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 보르드예프의 생존자들
* * *
"자네는 보르드예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워커 제레드는 그렇게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런데 말이야, 왜 저 야만인들이 생겨나게 된건지 궁금했던 적은 없었는가?"
"궁금했다...?"
그는 미묘하게 흥미로운 웃음을 띄고 말했다.
"교국은 아르간티아교를 믿고 있지. 지금은 말이야."
"지금은 이라는 말씀은...?"
"과거에는 또 달랐다는 말이지. 다르말록이라고 들어는 봤나?"
"다르말록 말씀이십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르말록. 들어보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선뜻 납득하기 쉬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르간티아의 대척점에 있는 신이 아닙니까?"
"그래. 뭐 그렇다고 하지. 교국은 본디 거기서 파생되었다고 하지.
종교를 그저 받지 않았던 이들이 따로 분화되었다고 하네.
종교적으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교국 내에서는 그 기원이 더욱 왜곡되었고 숨겨져 있지만 말이네."
"숨겨져있는 걸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말했잖은가. 난 마법사라고."
"그래서 큐로드, 왜 보르드예프 너머로는 아르간티아교가 전해지지 않는지,
왜 보르드예프가 성탑국이라고 불리면서 동시에 장벽이라고 불리는지 아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말이야, 보르드예프는 마녀사냥의 희생자들의 후손이 건너간 곳이기 때문이라네."
"마녀사냥 말입니까?"
"그래. 마녀사냥. 아르간티아교는 인간의 위대함을 찬양하지. 그리고 다르말록은 힘과 신을 찬양했네.
그러나 그 두 종교에 유일하게 파고들 수 있을 틈이 있다면 그게 뭔지 알겠나?"
"파고들 틈이 있을리가 없습니다."
"그래, 다들 자네같이 생각하곤 하지. 교국민은 다들 그렇게 여기곤 한다네.
그래야지 않겠나. 뭐든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은 완벽하길 바라거든.
더욱이 그게 나라의 기틀을 잡고 있다면 더욱."
"감사관께서는 대체 무얼 감사하러 오신 겁니까?"
"말했잖나. 이것저것이라고.
교국은 사실 매우 취약하고 부실한 국가라네. 그래서 종교라는 접점으로
억지로 구심점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겠나.
신앙이라는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개념에 국가를 의지할 수 있겠나?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결정권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거라네.
팔라딘, 그리고 종교 성직자들을 제외하고 나면 이 나라에서 신을 믿는 이들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네. 아르간티아가 지낸 것도 아니었던 교국에 뭐가 있겠나.
아르간티아가 실제로 지냈던 것은 아르간티아 초국인것을.
지금은 그래, 유레크로스겠군. 테르도어 대성당이 어디 있었는지 잊었나?"
"그런 이야기를 왜 하시는 겁니까?"
"교국이 기울고 있기 때문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안주머니에서 작은 명함을 꺼냈다.
"내가 이걸 안 줬었나?"
그가 건넨 명함에는 워커 제라드라는 이름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다만 감사원이라느니 하는 직책이 아니라 보라색 바탕에 노란 테두리,
그리고 마법사라는 가벼운 직책이 쓰여 있었다.
"혹시 진심으로 이런걸 주시는 겁니까?"
"이해하네,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언젠가 자네가 교국을 믿지 못하게 되었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거네."
나는 그에게서 모든 경계를 풀어버렸다.
더는 그를 경계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그 뒤로는 서로 터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맡은 임무를 다할 때까지 그에게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퇴근 시간이 되어 연구소 문을 닫으려고 하면
그는 말 없이 날 따라 나왔다.
"이제 가십니까?"
"그래야지. 먼저 들어가게. 난 할 일이 남아서."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아 맞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큐로드, 큐로드 다미아입니다."
그는 빙긋 웃어보이고 손을 흔들고 떠났다.
나는 조금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낡은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내가 웃으며 반겨주었다.
"다녀왔어."
"어서 와 여보."
"별 일 없었지?"
"그럼. 왜 그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은데?"
"아냐, 좀 피곤해서. 오늘 감사관이 왔거든."
"감사관? 연구소 관련해서 말하는거야?"
"응. 그래도 별 일 없었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그렇구나. 고생했네. 씻고 와. 밥 차려 놨어."
딱히 별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아내가 무언가를 느끼고 있음을 모를 수 없었다.
이제 가족이라고는 하나뿐인 아내였기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아내와 단 둘이 조금은 허름한 집에서 사는 것도 내게는 행복이었다.
나는 마법에 소질이 없었다.
영기술이니 마법이니 어떻게 부르던 관계 없었다.
단지 나는 그 공백을 기술로 메우는 대장간의 기술자들을 동경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재능없는 내게는 벅찬 일이었고, 결국 나는 교국의 연구소에 취직했다.
