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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231화 (231/303)

〈 231화 〉 모반의 뿌리

* * *

변절자, 배신자, 어쩌면 이단자들의 무리.

그들은 어느새 변해가고 있었다.

젤라토의 성제 포기 선언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책임감이 없다느니 이유가 있을 거라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결국 교국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서 이제껏 조용했던 검사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총의 개발과 화포의 존재는 점점 검사들의 입지를 줄여가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그런 사이에서 낭만과 강함을 모두 챙긴 성제라는 위치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자리를 스스로 놓아버린다고 말하는 여자. 그리고 정당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 사복단검의 존재는 그녀를 인정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그들에게는 모름지기 검이란 정정당당한 무기여야 했고 기사도를 상징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녀의 변칙적인 사복단검은 일방적으로 리스크를 지지 않는 무기였다.

상대와 나 사이의 유효 공격 범위를 예상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며,

일각에서는 그것만 파악한다면 그런 여자 정도는 간단히 이길 거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이미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젤라토에게는 그저 자신과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그마저도 변한 일상에 그녀는 검보다는 이불을 더 많이 잡게 되었다.

아침이 되면 어디론가 우르르 빠져나가는 변절자들의 무리, 그리고 오후가 되면

돌아와 어디선가 사냥한 것으로 보이는 테러보어를 요리하곤 했다.

테러보어는 식용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이미 만연햇으나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날마다 그런 것 따위를 먹어대는 이들을 보면서 젤라토는 당황했다.

분명 테러보어는 오염된 생물이라고 했는데, 어째서 이들은 거리낌이 없는가.

그녀의 거부감은 날이 갈수록 줄어갔다.

왜 오염된 생물은 먹으면 안되는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것을 먹고있는 이들.

아무도 먹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모른다.

단지 먹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만 할 뿐이다.

자신의 머리로 도달하지 못하는 해답에

망설이던 그녀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단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느꼈다.

아무 차이도 없었다. 늘 먹어오던 돼지의 맛이었다.

근육량, 혹은 육색. 그정도의 차이 말고는 차이가 없어서 더 당황했다.

왜 식량으로 사용하지 못하지? 점차 손은 바삐 움직인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칼 한가닥이 검게 변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차츰 스며들어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마침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남은 것은 수긍 그리고 후회 뿐이다.

시간이 지났을 무렵, 그곳에 있던 모두가 변해 있었다.

검은 머리칼에 생기없이 창백한 회백색 피부, 그리고 검은 눈동자.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았다. 그들 중 누구도 이 변화를 거부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욕망을 위해, 누군가는 변화를 위해, 그리고 누군가는 시류에 끌려.

연한 금빛으로 꺼져가던 팔라딘의 마력은 검게 일렁였고

마운틴엘프들이 다루던 잿빛 마력 역시 칠흑같은 빛으로 흐른다.

그저 바닥으로 흐르는 것 같은 깊고 어두운 감각속에서 그들은 변해갔다.

몇몇은 복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검은 피를 토해내며 죽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젤라토는 그 변화를 알 수 없었는데, 죽은 인원들은 맷돼지로 둔갑해

바베큐 속 고깃덩이에 섞여있었기 때문이었다.

변화하지 못한 자는 가차없이 쳐내버린 젤렌지의 방식이었다.

젤렌지는 그녀가 검성을 양도하지 못했음에도 화를 내거나하지 않았다.

그저 그 검성이 자신의 조직에 합류했다는 사실만으로 괜찮다고 말했다.

모종의 이유가 있음을 눈치채고 있던 젤라토였지만 이미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며칠인가가 지나서 자신들을 잡으러 팔라딘이 파견되었다.

선봉에는 엄청나게 거대한 도끼를 든 시니컬한 여자가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샤인."

"젤라토씨는 성제를 포기하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 이유가 이거였나요?"

"이유라니?"

"변절자들과 붙어먹기 위해서."

"말이 심하네. 변절자라니."

"지금 자신의 꼴을 알고는 있습니까 젤라토?

검게 물들어버린 머리, 핏기없는 피부, 그리고, 핏발선 검은 눈."

"그게 뭐?"

"당신, 타락했어요."

도끼를 빙빙 돌리며 쾅 하고 바닥에 꽂는 샤인의 얼굴은 진지하다 못해 무서운 수준이었다.

"무기를 들어. 더러운 타락자야."

"타락? 난 애초에 타락이라고 말할 만큼 좋은 일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게 말하고 겁집에서 빠르게 사복단검을 꺼내든다.

찰나의 순간 캉 하는 철 부딫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마치 개전의 효시였던 것처럼 전투는 시작되었다.

팔라딘의 메이스와 배교자들의 메이스.

엇비슷한 근력이지만 꺼져가는 신성력과 진심 없는 대의는

욕망에서 피어난 마력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한번 부딫힐 때마다 빠르게 부패해 삭아가는 성기사들의 메이스는

어찌저찌 신성력으로 형태만 붙들어둘 뿐,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지 못했다.

