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 단 하나의 진실을 마주했을때
* * *
"난 그래서 저들이 왜 이곳으로 눈을 돌렸는지에 대해서 알아내기 위해 이 일을 자원했네.
교국 출신이지만 누구보다 교국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 중 한명이네.
혹시 불편한가?"
"아...아닙니다."
"솔직해져도 된다네.
교국이 먼저 저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은 분명하다네.
다만 그 방식이 무엇이었느냐의 문제라네. 분명 교국은 전쟁선포를 했고,
저들은 받아들였어. 그리고 전쟁은 7년째 이어져왔지.
하지만 물밑전만 이어질 뿐, 직접적인 맹공은 없고, 그럼에도 종전은 하지 않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저들을 화나게 만들었단 말인가?"
"...."
"그건, 이거라네 큐로드. 기도하는 성자의 팔."
씨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감춰야 했던 것을 태연하게 알고 있다며 말을 꺼낸 그에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뼈였다.
마른 뼈로 시작하여 그 끝에서 점차 고목의 줄기처럼 엮여 끝에 푸른 잎이 피어난
오래된 성물이라고 했다.
화분으로 위장하여 거꾸로 꽂아두고 나무처럼 보이는 부분만 남겨두었음에도
그는 태연하게 화분에 박힌 팔을 뽑았다.
"이게 뭔지알고 있나 큐로드?"
"모릅니다."
"이건 기적을 몸에 받은 인간의 뼈라네. 아르간티아교에서는 주요한 의미를 가지는 물건이지.
그리고 동시에 보르드예프에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보르드예프의 마법사와 마녀들 사이에서 기적이 태어난 걸세.
아아, 아름다운 일이지. 기적이라는 이름답게 팔의 주인은 보르드예프에서도
추앙받는 지도자였네. 그 원시적이던 국가를 부족국가 사회로 변화시켰으니까.
그리고 결국 죽은 성자의 팔을 교국은 팔라딘을 앞세워 기어이 가지고 돌아온 거네.
우스운 일이지. 결국 빈약한 종교와의 연결점을 위해서 성물을 강탈하는 교국이라니.
알고보면 근본조차 없다는 점이 더 재미있잖나."
"뭘 그렇게 재미있는 일이 많으십니까?"
"재미 없었나?"
"지식은 늘었습니다."
"그래, 그거면 된거네.
난 자네에게 휴가를 줬다네.
이틀동안 말이지. 내일 모레 출근하게. 그리고 가능하면 안와도 되네.
자네가 3일째 출근하지않는다면 나는 이 연구소를 그날 바로 문 닫게 할 생각이네."
"뭘 노리고계십니까."
"아무것도 노리지 않네."
"예...?"
"이것이 옳으니까 하는 것 뿐이야."
"옳다는건 누가 정하는 겁니까?"
그는 대답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머뭇거린 내 눈을 보고 그가 대답했다.
"세상이 인간을 위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네.
인간은 그저 그들을 탄압했을 뿐, 그 무엇도 바꾸지 못했다네."
"하지만 교국은 신의 뜻에 따라서..."
"그건 누구를 위한 신인가?
누가 만든 신이지? 교국은 실패한 나라인 걸세.
언제까지 그 종교로 나라를 유지하겠는가.
법이 종교위에 서지 못하는데 어떻게 올바른 통치가 가능하겠나.
애서 숨기려고 해봐야 결국 드러나기 마련일세."
"전 잘 모르겠습니다. 미 모든 상황이 전부 말입니다."
"그래도 되네. 계속 이야기할까? 보르드예프의 지도자.
그녀의 이름은 첼세이라였다네. 첼세이라라는 이름은 지금도 고서적에 종종 등장하지.
용과 인간의 혼혈이라는 종족적인 특색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네.
그렇다면 용은 무엇인가? 그리고 용과 인간의 교배에 생명이 잉태할 수 있는가.
여러가지 난제를 낳았던 여자였지.
그녀는 300년을 살았다고 전해지네. 물론 엘프들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지.
순혈 용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짧은 생이지만 인간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준이었으니
그녀는 자연스레 보르드예프의 지도자가 되었다네.
거기 있는 거라고는 인간과 짐승, 그리고 수인들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수인들과 마녀가 대체 연구소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겁니까.
그 첼세이라는 또 뭐고 말입니까?"
"아직도 모르겠나? 용의 피를 가지면서 반쯤은 인간인 첼세이라의 팔은 성물임과 동시에
귀중한 샘플로써 존재한다네. 아르간티아와 같은, 그래. 인간이
무한한 수명에 도달하게 만드는 열쇠를 쥐고 있는 거네.
