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화 〉 어머니의 이름
* * *
이제는 슬슬 날이 싸늘해지고 있었다.
덕분에 가게에서도 슬슬 따뜻한 음료를 주문하는 사람이 늘었다.
"네, 주문하신 카페라떼 나왔습니다."
또 하나의 손님을 받고, 또 하나의 음료를 서빙했다.
늘 똑같은 반복이라고 여길때 쯤 연락이 왔다.
플로라로부터였다.
플로라는 정말 종종 오라고 한 말을 착실하게 지키며
이틀에 한 번 꼴로 가게에 들르고는 했다.
덕분에 가게의 홍보효과는 쏠쏠했지만 미리타엔 전역에
우리 가게가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플로라도 괜히 그런 소문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면 자중하는게 좋을텐데
본인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무령님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덕분에. 그런데 이번에는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교국에서 새로 뭔가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교국에서?"
"자세한 사항은 알아내지 못했어요. 다만 엔시온에게 받은 정보니까 출처는 확실할 거에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었다는데, 사성을 비롯해서 대거의 팔라딘이 교국을 빠져나갔다는
그런 보고도 받았고요."
"행선지는?"
"잘 모른다는 것 같아요. 성신을 교국에서 대외적으로 쓴 적은 없었던 것도 사실이라서요."
"성신이라면 분명 이전에 봤던..."
"베르가 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껏 유래가 없는 일이 또 생겼네요."
"유래가 없다니?"
"성제가 또 바뀌었다고 해요."
"또 바뀌었다고?"
"이건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항은 아니에요. 하지만 확정사항이라고 해도 좋겠죠."
확정사항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 분명 무언가 있을 것 같았다.
"출처는?"
"젤라토가 스스로 성제의 자리를 내려놓고 싶다고 밝혔다고 해요.
물론 교회에서 허가가 나지 않는다면 무산되겠지만 일단 본인이 그렇게 말을 했다는건
자신보다 더 강한 사람을 찾아냈다는 말이겠죠.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정보가 부족한 지금은
섣불리 행동하는 것보다는 힘을 키우는게 중요해요."
"그렇구나."
"네, 그리고 저는 체리에이드로 부탁드릴게요."
"어?"
플로라는 입술을 혀로 살짝 핥으며 싱긋 웃어보였다.
"손님이잖아요?"
"일 관련해서 온거 아냐?"
"땡땡이에요."
나는 체리에이드를 만들어주면서 그녀의 이마를 딱 소리가 나게 때렸다.
"자랑이다."
"그래도 할 일은 다 했다구요. 괜히 성에 남아있으면 자꾸 이상한 안건같은걸 들고와서
결재해달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런 거 알아서 하라고 시스템을 만들어줘도
기어이 들고와서 저한테 매달리는 거 보면 이게 절대 왕정도 그렇게 편하진 않더라구요."
"사서 고생한 네 잘못이지."
"아무리 그래도 26단지 구에서 여성의 속옷 착용을 법으로 금지해 달라느니,
31단지에서는 남성의 가터벨트 착용을 의무화 해 달라던지.
알고는 있었지만 미친놈들 천지라니까요?
아니 글쎄 아까도 제가 빠져나오지 않았다면
분명 49단지의 30세 미만의 모든 상인에게 판매 품목에 대한 세금 15%를 추가로
부과하자는 의견을 검토하고 있었을 거에요."
"아직도 귀족들은 시류를 놓치고 싶지 않은거지."
"아무튼 역겹다니까요."
"고객님, 주문하신 체리에이드입니다."
"히히 얼음 많이 넣으신거죠?"
플로라는 체리에이드를 받아 쮸웁 빨대를 물고 음료를 마시더니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그 RPH뭐더라 그거 있잖아요?"
"RPHC188?"
"네 그거요."
"그거 효과가 꽤 오래 가네요?"
"개인차가 있더라고. 컨디션 영향도 타는 것 같고. 뭐 사람마다 다 다르더라고.
어떤 때는 하루도 못 가다가, 누구는 또 몇 년도 가고 그래. 왜?"
"요즘 밤잠을 꽤 많이 설쳤는데도 여전히 피부가 상하지 않아서요.