성희의 도끼가 아무리 매서워도 사복단검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파괴력이 높아도 그 무거운 한방 한방을 맞을 리는 없었다.

다만 이전보다 몸이 둔해진 젤라토가 어쭙잖게 피할 때마다 바닥에서 날린

돌조각 같은 것들이 그녀의 얼굴로 날아들곤 했다.

몇 번인가 도끼에 휘감긴 칼날은 성희의 손, 얼굴, 팔을 날카롭게 베어댔고,

어느새 피를 흘리고 선 그녀도 조금은 피곤해보였다.

"사성이라고 해도 상성이 있다는건 알고 있을텐데.

성제를 잡으려면 성연을 데려왔어야지. 당신은 안돼."

"잡았다."

마침내 콱 하고 들리는 소리. 도끼에 감겨있는 칼날과 늘어난 체인.

역으로 끌어당기는 그녀의 손길에 젤라토는 서서히 끌려갔다.

근육이 상당하지만 저 체구로 이런 무기를 도저히 흔들 수 있을 정도가 아님을 알고 있다.

과연 성희였다. 질질 끌려가는 와중에도 성희는 도끼자루를 길게 잡고 돌려오기 시작한다.

저건 그대로 자신을 내리꽂으려는 움직임이다.

그걸 멈춘건 젤렌지였다.

단검을 이어주던 체인이 놋이 슬어 삭아버린 것이다.

단검의 체인이 뚝 소리가 나며 끊어지고, 끌려가던 그녀가 여유로 인해 뒤로 물러서면

젤렌지가 그 앞을 채웠다.

"너구나 젤렌지. 네가 이 상황을 이렇게 만든거구나."

"상황? 무슨 상황을 말하는거지?"

"몰라서 물어? 그 팔라ㄷ... 다들 타락했어..."

"난 그저 저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미친새끼... 목적이 뭐야?"

"목적? 말하면 알아들을 수나 있고?"

도끼를 휘두르며 도끼에 감긴 칼날을 떨쳐낸다.

그리고는 매끄럽게 붕붕 돌리며 도끼를 겨누는 샤인은

그대로 가로로 크게 가르듯 도끼를 휘두른다.

"네 더러운 이상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거다!"

"그렇겠지. 사람은 모르는 것에는 공감하지 못하니까."

여러 번 더 부딫히는 도끼는 빈번히 젤렌지의 검에 가로막힌다.

젤렌지의 검은 어느새 날카롭게 도끼날에 맞닿아 끼긱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교황께서 신에게 바쳐진 이들을 더럽힌 죄는 교회에서 처단하리라고 하셨다!"

"팔라딘은 더 나은 신을 섬기기로 했을 뿐이다.

신을 믿지도 않는 네가 뭘 알수 있지?"

바르르 떨리는 샤인의 몸에서 힘이 빠진다.

그녀의 등 뒤에서 떨어져나간 단검의 날을 옆구리에 박아넣는 젤라토가 있었다.

"성제...? 왜 당신이 저 자를...?"

"우리...오빠 건드리지 마..."

"성희님!"

뒤에서 다시 몰려오는 팔라딘이 샤인을 다르면 그제서야 젤라토는 칼날을 놓고

뒤로 도망쳐나온다.

팔에서 힘이 풀리는 샤인이 도끼를 바닥에 박아세우고 서 있으면

팔라딘이 그녀를 둘러싸고 보호진형을 취한다.

그제서야 둘러본 주변에는 이단자들에게 무참하게 당한 팔라딘의 잔해가 있었다.

"퇴각하셔야 합니다. 저희로서는 역부족입니다."

"본대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나요?"

"어렵습니다. 젤라토가 교국을 배신한 지금 할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배신이라... 그래, 뭐 이제 누가 제일 나쁜 놈인가 해보자는 건가?"

"퇴각하시죠. 더 여기서 버티는건 인력낭비입니다.

저희측의 소모가 너무 심합니다. 예상하 것보다 더 강합니다."

"알겠습니다. 퇴각하죠."

그렇게 발을 돌리는 순간, 서걱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방금 전까지 말하던 팔라딘의 목이 바닥에 다만 굴러다닐 뿐이었다.

그 커다란 몸, 그리고 무겁던 갑옷이 쿵 기울어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썩는 냄새를 풍기며 그 유체마저도 뼛조각을 남기고 사라졌다.

"모두 후퇴! 퇴각하십시오!"

팔라딘을 뒤로 무르고 샤인은 뒤에서 날아드는 마력덩어리들을 어떻게든 막아냈다.

무거운 도끼를 빠르게 놀린다고 모두 베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 명이라도 더 살려서 돌려보내야 했다.

이들의 원망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사지로 내몬 지휘관의 책임은 막중하다.