어떻게 보면 그건 신과 인간을 동시에 모욕하는 일이었다네.
당연히 반발이 거셌고, 교국은 이를 성물로 포장한 거라네.
타국에 있는 성물을 신의 이름으로 회수했다고 하면 다소 반발이 있다고 해도
국민들은 자연스레 넘어가게 되지.
그걸 보고있지 못한 보르드예프에서 침공을 시작했던 거라네."
"거짓말... 그렇다면 왜 교국은 여전히 길드와 교회로부터 추앙받고 있는 겁니까?"
"그래서 말하잖나. 교국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네.
자네도 이제 짐작하고 있지 않나? 내가 연구소에 왜 찾아온건지."
반박을 하지 못했다.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어. 나야 물론 어떻게든 탈출구를 마련해 두었지만,
자네는 이대로 간다면 여기저기서 물어뜯기고 버려질거라네.
교회를 원한다면 유레크로스로 가게. 문화를 원한다면 엠페레스로 가게.
그리고 안정성있는 국가를 원한다면 미리타엔으로 가게."
"이곳에 남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마 무의미하게 죽지 않겠나?"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교국은 적이 많다네."
그렇게 말하고 워커는 주변을 둘러보고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나는 앞으로 여기서 3일쯤 더 있어야 했을걸세.
그런데 이제는 내가 기도하는 성자의 팔을 찾아냈기 때문에 굳이 이곳에 더 있을 이유가 없지.
왜 이 팔이 뼈와 고목이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는 줄 아나?"
"모르겠습니다."
뼈에 담긴 마력이 뼈의 성분을 변화시키고 있는 거라네.
이제껏 연구소에서 자네가 한 일이 뭐든간에, 큰 소득은 없었을 걸세.
때로는 불합리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 없었나?
들인 비용에 비해 너무 소탈한 성과를 거두거나,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폐기된 사안은 없었나?
무엇보다, 속고 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나?"
"이 손은 말이야, 그냥 장식이 아니야...
마법을 다루지 못하는 이들에게 마력을 부여해주는 물건이지.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면, 교회에서 만드는 성수의 원재가 되는 물건이기도 하다네.
더는 신앙심이 없는 팔라딘과 성직자들에게 마력을, 아니... 신성력이라고 부르는게 맞겠군.
그래, 신성력을 부여하는 물건이라네."
"하지만 저는 그런 일에 관여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냉정해지게. 자네는 다미아 가문의 장자일세. 저들이 자네를 왜 뽑았다고 생각하나.
마력 연구에 아무 능력을 보이지 않는 자네를 어떻게 대했는가.
결국 내쳐지고 이곳에 자네가 남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자네는 그저 저들에게 먹기 좋아 보였던 떡에 불과하네.
그 떡이 먹을게 없다는 걸 깨달은 이후에는 버렸을 뿐이지.
자네가 이곳에서 맡은 연구는 뭐였나?"
"저는 하달받은 약품의 개발을..."
"그래, 그 약품의 개발에서 주로 확인한건 단연 균등한 비율로 생산되며
일정 수치 이상의 효능을 보이는가의 확인이겠지?"
"그렇습니다..."
"부차적으로 몇 개의 임무가 더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연구소는 비윤리적인 일들을 전담하는 곳이었네."
"전... 전 대체...."
"결정적으로 알려주지. 자네를 그들이 증언대에 세우지 않은 것은 하나의 이유일세.
자네는 어떻게라도 '연구소'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것이기 때문이네."
"네...?"
"연구소라는 것은 과학을 탐구하는 것이네.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인간의 잣대로 규정하고 탐구하기 위해 발달해왔고
논리로 그의 영역을 풀어내기 위해 만들어지는 학문이란 말이네.
신의 영역에 이유를 붙이고 정당한 근거로 그 권위를 떨어뜨리지.
마침내 신이 그저 현상이라는걸 밝혀내는 것이 연구소란 말이야!
신을 믿고 따르는 교국에서 연구소라는게 얼마나 모순적인지 알겠나?
교회가 정부보다 힘이 강한 나라일세. 정부는 추상적인 개념만을 가지네.
모든 실권은 교회로부터 나오고 교황은 그 권력을 휘두른다네.
왕은 그저 허수아비이며, 그 뒤에서 교황이 왕을 쥐고 흔든다는 걸세.
그런데, 그런 나라에 연구소가 존재한다는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연구소란 말이네 연구소. 정부도 틀어막은 교회가 왜인지 살려두는 연구소.
존재적인, 구조적인 부조화라는 생각을 자네는 정말 한 번도 해본적이 없나?