외관상은 좋은데 아무래도 그 뭐랄까, 열심히 하는 티가 안나잖아요?"
"평소 행실이 중요한거지 뭐. 나도 그런 편인데 사람들이 나보고 일을 안한다고는 안하잖아?"
"그건 포션이 가시적으로 시장에 유통되니까 그렇죠. 황제는 뭐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고요.
정작 먹고 자는데 필요한 건 다 제가 하는데 말이에요.
미리타엔에 사는 사람들은 황제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놀고 먹는 줄 알걸요?
가뜩이나 인식이 그런데 제 세대에 들어서는 더 그렇고요.
제가 유능하다는 생각은 안하나봐요!"
"오구오구 그래 잘했어."
플로라를 안고 등을 툭툭 쳐준다.
"아."
"왜?"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편히 다녀와."
플로라가 화장실로 사라지고 나면 나는 발레리아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었다.
겸사겸사 읽어두는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안그래도 발레리아에게는 뼈의 저택에서 공수해온 책을 제공하고 있으니
본인도 이전만큼 급하게 읽지는 않는 모양이라 집이나 가게에 책이 꽤 남았다.
내용도 두꺼워서 읽다보면 시간이 술술 잘 갔다.
지금 읽는 책은 몇 십년 쯤 전에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책을 번역했다는 것 같다.
종지기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아무래도 종지기라고 하면
그다지 긍정적인 인상이 남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전에 읽었던 종치는 자들의 기억이라는
낡은 마법서가 떠오르기 때문일까. 소설로서도, 마법서로서도 말이다.
"참 인물이 많아. 세상은 넓다니까."
"그 책 보시는 거에요?"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으면
장을 보러 갔던 발레리아가 돌아와 묻는다.
"후우, 오늘도 물가가 올랐네요."
"늘 그렇지 뭐."
"아 맞다, 가게 화장실 열쇠를 제가 들고 갔더라구요?"
"응?"
"어제 화장실 잠가놓고 여는 걸 깜빡했어요. 아직 화장실 간 사람은 없었나보네요?"
그 말이 끝나기가 매섭게 타이밍도 좋게 플로라가 돌아왔다.
"제가 좀 늦었죠? 헤헤... 어? 발레리아 왔네?"
발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 장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발레리아의 얼굴을 보니 뭔가 아는 것 같은데 말을 해 주지는 않았다.
다만 착잡한 표정을 지으면서 애써 화장실 열쇠를 꼭 쥔채로
플로라의 눈에 들지 않게 숨기는 걸 봐서 맞춰주기로 했다.
플로라는 잠시 내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태연하게 내게 아까 했던 이야기는 명심했느냐고 말했다.
아마 이건 단순히 내 안위를 걱정하는 것보다 내가 섣불리 움직이면 그에 말려
제국이 피해를 볼 상황을 염려하는 거겠지.
무력으로는 제국이 지게 될 일은 없겠지만 국내외 정세가 어지러운 것은
아무래도 미리타엔의 입장에서도 피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 아무튼 나름대로 우리쪽도 준비는 해 둬야 한다는 말이었잖아?
에스트로 오면 둘이 이야기 해볼게."
"네, 그리고 이전번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삐삐의 호신에 관해서도..."
"아 그것도 그렇네. 삐삐는 준비시켜둘게. 슬슬 삐삐도 문무겸비를 해야지.
아 너무 학부모 같은 말을 해버렸네. 그래도 어지간한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더 똑실하게 키울거야."
"네, 에스트로님도 내일부터는 일정을 좀 널널하게 맞춰서 삐삐 관리를 할 틈을 내실 수 있을 겁니다.
블러드 엘프들이 이제 힘을 다루는데 숙달이 된 것 같아서요. 나머지는 반복훈련이겠죠."
"에스트로에게도 경어를 붙이는거야?"
"네, 아무래도 무령님의 남편분이시니까..."
얼굴이 붉어지는 플로라를 보며 나는 픽 웃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애니가 기다리고 있어서..."
"아, 그러고 보니까 애니는 어쨌어?"
"제 방에서 그림자로 제 대역을 만들어서 실루엣을 속이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땡땡이치는데 애니를 이용했다는 거네?"
"개다래가지 3개로 합의 봤어요."
