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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220화 (220/303)

〈 220화 〉 활력

* * *

"어서오세요."

오랜만에 상담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간 바쁘게 보내기도 했었고, 아무래도 요즘 들어서 점점 성격이 날이 서는 것 같아

내게도 휴식이나 여유 같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가게를 열면 여느 때와 같이 손님이 찾아왔다.

"오랜만이오."

"아돌퍼스씨?"

"잊지 않고 있었구려?"

"네. 아무래도 그렇죠.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세요?"

"이 나라에 용건은 없다네. 그냥 오랜만에 보고 싶은 얼굴이 기억나 들른것 뿐이니.

저번에 보낸 편지는 잘 받았는가?"

"편지... 아 그 편지요!"

"그럼 그럼. 잘 받은 것 같아 다행이군. 두번 설명하면 입아프지만은 나는 교국에서 지내는 중이네.

교국에서 작은 가게를 냈지. 정말 힘든 일이었소.

더욱이 대장간에서 마시던헬라레소의 맛이 그리워질 때마다 눈물이 나더군.

그 나라에서는 다들 헬라레소에 꿀을 타서 차게 먹으니까 말이야."

"헬라레소 한잔 드릴까요?"

"그래주겠나? 고맙군..."

"저번에는 모험가 같은걸 하신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요.

어떻게 잘 안풀리신 건가요?"

"잘 안풀리다니, 날 뭘로 보는겐가. 나는 단연 최고였네.

4급 모험가까지 올라갔으니 말이야. 트래퍼라는 계열에서는 단언컨데,

날 따라올 사람이 없었을 거네."

"그런데 왜 가게를 하시는 거죠?"

"그게... 썩 즐겁지가 않더군. 처음에는 좋았어. 모험을 한다는 일 자체가 말이야.

그런데 왜 알잖은가.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새로운 상황과 경험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아무래도 대장간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서인지 썩 원활하게 대화하는게 내게는 어렵더군.

혹시 알고 있는가? 모험가들의 흔한 분배 방식같은 것들 말이야."

"분배 방식이요?"

"의뢰를 해결하고 나면 보수로 들어오는 금액 같은 것들 말이야.

실적을 기준으로 분배한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일세.

그런데 보통 트래퍼는 혼자서 능동적으로 의뢰를 해결하는 계열의 모험가는 아니야.

파티에서 유틸리티를 주로 담당한다고 봐야겠지.

정찰을 하거나 함정을 설치하고 식을 분석하고 하는 것들을 위주로 하니까 말이야.

물론 필요한 일임은 분명하네. 준비 기간만 충분하다면 어지간한 용병보다 훌륭한

공격수단을 갖추기도 하고 말이야.하지만 알다시피 모든 기술에는 재료와 시간, 노력이 들어가네.

그걸 대장간 출신이 아니면 잘 이해하지 못한다네."

"누구든 자기 일이 아닌 것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려고 하지도 않으니까요.

여기, 헬라레소 나왔습니다."

내가 잔을 건네면 그는 잔을 받아들고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말한다.

"대장간에서 모험가로 전향하는 이들은 많지만, 전체 모험가의 비율로 따지면

10%도 채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네. 안타까운 일이지.

대장간 출신끼리 모여서 의뢰를 해결하려고 해도 말이네.

우리는 한 평생 배운 것들로 살아가는 거잖은가.

꼭 필요한 전열에 설 인원이 없더군. 가끔 개중에서도 기계를 전열에 세우는 자들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효율이 상당히 떨어지더군. 기계가 박살이나 나지 않으면 다행인 정도일세."

"그 단점은 단순히 기계만 가지고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긴 해요."

"자네가 말하니 왠지 농담같이 들리지가 않는구만.

하하... 맞는 말이야. 맞는 말이지. 사실 윤리적 문제만 아니라면 효율적이기도 할 걸세.

하지만 기술도 부족하기도 하고, 왠지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네.

윤리적 문제 때문에 꺼려지는 것보다는 순수한 기술에 대한 프라이드 문제가 더 크겠지만.

여하튼 그래서 트래퍼를 비롯한 각종 대장간의 기술자 출신 모험가들은 고충이 있다네."

"영기술사라는 업종이 또 있다 보니까 비교도 될 테고요."

"왜 영기술사들처럼 빠르게 난사하지 못하는가, 왜 재료비가 그렇게 많이 요구되는가.

그런 잡다한 일들부터 깊게는 일정을 더 빠르게 진행하기를 원하는 자들도 있네.

물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결국 나는 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지.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대장간에서도 그렇지 않았나.

어떤 작업이든 단시간에 끝나는 것은 잘 없으니까.

