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195화 (195/303)

〈 195화 〉 겔데어스 상단

* * *

제인을 보내고 나서 나도 삐삐를 데리고 널스페이지를 나왔다.

삐삐가 쥐포를 상당히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쥐포를 조금만 더 주실 수 있느냐고 부탁도 했다.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쥐포를 준비해준 젊은 여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다음번 방문은 예약을 미리 잡아주실 수 있느냐고 정중히 물어서 나는 그러겠다고 말했다.

엠페레스 북부로 이동할 방법을 찾으면서 이전에 들었던 겔데어스 상단의 운송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훨씬 저렴하기도 했으니까. 엠페레스의 모험가 길드를 찾아가 도움을 구할 생각이었지만

엠페레스는 그다지 모험가에게 우호적인 국가가 아니었다는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길드 건물을 찾는 것도 상당히 복잡한 일이었고, 사람들은 모험가라는 직종 자체를 하나의 취미 생활로 보고 있었다.

모험가? 그런거 해서 밥이나 빌어먹고 살겠어? 라는 반응이 대중적이었다는 의미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 파출소였다.

국가에서 따로 병력을 파견해 마을의 일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둔 작은 사무소에 가까웠는데,

나는 이것 만으로도 엠페레스의 국왕이 상당히 일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인물임을 느꼈다.

법전을 따로 모아 기계장치에 등록해 두었는데, 유레크로스에서 본 컴퓨터보다야 상당히 뒤쳐진 형태였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을 관리하고 처벌하는데 일절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선선한 바람이 드는 사무실에서 튀긴 빵 따위를 한 손에 들고 찾아온 손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죠?"

"아, 모험가 길드를 찾으려고 하는데요. 여기서 도움을 주실 수 있다고 하셔서요."

"모험가 길드...? 아. 그 교국에서 하는 그거 말씀이십니까?"

"교국에서 하는건 아니지만, 얼추 맞겠네요."

"그거라면 엠페레스에서는 찾기가 어려우실 겁니다. 없는 건 아니지만요.

일단 전국 곳곳에 파출소가 있으니까 굳이 그런 민간 기업에 부탁할 만한 건수가 잘 없거든요."

민간 기업 정도로 치부할 규모가 아닐텐데도 여기 사람들은 그닥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이 나라는 모험가고 뭐고간에, 국경 외에서 넘어온 집단이 영향력을 끼치는걸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

"그건 무슨 말인가요?"

내 말에 병사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게 물 한 잔을 건네고 말했다.

"아무래도 엠페레스 주민은 아니신 모양이네요.

엠페레스는 베델그 엠페레스 선왕이 세운 국가입니다.

원래 젤데리스 왕국에서 떨어져 나온 집단이었기도 하고요.

젤데리스는 왜 그 역사적으로도 무능한 왕으로 인해 멸망했다는 말이 돌지 않습니까?

선왕께서는 그 젤데리스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받던 분이시기도 하고요."

"젤데리스가...?"

내가 잘은 몰라도 아마 젤데리스는 과거 유레크로스 이전의 페세티아 대륙 일대를

넓게 점거하고 있던 국가였을 것이다. 그 국가가 아무리 그래도 무능한 왕으로 인해 멸망했다는 건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젤데리스는 그 왜 왕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면서 망했다고 하잖아요?

그 왜 저도 그쪽 전공이 아니라서 잘은 몰라도 우리 엠페레스에서는

필수적으로 교육과정에 들어있는 내용이거든요."

"그렇군요."

"그 모습을 보고 만들어진 국가이니 만큼 엠페레스는 평온함과 자유로움에 이념을 두고 있어요.

국가적으로 예술을 장려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지금은 그래서 예술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 정책으로 다방면에서 인재 육성과 더불어... 뭐라고 했더라... 아무튼 뭐 그런 겁니다.

그리고 젤데리스가 멸망하고, 이후에 유레크로스도 그렇고 교국도 그렇고 미리타엔도 그렇고

솔직히 평화와 문화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지 않겠습니까? 왕께서는 그런 문명에

우리 국민들이 물들어버리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 이후로 타국에서 넘어오는 집단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같은 것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군요."

"아, 그래서 그 길드 말씀하셨던가요? 그런건 잘 모릅니다 저희도.

