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249화 (249/303)

〈 249화 〉 슬픈 귀족의 이야기 ­ 플뤼네의 중재자

* * *

"예?"

제일 당황했던 것은 단연 나였다. 눈하나 까딱안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이야기하는 젊은 왕자는

호기롭게 눈을 빛내며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역적모의에 가담하라고 명하고 있었다.

"왕을 승하시키고 그 자리를 계승하기 위함이라 했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자, 이 모임의 이유이다. 의문은 있는가 플뤼네."

당연히 당황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덫에 걸렸다는 것을 이해했고 에네도르의 웃음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당황은 짧았고 결단은 빨랐다. 강요된 대답이라는 점은 명확했으나 애초에 이 제안에 거부권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이 자리에 왕이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고 더불어 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것은 다행으로 여기며 섣부른 판단을 아낀 자신에게 감사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상 거절한다고 해도 무사히 나갈수 있을리는 없었고 이 일로 내가 귀족 이상에 올라설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평화를 사랑했던 성군 엠페리어를 두고는 이 이상의 군대를 보유할 수 없었던 점에 불만을 가진 에그니아와 더욱 강력한 힘을 원한 에네도르.

다른 6귀족이 보유한 정치권의 양도를 원하고 있었던 나를 포함하면 3명이나 되는 6귀족이 바로 그왕을 몰아내려고 하고있었다.

나에게도 분명 한 몫이 떨어질 것은 분명했다. 왕자의 주도로 이루어진 독살 계획은 간단했다.

왕에게 정치적인 안건을 미끼로 그를 유인해 몰래 그가 마실 음료에 독을 섞을 계획이었다.

단것을 좋아하는 왕은 분명 커피나 밀크티에 각설탕을 넣을것이고 우리는 단지 그중 하나에

독을 섞어넣기만 하면 되었다. 우연히 설탕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면 왕이 집을 설탕도 어느정도 예상할수 있었다.

계획은 순조로웠고 8달에 걸쳐 준비를 마친 후 에네도르가 우리의 위조된 성명서를 들고

왕에게 노예해방의 안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중 그 누구도 노예의 해방에 관한것은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국가에 신고하지 않은 노예의 수가 공노보다 많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를 제일 유용하게 이용하는 것이 놀란드, 그 대머리였는데 그는 왕실에 비밀로 지하투기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단연 주 관객은 할일없는 귀족이었고 거기서 피튀기며 쓰러지는 장기말은 국가에 신고하지 않은 노예였다.

주로 국경수비중 대치한 적의 포로라거나 범죄자로 구성된 자들이었는데 투기장에서 우승하면 풀어주고 추가로 상금을 내린다고 하자

그들은 손에 검을 쥐고 그의 장기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결국 그들 모두가 결승 직전에 등장한 의문의 챔피언의 양날도끼에 처참한 모습으로 경기장을 떠나곤 했는데

대외적으로만 의문이었지 그 도끼에 새겨진 독수리문양을 보면 모르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할 수 있었다.

도끼날은 언제나 붉은 빛이었는데 피가 마를날 없이 수많은 검투사를 찍어갈랐기 때문이다.

피가 늘어붙어 검게 변색된 도끼는 꾸준히 날을 갈아 특유의 붉은 빛을 유지했는데 그러다가도 결국 갈다못해 작아진 도끼는 자루를 깎아 손도끼로 사냥에 이용하거나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강철 도끼는 7번째 블러드엑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나는 이처럼 비 인도적인 방식은 취하지 않았는데 취향이 아닌것은 물론이요, 그럴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이상적인 문화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들을 아낌없이 공사현장에 들이부었고 그렇게 대학을 비롯한 문화 교육시설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물론 이 역시 인도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부상자나 더는 업무 진행이 불가한 자들, 혹은 노쇠하거나 전력으로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은 놀란드에게 팔아 버리거나 푼돈의 삯을 주고 집으로 보냈다.

물론 사망자도 적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내게 보고된 사항은 없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에그니아측에서 파견된 감독관이 공사를 비롯한 각종 업무를 총괄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저 언제까지 어떤 건물을 완공하고 싶은지만 그들에게 이야기 하면 되었다.

약간의 오차는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에그니아의 건설업체로 포장된 이들은 오차 3일 내로 굉장히 준수한 작업률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저 나의 몫으로 들어오는 노예를 공사장으로 인도하고 보고받은 인원에게 약간의 삯을 주고 알아서 잘 돌려보내라고 감독관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전부였고

개중 가끔은 감독관이 노예를 에그니아 측에서 인도받기를 원한다고 할때 종종 그의 집에서 식사를 대접받는 정도로 정리했다.