그나마 내게 가능한 것은 사고와 계산 정도였으니까. 어느 연구에서든 필요할 수밖에 없을
그런 능력을 증명해내야 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꽤나 바쁘기도 했었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뭐하지만 내 딴에는 나름 어려운 길을 거쳐서 들어온 연구소였기 때문에
모쪼록 오래 붙어있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별다른건 없었다.
평범한 식사를 했고, 평범하게 씻었다.
자기 전에는 아내와 적당히 몸을 섞고,
아이를 바라며 손을 마주잡은 채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침대에 나란히 누워 조금은 열기를 띈 숨을 뱉는다.
그리고 차분하게 창밖의 별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이 일상이 내게는 다른 무엇보다 중묘하다.
출근을 했더니 내 책상 이 조금 옮겨져 있었다.
내가 당황하며 서 있으면 워커 제라드가 인사를 건넸다.
"아, 좋은 아침. 자네의 자리를 좀 옮겼네.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니 걱정말고."
"아... 예..."
어떻게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려고 한건 아닌데 말이야,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네가 그 다미아 가문의 장남이라며?"
"아.. 아닙니다. 절연을 했습니다."
"그런가. 미안하게 됐네."
"아뇨, 신경쓰는 부분은 아닙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수염을 매만졌다.
"그냥 저보다 동생이 재능이 있었다.
그 정도겠군요. 저는 그저 먼저 떨어져나간 말에 불과합니다."
"말이라. 그런가."
다미아 가문과는 연락을 끊은지 꽤 된 상태기도 했으므로 거짓말은 아니다.
가문에서는 뛰어난 마법사를 배출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다.
아무 재능이 없던 나는 아버지에게 그닥 달가운 아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마카는 마법의 천재였다는 점일까.
나는 그래서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았고, 비교적 빠른 독립을 할수 있었다.
동생은 그 덕에 가문에 상당히 의지하는 깍쟁이가 되어버렸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프로파 다미아. 마법 연구를 첨예하게 발전시킨 인물이다.
물론 지금은 마카가 더 유명하지만, 아버지도 결코 마법에서 뒤쳐질 인물은 아니다.
"그 집안도 고생이 많군."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나도 비슷했다네.
마법이란 그런거지. 오랜 기간 흘러내리며 쌓아온 정수같은 것.
결국 계승되지 못하면 아까운 법이고 그렇다고 풀자니 아쉽거든.
지금에서야 가문별로 마법이 전해진다지만, 내 종파는 좀 아류였거든."
"마법 이야기는 썩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런가? 실례했군."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일주일 정도 남았을걸세. 잘 생각하게."
"일주일이요?"
"어쩌면 그보다 더 짧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뭐가 말입니까?"
"이 연구소 말이네. 곧 폐쇄될 거네."
"폐쇄라..."
"소장도 윌론드 박사도 자네의 인생을 책임져줄 수는 없네."
"생각좀 해보겠습니다."
"모쪼록 편히 하게. 아 그리고, 이건 내 권한이라서 말이야,
한동안은 집에서 편히 쉬겠나?
불가능한건 아니지만 서로 인도적 방식이 좋잖나?"
"쉬라는 게 어떤..."
"말 그대로의 이야기야. 휴가를 주지. 여행이라도 다녀오게.
이틀에서 삼일 정도? 돌아오지 않아도 되네."
그렇게 말하고 그는 고개를 돌렸다.
"가고 싶은 곳은 없나?"
"저...전..."
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이미 국경 밖에는 그들이 몰렸다네. 아무리 교국 시민들이 평화롭게 산다고 해도
전쟁은 반드시 합당한 댓가를 치르기 마련이네. 공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니만큼
치밀하고 잔인하며 역겨운 무언가가 있을테지."
"그럴수도 있겠군요."
"난 알고 있다네. 저 보르드예프의 짐승들이 어떻게 태어난건지.
교국이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 말이야. 자네는 그저 이용당했을 뿐이야.
늦기 전에 돌아가게."
"하지만 제 일터는 이곳입니다. 제가 지켜야할 조국의 정보가 여기 있고,
제가 이뤄놓은 영광이 여기 있습니다."
"그 영광이 빛을 보기 바라지. 그거 아나? 사성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사성이 왜 본격적으로 움직인답니까?"
"모르겠네."
나는 그의 말을 듣다가 자리에 앉아 작업에 착수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다리에 쥐가 나서 일어서면 그는 사라져있었다.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에 기지개를 켜면 그가 저 멀리서 무언가를 체크하고
종이에 적어넣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곧장 그에게 찾아갔다.
"절 부르셨다면 안내해드렸을텐데요."
