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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238화 (238/303)

〈 238화 〉 신이 사라진 날에

* * *

교국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꽤나 먼 길을 이동했다.

급히 서두르다보니 시간을 상당히 단축할 수 있었다지만

그건 내게 있어서도 절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교국에서는 이번 연구소의 사건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판단했는지

국경을 자체적으로 봉쇄했고, 사성을 포함한 일부 성직자만이 국경을 드나들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섣불리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리타엔의 무령직위를 달고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엠페레스에 임시로 며칠을 체류하게 되었다.

엠페레스에는 이미 상당히 많은 이들이 갑자기 봉쇄된 국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번 달 매출은 착잡하군."

"웃기지 말라고 해. 씨발 이쪽은 거금을 주고 산 성수라고!

니들이 쳐 막아서 약빨 떨어지면 책임질거냐! 배째든가 개새끼들아!"

저마다의 사람들이 국경 지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

이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마마."

"응?"

"멍무이 어디써?"

"멍멍이 없어... 나쁜 말이야..."

"멍무이 나빠?"

"아냐, 저 아저씨가 나쁜 말을 한거야... 멍멍이 안나빠..."

"구루꾸나..."

교국측에서는 국경통제에 상당히 힘을 준 것 같았는데,

그냥 보기에도 팔라딘급 되는 인물들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일반 병사나 군인은 섞여있지 않다는 것이 아이러니 했지만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엠페레스에 마냥 잡혀 있을 수도 없었고 교국으로 넘어갈 방법도 찾아야 했으며

그러면서 국제적으로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방법을 알아야 했다.

지금 상황에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하나 뿐이었다.

"널스페이지였지."

널스페이지는 이미 분주한 모습이었다.

교국의 사태로 인해서 사실상 엠페레스와 이어지는 국가는 해로의 무역을 배제하면

없는 실정이었고, 해로의 주기적 순환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삶에 어느 정도의 정체와

경제 침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자명했다.

엠페레스 자체의 내수시장은 그다지 크지 않았으니까.

문화 예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삶에 여유가 존재할때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런 여유를 지니던 사람들이 다시 팍팍한 삶의 경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면

이들은 과감하게 문화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방문하기도 전에 끊임없이 정문에서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바쁜 얼굴들을 하고 뛰어다녔다.

거기 틈바구니에 낑겨 사람을 만나기도 두려워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상황은 확실히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이 거기! 이렇게 바쁜 상황에 편승해서 얼렁뚱땅 쓰레기같은 기사 섞어놓은거 누구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오래 걸리지 않아 그는 안경을 한손으로 올려쓰고 달려나오며

한쪽 팔에 낀 서류가방을 들고 회사 건물 옆에 세워진 소형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나 다녀올동안 정리 제대로해서 내 책상에 올려두세요.

그리고 외근 나간 브레프 돌아오면 지난 6월 교국발 자료 찾아달라고 하세요.

이번 사건은 그때와 상당히 유사성이 많은 것 같으니까."

"다녀오세요 부장님."

모건이었다.

늘 바쁘게 사는 얼굴은 지금도 시간에 쫒기고 있었다.

나는 차창 너머로 그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내 손짓이 보인건지 그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차창이 조금 내려가고 모건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찾아 오신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지금은 좀 바쁘군요. 일거리가 밀렸습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금 저를 포함해서 모든 직원들이 바쁘기 때문에."

"그래 보이네요. 언제쯤 여유가 생기실까요?"

"저도 확답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이라서요.

넬리스의 카페에 이야기를 해 두겠습니다.

거기서 쉬고 계시면 일이 끝나는대로 찾아 뵙겠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아뇨, 절 찾아온 손님을 이렇게 대할 수밖에 없는 점이 죄송하군요.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작은 차는 골목을 돌아 멀어져갔다.

나는 그가 말한대로 넬리스의 카페로 향했다.

아직 삐삐가 내 가방 안에 있던 시절에 들르고 그 이후로는 가 본 적도 없었기에

꽤 색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어째 가게 상태가 영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손님이 없이 텅 비어있는 가게 안에는 마른 천으로 컵을 닦아내고 있는 넬리스,

그리고 그 앞에서 말상대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남자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어서오세요. 연락 받았어요. 오랜만이네요 언니."