사실상 친목회라고는 하지만 무언의 거래였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비즈니스의 연장이었다.

에네도르 역시 단연 노예를 대외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았는데 주로 사창가에 여성 노예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뒷돈을 불리는 식이었다.

주로 몰락 귀족이나 쓰레기같은 지방 귀족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는데 에네도르 본인은 그런 자들을 보며 종종 더러운 가축과도 같은 자들이라며 욕하곤 했다.

인간 역시 물품과 같이 품격이 나뉘는 것이고 그 품격이 없다면 인간은 도구와 다를바가 없다는 그녀의 철학아래 수많은 여성이 노예로 팔렸고

국가는 이를 의문의 실종이나 의문의 묻지마살인으로 분류했다. 이는 엠페리어 왕의 신뢰가 원인이었다. 왕은 6귀족을 의심하지 않았다.

성격이 좋아서라고 포장할 수 있었으나 사실 나쁘게 말하면 사람이 너무 순진했다.

절대적인 왕의 신뢰 아래 수사망을 피해간 그들을 감히 체포할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그랬기에 노예를 해방하자는 명목으로 앞뒤가 맞지않는 성명서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생겼는데, 이는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우리가 어리석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은 엠페리어왕이 6귀족 모두에게 친서를 보낸일이었다. 예상밖의 일이었다. 그런 중대한 안건을 6귀족의 소집없이 처리할수 없다는 왕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암살계획에는 치명적인 오류였다.

6귀족 모두가 모인다면 왕의 독살은 고사하고 들켰을 때 도리어 반역으로 몰릴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또한 다른 누군가가 설탕을 먹게 될 가능성 또한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급히 다시 모의를 열었다. 에그니아가 잔뜩 뭉개진 얼굴로 덥수룩한

수염을 쓸며 이야기했다. 계획이 일그러진 것에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담은 어투였다.

"이제 어쩌실겁니까? 이제와서 설마 포기하려 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왕이 흠칫하며 당황한듯 그를 바라보더니 곧 에네도르에게로 눈을 돌리고 표정을 살폈다. 그러고는 내게로 눈을 돌려 말없이 잠시 끄덕거리는가 싶더니 자세를 고쳐앉았다.

"흥분하지 말라. 계획은 다소 바뀔지 모르지만 암살은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다. 굳이 큰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는 없다.

나의 아버지는... 아직 우리가 암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도 모르고 있다. 침착하라."

하지만 그런 그의 눈에도 불안이 보이고 있어 그닥 신용은 가지 않았다.

그런 침묵속에 에네도르가 술잔을 기울여 입에 한모금 대더니 다리를 꼬고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그 미소는 아름다우면서도 독기를 품은듯한 미소였다. 그런 미소임에도 고개를 돌리거나 시선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는 아마 그녀의 외모가 주는 무언의 압박이었을 것이다. 그 당당한 어투는 말 그대로 안하무인 그리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 자체였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성이 주장하는 내용에서 고개를 돌릴 사람은 잘 없으리라 생각했다.

"에네도르, 왕자님 앞에서 무엄하게 다리를 꼬고 앉는다는 말인가!"

"그만! 가만 두어라."

에그니아의 호통은 왕자에 의해 저지당했다.

왕자의 내버려두라는 한 마디로 애매하게 굳은 에그니아를 비웃으며 그녀는 말을 시작했다.

"오히려 잘된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제는 우리는 가상의 범인을 만들어버릴수 있는겁니다.

왕의 편지는 6귀족 모두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6귀족 이외의 인물들은 누구도 그 편지를 받을수 없다.

만일 노예 해방의 안건을 회의하기 이전에 우리가 왕을 암살하는데 성공하게 될 경우 그것은 왕의 계획을 반대하는 6귀족중 한 명의 소행이라고 생각할겁니다.

그리고 그때, 이 편지는 크게 작용할거고요.

만일 왕 시해 후에 이 편지가 그 현장에 있게 된다면 그 편지의 주인은 의심을 받게 될겁니다."

"하지만 그런일은 조금만 조사를 해 보면 알수 있지 않겠나?"

나의 발언을 듣더니 마치 벌레를 보는듯한 눈으로 날 바라본 에네도르에게 순간 화가 났지만

곧 그녀의 매정한 눈빛은 이죽이며 웃음기를 띄고는 무서울 정도의 살벌한 눈웃음이 되었다.

"그런건 6귀족이 세명이나 있는데 알아서 덮으면 되지 않나? 엠페리어 왕도 사라지고 나면 누가 우릴 막을거지?

그정도도 못하면서 왕을 죽인다고 한 거라면 오히려 실망스러운것 아니겠어?

