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화 〉 노인의 죽음
* * *
답답했다.
멍하니 책상에 걸터앉아서 이마를 짚고 있으려니 점주가 내게 물을 한잔 내왔다.
"아무 것도 섞지 않은 물입니다."
"일단, 이 일은 다른 곳에 발설하지 않도록 하고.
이 가게로는 사람을 보낼 생각이니까 협조해주길 바래.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제국쪽에서 찾아올거고.
교국쪽에 발담그지 않는 걸 추천할게.
아직도 교국이 널 구해줄거라 생각한다면 또 모르지만."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는 불쾌해진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탁 소리가 나게 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나라의 언론은 전부 마약에 엮여있나?"
"아닙니다... 모건씨는 특이케이스입니다."
"그래. 알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가게를 나가 넬리스의 카페로 돌아갔다.
"기분이 안좋아보이시네요 에리아씨."
"아무래도 좀 그러네요. 혹시 제가 없는 동안에 모건씨가 왔던가요?"
"잠깐 들렀어요. 금방 업무를 끝내고 돌아올테니 기다려 달라고요.
한 시간 조금 안되게 돌아올 거라고도 했고요."
나는 전화기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카페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미리타엔의 골목골목에 사는 노예들에게는 허가되지 않았던
공중전화 부스가 군데군데 보였다.
그 칸 중 하나를 찾아들어가 마력으로 회로를 건드려 전화를 걸었다.
익숙해진 수화음 너머로 다시 또 까칠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제 전화번호가 노출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아무 때나 전화하셔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에리아 양.
제 시간은 다른 사람들의 시간과 비교해 3배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제 시간을 허투루 빼앗으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죠?"
"모건의 정보를 구하고 싶어."
"그건 또 예상 밖의 대답이네요."
"농담 아니야. 필요해."
웃음기가 사라진 목소리가 다시 묻는다.
"왜죠? 당신에게 필요한 정보는 다 제공되었을 텐데.
이제와서 그 늙은이에게 정이라도 들어버린 건가요?"
"살짝 반대라서 말이야."
"그렇군요. 잘 해봐요. 난 당신 심부름꾼도 아닐 뿐더러, 더욱이 그를 잡을 수는 없어요.
나는 알다시피 그를 공격하지 않으니까. 그도 나를 물어뜯지 않듯이.
오히려 당신이 이방인일 뿐이야. 연인은 아니더라도, 친구로서 존재했던 시간은 길어.
물론 그 관계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나는 그에게 약점을 잡혔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대체 내가 왜 당신을 도울거라고 생각한 건가요?"
"그렇게 간단히 알려줄 생각은 없나보네."
"간단히는 상관 없어요. 알려줄 생각이 없으니까."
대답은 돌아왔지만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대체 무슨 관계야 그게.
나는 수화기를 든 채로 멍하니 허망하게 웃다가 알겠다고 적당히 대답하고 통화를 마쳤다.
가게로 돌아가면 넬리스가 물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왜요?"
"카페에 온 손님들의 얼굴을 자주 보고 있으면 얼굴에 드러나거든요.
기쁨, 슬픔, 당혹, 우울. 그런 것들이요."
"지금 내 얼굴이 어떤데요?"
"흥미로운 일을 발견했을 때의 얼굴이에요."
흥미. 흥미였다.
배신감도 아니고 서운함도 아니고, 충격과도 거리가 멀었다.
모건과 마약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가 이어지는 가능성이 생겨났고
그 사이에는 교국이 끼어있다. 이런걸 어찌 그냥 넘길 수 있겠는가.
나는 도무지 확정짓지 못한 채로 애매한 감정속에서 그 실마리를 잡고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던 것이 그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면 모두 신문에 있을 거라는 그의 말에 나는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공개하고싶지 않을 정보를 왜 신문에 올렸는가.
그리고 왜 그런 사람이 기자라는 일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섣불리 기사를 내지 않고 침묵을 고수하며 사랑받을 수 있는가.
그에게 기자라는 직업은 무엇일까.
그는 알리기 위해 기자를 한 것인지, 혹은 숨기기 위해 기자를 시작한 것인지
한번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의문이 들 때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가게 문이 열린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군요."
모건이 그렇게 말하며 들어왔다.
나는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 역시 내 얼굴을 가만히 주시하다 물었다.
"혹시 북쪽 거리에 다녀오셨습니까?"
"그건 왜 여쭤보시죠?"
"에리아씨 옷에서 묘한 연기 냄새가 납니다. 사람을 노곤하게 만드는.
북쪽 거리에서 마침 그런 향을 맡고 돌아오는 길이거든요."
"다녀왔어요. 그리고 아마 제가 본게 맞다면 조금 이야기를 따로 나눌 필요가 또 생긴 것 같더군요."
"아, 그런거군요. 넬리스. 먼저 가보마. 같이 식사하려고했는데, 약속 못 지켜 미안하구나."
