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245화 (245/303)

〈 245화 〉 슬픈 귀족의 이야기 ­ 브리깃의 예술가

* * *

차가운 기운이 목뒤를 쓸고 스쳤다.

밖은 조금 어숙하게 흐려져 노을이 다 진 오후 7시. 나는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에 연결된 유리문 앞에는 큼직한 글씨로 무언가 쓰여있었다.

어느나라 말인지도 알아볼수 없어서 그냥 무시하고 문을 열었다.

문 상단에 붙어있던 작은 종이 짤랑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라색 전등을 은은하게 깐 조명아래 바텐더가 칵테일을 흔들고있는 바가 나온다.

그앞에 자리를 발견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어서오세요."

"네. 오랜만이에요."

"에드먼드? 오랜만이네. 이사간 이후로 못봤던것 같은데?"

"아하하.."

익숙하게 대하는 이 바텐더형은 도나텔리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기도 했었다. 종종 인생강의를 하려든다는것만 제하면 정말 고마운형이었다.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내 그림에 한해서는 아는척을 하려들었다.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으니 상관없었다. 그냥 그정도 위치의 좋은 형.

그게 이 형이었다.

"그래, 뭐 마실래?"

"자신있는 칵테일로 아무거나 추천해줘요. 돈걱정은 필요없으니까. 그보다는 모건 여기 안왔어요?"

"모건? 아, 모건씨. 전화는 왔었어. 나한테 직접. 일이 있어서 30분 정도 늦는다고 전해달라시던데"

"아 그래요..? 기다리지 뭐."

"너 그나저나 모건씨랑 나이차가 꽤 날텐데 굉장히 편해보여. 친한것 같기도 하고."

"예? 모건이 왜요?"

"내가 알고있는게 맞으면 못해도 너보다 4살은 많을텐데."

"처음 만났을때 별차이 없다고 편하게 하자고 그래서."

"그러냐..나는 좀 어렵던데."

도나텔리형은 흔들던 칵테일을 잔에 따랐다. 노란색 계열의 밝은 연두색의 칵테일을 건네받았다.

"안정적인 주말."

"네?"

"칵테일 이름이야. 안정적인 주말."

"아.. 고마워요."

"전에 봤을때랑 비교해서 20년은 늙었다. 뭘 그리 팍팍하게 다닌거야?"

"그러게요."

한모금 넘긴 술이 꽤 좋았다. 도수가 세지도 않은것 같았다.

"이거 괜찮네."

"오늘은 그것만. 딱 3잔 까지만 주겠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을 관찰하고 컨디션, 상태, 주량등을 고려해서 파는 술의 종류나 양을 조절한다. 그러면서 늘 하는 말이 있었는데

"나는 술을 팔려고 여기있는게 아냐. 여유를 팔고있는거다."

"역시나."

그때 문이 잘그랑 소리를 내며 열렸고 모건이 벌겋게 부은 눈으로 들어왔다.아마 계속 울었던 모양이다.

"아까는 너무 흥분한 모양이다. 미안해. 일부러 찾아줬는데 말이지."

"어.. 미안. 다..이야기 할테니까."

"그래. 도나텔리, 나는 "극복과 치유" 로 부탁할게."

"그래. 2잔까지만 드릴겁니다."

"야박하네."

"극복과 치유는 세잔째부터 이름이 바뀌는건 아세요? 극복과 치유에서 집착으로."

"구질구질하네."

"그러게 말이죠."

그러면서 도나텔리형은 극복과 치유라고 부른 연한 하늘빛 칵테일을 내밀었다.

"아껴마시지."

모건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컵을 홀짝였다. 그러고는 다시 날 바라보고 말했다.

"우선은 미안하지만 이쪽의 질문에 먼저 답해줘야겠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엘리마네가 누군지 알고있는거지?"

"엘리마네?"

사람 이름이었다는것도 몰랐었는데 말이다.

"브리깃의 메이드중 한명이었어."

그 말에 나는 곰곰히 생각을 더듬어 보았으나 생각나는것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갸우뚱 할 뿐이었다.

"질문을 바꾸지. 종 치는 자들의 기억은 어디서 봤지?"

"서고에서 부자연스럽게꽂힌 책을 꺼내 읽었을 뿐이야. 거기에 엘리마네라고 적혀있었던 것 말고는 아는건 없어."

그가 짧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손으로 깍지를 끼고서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웨이브를 그렸다.

"알겠어. 나는 너에게 매우 실망했다. 하지만 동시에 납득했고. 널 이해하기로 했다. 내 질문은 끝이야."

나는 연한 노란빛이 일렁이는 칵테일을 흔들어 목으로 넘겼다. 말없이 목을 축였다. 그러고는 지갑을 열어 그가 낮에 두고나간 지폐를 돌려주었다.

"이건 무슨 의미지?"

"내가 찝찝해서 도무지 가지고 다닐수가 있어야지."

"호구잡았구만. 나쁘지 않아."

그가 지폐를 받아들고 잠시 보더니 책상위에 올려두고는 가지고 있던 펜으로 팁이라고 커다랗게 적었다.

그러고는 칵테일을 크게 흔들어서 찰랑거렸다.

하늘색이었던 색깔은 잔잔한 보라색으로 바뀌어간다.

그러고는 한모금 또 잔을 기울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나는 뭐 이정도면야. 굳이 뭘 더 캐도 나올것 같지도 않고.

생각보다 네가 너무 도움이 안되니 물어볼게 있어야 말이지.

네가 묻고싶었던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보라고."

"이제 이틀정도 남았구나. 각설하고 우선은 좀 뜬금없지만,우리 아버지에 대해 묻고싶은데."

모건이 잠시 눈을감고 생각하는듯 하더니 수염을 두어번 쓰다듬고는 수첩을 펼쳐뒤적이더니 말했다.

"좋아. 물어봐."

"우리 아버지, 그러니까 에스테릭스 브리깃 공작 사후에 재산처분에 대한 것."

"재산처분이라함은?"

"말 그대로. 집에서 사라진 물건같은게 생겨서 말이지. 아는게 있다면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음, 난 잘 모르겠는데. 플뤼네의 전권이었으니까.

그래도 눈에띄게 처분한건 압류한 벌금이나 임시 국무사유를 위해 받은공금이나 국가사유품 의외에는 없었을걸.

실제로도 실내품에는 손대지 않았다더군. 아냐? 확인해봤을것 아냐."

