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232화 (232/303)

〈 232화 〉 하지 않아야 했던 일

* * *

교국의 북동쪽 국경도시 프리파스크.

이곳은 조금 다른 이슈로 북적이고 있었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엠페레스, 그리고 서쪽으로 대륙을 하나 넘어 존재하는 미리타엔.

그리고 교국보다 더 북동쪽으로 뻗어가면 존재하는 보르드예프 성탑국.

그리고 그 옆으로 또 뻗어가면 나타나는 엠베디아.

겉으로는 종교로 묶인 이들이었으나 모든 종교가 하나로 뭉칠 수는 없는 법이고

같은 이념과 사상아래 존재함에도 서로 다른 이들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보르드예프는 하나의 거대한 장벽과도 같았다.

종교를 이분하는 장벽.

교국은 오랜 동안 그 장벽 너머로 아르간티아교를 전파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보르드예프 성탑국을 기점으로 아르간티아교는 잘려 있었다.

그 맥의 흐름을 건너면 그곳에 있는 것은 야만적인 수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신을 의지할 줄 모르고 아직 지역적인 토속 신앙을 믿는 이들을 상대로

우리는 문명적인 방식을 취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무장한 팔라딘들의 메이스를 맞고도 전진하는 두터운 피부와

갑옷을 째로 우그뜨려 찢어내는 발톱까지.

저들은 우리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덕분에 종교를 전파하려는 시도는 이어졌고, 그들의 눈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사상을 근거로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활개치는 외지인일 뿐이었다.

가깝게는 수인들, 그리고 조상으로 올라갈수록 짐승의 원형에 가까워지는 종족.

후대로 이어져올수록 인간에 가까워지다, 결국은 육안으로 구별하지 못하는 정도로 피가 옅어진다.

그러나 그 뿌리는 변하지 않아 걸핏하면 눈이 돌아가 짐승으로 폴리모프하는

야만적이고 미개한 종족.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배웠다.

고로 우리는 그들을 계몽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위대한 종교의 별이 될 것이다.

그것이 교황의 뜻이었다.

나는 고작 연구원 나부랭이일 뿐이었으니 그런건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날 연구소에서 일을 하던 중, 내 교육을 전담하신 윌론드 박사님께서 찾아오셨다.

"자네는 고양이가 어디 있는지 아는가?"

윌론드 박사님께서는 커피 한 잔을 내밀며 내게 그렇게 물으셨다.

"고양이 말입니까?"

"그래. 고양이말이네."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거짓말, 자네는 알고 있을 걸세."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의 존재에 나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커피로 목을 축인 나는 박사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고양이는 상자 안에 있네."

"상자요?"

"그래, 이제 고양이가 어디 있는지 좀 알겠나?"

"알 것 같습니다."

"고양이는 어디 있나?"

"상자 안에 있습니다."

"어떤 상자인지 알겠나?"

"음, 사료 상자입니까?"

내 대답에 박사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야... 그 상자는 유레크로스로 간다네."

그제서야 나는 창밖의 화물 컨테이너를 바라보았다.

"윌론드 박사님...!"

"그래, 이제는 자네도 고양이의 위치를 알았나 보군.

그럼 두 번째 문제네. 구멍 뒤의 사람은 어떻게 되겠나?"

"구멍... 말입니까?"

"너무 어렵나? 그럼 다시 묻겠네.

카드 뒤의 사람은 어떻게 되겠나?"

"죽...습니다..."

윌론드 박사는 그제서야 내 표정을 보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숨어있을 뿐이네."

"네?"

"유레크로스에 말이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윌론드 박사님께선 내 표정을 바라보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자네는 증언대에 설 수 없네."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건 재판소였다. 벌써 7년 전부터 긴 꼬리표를 달고있는 전쟁을 재고 있는.

국제적인 재판에 회부된 3차 논의로 인해 국내외로 기자가 들끓고

프리파스크 전쟁이 종전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국제 재판에서 우리 교국의 과학자들을 부른다는 말은 곧 다시말해

교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비 윤리적인 요소를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까다로운 심문이 예상되는 것은 당연한 문제였고,

자백이라고 할만한 것이 나오는 날엔 그날로 끝이었다.

내 표정을 본 박사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자네는 이곳에 남게."

"잠시만요 박사님,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게 해 주십시오!

저도 가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뭐가 중요한지의 경중은 따질 수 있습니다."

"그래, 알겠네. 하지만 말 뿐인 자네 스스로를 돌아보게."

"박사님..! 으윽...!"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면 극심한 복통이 느껴졌다.

