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219화 (219/303)

〈 219화 〉 단단하다. 그러나 유연하다.

* * *

"이건...또 뭐야?"

교회로 날아온 편지 한 장.

아이들의 앞에서 가르침을 나누던 남자는 그 편지를 흘려버릴 수 없었다.

[이 시간부로 마녀 에리아를 이단으로 규정함.

사유는 다음과 같음.

하나. 교회의 주적이던 악마 엘 블로프니거 에스트로와 부부임이 확인됨.

하나. 신의 뜻에 위배되는 약품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함.

하나. 순수의 폭포를 무단으로 점거중이던 이단의 엘프를 도움.

위와 같은 사유로 인해 이단으로 규정한 마녀 에리아를

교회는 돕지 않을 것을 선언함.]

"여전하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자, 얘들아 오늘은 조금 일찍 끝낼까?"

"와!!"

그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사탕을 하나씩 나눠준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는 교회 외곽의 작은 언덕으로 향했다.

지난 전쟁으로 인해 교회의 부지가 국토의 상당부분을 흡수했기 때문에

그는 교회 부지를 벗어나지 않고도 여유롭게 눈에 띄지 않을 곳을 찾아냈다.

잔디가 하늘하늘 바람에 날리는 그 언덕에서 그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잘 사는 것 같아 다행이기는 한데... 이러면 한동안 귀찮아진단 이야긴가."

"여기 계셨네요, 선생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예상하지 않았던 어린 목소리다.

그는 황급히 담배를 뒤로 숨기고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너냐 데니스?"

"네, 저에요. 다른 애들은 없고요. 담배는 피우셔도 뭐라고 안 하겠습니다.

다만 냄새가 배지 않을 정도로만 거리를 벌리는건 이해해주시리라 믿을게요."

"애같은 맛이 없다니까. 하여튼 그게 지금은 고맙긴 하지만.

붙인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단 말이야."

제임스는 담배를 다시 물고 한번에 쭈욱 빨아들인다.

담배가 타들어가는 부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사라져간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담배를 문 이 사이로 연기를 뱉어냈다.

"후우우.... 됐다. 그래 한번 뱉었으면 됐지. 애들 앞에서 이정도면 이미 충분해."

그렇게 말하고 그는 꽁초를 손수건으로 감싸 잡아서 지져끄고

주머니에 적당히 넣었다.

"그거 불 납니다 선생님."

"그러기 전에 내려가서 버려야지. 이 풀밭에 버릴 수는 없으니까."

"대체 아까 그 편지에 뭐라고 쓰여있었길래 그러시는 거에요?"

"뭐가?"

"교회에서 온 편지 말이에요."

"그래, 너도 들어두면 좋겠지. 에리아를 이단으로 규정하겠다고 하더구나.

물론 에리아가 이곳으로 한동안 올 일은 없어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올리가 없다고 확언할 수도 없는 거잖아."

"그러면 올 날을 대비해서 미리 잡을 준비를 해야하는 건가요?"

제임스는 자신의 앞에서 태연하게 질문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데니스의 눈빛을 가만히 바라보다 웃으며 말했다.

"야 이 정없는 녀석아. 어떻게 친구를 팔아넘길 생각부터 하냐 그래?

매정한 눔 시끼 이거."

"교회에서 이단으로 지정했다면서요. 그럼 잡아야죠."

그 눈은 순수했다. 단지 그렇게 되어야 하니까 라는 생각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데니스에게서는 광신적인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이전부터 느꼈던 미묘한 느낌이 제임스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고 다시 사라진다.

"교회에서 말했다고 다 정답은 아니야.

절대적인 정답은 없는 거라니까. 누구나 틀릴 수 있어.

그냥 그 순간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면 되는거야."

"그럼 교회는 이단으로 지정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는 거네요?"

"그건 교회의 기준이지. 난 아냐."

"하지만 선생님은 신부잖아요. 그렇다면 마땅히 교회의 판단에 동조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야 맞겠지만

그건 나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고 교회의 판단에 모든걸 맡기는 사람은 아니야.

아, 이런 소릴 하면 안되는 건가? 교회에서 들었으면 큰일날 소리긴 한데....

뭐... 나도 이단인가보지 그럼. 아무튼 임마 너 어? 정없게 그러는거 아녀 사람이!"