이곳이나 교국에서는 이제 공장이 들어서고 규격화된 것들을 양산해내는 것이 가능하지만,

대장간은 그렇지 않네. 장인들이 모인 곳이니까. 결코 공장에서 만들 수 없는 물건을 이루어내는 곳이지.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그저 똑같은 모양이네."

"알아보는 것도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그래, 아무튼 그렇게 되어서 나는 모험가를 쉬고 있다네.

그런데도 아직도 트래퍼가 필요하다 싶은 상황이 오면 종종 길드에서 내 이름을 일러주는 바람에

내 가게로 모험가들이 찾아오곤 한다네. 그때마다 나는 내 몫을 확실히 정해서

계약서를 쓰곤 하지. 물론 그렇게 모험가들과 일을 마치고 나면 금전적으로는 여유롭지만,

아주 귀찮은 일이거든. 차라리 가게 일에나 전념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네."

"모험가활동을 정식으로 해본 적이 잘 없어서 모르겠네요.

주로 의뢰라고 하면 무슨 일을 하는거죠?"

"뭐 대단할건 없다네. 그냥 하달받은 지시사항을 해결하는게 전부지.

간단하게는 약초 채집부터, 물건 전달, 가끔은 조달 임무도 있지.

경호 임무도 있을 수 있겠고, 때로는 유해조수도 잡아달라더군.

유해조수를 해결하는 게 제일 피곤하다오.

주로 정부쪽이나 조합쪽에서 의뢰하는데, 그쪽 사람들은 급할게 없어서인지

굳이 보수를 높게 잡지 않는다네. 어차피 우선도가 높으니

누군가는 떨이 처리된 그 임무를 맡게 되거든.

유해조수라고 해서 무슨 멧돼지 따위를 생각하면 안되네.

실제로 처리해야 할 것들은 그것보다 훨씬 충격적이라네."

"궁금하네요. 테러보어 같은 것들도 처리하실 것 같은데."

"테러보어... 테러보어... 그렇지. 정말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었네.

두번은 사양하고 싶구만."

그렇게 말하고 그는 헬라레소를 마셨다.

그리고는 차분한 얼굴로 한숨을 쉬고 말했다.

"하지만 뭐 아무리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자네에게 와닿지는 않았겠지만.

그나저나 전번에 봤던 것보다 얼굴표정이 상당히 밝아졌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음, 글쎄요. 뭔가 많은게 변하지는 않았어요."

"그런가..."

그렇게 대화하는 와중에 뒤에서 방문이 열리고 발레리아와 삐삐가 나왔다.

"마마!"

삐삐는 도도도도 뛰어서 내 품에 와락 안겼다.

"죄송합니다 무령님. 삐삐가 오랜만에 책을 보려니까 지루한가봐요.

자꾸 엄마를 보러 가겠다고 해서요."

"그럴 수 있지."

나는 삐삐를 안은채로 다시 아돌퍼스를 바라보았다.

"아, 그렇구만. 이해했네. 왜 표정이 묘하게 밝아보이는지."

"아하하... 덕분에 살맛 나더라구요."

발레리아가 옆에서 바라보다가 아돌퍼스에게 정중히 말했다.

"두 분께서 말씀 나누시는 와중에 실례했습니다. 제가 한잔 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아돌퍼스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짓고 말했다.

"미인에게 사지는 못할 망정 받아먹는다니, 어불성설이오.

괜찮다면 내가 살 테니 대화에 함께하시겠소?"

"기꺼이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는 삐삐를 무릎 위에 앉혀두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그럼 최근에는 대장간에 가신 적은 없으신 건가요?"

"아암, 거기 다시 돌아갈 낯짝이 없어서 말이지."

그는 멋쩍게 웃으며 잔을 대번에 비웠다.

"자네가 추천하는 걸로 한 잔 주겠나? 이번에는 저 아가씨 것도 같이."

"그럴게요."

나는 짧은 고민 끝에 방탄 커피를 두 잔 만들었다.

내가 커피를 내밀면 아돌퍼스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와 커피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커피 맞나? 괴식같은데..."

"Bulletproof Coffee라고 한답니다."

"무슨 이런 이상한 냄새가...꼭 버터같은..."

"버터 맞아요."

"오 맙소사. 미안하지만 다른 걸 주문해도 되겠나?"

"음... 원하신다면요. 그런데 입도 대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무래도 내 취향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

"발레리아는 어때?"

"괜찮은데요? 속이 풀어지는 느낌이 있어요. 부드럽기도 하고.

다만 확실히 익숙한 커피와는 달라요."

발레리아가 그렇게 말하고 나면 흥미를 보인 삐삐가 손을 들고 말한다.

"삐삐도! 삐삐도!"

"안돼 삐삐. 이건 어른들이 마시는 거야. 좀 더 크고 나서 마시자."

"갠차나! 안커두대!"

