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화 〉 변수
* * *
다시 카페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퓨어하트가 말한 펍을 찾았다.
지하나 혹은 외진 골목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대로변에 당당히 있었다.
딱히 수상해보이지는 않았지만 정말 저렇게 태연하게 문을 열어두고 술을 마시는 모습은
조금 유별나다는 느낌을 주었다.
왠지 조금은 흥미가 생겨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면 앞에서 막아섰다.
"술집으엔 아이루을... 데뤼고 오쉬이면... 안댐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한 손에 위스키를 들고 부즈를 날리고 있었다.
얼굴은 상당히 입체적인 편이었는데, 눈이 크고, 코가 낮았다.
그럼에도 입체적이라고 느낀 것은 돌출되어있는 광대와 입 때문이었다.
뺨과 광대는 이미 붉게 물들어 누가 보더라도 취했다는 것을 잘 알수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술을 그렇게 잘 마시는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
삐삐는 이미 밥을 먹고 노곤해진건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심스레 삐삐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혹시나 해서 챙긴 후드를 덮어주었다.
졸면서 삐죽 튀어나온 노란 뿔을 누군가 본다면 골치아파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베어핏 카페로 돌아가 넬리스에게 삐삐를 맡겼다.
이미 해피는 어디론가 사라진 이후였고 한산한 카페에는 오전보다 손님이 늘어 있었지만
그 마저도 이 넓은 카페에 듬성듬성 자리한 모습이 어딘가 허전하다는 인상을 줬다.
잠깐 뉘일만한 곳을 빌릴 수 있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흔쾌히 작은 침대를 내 주었다.
"집에 이런 침대가 있네요?"
"네, 이건 제가 어렸을 때, 아빠가 직접 만든거에요. 아빠가 저를 이 침대에 재우셨어요.
이제 쓸 일도 없는데 왠지 버려지질 않더라니. 이런데 쓰려고 그랬나봐요.
아이구 귀여워라. 그런데 왜, 어디 가세요?"
"아, 잠깐 일이 생겨서요."
"가게 닫기 전까지는 오셔야 해요?"
"네. 아마 그럴 거에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펍으로 돌아갔다.
펍에는 여전히 아까 그 남자가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가 입장하려고 하면 그는 앞에서 날 막아서더니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딸꾹...! 음.... 흐끅!"
"왜요?"
"어른... 맞나...?"
"네. 맞습니다."
"그런가? 그릉가부다."
그렇게 안쪽으로 가서 앉으면 남자는 대꾸없이 다시 창가에 앉아 술을 마셨다.
"저 주문하려고 하는데요?"
"아? 지금 장사 안하는데에?"
"뭐라구요?"
"말을... 안했구나? 어으 미안함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가게 문을 다더놔쓰야 되는디 그죠?"
"아..."
"그래도 와쓰이께 하나 주까? 먹고 갈라우?"
"아...네 그럼 간단한 거라도 한 잔 부탁드릴게요."
그는 혀꼬부라진 말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병을 짤그락대다가
이것저것 섞은 것 같은 칵테일을 하나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내 앞까지 비틀거리면서 가져오더니 내게 내밀었다.
내가 컵을 받으려고 하면 손을 휙 돌려 혼자 피식피식 웃더니
컵을 휘릭 꺾어 자기가 마셔버린다.
"안줘~"
"이런 뭐..."
내가 뭐라고 말을 하다 보니 그의 눈이 설깃 보인다.
술에 취한 얼굴인건 분명해보였다.
다만 문제라고 하면 저 눈과 묘하게 훌쩍이는 코였다.
왠지 모르게 자꾸 허공을 떠도는 눈과, 증언.
손님이 잘 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몇 없는 손님으로부터 많은 돈을 받는 것인지
여전히 장사에 큰 차질이 없다는 이야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들로부터 돌아오는 묘한 정적의 시선.
그건 술주정을 뱉고있는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왠지 모르는 불길한 시선의 끝에는 내가 있다.
이 낭만적이던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여유와 예술이 사라지고 나면
그들의 시선 끝에는 묘한 적막 뿐이었다.
불길한 기분이 들어서 가방에서 수면부를 꺼냈다.
오랜만에 쓰는 것 같아 슬슬 낯설 것 같았다.
요즘 들어서는 쓸 일도 잘 없었는데.
수면부에 불을 붙여 띄웠다.
차차 쏟아지는 졸음을 품은 연기가 뻗어나간다.
거리를 덮으면서 반경 20m정도 퍼지는 연기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덮기 시작한다.
내게도 연기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해 슬슬 졸려오기 시작한다.
여기서 잠을 자도 큰일이기 때문에 한숨을 크게 내뱉고 마력을 끄집어냈다.