"선생님은 참 이상한 사람이에요.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교회를 위해서 일한다고 하면서 결국 자신의 주관을 굽히지 않아요.

그렇지만 다른 신부님들보다 사회적으로 인망이 있고, 주교님께 총애를 받죠.

왜죠? 대체 왜 신부로서 해야 할 일을 추구하지 않고 날마다 달라지는 말에

고집이 센데도 교회에서는 선생님을 좋아하는걸까요?"

"너 임마 날 그렇게 생각했단말야...?

후... 뭐 있겠냐? 그냥 다 같은 사람이니까 그렇겠지.

사람은 좀 모자랄 때 친해지기 쉬운 법이야. 기억해 둬."

"모자랄 때라... 일단 알겠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제임스는 눈 앞에 있는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알 것 같았다.

이 아이는 분명 아주 위험한 존재가 되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든 이 소년을 옳은 길로 인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과연 자신이 그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

하지만 도리어 더 질 나쁜 상황에 던져지게 되었을 때의 미래를

그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어지러웠고 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표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여유로운 웃음으로 그걸 숨기면서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맡아볼 계획이었다.

"일단은 뭐가 일단이야 임마! 들어가서 밥이나 먹자."

그렇게 제임스는 데니스를 데리고 교회로 돌아가서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도 제임스는 괜히 아까 자신에게 넘어온 편지를 버리지 못하고

안주머니에서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다.

'알아서 잘 하겠지...'

식사를 마치고 나서 제임스는 지하 기도실로 찾아갔다.

철문을 두드리면 그 안에서 나이든 노인이 걸어나왔다.

"오, 왔구나 지미."

"네, 선생님. 편지는 받으셨습니까?"

"그럼, 받았고말고. 알다시피 난 이전부터 이렇게 될 거라는걸 짐작했지 않으냐.

분명 그 여자는 세상에 혼란을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했지.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너도 알겠지만, 나라는 이제 문제가 아니다.

나라로 구성원을 편가르기 해서는 안된다.

오직 믿음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해.

우리와 그렇지 못한 자들을 구분짓는 것은 언제나 독실하고 신실한 신앙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기도 하고.

교회는 늘 그걸 위해 세워졌었지."

"범 국가적인 교회의 단결이라는 말입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유레크로스, 그리고 엠페레스. 더 넓게는 교국, 그리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국가들까지.

모든 믿음은 한길로 통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이단이 우리를 억압할 수는 있어도

우리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너무 어렵습니다. 이해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너는 너의 신앙이 있을 것 아니냐. 어떻게 이단을 몰아낼 건지 생각해 보거라."

그렇게 말하고 피터는 펜을 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에 교국으로 보내실 답신입니까?"

"그렇지... 그런거야. 이미 유레크로스는 한차례 습격당한 전적이 있잖으냐.

전쟁이라는 형식을 띄었다지만은, 우리가 유의미한 공격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일방적인 습격의 형태로 종결되었던 전쟁이지.

그래서 현재 유레크로스는 교회를 지킬 힘이 없다.

무구한 역사를 지닌 이 성 테르도어 대성당을 수호할 힘이 없다는 말이지.

그렇기에 교국에 사성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할 생각이다."

"사성을요?"

"그래, 사성. 여차하면 유레크로스와 교국 양동에서 미리타엔을 쳐서 그 마녀를 품은 근간을

없애버리는 것도 가능할테니 말이다. 예로부터 늘 그래왔듯이."

"마녀사냥 말씀이십니까?"

"실패한다고 해도 상관 없다. 어차피 죽지도 않는다지 않으냐.

만약 생포에 성공한다고 쳐도 묶어둘 힘도, 비용도, 그로 인해 발생할 손해도 무겁다.

다만, 미리타엔에서 마녀에게 책정한 가치가 얼마나 된다고 한들,

마녀로 인해 매번 이단 척결을 이유로 국제 정서가 혼란해지게 되면

결국 미리타엔은 마녀로서 얻는 피해가 더 눈에 크게 다가올 게다."

"선생님... 여전하시네요."

"여전하다?"

"그냥 제가 어릴 때 뵀던 선생님 그대로이신 것 같아서요."

"나는 이미 나이가 들어 늙었다지만은... 더 늙기 전에 할 일은 해야지 않겠어...?"

"사성이... 꼭 필요합니까?"

"그럼... 너같은 제자가 한 놈만 더 있었어도 필요 없었겠지만 말이다."