"설마... 저에게 약을 먹이신 겁니까..?"

"자네는 말이야... 여기서 감사관을 상대해야 하네."

"박사님! 잠시만요! 박사님!"

그러나 박사님은 무심하게 나를 지나치셨다.

증언대를 피하는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박사님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뼈아픈 실책이다.

급하게 배를 부여잡고 뒤를 따라 보려고 했으나 소장과 박사님은 이미 채비를 마친 채였다.

내가 뒤따르는 것을 보고 연구소장은 나를 보고 픽 웃었다.

"고생하게."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교국을 위해 증언할 수 있습니다!"

"아니, 아니지. 증언대에 너무 많은 사람이 서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네."

"하지만..!"

연구소장은 가방을 잠시 뒤지다가 오래 된 낡은 책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거라도 연구하게."

그게 오래된 자서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서점에서 어렵잖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저 어린 아이 달래듯 적당히 내게 넘긴 미끼 정도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성의도 없었다.

소장은 늘 그런 사람이었지.

나는 말 대신 책을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괜히 저들을 따라갈 수 없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복통이 심해진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쾅 소리가 들리고 바닥의 대리석을 마주한 내게 연구소장은 작은 약봉지를 던진다.

"먹으라고. 고생좀 하시고."

개새끼들.

나는 그들이 떠나고 나서야 화장실에서 배를 부여잡았다.

휴지도 하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욕을 뱉으면서 받은 책의 낱장을 찢어 해결했다.

기분이 더러웠다.

프리파스크 전쟁.

7년 전부터 이어져온 물밑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총검 하나 오가지 않는 싸움에서 피해자들은 온전히 민간인이었다.

주로 적국에 음모론을 뿌리거나, 위험한 의약품을 연구 개발해 뿌린다거나,

치명적 독을 살포하거나 스파이를 통한 정보전,

가끔은 정치적으로 명성을 깎아 암살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우리 교국에서는 보르드예프 성탑국과 벌써 그 전쟁을 7년째 계속해온 것이었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주로 그런 의약품이나 스파이 따위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표면적으로는 그저 정부 산하 시설이었기에 민간에는 노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들어서 양 국의 자질구레한 사건사고들이 적국에게서 비롯됨을

기자들이 알게 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건은 커져갔고

마침내 프리파스크 전쟁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국제 재판에 회부된 것이 벌써 3번이다.

그리고 최근 그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우리가 준비하던 것이 바로

조기교육을 마친 스파이의 투입이었다.

보르드예프의 고아를 입양해 연구소로 배달해오는 브로커에게 아이들을 받아,

사상교육과 더불어 과거 보르드예프의 마전 당시 추악한 모습을 부각하며

교국과 아르간티아교의 위대한 면을 강조해 세뇌교육을 마치고,

이를 보르드예프 성탑국으로 다시 섞어넣는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교육을 담당하던 연구원이 바로 엔샤레네였다.

그녀는 젊고 열정적인 여자였다. 과학자도 아니었고,

딱히 뛰어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원래 사설 도우미로 일하던 것을 이 프로젝트를 위해 고용한 것 뿐이었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다.

그녀가 세뇌중이던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었을 때,

아이가 도망쳐버린 것이었다.

연구소장은 그녀를 따로 불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녀는 프로젝트의 내용 자체를 모르던 여자였다.

기밀 유지라는 명목 하에 그녀는 제거당했다.

그날 연구소장은 태연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 카드 보이나?"

"네, 보입니다."

"정리를 부탁하네. 스페이드 A부터 조커 2장까지 차례대로 말이야."

바닥에 흐트러진 카드를 정리하기 시작한 그녀는

아무 의심 없이 카드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방 안에서 한 발의 총성이 들렸다.

카드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던 그녀는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걸 그저 먼 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치워주게."

연구소장은 그 모든 일을 윌론드 박사님께 맡겼다.

나는 씁쓸하게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게 고작 3주 전의 일이다.

연구소 전역을 뒤져도 아이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보육교사였던 그녀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실험은 그렇게 폐기되었다.

아이의 탈출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면서 듣게 된 소식에 의하면

결정적인 원인은 무조건적인 성탑국민에 대한 혐오를 불어넣었던 아이가

스스로 성탑국 출신임을 자각하면서였다고 한다.

"후우...."

나는 말 대신 한숨을 내뱉었다.

더러운 어른의 방식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다.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남은 삶을 평안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윌론드 박사님이 고양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그 아이가 고양이 수인은 아니었다.