뭐, 몰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계속하면 우리는 이제 회의가 시작하기 전에 왕을 죽여야 하고,

또 가짜 살인자를 누구로 할지 정하는 게 중요하겠네. 우선은 왕의 편을 하나 더 줄이는게 좋겠지?

겔데어스는 왕보다는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데 관심이 있는 속물이기만 하지, 생각이 없으니 제외하고

반 같은 경우에는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니지. 그 남자는 뒤로 이 바닥에 얽힌 굵직한 줄이 많아서. 모임은 내가 알아서 주도하지. 나머지는 알아서들 해."

"그거 좋구만, 에스트릭스로 하자는 건가. 찬성하지. 찬성하고말고. 크하하하"

에그니아가 기쁜듯 웃어제끼고 나는 그 사이에서 그저 멀뚱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반대는 하지 않았다. 굳이 피해를 감당하면서 그를 돕고 싶지는 않았다.

실질적으로 내가 그와 친한 관계였던것도 아니었으니. 단지 사이가 멀었던 그와 그의 아들을 이어준 정도였다.

에스트릭스는 종종 내게 아들로의 원조를 부탁했다. 자신이 직접 전해주면 되는 단순한 일임에도 그는 언제나 스스로 아들을 돕지 않았다.

아마 꼴같잖은 자존심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에겐 그의 아들의 생활비를 명목으로 매달 돈이 부쳐졌고 나는 내 몫인 10%를 떼고 전달할 뿐이었다.

아들이었던 에드먼드에게 어느정도의 동정과 연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아들. 그정도의 관계였고 그 이상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만일 그가 내게 필요이상의 관심이나 신뢰를 받고 있었다면 그건 순전히 그의 착각일 것이다.

별 다른 껄끄러움 없이 나는 에스트릭스 브리깃을 희생양으로 인정했다.

사실 잘못된건 알고 있었으나 당장 눈앞에 이익에 홀린 것이었다.

"반대는 없는것 같은데 그럼 이 얘긴 여기까지 해도 되겠죠? 다음으로 넘어가서 누가 어떻게 왕을 처리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에네도르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이 여성이 어찌도 이리 매정히 모시는 주군을 죽이려는지 궁금했고 또한 한마디 반대없이 아버지를 죽이려는 왕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분명히 서린 애매한 망설임은 돌이킬수 없는 지경까지 왔음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철회하고 싶어하는 듯 보이는 눈은 여기저기 눈치만 볼 뿐 감히 귀족들 앞에서 철회할 용기가 나지 않은건지 혹은 다른 무언가가 있는건지 애꿎은 입만 어물거릴 뿐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다. 이미 무거운 공기를 즐기는 에그니아와 에네도르에게 이 공간은 먹혀버렸다. 나 역시 마른 목을 샴페인으로 적시면서 눈치를 살폈다.

"나는 독을 준비했지. 코끼리라도 쓰러뜨릴 수 있는 맹독으로.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녀석이지. 만약 소재가 파악되더라도

겔데어스가 들여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정말 좋은 물건 아닌가. 겔데어스와 코끼리도 눕힐 수 있는 맹독이라... 마음에 드는데."

에그니아가 눈을 가늘게 띄우며 웃어보인다. 아마 분명 제국에서 들여온 물건이겠지.

에그니아는 제국에서 넘어온 자이니 만큼 그쪽으로 연줄이 깊었으니까. 악명높은 제국의 연구소장과 친분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입술은 옆으로 쭉 찢어지듯 벌어지며 그 사이로 흰 이가 보였다. 곧 자세를 바로잡으며 수염을 정리하고 옷무새를 정리했다.

에네도르는 말없이 검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 에그니아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제일 어린 에네도르라지만 정말 이 일에 저렇게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행동력과 추진력이 과연 뱀이라 불릴만한 여자였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에그니아는 헛기침을 몇번 하더니 머쓱하다는 듯이 왕자에게 이야기했다.

"품위가 없었습니다. 왕자님. 죄송합니다."

"괜찮다. 우리는 한 배를 탄 사이가 아니냐."

왕자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가 맡은 역할이 누구보다 중요하다. 시그릿 플뤼네. 엠페리어왕에게 독을 먹이는거다.

우리 넷의 목숨을 그대에게 거는거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도록."

"예...실망시키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대답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와서 거부감 같은것은 없었다. 오히려 일종의 자신또한 있었다.

나는 절대적으로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그것이 마약처럼 내 머리속에서 부담감과 걱정을 마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조차 나의 실수였단 생각은 미처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때 별 하나가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고 나는 무언가의 징조일 것이라 생각하며 잠이들었다.

꿈은 꾸지 않았다. 다시 아침이 되었을 때 나는 이제 계획을 실행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