"하아... 이번에야말로 돌아가면 된통 깨지겠네 정말."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검은 기운을 다 막아내지 못하고 팔을 베인다.

꽤 깊게 베인 것 같았다.

피가 튀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잠시 휘두를 때마다 통증은 심해졌다. 왠지 무거운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그녀는 더이상은 버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빠르게 몸을 돌려 도망치는 것을 보며 젤렌지와 젤라토를 비롯한 이단들은 한발짝도 뒤쫒지 않앗다.

"왜 안 따라가?"

"이미 이겼으니까."

젤렌지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그리고 젤렌지는 남은 인원을 소집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서쪽으로 간다. 만데라파 호로."

그들은 묵묵히 뒤를 따랐다.

바닥에 널브러진 팔라딘의 사체들은 하나같이 썩어있거나 피가 마르지 않은 뼈와

군데군데 살점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곳은 설원이었고, 고원에서는 생명이 희미했다.

눈발이 거센 날은 정말 굶어야 했던 날도 많았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던 사이 이렇게 갠 날에 쳐들어왔던 이들은

적이며 동시에 사냥감이었다. 이들은 점차 절대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규율이

아주 간단히 무너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개인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금지하던 것의 이유는 모두를 동일한 가치로 대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배제하고 홀로 서는, 내가 속한 집단을 공동의 목표보다 우선시하는 상황에서

최악을 바라보던 시야는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변명과

물러버린 죄책감을 비집고 이기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내민다.

그들이 든 광주리 안에 든 식량은 늘 그랬던 것 처럼 맷돼지 고기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교국에서는 그들의 행선지를 추적했다.

이미 큰 피해를 입어버린 팔라딘과 성희는 전력으로 취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상처가 낫지 않고 벌어지며 피를 쏟아내는 모습에

붕대로 감아두었던 팔은 더이상 숨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멀쩡한 팔로 안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 씌블끄..."

담배를 피우면서 그녀는 잠깐 생각했다.

백색의 고원에서 교국으로 향하지 않고, 서쪽으로 향하던 그들의 종착지.

어쩌면 사막인지도, 그도 아니라면 미리타엔?

잘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도 마땅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만 만약, 만약 그 자가 미리타엔으로 간다면.

숨죽여 살고 있는 마녀를 건드린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후우... 갑갑~하구만."

"왜?"

고개를 올려보면 오늘도 아무 생각 없어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벨?"

"맞앙 벨이야."

"그래, 나 좀 고민이 있어서 혼자 둬주면 안될까?"

"왜? 나랑 놀아주라. 요즘 그 까망이 안나와서 심심해."

"까망이... 아, 에스트로? 아서라. 한번 뒤집어지면 또 피곤해.

그냥 가만히 있어주는게 제일 좋지."

"왜! 난 걔랑 결혼할거야. 그래서 존나 따먹을거라고.

딱 봐라 이제 벨쨩의 농구하는 기사단을 만들거니까!"

"왜 기사단이 농구를 하는건데... 아니 됐다. 니 알아서 해.

아무튼 놀자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은 생각이 많아서."

"무슨 생각? 나 말고 다른걸 생각할 여유가 있어? 어떤 년이야? 내가 잘 말해볼게.

아니다 그냥 확 끌고올게. 뭘 하고 싶어? 때려줘? 불태워줄까? 아니면 물먹일래?

음, 그래! 그게 좋겠다. 저기 앞에 흐르는 야마누스의 강물을 전부 먹여버릴게!"

"아냐, 제발 좀 가줘. 넌 너무 시끄러워. 안그래도 팔도 아프다고."

"왜? 교회 새끼들이 성수 안줘? 내가 뒤집어줄까?"

"아냐...내가 갈게."

"야."

여자의 눈이 가늘어진다.

"무시하네? 씨발 놀자고. 내가 뭐 존나 대단한거 부탁하냐?

지금 붙으면 누가 뒤질지 궁금해? 니 등짝이 어떻게 생겼나 보고싶어?"

"그럼 네가 미리타엔에 있는 마녀랑 저 아래 유레크로스 교회, 그리고 이단자들 문제까지

싹 해결하고 오면 그때 놀자. 나 그거 때문에 교황이 자꾸 긁어서 피곤하다 진짜.

나도 너처럼 미친척 깠어야 하는데 베르가 너 편한거 보니까 왜 안그랬나 싶다.

하... 이번달에도 돈 없는데, 팔 치료하는것도 엄청 깨지겠네."

그렇게 성희가 떠나면 혼자 남은 베르가는 땅바닥을 손가락으로 긁어대며 말했다.

"빙 돌아가네. 교황을 죽이면 빠를텐데. 그 미친년 놔두고 왜 귀찮게 다른델 돌라는거지.

일단, 뭐하고 놀지나 생각해봐야겠네. 미리타엔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그날 교국으로는 유레크로스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편지가 도착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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