역시 별건 없었던건가. 나는 그저 고집을 꺾지 못한것 뿐인가.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손에 든 음료를 마셨다. 빈잔이 손에서 조명에 반사되어 빛났다.

나는 도나텔리형을 돌아보면서 한잔 더 부탁하고 잔을 넘겨준 뒤에 한숨을 내뱉고 다시 침착한척하며 모건에게 물었다.

"그럼 에스테릭스 공작은...무고한것 맞지? 내 아버지는 결백했었겠지?"

떨리는 손이 진정되지 않는다. 침착함을 가장하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지는게 느껴진다.

내 얼굴을 슥 흝던 모건이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정말 아버지를 싫어했던게 맞는건지,

내가 지금 싫어하는게 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안도감에 스스로 마음 한구석이 놓였다는것만이 사실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아는게 없는데, 시대는 나보다 아버지를 원하는데 그자리에 내가 대신 서있다.

"내가 하려는 일은 옳은걸까 모건."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자네는 최선을 다했지."

"아버지였다면 생각도 못하시겠지만."

"아마 그분이었다면 이번소집을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확실히."

하지만 어쩔수 없었다. 이는 내 결정이고 내 스타일의 내 마음가는대로인 모든것이기 때문에.

굽히거나 하고싶지는 않았다. 귀족이었어야 뭘 알던가 하지 않겠어 하며 애써 합리화를 집어삼킨다.

몸이 먼저 반응해 질려버리는걸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그저 나의 결정을 인정받는것이 지금의 목표였다.

나는 새로 찰랑이는 잔에 얼음과 담긴 칵테일을 받아들었다.

"얼음이 들었는데?"

"가볍게 남은술 종류를 이것저것 해서 섞어봤어. 조금 센 것도 들어갔으니까 느긋하게 즐기라구. 신메뉴야. 오늘만 제공될 예정이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는 도나텔리형에게 모건의 지폐를 내밀면서 나는 잔을 입에 가져갔다.

확실히 조금 더도수가 높다는것은 이해할수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건 맛이었다.

맛이 섞인것 같지 않은 어딘가 불안정한 맛. 다만 얼음이 있어서 어떻게든 붙잡고있는듯 했다.

그래도 굳이 어느쪽이냐고 한다면 아주 감각적이고 독특해서 마음에 드는 편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달달함과 씁쓸함이 찬 맛에 가라앉은 게 느껴졌다.

"모건이 주는 팁이래. 그리고 그 뉴브랜드는 오늘부터 정식으로 팔자구. 이름은...방황하는 예술가로 하자. 음. 좋네."

"왜 방황이지?"

"마셔보지도 않은거야?"

"마실때마다 색다른 매력이 있을텐데."

"그래, 잘아네. 그래서 방황이야."

"그래서 예술가인게 아니었을까 했지."

"그래. 그럼 일단 앞으로는 이걸 자주 찾게될것 같은데."

"이런건 메뉴에 올릴수가 없어. 상품성도 없고, 우선 프라이드로서도."

"그럼 그렇게 알고 다음에도 준비해달라고."

그렇게 말하고는 모건에게 가볍게 눈짓을 주고는 다시 물었다.

"에스테릭스 공작이 실추된 사건에 대해 알려줘."

"몇년전이었지?"

"음 그때는 우리 서로 몰랐을 때였고. 아마 6년에서 7년 되었으려나 싶은데. 나도 아직 18살인가 19살인가 했을때니까. "

"아. 그렇군. 내가 스물..둘이었겠군. 자네는 18일테고."

"그래. 신문에도 대문짝만하게 실렸었지. 분명.."

"피의 장미사건."

"그래. 그런 이름이었어."

모건은 잔을 다 마시고서는 나의 잔을 가져가 흔들었다.

"맛이 어떻길래."

그리고는 한참을 돌리다가 입에 흘려부었다. 조명빛이 비쳐서 보라색으로 빛난 술이 흐르고 혀를 덮고 스치듯이 지난다. 잠시뒤에 그가 다시 잔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내타입은 아니네. 부드럽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어중간함. 꼭 누구를 연상시켜서 말야."

눈치가 보이는건 사실이었다.당황했지만 그 기색을 끊듯 말했다.

"피의 장미사건에 대해서나 말해줘."

"아는데까지만. 분명 7년전에 엠페리어국왕이 죽고 페테이어 국왕이 즉위한 사건이었지.

그때 장미정원에 떨어져있던 편지가 있었고 그 내용이 친필서로 쓰여진 밀서였다는점에서

편지의 행방이 불명확했던 에스테릭스공작이 역적으로 몰리다가 6귀족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6귀족에서 파하고 재산을 대거 압류했으며 나아가 귀족권에 위협을 가한 사건이지.

이 이후로 5귀족체제로 운영됨과 더불어 플뤼네랑에그니아 가에서 그 역할을 반씩 할당받았지.

분명 에그니아는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브리깃공작과 많은 견해적 차이가 있었고 이 이후로는 거의 반대없이 원하는대로 국정을 주무를수 있었어.

국왕의 허가내에서. 이때 만들어진 법이 반역자 특별법. 들어봤지?

차후 반역자가 나왔을 경우 신분을 전적으로 박탈하고 이 법에대해 국왕은 일절 책임을 묻지 않으며 이 이후 처벌에 대한 전권은 그레고리 반 데어믹스 경에게 넘긴다.

또한 반역의 기준은 국왕을 포함한현 5귀족에게 대항하여 군세적, 물리적, 재산권적으로 손괴를 입히거나 고의로 이를 무시하는 행위로 한다는 그 법.

국왕 입장에선 반대할게 없었으니까. 그 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실추된것이 다행이라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나서 시그릿 플뤼네 공작은 그의 압류된 재산을 대거 처분할수 있었지.

단독으로 주도한건 아니었고 겔데어스 가문의 전 가주였던 데브릭 겔데어스경과 공동으로 국고처분+국가발전의 명목으로 나랏돈 쓸일에 대신 들어갔지.

자네도 알다시피 왜 미술관이라던지 증축, 개축한거나 신설한것들. 다 그때 한거였지.

그리고 이때 아마 들리던 소문으로는 시그릿은 당시 벌금으로 압류해처분한 금액으로 자네를 지원하던 거였지? 아는사람들은 모두 자네를 동정했다네.