그렇게 말하면 넬리스는 의자에 앉아서 태연하게 다리를 꼰 채로 그에게 픽 웃어보였다.
"둘이 할 말이 많으시겠죠. 상관 없어."
"그래. 조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돌아보았다.
"저희 집으로 가시죠."
그의 작은 차를 바라보며 나는 삐삐를 안고 돌아온 넬리스에게 웃으며 감사인사를 했다.
삐삐는 여전히 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한 채로 붉은 가방을 매고 잠꼬대를 하며
내게 꼬옥 안겨들었다.
나는 그상태로 모건을 따라 그의 작은 차에 올랐고, 차는 한참을 달려 멘션에 도착했다.
멘션은 깔끔했고, 그 안쪽은 단정한 우드로 니스칠을 해 만들어진 방이 있었다.
방이 5개 정도 딸린 집이었는데, 꽤나 아늑했다.
"편한 곳에 앉으시죠. 오늘은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듯 하니까요.
여기 계시는 동안, 저희 집에 묵으셔도 괜찮습니다."
그의 방에는 서재와 책상, 그리고 많은 양의 책과 공책이 있었다.
잉크에 꽂힌 만년필과 쭉 적어내려간 일기 혹은 자책 따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 구석에는 작은 노트가 있었다.
꽤나 오래 된 것 같은 노트였는데, 이상하게 안쪽에는 그다지 쓴 흔적이 없는
새 종이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에리아씨, 그건 제게 남은 몇 안되는 소중한 물건입니다.
건드리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놓아 주시겠습니까."
"그럴게요."
노트 뒤에는 새가 한마리 그려져 있었다.
사실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왠지 모르게 디테일하게 그려진 새는
어딘가 슬퍼보이는 모습을 하고 애처롭게 퍼덕이려 했다.
그는 준비를 마친 것처럼 이것저것 짐을 정리하고 나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
나와 삐삐는 그 맞은 편에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 소개를 간략하게 하겠습니다. 저는 모건. 이 거리 사람들에게 모건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성은 따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소개한 일도 잘 없었으니 그저 모건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널스페이지라는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경찰로 일했습니다. 신문사는 경찰을 그만두고 나와서 들어간 직장입니다.
그때는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저 무거운 중압감과 죄책감에서부터
자신을 덜어내기 위해 경찰이라는 직업에서 도망친 것 같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여유롭게 웃었다.
그리고는 차분히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기자라는 일에도 점차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던 때가.
기자가 되고 나서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제 막 입사한 말단이 무언가를 계획하고 신문에 싣기까지는 정말 어려운 과정이 필요하고,
또 그것만큼 어려운 심사가 필요했습니다. 기자가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기자라는 직업이 꽤나 참을성이 요구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참을성이요?"
"네. 진실을 묵인하고 알리지 않으면서 그저 시간을 떠나보내는 일은
제게는 인고의 시간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조용히 테이블 위에서 무언가를 들었다.
"어... 그건..."
"네, 에리아씨가 전에 주셨던 약물인데요. 기억속의 감정을 회상한다고 하셨나요?
전 사실 이런게 그다지 필요가 없습니다. 제 기억속에는 죄책감과 고통의 시간 뿐이었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이 약을 처음 받았을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불쾌하다. 그리고 두렵다. 라고요.
이 약을 사용하면 마주할 모든 후회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그랬을 때 저는 아마 정말 무너져내렸을지도 모릅니다.
양심의 존재는 언젠가 무뎌져 아무 통증도 주지 못한다고 합니다만,
어쩌면 저를 괴롭히는건 양심이 아니었던 모양이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던 날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제게 오랜 친구가 있었다고 했던."
"에드먼드 브리깃이었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주름이 잡힌 것이 보였다.
"놀랍도록 순수한 사람은 그 행동에 악의가 없음에도 인간을 불쾌하게 만든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어딘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던 남자. 바보같았지만, 동시에 따뜻했습니다.
소박할 줄 모르던 이 미리타엔에 여유를 가져왔으니까요.
그 남자가 바로 저와 제인의 공통점입니다."
"네?"
"제인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에리아씨가 제 정보를 요구했다고 말입니다.
제인의 약점인 그 에드먼드 브리깃의 이름은 동시에 저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길었군요. 북쪽 거리의 펍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안에는 마약이 들어있었고요. 그건 신경안정물질입니다.
그게 없으면 조금 집필이 어려웠습니다.
누군가 제게 계속 속삭이는 것 같았거든요.
진실을 숨기고 살던 인생을 이제와서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냐고 귓가에 속삭이는
그 환청이 제게는 고통이었습니다.
받아야 했을 벌이라고 해도 가혹하다는 생각에 저는 그걸 회피했습니다."
"모건. 진정하세요."
"저는 차분합니다. 에리아씨, 저를 고발하실 건가요?"
"아니에요."