"으음... 쌍으로 잘 하는 짓이다 증말..."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들킬 테니까요. 늦지 않게 가 봐야죠."
"어서 가봐."
"네."
그렇게 말하고 플로라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갔다.
"발레리아?"
"네, 가게는 맡겨주세요."
"주인의식 철저하고 좋네."
"반쯤은 주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지 뭐."
나는 삐삐를 데리러 방에 들어갔고 충격적인 것을 보았다.
분명 발레리아가 삐삐의 정서 발달을 위해 구입했던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크레파스의 용도는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스케치북의 용도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벽지며 바닥까지 그림을 그려놓은 삐삐를 보고 나는 말 대신 한숨을 푹 쉬었다.
"삐삐."
"응?"
"방에 낙서하면 못써..."
"모써?"
"그래. 스케치북에 그림 그리라고 했잖아. 그래서 준 스케치북인데 벽에 그리면 어떡해.
발레리아 이모가 치우기 힘들단 말이야."
"스캐치북 짝단 마리야."
"큰그림을 그리는구나... 뭘 그리는데?"
노란색을 덕지덕지 칠한 것 같은 그림을 가리켰더니 삐삐는 나를 올려다보며
작은 손으로 자기를 콕 가리키고 웃었다.
"삐삐"
"그럼 이건?"
내가 그 옆에 있는 시끄무리한걸 가리키면 이번에는 벽을 콕 짚어서 말했다.
"마마!"
"이거 엄마야?"
"이제 파파 그리면 대!"
"그으래... 이거는 다 그리고 나면 엄마가 정리하던가 해야겠네..."
삐삐는 어딘가 불편한 것처럼 입을 빼죽 내밀고 나를 바라본다.
내가 멍 하니 서있으면 발레리아가 내 뒤에서 툭툭 어깨를 치고
조용히 '칭찬!' 이라고 말해준다.
그제서야 멍하니 있던 머리에 정신이 든다.
"삐삐 잘그렸네~ 다 그리면 보존하고 싶다!"
"진쨔?"
"응. 그런데 벽에 그리면 지워야 된단 말이야.
엄마는 삐삐 그림을 오래 보고 싶은데 지워지면 안되잖아?
그러니까 삐삐 다음부터는 스케치북에 그릴까?"
"아라떠!"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플로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삐삐에게 마법을 가르칠 생각이었지만
그런데 이렇게 벽에 그림을 그리는 걸 보고 지금 가르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가 아닐까 생각도 든다.
참 이런 작은 아이 하나가 생각을 변화시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삐삐의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스케치북에 마법을 사용해 그림을 옮겼다.
"그러면 삐삐 그림 다 그리면 엄마 불러줘. 알겠지?"
"응!"
그런 대화를 마치고 나는 가게 밖으로 나가 사람들의 행렬에 줄을 섰다.
여유롭게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이제 거리의 사람들마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고 말을 걸어왔다.
애초에 상담소 앞에 줄을 선다는 것 자체가 나를 만나기 위함이기도 했으니까.
상담소의 줄을 차츰차츰 줄여나가며 나는 그들과 대화를 했다.
내 앞으로 사람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면 나는 상담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내가 상담소라고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1인카페와 같은 형태였고,
카페 주방 뒤로 생활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이 딸린 형태였기에
결국 나는 한바퀴 돌아온 것 뿐이었다.
발레리아는 나를 보고 물었다.
"왜 거기 앉아계세요?"
"글쎄. 커피 하나 줄래? 자신 있는 걸로."
"이건 최근에 받은 어떤 손님보다 까다롭네요."
"못하겠어?"
"아뇨, 대신 조금 비쌀 수는 있어요 고객님."
그렇게 말하고 발레리아는 웃었다.
"아이가 생기고 말이야, 여러 모로 생각이 많아져.
너그러워 진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더 과격해진 것 같기도 해.
아마 내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치관의 변화가 있기도 했겠지만.
그게 옳은 변화인지, 내게 약점이 된건지 궁금할 때도 있고말이야."
"사람은 모두 그 생명만큼의 가치를 지닌다고 게비디 대공이 늘 말했습니다.
저희 클론은 아니지만 사람은 오직 하나고 그만큼의 수가 있어요.