에드먼드 브리깃. 이때 취재갔던 기자들 인터뷰 목록이랑 자료가 이 근처에... 여기있다.

에그니아경은 '그런 호구가 6귀족의 피를 이었다니 한심해서 믿을수가 없군' 이라고 했을 정도네."

"재미있군. 그래서 집에 돈이 그렇게 없던건가. 뭐 어찌되었건 나는 그때당시 저택의 지원은 못받았으니까 시그릿 아저씨를 탓하진 않겠지만 좀 불길하네."

가볍지 않게 되어버린 이야기에 조금은 착잡하다.

간단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별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다. 수확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기자로서 말할수 있는 선에서는 피의장미사건은 방금말한 정도의 사건이었어."

"기자로서?"

"모건 제이미로서는 조금 더 할 말이 있다는 거지. 어디까지나 극비사항이겠지만."

"극비사항이라니. 그게뭐지?"

"극비사항이라는건 비밀이니까 극비사항인거야. 에드먼드, 아직 너에게는 말해줄 수가 없어."

나는 무의식적으로 더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에게 대충 끄덕이고는 술잔을 기울였다.

그뒤로 나는 술은 몇번 더 마셨지만 모건과 농담정도를 했을 뿐 그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았다.

9시가 조금 넘어서 나는 바를 나와 자동차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새벽 1시가 되어서 부스스 일어났다.

새벽에 일어나 할법한건 없는게 당연하다.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달이 밝다.

이제 이틀정도 남았는데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아니, 얼마나 남았나? 이제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보지 못한 곳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건지 알수도 없었음에

나는 다시금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걸 생각했고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었다.

누군가더 상담할만한 인간이 있던가 하면서 이제는 누구를 믿어야할지도 모르겠으나 혼자 던져진 듯한 느낌에 조금은 발끝을 떨며 밤공기를 맞으며 걸었다.

그러다가 내가 도착한곳은 공원외곽을 돌아 쭉 걷다보면 나오는 솔길이었다.

밤이라 잘 보이지 않는 거리를 걷는다. 잘 보이지 않아서인지 혐오감이 덜했다. 걷는도중 발끝에 무언가 채인다.

돌부리였다. 또. 돌부리다. 저번에도 이랬었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지면에 박혀 파묻힌 돌조각을 바라본다.

입안에서 늘어진 침을 쏘아뱉었다.

일어나 다시 돌부리를 뒤로하고 나아간다. 하늘이 청솔에 가렸으나 여전히 별이빛나고 있었다.

날이 추웠으나 왜인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솔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아직 기억하고있다. 그날 이후 가본적 없는 큰 골목을 돌아 걸으면 그 앞에 거대한 종탑과 공동묘지가 있다.

그 옆에는 물론 화장터도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기억상 자그만 서점이 있었을테고 그 뒤에 "그 녀석" 의 집이있다.

제인 반 데어믹스. 그레고리 반 데어믹스의 차녀로, 장녀인 텔레인 반 데어믹스의 동생이다.

동갑이라는 이유로 종종 어릴때는 만났으나 근래 만난점은 없었다.

제일 최근에 만난것이 아마어머니의 장례식때가 아니었을까. 텔레인은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

해외에 나가서 견문을 쌓는 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제인은 그레고리경의 홀로남은 딸이 된 것이다.

제인은 어릴적부터 영재였다. 영특함이 굉장했다고 했고 축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쩌면 여기에 눌려 텔레인은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아왔는지도 모를일이다.

자신의 것이던 사랑을 빼앗겼으니. 제인은 엄밀히 말해 저주받은 재능을 가진 여자였다.

자신의 언니의 애정을, 관심을,빼앗아 가지면서 그들을 배척해냈다.

텔레인은 아마 그랬기에 이 나라에서 자신이 설자리는 없다고 여겼을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텔레인의 이야기는 들었으나 그녀의 얼굴은 한번도 본적이 없다.제인의 경우는 자주 봤었지만 말이다.

여튼 제인은 내게있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여자였다. 현재로서는 왕실 비서를 맡았다는듯 하던데 사실 그렇게 그녀를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영특하기도 했고 나보다도 훨씬 똑똑할테다. 다만 어릴적부터의 넘을수 없었던 장벽과도 같은 이미지였기 때문일것이다.

나름의 자격지심이다. 다만 그것이 굳어짐과 동시에 그녀또한 나의질투를 눈치챈것이리라 생각한다.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한마디가 날 성가시게 했다.적당히라는 선없이 쌓인 거슬림이 이제는 그녀가 내게있어 번거롭고 짜증나는 존재로 변모하게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솔길을 지나 어느샌가 발걸음이 그레고리경의 저택으로 향하는 듯 하기에 나는 다시 걸음을 꺾어돌렸다.

그렇게 새벽에 도둑놈마냥 다니는것도 그래서자동차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제 하루남은건가?

문득 지나온 길에서 어머니가 스치듯 떠오른다.

바닥에 구르는 돌부리는 더 이상 밟지않는다.

그리고 내 앞에 어머니는 더 이상 없다.

왜 이런 시기에 자꾸 생각나는 건지도 알수없다.

그런데도 어딘가 툭하고 무너져 터져버렸다.

"어머니..."

어머니를 부름과 동시에 먹먹했던 무언가가 터지듯이 뺨을타고 눈물이 흘렀다.

"엄마...엄마아..."

눈앞은 흐려 걸을수 없었고 애써 팔로 닦아낸 눈물자국이 쓰라린것 같았다.

젖어버린건 눈뿐이 아니었던건지 다리가 후들거리고있었다.

이대로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걷고싶지도 않아졌기에 나도 모르게 다리에서 힘이 빠졌는지 주저앉은 다리에 무릎을 찧는다.

아프지 않았다. 아니, 너무 아파서 몰랐다. 울다 지쳐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내가 눈을 떴을때는 8시가 다 되어갈때쯤 이었고 사람들이 공원으로들어올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빠르게 옷가지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얼굴에 난 자국과 흙을 닦았다. 보는눈을 살피다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여 빠르게 도망쳤다.

와르르 무너졌던 내 자신을 피해 도망친것이었다.

생각을 정리해야했다. 이제내일이면 소집일이기에 더욱 그랬다.

나는 졸린눈을 비벼뜨고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가기위해 차를 몰았고 3시간이 지나 집에 도착했다.