"오늘은 꽤 한적하네요?"

"네, 아무래도 경기가 안좋다보니까 사람들도 여가를 줄이고 휴식을 기피하려는 추세라서요.

이제 손님이라고 보이는건 이 지긋지긋한 녀석 뿐이라구요."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제서야 앉아있던 손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얼굴은 관리를 한 것처럼 흰 편이었고, 그 눈에는 왠지 모를 장난스러움이 있었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남자는 태연하게 커피잔을 들고 내게 말했다.

"왜, 뭘 그렇게 봐."

"그 목소리는 해피네요?"

"캐스빅!"

"그래요. 아무튼 반가워요. 그 천쪼가리 벗으니까 인물이 훨씬 나아 보이는데요?"

"당연하지. 그때야 뭐 군에서 날 찾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어쩔수 없었다지만,

지금은 이제 자유로우니까 굳이 그러고 다닐 이유가 없다고나 할까.

나름 모험가로도 정착을 했거든."

"웃기네. 그냥 우리 가게에 정착을 하셨겠지."

넬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그의 말을 잘랐다.

캐스빅은 말 대신 커피만 마셨다.

"그래서 캐스빅씨는 왜 여기 계시는건데요?"

"그냥... 뭐... 나야 한결같지. 이 집 커피가 맛있어질때까지 지켜보려고."

"아 맛없으면 나가라니까 왜 맨날 와서 지랄이야 지랄이!

우리집 커피는 너만 빼고 다 맛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며 째려보는 넬리스의 눈을 보면서 캐스빅은 괜한 헛기침을 했다.

"흠흠... 뭐, 많이 나아지기는 했어..."

확실히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알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넌 뭔데 자꾸 실실 웃어!"

캐스빅은 아무래도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은데에 기분이 상한 것 같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순순히 물러나 줄수는 없었다.

"일이 좀 있어서 여기서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은데요."

"허! 누구맘대로?!"

캐스빅이 그렇게 막아보지만, 넬리스가 막아섰다.

"너야말로 누구 마음대로 손님을 나가라 마라야? 가게 주인은 나야.

그래서 언니, 뭘로 드실래요?"

그제서야 내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삐삐가 넬리스를 보고 웃어보였다.

"어머! 얜 누구에요? 동생이에요?"

"아니, 내 딸이에요."

그 말에 제일 놀라보인 것은 넬리스도 아니라 캐스빅이었다.

"뭐? 따알? 따아알?"

"왜 그렇게 놀라시죠?"

"아니... 어 뭐랄까...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데 결혼을 해서 딸이 있다는게..."

"장담하건데, 여기서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없을 거에요."

그는 허허 웃다가 말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삐삐는 쪼르르 달려가서 바테이블에 앉았다.

"안뇽! 나 앨리쑤!"

"어머어머 그래? 언니는 넬리스야!"

"아냐! 넬리쑤가 아니라 앨리쑤!"

"그래, 앨리스야 안녕. 넬리쑤는 언니 이름이야."

"넬리쑤야?"

"응. 언니는 넬리스."

"우와!"

삐삐는 신기해하면서 날 돌아보았다.

"삐삐는 그래서 뭐 마실래?"

"커피!"

"그래? 알았어. 엄마가 시킬게?"

"응!"

나는 넬리스에게 주문했다.

"핫초코 하나랑 에스테리카 하나 줄래요?"

"핫초코 하나랑 에스테리카 주문 받았습니다."

넬리스는 커피를 내리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엠페레스에는 또 어쩐 일로 오신 건가요?"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까 또 그렇게 되어버렸네요."

"어쩌다 보니까 라구요?"

"네. 아무래도 직위가 또 있다 보니까요."

"무령이라고 하셨죠 참?"

"네. 생각같아서는 그냥 상담소 사장님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상담소요?"

"아, 미리타엔에서 작게 하고 있거든요."

"작게... 그래도 저희 가게보다는 크겠죠?"

"아니에요. 이 건물의 절반도 채 안되는 정말 작은 크기에요.

너무 크면 관리가 어렵더라구요."