그 관계속에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역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고
생명이 다른 생명과 그 생각을 나누고 상호작용을 거듭하며 삶의 가치를 높여나가는 것이죠.
그게 어느 방향을 목표로 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요, 적어도 그 순간 행복했는가?
그게 무령님께는 가치 척도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령님께서는 선악의 기준을 스스로 정의하시는 분이셨으니까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대답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저는 그 변화가 어떻다고 말씀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저는 그 변화로 인해서 무령님과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들이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려운 말이네."
"자, 커피 나왔습니다. 특별히 아주 진한 에스프레소를 준비했어요."
"고마워. 그래서, 네가 보기에 난 엄마로서 어떤 것 같아?"
"저는 클론으로서 부모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무령님을 보면 그 존재에 근접하는 사고를 인지할 수 있어요.
짧게는 모성이라는 것이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그런 것들이요."
"모성이 본질에 영향을 준다고?"
"여성은 남성과 다르게 몸 안에 새로운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만큼 더 인간 본연을 이해하는데 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인간을 생산해낸다는 행위에 앞서 하나의 존재에서 둘로 분화된다는 것.
불가능한 인간의 분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에요.
타인을 제 몸 안에 받아들이고 연결된다는 것. 다르게 말하면
'나' 였던 존재로 자란 것이 '타인' 이 된다는 걸 경험하고 이해한 사람은
마땅히 그에 맞는 사고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다는 거죠.
그리고 어머니는 그 분리된 타인을 자신처럼 아낍니다.
이건 일련의 과정으로서 무언가의 영역으로 확대된 감성의 영역이겠죠.
그리고 그게 가능한 것은 어머니 뿐이에요."
"음... 그런데 삐삐는 용이라고. 난 사람이고. 이해하지?"
"잘 생각해보세요. 죽어가는 삐삐에게 마력을 주입한건 무령님이세요.
자신의 본질이자 아이덴티티와 같았던 것을 주었고, 그게 모종의 형태로 보답받고 있어요.
기억의 미로에서 삐삐는 탈린을 흡수햇다고 했었고, 순수한 마력은 미로에 퍼져있었죠.
그러니까 기억의 미로의 안개가 무령님을 덮지 못한거고요.
그 순간 무령님과 삐삐는 마력이라는 매개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던 거에요."
"어...."
"타인이었던 것을 자아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경험하신 적이 정말 없을까요?
자신이었던 것이 타인으로 나눠진 경험은요?"
탈린 그리고 엘타리스. 모든 이름들이 기억을 스쳐간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경험하신 것들이 무령님을 변화시키 거에요."
"발레리아."
"네?"
"너 혹시 본격적으로 공부해볼 생각 없어?"
"저는 그저 클론일 뿐인걸요.
저도 무령님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화했지만
결국 저는 생산품중 하나일 뿐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것은 주인께 도움이 되는 일 뿐이에요.
아시잖아요."
"클론과 주인으로 묻는게 아니라, 친구로서 묻는거야."
".....하고야 싶죠... 사실 클론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흥미가 생겼으니까요.
전 변해버렸어요. 이 상담소에서 지내면서.
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아이를 돌보고.
그 많은 것들이 이제 제게 두려움을 심었죠.
이 일상을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그리고 이 손에 무기가 아닌 책과 펜, 때때로 커피포트를 들고 싶다는 욕망이요."
"약속할게. 내가 언젠가 반드시 널 교수로 만들거야.
넌 단 한명의 발레리아로 사랑받을거고, 널 사랑해줄 남자가 있을거야.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이랑 결혼해서 내 곁을 떠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내 곁에 있어줘."
"당연하죠. 제가 삐삐랑 무령님을 두고 어딜 가겠어요."
나는 커피를 마셨다.
아주 씁쓸하고 진한 맛이 났다.
"그리고 무령님."
"왜?"
"제 부족하고 편협한 사고에 의하면
저에게도 어머니라는 존재에 제일 가까운 것은 무령님이세요."
"에이, 됐어. 내가 뭐라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마셨어. 고마워."
"네."
"커피도, 말도."
"....네."
발레리아는 조용히 컵을 집어 싱크대에 넣었다.
어쩐지 조금은 서로 마주볼 수가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