"엄마가 안 괜찮아. 삐삐는 더 커야 해. 커피 같은거 마시고 그러면 안좋아.

대신 쥐포 줄게. 쥐포 먹어 쥐포."

나는 삐삐를 안아주고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지뽀...그래두 궁그만대..."

발레리아는 날 바라보다 빙그레 웃었다.

"삐삐도 한잔 주면 어떨까요?"

"뭘? 커피를?"

발레리아가 나에게 빙그레 미소짓고 자리에서 일어나 선반을 열었다.

그곳에는 코코아가루가 있었다.

"아, 애들용 커피구나..."

"네, 이정도는 괜찮겠죠."

"손님들이 코코아도 시키고 그래?"

"잘 없기는 한데, 가끔씩 귀부인들께서 오시면 자제분들께 삐삐와 비슷한 이유로

주문하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래? 그럼 발레리아. 한잔 부탁할게."

"네. 알겠습니다."

발레리아가 삐삐에게 코코아를 건네주고 나서야 삐삐는 나를 보고 빵끗 웃었다.

"삐삐꺼?"

"응. 그건 삐삐꺼."

"우앙!"

가만히 삐삐를 바라보던 아돌퍼스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5페킷 지폐를 꺼내 삐삐에게 건네준다.

"옛다. 용돈이다. 이름이 삐삐라고 했나?"

삐삐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니! 앨리쑤야!"

"앨리스?"

나는 아돌퍼스에게 삐삐는 애칭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면 아돌퍼스는 삐삐에게 용돈을 쥐여주며 말했다.

"이걸로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려무나."

삐삐는 멀뚱히 돈을 보고 있다가 발레리아를 쳐다본다.

"네 삐삐. 그거 돈이에요. 저번에 배웠죠?"

"아..!"

삐삐는 깨달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돌퍼스를 보고 배꼽인사를 꾸벅 한다.

"고마뜹니다..."

"허어...허허....허허허허...."

아돌퍼스는 흐뭇한 얼굴로 웃다가 내게 말했다.

"더 늦기 전에 결혼을 해야겠군... 이런 재미를 혼자 봤는가?"

"애아빠도 보고 있을걸요?"

"애아빠, 참... 그렇군. 아이 아빠는 누군가?

자네씩이나 되는 사람이 아무나 만났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데."

"썩 달갑지 않으실 거에요."

그 말에 그가 살짝은 굳은 표정으로 묻는다.

"설마...?"

"아마 그 설마일 거에요."

"후우... 뭐, 지금 보면 잘 어울리는 한쌍이기는 하네.

오래오래 잘 사시게. 부디 그... 잘 휘어잡으시길 바라고 말이네."

"걱정 마세요."

"그래, 알아서들 하시겠지."

아돌퍼스는 애써 고개를 젓고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신다.

아까까지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더니 무의식중에 손에 집히는 대로 입에 가져다 댄 모양이다.

"아... 이거...!"

"드셔보신 소감이 어떠세요?"

그는 어색하게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 나쁘지... 않구만..."

아돌퍼스는 어색하게 웃고 잔을 벌컥벌컥 마셔 넘겨버리고 빈 잔을 내려놓았다.

"그래, 잘 마셨네. 급한 일이 생각났어."

"급한 일이요?"

그는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걸 보고 내 어찌 가만 있겠나! 하루빨리 결혼해서 백옥같은 아이를 안고 다시오리다.

그 밑준비를 하러 가려네!"

"파이팅!"

나는 그렇게 말하고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여전히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는 게 신선하고 익숙한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저녁이 되면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에스트로가 불편한 표정으로 불평했다.

블러드엘프들이 생각보다 더 전투에 소질이 없었다는 것 같다.

그나마 마력을 운용하는 것은 일반 군인보다 능숙해서 맞추고 있지만,

여러모로 신경쓸게 많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가만 듣고 있다보니 이게 어째 정말 불평이라기보다는

그냥 내게 안겨 찡찡대고 싶었던 것 같다.

"엘라! 듣고 있어?"

"그럼~ 너도 딸내미 보고 기분 풀어."

방에서 걸어나오는 삐삐를 보고 에스트로는 그새 표정이 풀려서는 헤실헤실 웃는다.

"화 풀렸다!"

"어쩐지 애만 둘 키우는 기분이야."

내 말에 뒤에서 조용히 미소짓던 발레리아도 한마디 거든다.

"저도요."

"야~ 너는 적어도 에스트로는 안 챙기잖ㅇ...잠깐만.... 뭐라고?

너 대답 잘해? 왜 둘이야 넌?! 야! "

"장 보고 올게요. 먹을 것들을 좀 사와야 할 것 같네요."

"야!"

오늘도 떠들썩하게 하루가 지나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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