잠이 덜 깨서 인지 어떻게 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으나 밀밭을 지나 저택이 보일쯤부터 가슴이 조금씩 설레왔다.

휴식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저택문에 열쇠를 꽂아넣고 돌렸다. 절그럭 소리가 울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라?"

나는 다시 열쇠를 꽂아넣고 돌렸다. 절그럭 소리가 나고 다시 잡아당겼을때 그제야 육중한 문이 열려왔다.

"문을 안잠그고 나갔었던가?"

옷을 벗어 던져두고 쓰러져 누웠다. 이대로 쓰러져있다가 아마 식사후에 씻고 준비를 마치겠지.

잠시 눈을 붙이는건 훌륭한 휴식이 될것이라 생각했다.

예술가는 여유를 승화할줄 알아야했기에 침착하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셨던 스승님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분께서는 지금 안계시지만. 성함은 잊어버렸고 그닥 좋은 인물도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한마디만은 기억했다.

은퇴하고 어딘가의 농가로 돌아갔다던것으로 기억하는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금방 잠이들었고 나는 오후4시가 되어 식은땀에 젖어 일어났다.

"후우..."

나는 텁텁한 입을 물로 헹궈내고 싱크대에 뱉었다.

목이말랐지만 물은 마시지 않는다.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서 끓이기 시작했다.

커피를 드립하면서 그동안 지하실의 식품저장고를 다녀오기로 했다.

주류는 오늘은 더이상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계단의 축축하고 서늘한 감촉이 공기중에서 느껴져 지하실은 습했다. 불쾌하다는 기분이 느껴져도 별수 없다는 말이다.

"으으으.."

지하실의 불빛은 일렁이고 그 불은 영롱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주류저장고에 빼곡이 담긴채 누워있는 와인병들을 하나둘 바라보다 식품저장고 문을 열고 염지해 숙성시킨 고기를 찾기로 했다.

숙성시킨고기는 아니지만 고기류는 별로 어렵지 않게 찾아낼수있었다.

소 등심을 잘라 냉동식으로 얼려둔것이었는데 그걸 두장 꺼내들고 식품저장고를 나와서 아무렇게나 집히는 와인병을 하나 들었다.

이름따위 몰라도 상관없었다.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스테이크를 구울 목적으로 하나 집은 것이다.

가지고 돌아온 주방에서는 팬에 와인과 향신료를 뿌려 고기를 구웠다.

스테이크 두장. 잘 익었기에 썰었는데 내부는 붉은빛이 돌아 조금은 설익은것이 아니던가 싶었으나 결국 그냥 집어먹으니까 맛은 좋았다.

그러고 나서 육즙이 흘러내린것을 닦아 설거지를 하기로했다.

설거지는 오래걸리지도 않았기에 기냥저냥 끝내두고 선반에 꽂았다. 혼자먹은것이라 접시를 많이꺼낼것도 없었다.

남은 와인은 먹기도 그래서 주방에 대충 마개를 닫아 세워두었다.

그리고는 옷을 벗어던지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이제는 체면을 차릴것도 없었기때문인지탈의실 가운 하나 슥 집어빼 걸어두고 수건 하나 챙겨들고 욕실로 직행했다.

사실 목욕이 아닌 샤워가 하고싶었던 것이라 탕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샤워기 물을틀고 머리부터 등까지 쏟아부었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 입에 넣고 되는대로 문질렀다. 잇몸이 쓸려도 그런대로 넘겼다. 피가 조금 나는 정도가 아닌가.

이제는 내가 바라는게 뭘까 생각했다. 입에 물을 머금고 있다가 뱉었다. 핏물이 담겨 조금 붉은색이었다. 희미한 철맛이 난다.

그런대로 이를 닦고 나서몸에 타월을 문대다 스스로 묘한 공허감에 이질감을 느껴 그만두고 헹궜다.

이제는 생각하기도 지친다. 그저 내게 필요한 최적을 준비하는것이 내가 할수있는 일이겠지. 장롱에서고급스러운 옷을 꺼냈다.

적어도 품위를 지키는 수준으로는 입어야 했으므로 속옷부터 바지, 와이셔츠, 재킷을 준비해 늘어놓고 만족해 흐뭇해진 기분으로 들여다보다가 가만히 생각했다.

문득 떠오른 책 한권이 기억을 메웠다.

'종치는자들의 기억. 분명 모건이 좋아하겠는데.'

그가 원하던것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그 책은 분명히 읽다 말고 놔두었을 것이다. 흔들의자 옆 테이블위에 있어야 할 책은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모르는 사이 책은 사라져있었다.

꼭 전해줘야 할 물건은 아니었으므로 의무감이라던가 하는건 없었지만 아쉽긴 아쉬운게 사실이었다.

다 읽지도 못한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엘리마네가 누군지에 대해서도 나는 아직 모른다.

"아는게 없구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집무실 둘째서랍을 열었다. 이곳에 보관해둔 푸른 사파이어 반지를 꺼내기 위함이었다.

그 반지역시 6귀족을 대상으로 제작된 가주용 반지였다.

아버지의 가는 손가락에 맞춘것이 어째 내 손에도 맞아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잘맞네."

빛나는 반지가내게 브리깃이라고 말해주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시간은 7시4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일의 집회의 장소는 버크레이엄 궁이라는 것 외에 아는것이 없었고

잠시 생각한뒤 집무실, 그러니까 거실로 쓰는 방으로 갔다. 전화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

잠시 연결되는가 싶더니 끊어진 전화는 상대가 부재중이라는것을 알려주는듯했다.

케이는 바쁜것같다. 시그릿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수화음이 얼마간 울리더니 곧 끊어져버렸다.

"또 헛방이네."

전화기를 들어 다시 전화를 걸기로 했다.

내가 부담없이 전화를 할 수 있는 귀족은 한정되어 있었고 이제 남은 인원이라고 하면 실질적으로 반 가문인데

사실 그마저도 불편한것이 사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수화음이 한번 채 울리기도 전에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거기 반 데어믹스 가 맞습니까?"

"맞아 바보야. 전화 걸 때 확인 안했니?"

이 말투에 나는 적잖이 소름이 끼쳤다. 그녀였다.

제인 반 데어믹스.

"제인?"

"용케도 내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구나. 잊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잊을리 없잖아. 그나저나 너랑 할말 없어 제인. 아저씨를 바꿔."

제인이 조금 기분이 나빠졌는지 뾰루퉁해서는 말했다.