간단하게 말하면 마력으로 스스로에게 자해를 해서 잠을 쫒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반응. 잠이 조금은 깬 것 같은 정신이 말똥해진 기분이었다.
이전과는 어딘가 다른 것 같은 감각. 그러고보니 이전에 수면부를 사용했을 당시에는
아직 에스트로의 마력을 받았었던 피의 마녀였을 때였다.
지금은 마력을 둘러 조금은 수월하게 졸음을 참을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나는 내가 이전보다는 성장했음을 괜히 또 한번 느꼈다.
삐삐를 데려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게문을 닫고 다시 술을 마시던 남자를 바라본다.
"야."
"으이?"
"너 그거 줘봐. 술 아니지?"
"히히... 술인뒓..."
잔에 담긴 술을 빼앗았다.
잔뜩 취해버렸으면서도 악력이 꽤나 강해서 쉽지 않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마약이다. 그제서야 나는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두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에 보이는 술잔과 그 아래 쌓인 설탕 따위.
그리고 안쪽에 보이는 봉지안에는 흰 가루들이 쌓여있었다.
"어후... 가관이네."
이 상황에 어디서 이 많은 양의 마약을 들여오는건지는 둘째치고 이 사람이 대체 누구와,
왜 어떤 목적으로 마약을 가져와서 거래하는 건지를 알아야 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 중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마 내가 마약을 거래하는 사람이라고 여겼거나
혹은 내 방해로 마약을 거래하지 못한 이들이겠지. 나는 지금 미리타엔 소속으로 온 것이기도 했으니
행동을 조심해야 할 필요는 있었다. 이번 일로 미리타엔에 이상한 루머가 엮일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봉지들을 모두 챙겼다.
가방에 하나한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여기로 모건을 불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면 약에 쩐 그는 아직도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테이블에 기대서 히죽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가방에서 RIC9호를 꺼내 먹였다.
마약 효과와 숙취가 해소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으...으어..."
"정신 좀 차리시고. 자, 일단 묻고싶은게 많은데. 저 약들 쌓인 것부터 시작할까?"
"누...누구.... 무령...무령이 왜..?! 씨발... 그 새끼들.. 나한테는 피해 없을 거라고 해놓고...
젠장... 나는 몰라요! 모른다고! 그새끼들이 그런거야! 알잖아요!
나는 그냥 갑자기 교국새끼들이랑 연결도 끊겨버렸다고요! 왜 미리타엔에서...
아아..."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짚이는 게 있었던 건지 순순히 불기 시작한 남자를 보면서
나도 그걸 기점으로 캐내보기로 했다.
"교국에서 약 준비해준거 맞지?"
"네... 네 맞습니다... 교국에서 지속적으로 약을 제공받아서 브로커한테 팔았습니다.
지하 경매에도 값을 쏠쏠하게 받을 수 있어서..."
"대가로 뭘 해줬지?"
"그...그게..."
"대답 안해?"
"그... 원래 제가 미리타엔 소속이었거든요...
원래 노예상을 하기도 했었고, 거리 떠돌아다니다가 늑대새끼들한테 잡혀서
교국으로 호송되었다가... 거기서 면책조항을 신설해주겠다고... 자기들 말을 들으면
문제없이 큰 돈을 만지게 해 줄거라고 해서 거래를 받고 여기로 건너왔거든요...
그래서 이제 교국이랑 지속적으로 커넥트를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인가...
교국이랑 연락이 끊어지는 바람에 저도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술이나 마시고 있었다고?"
"엠페레스 내부에서도 마약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보니까 이제 교국측으로 팔리던 매물이 남아서..."
"그래서 대낮부터 약을 마시고 누워 있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저녁쯤 되면 이제 구매자들이 찾아왔었으니까...
그 사람들한테 물건만 지속적으로 넘기면 되는 문제였습니다."
나는 RIC9호를 한잔 더 자연스럽게 먹였다.
"이것 좀 마시고 진정해."
"ㄴ...네..."
그가 음료를 비우고 나서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상관 관계가 약하지 않나?
스스로도 어색하다고 생각 안해? 마약도 팔고, 그 중개에서 가게도 냈지.
네가 나한테 잡히지 않았다면 리스크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중간에서 마약 떼먹고 돈받는 것 말고 네가 직접 해야하는 일이 그게 다가 아닐텐데?"
"역시... 신중하시군요..."
"그래서. 뭘 했는지 제대로 말해."
"그...탈주자를 잡아서 교국으로 송환시키는 일을 했습니다요..."
"탈주자?"