아직 스스로 폴리모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미숙한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그런 아이를 유레크로스로 보낸다는 것은 다시 말해 더 늦기 전에

테르도어 대성당 측으로 보내서 인간사회에 섞여지내게 하겠다는 의미였다.

이 실험 따위는 잊은 채로 일상을 영위하기를 바란다는 일종의 작은 성의표시였다.

박사님은 떠나셔서 국제 재판소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으셨다.

나는 남겨졌고 말 대신 연구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빈 연구소를 지킨지 두시간 쯤 지났을까.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찾아왔다.

키는 작았고, 머리는 흰머리가 희끗하게 섞여있지만 깔끔했고,

턱수염을 과하지 않게 기르고 있었다.

"자네가 그 큐로드인가?"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에게 나는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래, 예의가 바르고 좋군.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네. 연구소의 실험을 기록한 일지를 가져다줄 수 있겠나?"

"죄송합니다. 제게 접근 권한은 없습니다."

"그래? 아쉽게 됐네. 한동안 자네와 같이 지내게 될 워커 제레드네.

감사원의 직책으로 찾아왔네. 잘 부탁하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워커 제레드.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그런데 워커 감사원님께서는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아무래도 이 남자가 무엇을 중점적으로 감사하러 온 것인지를 파악해야 내 선에서도

유동적으로 맞춰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물은 결정이었다.

"그냥 종합적으로 감사하고 가는 걸세. 점수를 매겨야 하는 항목들이 체계적으로 분류되어있으니.

분류라고 해도 사실상 내 주관에 맡기는 평가항목이기는 하지만은.

나름 성실하게 체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네.

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네. 아니면 뭐 혹시 보이면 안될 거라도 있나?"

"아니, 그런건 아닙니다..."

그는 허허 웃으면서도 주변을 슥 둘러보고 다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편하게 하게 편하게. 뭐 이 연구소 밖에서 만나면 그냥 아저씨 아닌가.

아니면 잠시 아이스 브레이킹도 할 겸 티타임이라도 가져볼텐가?"

"티...타임 말입니까...?"

"그래. 티타임 말이지."

"금방 준비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거 친구 참..."

내가 빠르게 커피를 두 잔 타 돌아오면 그는 테이블 앞에 앉아서 차분하게 노트를 펴놓고

거기 써 있는 것들을 읽고 있었다.

"아, 커피인가? 고맙네."

"아뇨 이정도로..."

"혹시 자네는 마술 좋아하나?"

"마술... 말입니까?"

"그래, 마법이든 마술이든 말이야. 난 이래뵈도 마법사거든."

그렇게 말하고 그는 손을 탁 튕겼다.

손끝에서 나타난 것은 카드였다.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볼 수 있을 트럼프 카드.

그는 그 카드를 내게 건네고 말했다.

"잘 보게."

카드를 돌리면 그 뒷면에는 붉은 얼룩이 있었다.

"이게 뭡니까?"

"글쎄, 나보단 자네가 더 잘 알지 않겠나?"

그 말에 멍하니 카드를 바라보던 나는 속으로 경악을 삼켰다.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기분이었지만 억지로 침착을 가장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자네라면 알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뭐 모른다니 유감이야.

자네가 책임권자는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니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내 손에서 카드를 받아갔다.

분명 보인 것은 붉은 피였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조금은 그을음도 남아있다네. 흥미로운 카드지."

"그렇습니까."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건 꼬리자르기다.

결정권자들을 모두 밖으로 빼내고 덤터기를 씌워 연구소를 정리할 생각이다.

국제 재판소로 빠져나간 인원들은 당연히 진술에서 부정적인 요소나 비 윤리적인 것은 없다고 하겠지.

연구소에서 발견되는 부조리는 모두 내가 뒤집어 쓰고 당하게 된다.

침을 꿀꺽 삼켰다.

"자네도 바보가 아니라면 눈치챘을텐데."

"그게 무슨 뜻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난 기회를 주는걸세. 현명하게 생각하게."

나는 침묵했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대답을 원하시는지."

"그래. 뭐 시간은 많네. 난 이제 자네에게 뭔가를 더 묻지는 않을 생각이고.

난 자네를 믿겠네. 자네 술은 좀 하나?"

"술은 잘 못합니다."

"그래? 알겠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별다른 말 없이 다시 노트를 펼치고 거기 적힌 글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 불길하고 꺼림칙한 느낌. 그러나 이 남자는 너무나 태연해 보인다.

이 남자에게서 수상함이 풀풀 묻어나오는데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호감.

생각은 멈춘다.

오늘부터는 이 남자와 함께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왠지 낯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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