"저는 그렇게 만능이 아닙니다 선생님."

"만능이 아니겠지. 하지만 적어도 너만큼의 적임자는 없을 거다.

사성은... 어디까지나 그 대체재고."

"긍정적으로 받겠습니다."

"그래... 오후에는 뭘 할 생각이냐? 아이들을 다 물렸다면서?"

"네. 오늘은 좀 산책같은걸 하면서 쉴 생각입니다.

아이들 가르치는 정도야 뭐 저보다 잘 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제가 아까 안히티 자매께 맡겼으니 잘 해 주겠죠."

"안히티...? 안히티가 애들을 보고 있었다고?"

"네. 왜 그러시죠?"

"어쩐지 오늘 식사는 유난히 맛이 없더라니. 그 식사 준비는 다 끝나고 부탁하지 그랬느냐.

간을 제대로 맞추는 사람이 없는데."

"선생님이 싱겁게 드시는 거라니까요.

안히티 자매님도 선생님 식사는 따로 덜어내고 간을 하신다고요."

"됐다. 배가 고프구나.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간단히 먹을 것도 좀 사 오너라."

"직접 하셔도 되잖아요."

"하이 참 거 제자라고 하나 있는 놈이 말귀는 더럽게 안들으니 내가 잘못 가르친건 아닐텐데

어쩌다 저리 된 건지 가슴이 아프구나. 꼭 제같은 놈으로다가 제자를 들여야 할텐데..."

"그건 아무래도 바라시던 대로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

"으이? 그런놈을 들였단 말이냐? 아, 그놈이냐? 데니스!"

"네. 그놈입니다."

"그래... 너도 고생을 좀 해야지... 가는 길에 이것도 좀 전달하고."

그렇게 말하며 피터는 다 쓴 편지를 내밀었다.

"네... 선생님은 이제부터 뭘 하실 건가요?"

"다음 미사 전까지 가볍게 운동이나 좀 하련다..."

피터는 조용히 제임스를 내보내고 철문을 닫았다.

그리고 안쪽에서는 쾅 쾅 하는 소리와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3..."

"2..."

"1."

방 안쪽에서 쾅 하는 소리가 울린다.

바닥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도무지 신부의 방에서 일반적이지 않을 소리가 들리면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정정하시면서 늙었다고 하신다니까. 덕분에 나는 겁이 나서 몇 년째 반항 한번 제대로 못하는구만

꼭 나같은 제자를 그리 만나라고 악담을 하시고. 결국 그렇게 되어 버렸으니... 저주하는 신부가 있어도 돼?

다른건 뭐 다 차치한다고 하더라도....누가 가벼운 운동을 저렇게 하나 싶기야 한데 말이지..."

제임스는 자신이 기억하는 피터 신부의 방을 생각했다.

바벨에 태산같은 무게추를 잔뜩 쌓아들고 숨을 쉬기 힘든 고행용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그 광경은 어린 제임스가 절대로 피터에게 대들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마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교회에서도, 이 마을에서도, 어쩌면 이 나라에서도.

끽해야 자신 정도가 겨우 기억하고 있을 그 장면은 피터 신부의 웃음에 가려 숨겨진다.

간혹 이렇게 들리는 진동과 무거운 쾅 쾅 소리 정도가 그 날의 일이 사실이었음을,

그리고 여전히 그가 건재함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상하다면 이상하게도 그의 방을 자신이 찾아가면 이제는 그런 것 따위는 흔적조차 없다.

늘 문을 닫았을 때만 들리는 저 소리는 이 두꺼운 철문을 열면 찾아볼 수도 없다.

대체 그 많은 무게추와 운동기구, 그리고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쇠붙이를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제임스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스승의 힘을 짐작할 수도 없었기에 그는 일단 수긍하고 교회를 나왔다.

일단 계획했던 대로 산책이나 할 아량이었다. 생각을 좀 털어내고 정리하고 싶었다.

이 교회라는 공간은 너무나 편안하고 익숙해서 긴장감이랄게 들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이 유레크로스에서 비밀이 무엇보다 많은 곳 역시 이 성 테르도어 대성당.

아직도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제임스는 품 안에 숨긴 담배갑을 조용히 열곤 한다.

"아마 사성들 두세명은 간단히 떡으로 만드실 수 있을 분이... 왜 신부나 하시나 몰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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