"싫은데. 무슨일로 전화했는지나 들어보자."

"내일 소집건으로 전화했으니까빨리 바꿔줘."

"아, 그거? 나한테 물어봐."

"돌아버리겠네"

나는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그러니까 내일 ㅁ.."

"버크레이엄 궁오후 7시 30분."

"어..."

"이런건 설마 아닐거고. 그치? 아무리 네가 멍청해도 설마 이런것도 모르면서 오겠다고 남의 집에 전화하고 그러진 않겠지?"

이 여자 분명히 알고있었음에 분명하다. 썩을것이.

애써 침착을 가장하면서 다시 변명을 시도했다.

"당연하지. 그나저나 내일 소집에 너도 오는거냐."

"왜? 기대되니?"

"아니. 난 너같은 여자는 취향이 아니라서."

"누군 너같은게 취향인줄 알아?"

"역시 안되겠네. 글렀다. 끊는다."

나는 더 볼것없이 전화기를 내려두었다. 스트레스라고 해야하나. 불편한 기분이 들어서 그렇다.

아무래도나도 아직 멀었나보다. 결국 시간은 알아냈으니 당일날에 사람들 모이는것 보고 대충 맞추면 되겠지.

피곤한 기분이 들었다. 진정되지 않는건 여전했다. 잠시 그러고 있으려니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어, 전화했었네?"

겔데어스였다.다행히도 금방 돌아왔다.

"어 내일 소집있지? 그거때문에."

"아 파티? 좋은거지 파티는."

"어..그렇지.."

"7시반에 늦지말고 오라구! 줄게 있으니까!"

"그래. 뭐 또 다른건 없던가? 생각이 잘 안나네."

"초대장 있을거아냐? 안받았어 초대장?"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초대장. 너무나도 당연하고 기본적인것임에도 의심 한번 하지 않았다.

"어 잠시만 끊지말아봐."

"싫은데에~ 10초센다. 10~ 9~"

나는 정문 옆 우채통을 열었다. 초대장이라고 할만한 것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왜 없지?"

분명히 안왔을리가 없을것이다. 잘못배송되었나?

아니면 혹시 서류뭉치속에 있나? 다시 집무실 책상 서랍을 열었으나 결과는 같았다. 나는 어이가 없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어...없어...초대장..."

"뭐, 얼굴을 아니까 신분증명 가능한게 있으면 괜찮을걸. 뭐 딱히 대단한 내용은 없었기도했고. 국민들도 대거 초대된거니까."

그제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그렇겠지..?"

"어차피 대기실 위치도 왕성 경비가 안내해 줄테니까 별것 없을거야."

"대기실?"

"몰랐구나, 6귀족은 전용 대기실에서 대기하다가 별도로 피로연을 연다던것 같은데."

"파티 이후에?"

"어. 아무래도 파티 자체는 국민들이라던가 대거 있으니까. 보는눈이 너무 많다는거겠지."

"확실히 그렇겠구나."

"아 역시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니까."

"그랴그랴."

"아 그리고 말인데, 이번 파티의 금전적 이익이라고 들었어?"

"아 향후에 금전적 이익을 얻을거라던거."

"그 소재가 뭔지 알아냈거든."

"네가?"

"폼으로 겔데어스를 끌어가는 무역귀족이 아니거든. 조금만 경제유통 코스를 돌아보면 알수있어."

"그래서 그건 뭔데?"

"크게 이익이랄건 3가지인것 같은데 우선 처음으로 6귀족을 비롯한 유명인사를 만나 친분을 쌓을수 있다는거고

둘째는 앞으로 대륙 북부의 국가를 상대로 무역하는 일에대한 규제를 임의로 해제한다던것 같아.

물론 국왕이 제한한 범위 내에서. 그렇다고 해도 난 프리패스겠지만. 뭐라더라? 교국이랬던가?

분명한건 일반 국민이 개입할 요소가 무엇이냐고 하면 아마 새로 만들어진다는 무역권의 등급에 관한 내용이겠지.

그 무역의 거래가능 등급이라던지 자격의 요건이 될 거고

아마 그중 일부는 왕성의 지원을 받으면서 무역을 직접적으로 개입할 권리를 얻겠지.

그러니까 구체적으로일반 국민의 경우 타국과의 거래에서 자국민이 타국의 상품에 개입하는것에 대해

국민 개개인의 무역 등급을 나눠서 아마 세금을 떼는데서 차이를 두지 않을까 예상하고있어.

이 등급에서 우월한 순위를 점할수 있을거라는거지. 그렇다고해도 현재로서는 국민의 일부일 뿐이니까 그 수치까지는 몰라도 아마 세게때려붙이겠지. 그리고..."

"그리고?"

"세번째 이익말인데. 파티에 오는것으로 국민이 얻을수 있는."

"어. 그게 뭔데?"

"이건 나도 잘 모르겠네. 귀족관련 건인것 같기는 한데 글쎄... 이건 정치쪽이니까 말이지."

"그렇구나. 어쨌든 필요한 정보는 대강 들었는데 말이지."

"내 덕분이라고."

"그렇네."

"그래, 내일보자구."

"그래."

전화를 내려놓고 잠시 서있으니 등에 괜한 소름이 돋았다. 왠지모를 께름칙함에 몸을 떨었다.

나는 메인홀로 자리를 옮겼다. 아버지의 유화가 크게 걸린 그 앞으로 조각된 소를 바라보다생각없이 문득 이젤과 종이, 의자, 물감을 가져왔다.

그냥 본능적인 문제였다. 무의식의 영역이었다.

점을 하나 찍는것. 모든 그림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소를 그리기로 했고 뿔을 그리는데 집중한다.

또한 그 다리의 근육이 어깨부분까지 매끄러운 라인을 그리는것을 표현해본다.

그러다 또 깨진 유리조각을 이어그린다. 깨진 부분이 어설프게 붙은것을 보인다. 투명한 그림속 깨진 라인이 보이고 있었다.

"이제 뭘 그릴까."

그러다 나는 아버지의 초상에 눈을 돌렸다. 내가 문득 돌아본 것이지만 그릴 가치는 충분했다.

"어디보자..."

그림이라고는 해도 한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었다는것만은 사실이었으므로 조금 기분이 묘했다.

그의 눈이 어디를 보고있는지 조차 알지 못한채로 살아온것이다.