"그렇다면 저에게 정보를 캐물으실 생각이십니까? 40년 전의 일에 대해서?"
"그럴 생각도 없어요."
"왜... 그럼... 저를... "
"그냥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서요."
"결국 그 모든 불안은 무덤 앞에서 울리는 청명한 종소리와 함께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기열한 이들과 뒤집어진 여자와 뿔 달린 아이와 긴 꼬리 달린 노인이 거리를 달리고
그 뒤로 휠체어를 탄 남자가 울며 춤춘다... 딱 그 말대로군요.
대로변에 쓰러진 이들과 순리를 거스르는 여자, 뿔 달린 아이와, 마침내 긴 꼬리를 잡힌 노인.
외울 정도로 사랑했던 소설입니다. 이제는 제 절망마저도 예언하는군요."
"휠체어를 탄 남자가 없어요. 진정하세요."
"휠체어를 탄 건 그녀입니다. 제인 반 데어믹스."
"....."
"어쩌면 그녀도 오늘 약이 없다는 사실에 슬퍼할지도 모르겠군요."
"모건, 그건 약이 아니라..."
"약이었습니다. 조금 남들과 다르게 살아온 제 공포를 눌러주던.
제 두 다리를 억지로 일으키던 약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내가 준 약병을 열고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엘리마네..."
"빨리... 빨리 LzT2336을...!"
그러나 그 병을 찾을수는 없었다.
화장실 선반에서 이미 내용물이 없이 비어있는 약병이 남아있었다.
내가 돌아와 그의 얼굴을 보면 그는 평온해 보였다.
머리는 왠지 조금 더 하얗게 샌 것 같았고, 조금 더 주름이 자글하게 보이는 것 같았으며
눈물이 마른 피부 위로 흘렀다.
"모건, 정신차려봐요 모건... 모건!"
모건은 한동안 침묵하던 눈을 떴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이게 내 기억이었군요. 내 모든 과거가 후회뿐인줄 알았습니다.
진정이 좀 되는군요. 생각이 좀 맑아졌습니다.
저는 정신질환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으로는 모자라더군요.
그래서 그랬습니다. 불법인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 의존하지 않으면
더는 살 수 없었습니다. 저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그냥 제게는 그 약 마저도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안타깝네요."
"그런 편이죠."
대화는 멈췄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말 없이 서로를 마주한 우리는 그저 한동안 말 대신 고요한 정적을 택했다.
"교국의 일을 물어보려고 했어요. 오늘 오전에는."
"교국의 일을 알아내는 것은 저에게도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알 것 같아서요."
"교국의 연구소가 화재로 불탔다고 합니다."
"그 안에서는 분명 중요한 물건을 만들고 있었을거고요."
"그렇겠지요."
다시 침묵이 내린다. 대화가 진전되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아까의 무거운 분위기에서 화제를 그리 빠르게 돌릴 만큼
매끄러운 대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어쩌면 그게 가능한 것이 더 놀라울지도 모른다.
"혹시 말입니다."
"네?"
"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요?"
"아직 이 나라에 6귀족이라는 것이 존재했을 당시의 이야기 말입니다."
"책...으로 내시면 될까요?"
"그런 것과는 다릅니다. 제 이야기는 감상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과 다른,
무언가의 길고 불쾌하며 기분나쁜 이야기거든요.
하긴 그런걸 누구에게 전하겠냐만은 말이죠."
그의 말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주방에서 물을 한잔 가져다준 그의 눈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관심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또 하나. 시작되었다.
모건은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젓더니 방에서 아까 그 새가 그려진 노트를 가져왔다.
"제가 이전에 이야기했던 것 기억하십니까. 제 노화를 멈춘 지인이 있었다고요."
"기억해요."
"그는 제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간절히 바란다면 제 이야기는 시공을 넘어 남으리라고요."
"네?"
"그리고 이 노트가 그 결과물입니다."
"이 노트요?"
"페이지가 정해지지 않은 소설입니다. 에드먼드가 남긴 물건이죠.
이제 알았습니다. 그 지인의 이름 말입니다. 아간틴이라고 하더군요."
"아간틴.... 그거...."
"본인이 그랬습니다. 이 이름을 말하는 순간 제 젊음이 끝날거라고요.
저는 그러니까... 그와 계약을 한 거였죠. 그 시대의 기록을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한
일종의 기억하는 사람으로서요. 물론 저도 그 이름이 누굴 의미하는지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 이름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저도... 결국 이렇게 털어놓으니 좀 후련하군요.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책을... 읽어보시겠습니까. 전, 피곤하군요. 먼저 한숨 돌리겠습니다.
그 작은 아이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아... 다행...이군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소파에 기댔다.
그의 몸이 빠르게 말라갔고 마침내 내 눈 앞에서 그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말라
조용히 눈을 감아, 이윽고 조용했던 그 숨소리마저도 끊겨갔다.
"잘가요. 모건..."
나는 그가 남긴 노트를 펼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