그 마녀의 약점을 발견했다고하면 큰 정보가 되기야 합니다.
좋아요. 이전의 계산은 이걸로 하죠."
"정말 많이 양보 하셨네요."
"그런 셈이죠."
이전의 계산이라면 아직 값을 치루지 않은 정보의 대금을 말하는 거겠지.
"그런 것 치고는 아직 내게 돌아온 건 없지만요."
"피드린. 그 남자, 얼마 전에 날 찾아왔었죠.
그리고 나에게 의뢰를 했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종합해도 최근 몇 개월 이전의 정보는 알 수 없었던
묘한 인물이기도 하죠. 그런데도 이 짧은 시간에 벌써 피드 린이라는 사람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가
벌써 두 건이나 들어왔었죠. 서비스 차원에서 몇 가지 더 일러드리면
그는 지금 현재 같이 다니는 여성이 있어요."
"세실 린이겠지. 알아요 그 정도는. 둘이 모자관계라는 것도 알고."
"생각보다 나름의 정보망은 잘 갖춰진 듯 하네요."
"피드 린에 대한 정보를 더 제공하죠. 아마 평생에 걸쳐도 얻을 수 없을 정보일 거에요."
"그건 구미가 당기는군요."
나는 그녀에게 피드린과 체헤게 로드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남아있는 로드원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녀는 심각하게 표정을 구기다가 희미한 웃음을 띄었다.
"결국 남자들에게 집착하는건 똑같군요. 이게 무슨 동질감인지...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
"뭘 말이죠?"
"당신의 목적은 뭐죠? 왜 그를 찾으려고 하는건가요?
당신의 말대로라면 이미 그는 당신을 떠났잖아요?
이미 그에게는 당신이 필요 없는 상태일거고. 어쩌면 이젠 호감조차도 없을텐데요?"
"아마 그건 당신이 에드먼드 브리깃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요?"
"미련인가요?"
"그렇다고 해야겠네요."
그녀는 손가락을 더듬다가 말했다.
"완패에요. 내가 졌어요. 확실히 당신이 말해준 정보는 내가 구축한 정보망으로도 얻어내지 못할 정보였고요.
마법의 힘을 빌리고 있으면서도 마법을 배제했던 내 실수겠죠.
개인적으로 당신을 여전히 100% 신용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 건에 대해서 날 속이지는 않으리란 생각은 드네요.
좋아요. 피드린의 행방은 알려드리죠.
그들은 도르테우스의 제단을 찾겠다고 했어요."
"도르테우스의 제단?"
"네. 아마 목적이 있겠죠. 그리고 당신의 의뢰였던 에리아 무령의 정체에 대해서 조사하는 중인데,
확실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더군요."
"흥미로운 부분?"
"사람을 시켜서 중앙도서관을 조사했어요.
당신에 관련된 자료가 상당수 소실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찢어진 것도 있고, 불탄 것도 있더군요. 그러나 제일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열람 금지였다는 거에요.
내가 마지막으로 겨우 구한 자료는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쓰여있어서
학회의 자료를 참고해서 복원작업을 진행중이고요."
"소실 되었다...?"
"자세한건 모르겠네요. 이제껏 당신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숨어지낼수 있었는지는
대략 짐작이 되더라고요."
"그럴리가 없는데...?"
젤렌지와 올리브는 나를 서적에서 조사하고 추적해왔었다.
분명 그렇다는 이야기는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자료가 아직 남아있었다는 말이다.
누군가가 갑자기 그 자료를 모조리 삭제하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그러면 대체 잘못되어있는 것은 어느 쪽인가?
서적을 발견하지 못한쪽? 아니면 서적을 발견하고 날 찾아온 쪽?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군요."
"덕분에."
"먼저 일어나볼게요. 저도 덕분에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버려서
한번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후우... 그래요. 이제 그 생쥐굴에 언제라도 물을 가득 채울 수 있으니까."
"생쥐굴이라... 모건인가요?"
"이제 보니 생쥐가 맞는 것도 같아서요."
"난 생쥐같은게 아니에요. 직접 행동하지도 않으니까요.
그저 아직도 꿈에서 깨지 못한 미련한 여자일 뿐이에요."
"됐어요. 그닥 관심도 없고. 피차 괴로운 이야기는 이쯤 하죠?"
"그래요. 내가 말이 길었군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여자를 신뢰하는 것과는 별개로
참 불쾌하고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과연 저 발을 묶고있는 에드먼드 브리깃은 누구였을지 작은 의문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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