나는 이러니까 그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것이겠지. 붓을들고 계속 덧칠해가는 도중에 내 그림은 홀에 걸린 유화와는 다른 양상으로 바뀌어갔다.

말랐던뺨은 조금 더 부풀었고 눈은 생기를 조금 더 잃어 초췌해보였으며 그 희끗한 머리가 늘어 황혼기에 들어 서서히 늙어가는 집착의 브리깃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기억에 있던 에스테릭스 브리깃은 그런사람이었다.

나는 더이상 그림을 그릴 기분이 들지 않아 붓을 내려놓고 서재로 갔다. 쌓인책을 뒤적이다 두껍게 먼지가 낀채 방치된 책을꺼내들었다.

얇은 고급 가죽제의 표지에 철을덧대놓은 형태로 안에는 만년필로 쓰여진 일기가 있었다.

「나의 기록을 이곳에 남기노라」

그렇게 쓰여진 일기장을 한장 넘겼다. 아버지의 것으로 보이는 일기였다.

날짜가 적히지 않아 언제 적은것인지 알수 없었다.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체감상 2,3일마다 적힌 기록은꾸준히 있었다.

생각없이 넘어가던 페이지에 불길한 기록을 발견한것은 우연이었다.

「왕의 편지를 받았다. 이는 중요한 사항이며 나의 결정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부터 그냥 넘긴다면 어떻게 6귀족이라고 하겠으며 연합의 국가라고 하겠는가. 나는 이 일을 강력히 회...」

다음부터는 찢겨있었다. 몆장을 더 넘기자 남아있는 기록이 듬성듬성 있었다.

"왕이... 었다... 장...가 발견되...나의...모다."

찢어진 부분이 많아 읽을수 없었다. 분명히 누군가가 고의로 찢은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수 없었다.

어차피 읽어도 내용을 알수 없었으므로 그냥 다시 꽂으려다가 난로가에 들고가서 던져버렸다.

가죽이 오그라들며 타는 냄새가 나서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불어 머리가 살짝날렸다.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끓였다.

선선한 바람이 문을타고 오는걸 느끼면서. 커피가 포트를타고 내려오는걸 보면서 눈을감고 명상하듯 앉아서 잠깐 멍하니 있었다.

커피가 내려진것을 컵에 받아들고 정원으로 갔다. 리트리버가 엎어진것을 보고 또 잠시 죽은게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곧 가슴팍이 움직이는것을 보고 안심했다.

천천히 부풀어오르고 다시 그만큼 가라앉는 생물의 호흡. 당연한일이다. 나는 손으로 대니를 두어번 쓰다듬었다.

편하게 자고있는 강아지가 부러울때가 더러 있었지만 단언컨데 오늘만큼 부러운 날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커피를 마시고 정원의 연못에 있는 헤엄치는 생명을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갔다.

조용하다기보다 고요하다는 느낌. 재깍이는 괘종시계소리만이 울리는 방 구석에는 아직 따닥이며 장작을 사르는 불이 화르륵대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눈에 들지 않았다.

"일단은...잘까."

의자까지 갈것도 없이 난로에서 적당히 떨어져 누웠다.

이정도라면 따뜻하게 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지만 말이다.

눕는다고 바로 잠들수 있는 내가 아니었다. 잠을 자기도 그렇게 잤으니 그럴밖에 없을것이다.

그러나 지금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누워서 양을 세기로 했다.

양을 한마리 두마리 세고 있노라니 잡생각이 자꾸 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사실 나는 알아내야 했을것들이 너무 많다.

시그릿 아저씨의 일이라던가 모건이 숨긴 피의 장미사건의 이야기라던가 내게 거짓말을 한 헤럴드의 말도 들어봐야하고.

이제보니 에그니아공작의 반응도 일반적이라고 할수 없었을 것이고

또 서재의 일기장도 그렇고 종치는자들의 기억이라던지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아버지가 실추되고 죽음으로 내몰린 일이었음에도 나는 아는것이 없었고

그 더럽혀진 오명을 씻는일에는 아버지가 아닌 내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으며 심지어 그마저도 불명확한 일들로 넘쳐난다.

나는 정말 안심하고 왕성에 가도 괜찮은건가.

꿈인건가 싶었고 그랬길 바랬으며 또 그만큼 가슴이 답답할정도로 괴로운 엔딩이 날 기다리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한구석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붙잡을 것 없이 그저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믿는 신이나 종교마저 없었던 그림하나만 알던 미술가는,

아니 예술가는 자신의 집에 있는 두마리의 소 동상을 보고 기도했으며 그 기도가 어디로 가는지도 또 왜 그에게 기도했는지 조차 몰랐다.

하지만 우스운이야기임에도 그게 나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웃을수도 없었다.

혹여나 내일이라는게 찾아오지 않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곧 회의감과 자괴감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의외로 많이 뽑혀나온 머리칼에 흠칫 놀라며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두어번 껌뻑이고 비벼떠도 여전했고 변한것은 없었다.

바닥에 멋대로 떨어져 지저분하게 널브러진 머리칼을 모아 난로에 던져넣자 떨어지긴 한건지 혹은 벌써 다 타고 사라진건지 모를 속도로 타버렸다.

차라리 정말 귀족이 아니었다면 하고 기도하기도 했다.

그냥 한달에 한두어번 널스페이지 신문사에 그림을 투고하고 아이들 상대로 가벼운 수채화나 데생을 가르치는 미술교사가 나에게 훨씬어울리는 일이었을 거라고 몇번이나 되뇌이며 후회했다.

남들같이 평범한 연애도 하고싶었고 가끔은 영화도 보러가서 여유로운 취미생활을 즐겨보고도 싶었고

내가 알던 사람들과 여전히 웃으며 만나고 싶었고 가끔은 도서관에서 친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책을 고르고 싶기도 했다.

이제와서는 친했던 사람들마저 누구였는가 떠오르지 않았다.

헤럴드 하나 겨우 떠오르다가 그마저도 나혼자의 착각이던가 하다가 겨우 고개를 저어 흘려보낸다.

눈물이 맺혀 흐른다. 나는 왜 아직까지도 미쳐버리지 않은걸까 하면서 눈을 감았다.

투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창밖이 조금 거슬려 창문을보니 대니, 그러니까 그 리트리버 한마리가 창문을 열심히 긁어대고 있었기에 나는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내가 손을 뻗자마자 억지로 그 위에 앞발대신 고개를 얹고는 손바닥을 핥는 녀석을 말리고 싶지가 않았다.