연구소는 그 존재만으로도 교국의 정당성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걸세.
받게나."
그는 내게 늘 펼쳐보던 노트를 건넸다.
그 페이지에 적힌 것은 그의 메모와 상부에서 내려온 것으로 보이는 지령이 있었다.
[교국의 병원 감찰에 대해서.]
필시 그 내부는 병원이 아닐 것임.
실제로는 약학과 관련한 여러가지 프로젝트가 내부에서 진행중임을 확인함.
불필요한 연결점이 과하게 많으며 이는 대부분 성직자와의 커넥션.
[인원의 통제와 진상을 아는 이들에 대한 처리.]
병원의 위치를 물었으나 주민들은 병원에 대해서는 긍정적 입장을 보이지 않음.
병원의 위치를 물었음에도 제대로 장소를 이해하지 못함.
조사 도중 별도로 구성된 인원이 나에 대한 신원을 확인.
(환자 외에 병원에 찾아오는 것은 현재 엄금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신빙성이 부족함)
[병원을 연구소라고 부르는 이들에 대한 조사.]
병원장. 상기 사항을 부정함. 백신을 제조중이었다고 주장.
실제로 다량의 백신이 확인되었고, 창고에 포장이 된 제품이 있음.
교국 정부에서 파견되었다는 말에 회의적 반응을 보임.
윌론드 박사. 병원에 정기 기증을 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
정기적인 기증 내역을 확인했으나 그에 반해서 돈의 사용처가 명시되지 않음.
오히려 병원측에서 그 답례로 보내는 것인지 불분명한 악품을 매달 정기적으로 지급하며,
이 약품의 사용처에 대해서도 함구중임.
알보네 교사. 환자들을 돌보는 일 외에 별다른 일은 없었다고 주장.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시선처리에 부자연스러운 모습.
"아니.... 이건..."
"자네를 제외한 간부들은 이곳이 병원이라고 일관되게 진술해왔네.
서류상으로는 병원으로 적혀있기도 하고, 정확히는 애초에 연구소였던 적이 없었지.
연구소는 정확히 16년 전에 설립되었지. 실질적으로 교국을 지탱해오던건
교회들이 아니라 이 작은 연구소였다는 의미라네.
더 볼텐가?"
"괜찮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어디든 가게나. 배편일세. 자네에게 준 휴가는 아직 유효하니 잘 생각해보게."
"제가 떠나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자네가 알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불쾌함과 섬찟함.
왜 이런걸 내게 알려주는 건지 몰랐던 어제의 얄팍한 의심에 대한 답은
이제 그의 눈빛에 여과없이 담겨있다.
연민. 그리고 동정. 내게 보이는 그 눈이 한없이 나를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초라하게 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짐을 챙겼다.
"결심했나?"
"전... 이만 퇴근해보겠습니다.
조금 생각을 해 보고... 결정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그래, 고생하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곧장 집으로 달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냉큼 집 문을 열면 아내가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나체로 아내와 뒤엉킨 남자는 내가 한번도 본 적 없던 얼굴이었다.
"오늘 6시는 되어야 온다며?"
그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당황한 표정으로 동공을 떨며 내게 다급히 손을 내젓는 아내의 얼굴.
"아야 여보! 내가 내가 다 설명할 수 있ㅇ..."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후우..."
나는 말 대신 챙겨온 가방을 바라보았다.
낡은 가죽 가방에 든 내 짐이라고는 펜 몇 자루와 노트 두어권,
그리고 이제는 아무 가치도 없어져버린 연구소의 잔재였다.
뒤따라 나온 아내는 황급히 걸칠 것만 걸친 것 처럼 가운을 입고 있었다.
"여보...!"
"한동안은 야근할 것 같아."
"어....어어..."
"할 말이 없네."
"ㅁ..미안해..."
"아냐... 그냥 차라리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그랬어.
어제 나랑 자자고 한게 그것 때문이었는줄 몰랐지.
그냥 처음부터 아무것도 믿지 말아야 했는데.
아니, 끝까지 아무것도 몰랐어야 했는데."
처음으로 알게된 진실은 너무나 매정했다.
나는 아내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연구소로 돌아갔다.
"떠나겠습니다."
워커에게 한마디만 남겼다.
"심경의 변화가 있는 모양이군."
"....."
"조언 하나만 하지. 진실이 늘 달콤할거라고 생각하지 말게."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항구로 떠났다.
그리고 유레크로스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왠지 모르게,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엔샤레네가 거기 살아있는지.
바닷 바람 사이로 괜히 그가 한 말이 울렸다.
"진실이 늘 달콤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