"잘 자던데 깨우고 싶지 않았네. 그나저나 여기 기기가 오류가 있어보이는데."
"오류라고요?"
"분명 상부에 제출된 서류 양식에서는 인원 한명에게 부과된 실험으로서
기억력의 증진을 기대한다고 했는데 말이지, 이건 아무리 봐도 그런 용도는 아닌 것 같은데.
이건 기억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잔인한 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네.
아이들이 보기에 아주 부적절한 참혹하고 암담한 사건을 영상화했어.
특히 여기 보게, 목이 잘린 남성의 사체와 그 단면을 보여주는 부분. 나체로 덜렁거리는 성기까지.
아주 훌륭한 고어 포르노야."
"다 아시면서 일부러 그러시는 겁니까?"
"일부러라니?"
"저를 죽이고 오늘로서 연구소를 폐쇄시키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뭘 원하시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을 의심하시는 것은 변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난 자네를 의심하지않는댔지,
이 공간에 대한 의심을 벗는 것은 공언한적이 없어.
말했잖나. 저 밖의 야수들은 마녀의 후손이라고.
사역마를 모으던 여자도 있을거고, 연금술을 하던 이들도 있었네.
이들은 문명을 등지고 살아야 했을걸세.
하나의 뛰어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수백년을 결핍속에 살아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그 성과를 자유롭게 나누었다네.
금기가 없는 집단속에서 천천히 망가져갔지.
감정은 쾌락을 추구하고 도덕은 가치관에서 벗어났다네.
마녀, 마법사들이 어지간한 일로 쾌락을 느낄 것 같은가?
어렵지. 암, 어렵다네. 결국 원초적인 즐거움이 이지적 쾌락의 역치를 넘어서는 순간이 온다네.
키메라 연구도 활발했을거고, 사역마의 존재도 좋은 수단이었겠지.
그들은 자신의 몸을 보존하고 후대를 남기는데 주력했다네.
그 과정에서 따르는 부산물로 쾌락을 즐겼다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목적은 수단이 되고 말지. 수단은 목적이 된다네.
댓가없는 쾌락을 원하는 이들과 그 쾌락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쾌락을 양산하려는 자.
있을 수 없는 호기심이 빚어내는 금단의 보루가 기어이 몸에 새겨지는 것일세.
미리타엔의 기술적 연구와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결말에 도달하지.
결국 수간이 일상화되기 시작하는 거라네."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지. 처음에는 인간, 그리고 점차 수간, 그리고 다시 인간.
교미의 대상은 시시때때로 변했다네. 그저 보이는 대상을 쾌락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네.
그리고 거기서 행복을 느끼지. 왜인줄 아나? 죽음을 목전에 둔 이들은 절박하거든.
눈 앞에서 죽음이 일렁이는데, 바로 손 뻗으면 닿을 삶의 쾌락을
그들이 금기라고 포기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걸세.
반복되는 루트속에 유전자는 변한다네. 왜 저들이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을 따르겠나?"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아는 방법이 다 있다네."
"혹시 감사관님께서는..."
"인간이네. 보다시피."
"그렇습니까."
"너무 뛰어난 마법을 추구하다 오히려 원시적인 생활에 목을 메는 이들이라니.
재밌지 않나? 그런 이들이 마침내 우리에게 눈을 돌린걸세.
그것도 증오로 말이야. 이곳을 그들이 발견한다면 눈이 뒤집히겠지.
무엇을 했는지도 어렵지 않게 알아낼 거고. 그게 싫었다면,
적어도 선반에 꽂힌 연구 일지 정도는 치워두지 그랬나.
왜 저들이 성탑국이라고 불리는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과거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법은 모두 신의 선물같은 거였다네.
그래서 그걸 거부하고 인간의 산물로써 기술이 존재하는 것이지.
보르드예프의 마녀, 마법사들은 모든 유전자를 보관했다네.
물론 유전자 외에도 마법 따위를 기록한 서적과 과거부터 교국이 행한 일을 적은 책을 내기도 했어.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보관할 탑을 만들었다네. 그게 바로 성탑이지.
저들의 언어로, 보르드예프. 그래서 보르드예프 성탑국이라고 불리는 걸세.
교국에서는 허가받지 않은 신을 섬기는 이들이라고 했지만,
저들의 입장에서는 악을 일삼는 우리가 신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이니
얼마나 재밌겠나."
"전 잘 모르겠습니다."
"진심으로 충고하는걸세. 떠나라는 말은, 도망치라는 거네."
"감사관님께서는 왜 그런 말씀을 제게..."
"말했잖나? 자네는 무고한 사람이라 믿겠다고.
준 명함은 잘 가지고 있겠지?"
"네... 그렇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