"고맙다."

그게 날 위로하는 행위였으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그를 안고 있었다.

그가 나의 뺨을 핥는것이 기특해서 눈물이 자꾸만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 주방의 냉장고를 열고 고깃덩이를 꺼냈다. 사실은 내일을 위한것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이 고기는 온전히 그를 위한 포상이었다. 내가 고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자 그 커다란 개는 날 보고 빙글빙글 돌면서 기뻐했다.

그게 고기때문이란걸 알고는 있었다. 내심 날 반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기대하고 있었다. 고기를 그에게 던져주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고기를 뼈에서 뜯어내고 또 씹어서 삼키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일면의 야수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고 있자니 내 어깨를 툭 하고 적시면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어느새 우중충해진 하늘을 내게 보이듯 하나둘 늘어갔다.

이제는비는 싫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집안으로 들어가 마당을 바라보고 섰다. 어느새 개마저 고기를 끌고 집안으로 돌아가버렸다.

나는 더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다만 울면서 생긴 어딘가 지친 감정과 응어리진 맺힌 감정의 나머지가 털어지지 않는 먼지처럼 쌓여있음에 자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주방 구석의 수면제를 한알 찾아냈다. 아버지가 쓰던 물건이었다.

귀족으로서의 지위가 박탈당한 그가 매일 밤을 의지하던 그 약은 일종의 독이었고 일상을 갉아내던 것이었고

그는 나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내게는 이제 아버지만큼의 여유와 긍지, 명예 그 어느것도 없었기에 아버지를 탓하고 싶지도 않았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누웠다. 곧 잔다는 감각도 없이 흐려지는 시야가 밝아진것이 아침의 햇빛이었다는것이 이런 매일이 반복된다면 분명히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답답한 가슴에 쿨럭이다 보니 피를 조금 토했다.

"위험한데."

손을 씻고는 호밀빵 조각을 입에 대충 우겨넣고 씹었다.

늦지않게 가려면 일단은 지금 출발해서 왕성 근처에서 돌아다니는게 좋겠지.

우선 화장실에서 나갈수 있을 정도의 세안과 면도, 이닦기정도를 하고 나왔다.

면도라고 해도 이제는 밀것도 없어서 잔털 몇 가닥이나 솜털을 정리한 수준이었다.

그러면서 옷을 갈아입고 선반 구석의 민트잎을 몇장 꺼내서 씹었다.

"이정도면 괜찮겠지."

그러고는 창고로 가서 문을 열고 비싼 보석이 박힌 넥타이핀을 꽂았다.

그러고는 창고문을 닫고 제대로 잠겼는지 5번을 확인하고서 집을 나섰다.

리트리버 대니는 세상걱정없이 자고있었으므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면서 말했다.

"다녀올게 대니. 저택을 부탁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자동차는 속력을 더 끌어낼수 있었기 때문에 아주 빠른속도로 시내에 도착했다.

본네트가 뜨거울것은 안봐도 뻔해서 굳이 만져보지는 않았다.

그냥 도착했을때부터 시간을 떼워야 했기에 커피샵을 들렀다. 베어핏 카페였다.

문을 열자마자 바리스타가 말을 걸었다.

"오~도련님, 오늘은좀 잘차려입고 나왔네? 이 누님, 반해버리겠어."

"농담은 거기까지 합시다. 난 사양이니까."

"너 정말 재미없는거 알지?"

"누님도 재미없거든요."

"에휴, 니가 그러니까 애인이 없지."

"아니, 여기서 그 얘기가 왜나와?"

"됐어, 커피는 뭘로할래?"

"커피말고 에이드같은거 청량한걸로."

"그래. 오늘은 누구를 만난다고 그렇게 입은거야?"

"딱히..? 만날사람 같은건."

"아, 너도 그거구나, 왕성."

"눈치도 빠르셔라. 딱 볼때부터 아셨어야지."

"난 나한테 잘보이려는 줄 알았지.".

"설마 그러려고."

"칫. 이 누나 맘아프다?"

"놀리려는 생각밖에 없는거 알아요. 웃지나 말고 그런소릴 하셔 좀."

"재미없는녀석 같으니라고. 기회를 줘도."

"됐어. 기회는 무슨. 취향이 아니라니까."

"그래. 그나저나 꽤 아침 일찍부터왔는데?"

뒤로돌아 얼음을 갈면서 이쪽을 돌아보지 않은채로 말을 걸고있다. 이 편한 분위기가 좋은걸지도.

"늦는것 보다야."

"확실히."

"장사는 잘되시나?"

"왜, 안된다고하면 어쩌려고."

"인수라도 해?"

"안돼. 소소한 낙이란말야."

"커피는 계속 만들게 해줄게."

"아니, 건물 세받는거."

"징글징글하구만 진짜로."

그녀가 돌아봤을때는 손에 에이드 한잔이 들려있었다.

"무슨 에이드로 할지 말 안하길래 자몽으로 했어."

"그건 그냥 누나 마시고 새로 청포도로 해줘. 돈은 두잔만큼 낼게."

"두번 일시키는것 좀 봐."

"미안하게 됐어."

짤그랑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어, 에드먼드 아냐? 이건 또 별일이네."

"도나텔리형?"

"그래, 도나텔리브라더라구."

"도나텔리, 조용히하고 앉아. 늘 마시던 걸로 줄게."

"알았어."

도나텔리형은 내 옆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리고는 빨대 하나를 빼어물고자몽에이드에 꽂더니 쭉 빨아마셨다. 누님은 이미 청포도 에이드와 커피를 만드는데 열중하느라 못본것 같다.

"에드먼드, 여긴 왠일이야?"

"형이야말로."

"술집은 7시부터 열잖아. 우리 넬라 얼굴이나 보려고했지."

"우리 넬라? 누구맘대로 우리를 가져다붙여?"

누님이 뒤를 확 돌아보며 말했다.

"화내지마, 넬라. 너는 웃는게 예뻐."

"확 커피 부어버려?"

"진정하세요. 누님."

싱글벙글한 도나텔리형은 웃고있었다.

누님은 진정하고 목을 축이기위해 자몽에이드를 마시려다가 양이 줄어있는것을보고

고개를 들었다가 도나텔리형이 빙글대며 빨대를 돌리고 있는것을 발견했다.

"도나텔리..? 설마..."