대대적으로 몰아낸 적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이제와서 길드라고 하면 저 사거리 골목 구석쯤에 작은 집회소가 있기야 합니다.

그런데 뭐 주중에 백날 가봐도 문을 연 걸 못 봐서 말이죠.

가끔 주말에 저녁시간쯤 문을 여는걸 본 사람도 있다고는 하던데,

저래서 월세는 제때 내는지 모르겠단 말이죠."

"그럼 혹시 겔데어스 상단에서 제공하는 이동수단 서비스는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위쪽 대로변을 따라서 올라가다 보면 접수처가 나옵니다.

거기서 목적지와 시간을 말씀하시고 예매하시면 됩니다.

혹은 자유이용권을 구입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시고요."

"감사합니다."

"하하, 뭘요. 이게 제 일인데요."

"그런데 혹시 아까 그 대대적으로 몰아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아, 그거요? 아무리 막으려고 해봐도 들어오는 사람을 모두 막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한번 쓸어낸 적이 있었죠. 그게 몇년 전이더라...

한 30년 정도 된 것 같은데요?"

"30년이요?"

"네. 자세히는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교국에서 모험가 길드와 사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라고 압박이 들어왔었고,

거기에 저항해서 엠페레스 측에서도 저항했던 사건입니다.

본디 과거 엠페레스는 팔라딘을 주축으로 하는 특수 전전 부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가 아니라 교리와 신을 따르는 이들이다보니 교국에 그대로 흡수되었고

지금은 엠페레스의 군대라고 하면 적록기사단 정도겠군요."

"적록 기사단이요?"

"네. 지금은 상당히 무력화된 기사단이지만 원래는 일당백도 가능하다고 전해졌습니다.

다만 문제라고 하면 그 단장과 휘하에 있던 병사 15명이 탈영을 하는 사건이 있었던지라

현재로서는 국왕의 수치라고 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현재도 형태만 따지자면 적록기사단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전의 그 체계화된 군대는 아닌지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병사는 파출소로 차출되었고요."

"그렇군요."

"이제와서는 무엇 떄문에 탈영을 한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참, 그 부와 명예를 걷어차고 나갔으니 분명 이제는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가 그렇게 말하면 책상 위 작은 챠임벨에서 삐삐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순찰 돌 시간이군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기시면 나중에 다시 방문해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순찰을 돌아야 할 시간인지라 먼저 실례하죠."

그렇게 말하고 그는 동료를 모아 나를 데리고 파출소 밖으로 나와 문을 걸어 잠그고

동료들과 함께 순찰을 떠났다.

나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나도 역사 공부를 좀 해야 하나?"

역사라고 하면 오래는 살았지만 잘 모르고 있었다는걸 깨달았다.

산에 틀어박히기만 했으니 그런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겔데어스 상단의 운송 서비스 센터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모르고 본다면 거대한 저택과도 엇비슷한 크기였지만 어쩐지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그 거대한 건물의 디자인 때문이었다.

디자인은 복층 건물로, 아주 단조로운 형태를 띄고 있었는데,

굳이 건물의 구조에 집중하기보다는 기능에 치중한 아파트였다.

1층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확실히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독특한 정장을 입은 이들이

내게 공손하게 물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겔데어스 상단 물류 운송 서비스센터입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그, 예약을 하려고 하는데요."

"아, 예약 말씀이십니까? 물류 운송 목적이신지, 아니면 관광목적이신지 알려주시겠습니까?"

"관광이요."

"그럼 어디까지 가시는지 목적지를 말씀해주십시오."

"국경ㅈ...아니, 뼈의 저택이요."

"뼈의 저택 말씀이십니까? 국경을 넘는 지역을 예약하시려면 별도로 예약을 하셔야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별도로 에약이라뇨?"

"국내 순환용 서비스는 정해진 루트를 순환하는 모빌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추가 요금이 발생하지 않지만, 국가 외 지역은 별도로 모빌과 운전기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일반 요금의 5~8배 정도의 요금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뼈의 저택을 기준으로는 약 6.2 배 정도의 요금이 발생하게 됩니다."

"아, 그걸로 해주세요."

"그럼 어떤 이동수단을 예약하시겠습니까?

국외 지역은 마차를 포함한 생물모빌 외, 이동속도가 일정 수준 이하인 모빌은 예약이 제한되십니다.