"아무래도 교국에서 엠페레스가 상당히 가깝다보니 이곳으로 탈주하는 실험체라는 놈들이 있습니다.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보르드예프쪽에서나 엠페레스 쪽에서나 교국으로 넘겨지는 실험체가 있다보니
그 놈들이 탈주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이쪽 길목은 거의 확정적으로 지나오게 됩니다.
북부 길목에 목 좋은 자리에 있다 보니까...."
"그럼 그걸 잡아다 교국으로 북송시켰다고?"
"ㅇ..예... 그... 보통은 도망나온 탈주자는 지낼 곳도 음식도 없으니까...
그런걸 제공한다고 하면 보통 잘 믿어 줬습니다.
전 그냥 제공받은 약으로 재워서 교국에서 온 사람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
"미친 새끼들."
"ㅈ...저도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너는 안전할거라 믿은거야?"
"왜...왜냐하면 저한테도 매번 일정 분량의..."
"일정 분량?"
"아... 이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말했더라..."
"아직도 숨길 생각이 있었다고?"
"그...그게...."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욕을 뱉었다.
"에이 씨발... 매번 교국에서 감사를 나온 직원에게 교국에서 발행하는 면죄부를 받고,
그 대신 영기술사나 기타 준하는 기술자들 피를 뽑아 보냈습니다..."
"피를 뽑아?"
"약 먹고 뻗은 놈들도 있지만은 약 맞고 뻗는 새끼들도 있어서... 주사기로 넣는 놈들은
보통 그 자리에서 먼저 피를 빼고 약을 주사하곤 합니다...
그런걸 왜 달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득 머리에서 깨달은 것은 성수의 가능성이었다.
하나 둘 밝혀질 때마다 묘한 불쾌함이 섞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의문은 문을 열고 들어온 또 다른 목소리에 가려졌다.
"어우 뭐야? 오늘은 고객이 많은가? 죄다 밖에 널브러졌네?"
나는 빠르게 몸을 숨기고 그에게 평소처럼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숨은 채로 그 동태를 관찰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았는데, 내 시야에 들어온 사람은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경을 끼고 아직 정정해보이는 외모에 조금은 피곤해보이는 얼굴.
그건 모건이었다.
"어, 모건씨. 오늘은 어떤 걸로 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냥 늘 마시던 걸로 부탁합니다."
그러면 남자는 모건의 술잔에 위스키를 적정량 넣고 약을 탔다.
그리고 늘 마시던 것 처럼 가지고 갔다.
그러면 모건은 그 잔을 가볍게 스냅을 사용해 돌리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후... 이젠 약이 없으면 이전처럼 머리가 잘 돌지 않아서 말이야.
문제가 심각합니다."
"아직 그래도 여러 모로 정정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슬슬 지칩니다."
"그럴 만도 하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또 기사를 내고 오시는 길입니까?"
"기사도 기사인데, 인터뷰를 땄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대충 정리만 좀 하고 오랜만에 넬리스도 볼 겸.
일도 볼 겸 해서 베어핏 카페로 갈 생각입니다. 그런데, 어째 오늘은 취해 계시지 않는군요?
맨정신에 대화하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저야 뭐 맨정신인게 이상하다고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대체 왜 가게를 찾으시는 겁니까?"
"그건 묻지 않기로 이야기 했었던 사항이잖습니까.
제 이야기는 다 신문에 나와 있습니다. 그게 전부에요.
그 이상으로 저에게서 뭘 더 캐내려고 하지 말아 주십시오.
곤란하니까요. 아무래도."
"그래도 뭐 앞으로는 한동안 가게도 닫아야 할 것 같습니다."
"슬슬 비축된 매물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것도 그렇죠."
내가 압류할 예정이니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모건이 마약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럼 혹시 남은 양을 좀 사가도 괜찮겠습니까?"
"그건 아무래도 좀..."
그가 그렇게 말하며 내 눈치를 흘끔 보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그렇기도 하겠군요.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모건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제서야 주점 주인은 숨을 겨우 내뱉는다.
"그나저나 오늘은 그쪽에서도 오신 모양입니다?
자꾸 시선이 저쪽을 향하시는데, 누가 계신지 얼굴은 좀 뵙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모건의 말은 명백히 날 노리고 있었다.
아직 내가 누군지 까지는 알아내지 못한 것 같았지만 경계가 섞인 목소리는
이 마약루트의 공급처가 어디인지 알아내기 위한 흥미보다는
그저 호기심따위의 정도인 것 같았다.
가게 주인이 목소리를 내리 깔았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모건 선생님."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너무 과하게 파고들지는 않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게 서로에게 유익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모건은 밖으로 나갔다.
나는 힘이 빠져 주저앉은 주인을 보고 한숨을 뱉을 뿐이었다.
"이런 씨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