"아뇨, 저는 그건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아까 에드먼드가 자몽에이드를 손대는것을 본것같은데

그것과 무언가 연관성이 있는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가만히 바라보다 한숨을 쉰 누님이 말했다.

"이번달부터 월세를 올릴 필요가 있겠어."

이러려고 인수는안된다고 한건가. 솔직히 인수를 할 돈도 지금은 없지만.

"아, 알았어. 미안해. 나야. 내가 마셨어."

"어휴. 한심하기는. 에드먼드, 청포도에이드."

나는 에이드를 받아들고 한모금 마셨다.

"누님. 저 시간이 남는데 여기서 좀 있어도 되죠?"

"죽치고 있으면 쫓아낼거야."

"형이랑 내려가서 바에서 술이나 하자 에드먼드."

"아니, 그건좀.."

"에드먼드 너 이자식.. 사람차별이나 하고말야. 이 형은 서운하다."

누님을 흘끔 보고 눈빛으로 사인을 보냈다. 어떻게좀 해보라는 거였다.

"도나텔리. 가게분위기 이상해지잖아. 커피 여기있으니까. 들고 나가있어. 데이트 해줄게."

그러자 그의 표정이 밝아지며 웃더니 싱글벙글하더니 나가버렸다.

"저..누님..?"

"저거 맨날 저런다니까. 내가좋대. 저렇게까지 하는데 안쓰러워서라도 가끔 맞춰줘야지."

"누님, 안쓰럽다고 사귀어주고 그러는거 아니에요."

"애가 나쁜애는 아니니까. 너, 가게좀 보고있어. 손님오면 지금 영업 안한다고 하고."

"그럼 저도 갈게요. 문닫고 편하게 일 보세요."

"그래. 그럼 그렇게하자. 나가자."

카페문을 잠그며 누님이 그랬다.

"쉬러왔는데 미안하네. 돈은 안받을게."

아직 계산 안했었구나. 깜빡했다.

"그래도 저.."

"그냥 가. 됐으니까."

가볍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도나텔리 형..바에서 볼땐 그렇게 안봤는데. 하는수없이 차를 왕성 주변에 주차해놓고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을때였다.

"에드?"

와 이거 오늘 참 많이도 얻어걸리네 하며 돌아보자 그곳에는 제인 반 데어믹스가 있었다. 분명 왕실 비서라고 했던것도 같은데.

"에드먼드 맞지?"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이상하게 내리깔았다.

"아뇨, 아닌데요."

"바보같이 그러지마. 기껏 잘 꾸며놓고와서는."

"그러게."

"꾸며놓으니까 괜찮네."

"너 좋으라고 꾸민거 아니거든?"

"까칠하기는. 어제 분명히 시간 알려줬는데 그새 까먹고 온거니? 정말 멍청하긴."

그러면서 웃고있는 제인은 정말이지 순수할정도로 해맑았다. 진심으로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건가.

"그럼 너는 왜 여기있어?"

"오늘은 파티당일이니까. 휴가받아서 나가던 참이야. 아 그나저나 너 어제 내 전화 왜 끊었어?"

"들을만한 얘기가 없더라고.난 이만 가봐도 될까?"

"같이가도 돼?"

내가 뭘 들은거지. 얘를? 내가? 왜?

"왜? 아니, 그전에 뭐라고? 잘못들은거지?"

기분이 상한건지 표정이 나빠진 그녀가 말했다.

"그래. 하긴 같이 갈 이유는없지. 길이나 안헤매면 다행이게."

지친다. 하긴 그래도 할게 없는건 맞으니까 같이 다닐까.

오랜만에 봤는데 다를게 하나정돈 있을지도 모르고 그레고리씨께도 면목이 없을 수 있으니까.

"그럼 따라오던가."

"결국 같이갈거면서 튕기기는."

"진짜 그럼 혼자간다?"

"알았어. 가자. 어디로 가는데?"

"글쎄다. 파티전까지 시간을 좀 떼우려고."

"그럼 같이 미술관이라도 갈래?"

예상외의 발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제안이었다.

"왠일로 듣기좋은소릴하냐?"

"그래서 예뻐보이냐?"

"조금은? 그래서, 나는 좀 멋져보이냐?"

"쓸데없는 소릴하고있어."

이제는 태클걸기도 귀찮아졌다. 반입금지인 음료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미술관을 흝어보면서 나름 사색을 즐기고 있었다. 제인도 나름 신이난것 같다. 얼굴에 미소가 번진걸로 봐서는. 미술감상도하는 사람이었구나. 조금 달라보였다.

"저기, 에드. 이그림. 어떻게 생각해?"

돌아보자 그림하나가 있었다. 나를 평가하겠다는건지 대놓고 그림대신 이쪽을 뚫어져라 보고있다.

"음.. 잘그린건 맞는것 같은데 대단한것 까지는 아냐.

시간이 있으면 나도 그릴수 있어.

솔직하게 말하면 이그림은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인데 여기선 어두운 색을 쓰는편이 분위기라던가 전체적인 질감면에 있어서 더 좋았을거라 생각해.

그리고 여기 이부분. 물감이 섞였지? 실수한걸 가리려고 덧칠한거야.

괜히 건드렸어. 잘못된걸 인정하고 다른부분을 공략하는게 나을뻔했어.

실수 자체는 그렇게 눈에띄진 않았는데 덧칠한게 너무 커."

"그렇구나. 잘 아는데 너? 이렇게까지 자세하고 쪼잔하고 허세만 가득찬 사람인 줄은 몰랐어. 좀 변태같고 기분나빠."

"당연하지 나도 미ㅅ.."

아니 굳이 말할필요는 없겠지. 지금 후회해도 늦었지만 유치한 아류작 한심한 자칭 전문가의 멘트같은걸 잘도 했다.

"미술하는 사람이라고?"

"그래."

미술관을 나와서 걷다보니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배 안고파? 밥이나 먹자."

"나는 배 안고ㅍ.."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거짓말을 왜 하는거야 배에서 소리가 날 정도였으면.

"뭐 먹을래?"

"난 아무거나 안먹어."

"아오 진짜 쳐먹지말든가 그믄. 난 씨푸드먹을건데 싫으면 다른거 먹고."

"나쁘지 않네. 가자."

'번거로운 녀석같으니라고. 한번에 콜사인 나올거면서 아무거나는.'

그렇게 나는 씨푸드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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