현재 이용 가능하신 예약은, 중형 장갑기, 강화 궤도 부양선, 고속 사륜차, 고급 세단, 경비행기, 고성능 비행기 정도입니다.

가격대에 차이가 있습니다."

"안전성은요?"

"중형 장갑기를 추천드립니다.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안전성은 보장합니다."

"얼마나 걸리는데요?"

"한... 3일이면 도착할 겁니다."

"고속 사륜차는요?"

"1일 16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럼 추천은요?"

"강화 궤도 부양선을 추천합니다. 해상로를 통해 가기 때문에 눈이 즐거우실 겁니다.

더욱이 속도도 빠른 편입니다. 8시간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그럼 그걸로 할게요."

"네, 요금은 인원당 3델입니다."

"두 명이요."

네, 6델 받았습니다. 예약 되셨습니다. 출발 시간은 준비가 되는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나는 그의 안내를 받아 잠시 홀에서 기다렸고, 머지 않아서 강화 궤도 부양선을 마주했다.

강화 궤도 부양선이라는 이름답게 어지간한 작살이나 어뢰에는 흠집도 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그 배는 중형 선박 정도의 크기였다.

"타시죠. 저희 회사가 자랑하는 강화 궤도 부양함입니다."

"부양함은 뭐죠?"

"금방 아시게 될 겁니다."

배에 타면 바로 문이 닫히고, 꽤 넓은 갑판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었다.

배가 출발하면서 선체 밑바닥으로 꽤 넓은 합판이 펼쳐지면 그 다음으로는

배 뒤로 물을 분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독특한 광경이 보였다.

물보라를 흩뿌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배는 마치 물수제비를 뜨는 돌 처럼

가볍게 수면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물 위를 부양하는 배입니다. 고가의 상품이다보니 회사에서도 도합 4대밖에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막상 물자 운송에는 비적합한 선박이었기 때문에 주로 관광 상품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선장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잠시 기판을 조작하던 그는 허허 웃으며 내쪽으로 걸어와 테이블 앞에 앉았다.

"이 배가 강화 궤도 부양함인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자동으로 해도와 운행을 오브에 새겨 마법으로 등록해두었기 때문에,

오브를 갈아주는 것 만으로도 자동 운행이 가능합니다. 상당히 고가인 이유가 여기 있죠.

단순히 기술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도 공학이라고 하던가요?

마법과 결합시키는 기술력이 사용되었다더군요."

"확실히 고급이긴 하네요."

"그럼,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도착하면 알려드리죠."

"고맙습니다."

선장은 느긋하게 물었다.

"그나저나 꽤 돈이 많으신가 보네요.

이 배는 아무나 빌리기 어려운 수준인데."

"아뇨, 저는 그냥 일회성 관광 상품으로 예약한 거라서."

"음... 하긴 최근 들어서는 이 배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잘 없어서 가격을 낮춘다는 말을 하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 배의 선장이다 보니 이 배를 예약하시는 고객님들이 많을수록 팁이 추가로 들어오는 수익구조라서요.

저야 뭐 감사드릴 따름이지요."

"이 배는 운전할 수 있는 인원이 정해진 건가 보네요?"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자동으로 운행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다시말하면

오브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기계와 운전에 대한 능력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죠.

항해도 마찬가지고요. 해도를 바꿔 등록하는 것만 해도 일이고요. 바라는 육로와 다르니까요.

언제 변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기상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요.

아무나 맡길수는 없는 일이죠."

"선장님께서는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시나봐요."

"그런 셈이죠. 아무래도... 예전부터 배 타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사람을 많이 구하기도 했었고요. 이 근방에서는 해적이 잘 출몰하지 않습니다만,

종종 해적놈들이 이 바다까지 흘러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배를 잃은 선원들이

종종 SOS를 보내곤 합니다. 그럼 제가 이 바다로 나와서 구조를 하곤 하죠."

그는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그렇게 말했다.

"아무튼, 뭐 뭐든 다 하셔도 됩니다. 일단은 고객님이시니까요.

그래도일단 저에게 한번 허가 정도는 구해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혹시 원하신다면 선상에서도 풀을 준비해드릴 수 있습니다."

"풀이요?"

"네, 대개 여성 손님들은 좋아하셔서요.

칵테일 정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건 구미가 당기네요."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안내를 받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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