"그렇게 작은 가게를 운영하시는줄 몰랐네요."

"돈을 벌고 싶으게 아니라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서요."

그렇게 말하면 그녀는 웃으면서 따뜻한 우유에 코코아 가루를 섞어

핫초코를 만들어 삐삐에게 건넸다.

"자, 앨리스야. 네 커피야."

"우앙!"

삐삐는 조막만한 손으로 잔을 잡더니 바로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아뜨!"

"미안해, 많이 뜨거웠니?"

"아뜨아뜨야!"

삐삐는 그렇게 말하고 조심조심 컵 손잡이를 잡았다.

"식혀줄걸 그랬네. 언니가 너무 뜨겁게 만들었나보다."

"마시마로 너어두 대?"

삐삐는 가방에서 마쉬멜로우를 꺼내 코코아에 넣었다.

뜨거워서 그런지 꽤 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발레리아가 삐삐에게 가르친 모양이었다.

그러면 넬리스는 잔을 받아가서 살짝 휘저어 가열해준다.

삐삐의 잔 위로 마쉬멜로우가 녹아서 단내가 물씬 풍기면 삐삐는 눈을 반짝이며

어느새 꼬리를 파닥이고 있었다.

어째 둘이 참 잘 맞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꼬리를 눈치채기 전에 빠르게 꼬리에 작은 마력을 보냈다.

꼬리가 간지러운 느낌을 받으면 삐삐는 빠르게 다시 치마 속으로 꼬리를 쏙 집어넣는다.

그리고 한잔을 겨우 입에 가져다 대고는 신이 난 얼굴로 말한다.

"마시떠!"

그 모습을 보다가 해피가 내게 말했다.

"애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겠네."

"당연하죠."

"나도 애 ㄴ..."

"에이, 누구 인생을 말아버리려고. 아서라 아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넬리스가 말을 자른다.

"야! 해보지도 않고 네가 어떻게 알아!"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왜냐니! 당연히...!"

"당연히 뭐?"

"후... 아니다..."

"병ㅅ... 아차...."

구수한 이야기를 내뱉으려다가 삐삐를 돌아보고 말을 삼키는 모습에

삐삐는 나를 바라보다가 내게 코코아를 내밀었다.

"마마, 모고볼래?"

"아니, 엄마는 커피 나오면 마실게.

그나저나 내 커피가 좀 오래 걸리는데..."

"아! 내 정신 좀 봐. 너 때문이야 캐스빅.

주문하신 에스테리카 나왔어요!"

바로 내민 에스테리카는 확실히 조금 식긴 했지만 그래도 모락모락한 김이 나고 있다.

"조금 늦기야 했지만 그래도 맛은 괜찮을거에요!"

나와 넬리스의 대화에 시선만 옮기면서 캐스빅은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 잔은 이미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안되겠다. 나 에이드 한잔 줘."

"에이드? 평소에는 잘 안마셨잖아?"

"그냥 오늘은 땡긴다고. 손님 주문에 태클도 걸어?"

"어련하시겠어."

"쟤 코코아 먹는 거 봐라. 얼마나 귀여워? 나도 가끔은 좀 산뜻한 것 좀 먹고 싶다니까."

"내가 진짜 모건 삼촌한테도 들었고 엄마한테도 들어서 이젠 귀에 딱지가 앉은 말이 뭔지 알아?

불쌍하다고 만나주고 진심 같아보인다고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었어.

알아?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야, 너같이 일년 내 가게에서 죽치고 있으면

모를 수가 없겠다 바보 멍청아."

"어...어? 아니거든!"

"나는 뭐 바보야?"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잔을 내려놓은 삐삐가 내게 와서 말했다.

"마마, 나갔다 오까?"

"왜?"

"배구파. 밥!"

"그래? 그럼 그러자. 식사시간이 넘긴 했지.

퓨어하트씨 가게에 들러야겠네."

삐삐는 와락 달려들어 내게 업혔다.

"가쟈!"

"그래. 미안해요 넬리스. 잠시 식사 하고 올게요."

"그러세요."

우리가 가게를 나오고도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아무래도 저 꼬마가 너보다 눈치가 좋은 것 같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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