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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254화 (254/303)

〈 254화 〉 슬픈 귀족의 이야기 ­ 플뤼네의 중재자

* * *

"의외네요."

"뭐가 말인가?"

바리스타, 아마 이름이 넬라였을 그 여자가 설거지를 시작하며 대답했다.

"아니 뭐 그냥, 우리랑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 하신 거 아니셨나?"

"사는 세계는 달라도 같은 차를 타더군."

"차 좋아하시는 줄은 또 몰랐네."

나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적당히 픽 웃어보였다.

그닥 말은 없었지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힐끔 보인 것 같았다.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멍하니 말했다.

"자네도 저번에 봤던 것 보다는 훨씬 너그러워진 모양이네."

"이 공간에서는 모두가 저에게 요구하고 대가를 지불해요.

그 룰에 의해서 유지되는 카페라구요. 아시겠죠?"

"내가 저번에 했던 말이 꽤나 불쾌했던 모양이군?"

"글쎄요."

"가게에서 파는 쿠키를 좀 사고 싶은데 포장 해 줄 수 있나?"

"어떤 쿠키로 담아드려요?"

"진저브레드로. 넉넉하게 10개 정도 담아주게나."

"그러세요."

나는 쿠키를 받아들고 함께 왔던 로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커피잔을 들고 아쉬운 듯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미 커피잔은 비어있었는데도 놓지 못하는 모습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바리스타에게 말했다.

"금화 3개네. 이정도면 충분할거라고 생각하네."

"당신 또...!"

"내 진저브레드에 이 아이의 커피값도 포함해서 부탁하겠네.

금액이 허락하는 한은 먹고싶다고 하는 건 그걸로 계산해주게."

그녀가 침묵했다.

동시에 로라가 나를 올려다보며 앉은 자리에서 물었다.

"공작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많이 마실 것도 아니고, 그저 조금 신기해서..."

"쉬고 있게, 그냥 궁금해져서 그런거네."

"궁금하다...고요?"

"그냥 그런거라고 생각해주게.

아, 로라. 나는 이 앞에 차에서 한 숨 돌리고 있을테니 느긋하게 먹고 나오면 되네.

내가 잘 시간도 포함해서 느긋하게 마시고 나오게나."

"ㄱ...공작님께선..?"

"난 아무래도 그 카페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이라서 말이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와서 차에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차 뒷좌석은 익숙한 공간이다. 쿠션도 있었고, 가벼운 담요도 마련되어 있었다.

내가 눈을 뜬 것은 시간이 꽤나 지나서 12시가 넘을 때쯤이었다.

식사를 하지 않아 주린 배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깨웠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로라는 차분한 얼굴로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아, 꽤 오래 잤군. 미안하네."

"아닙니다.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책은 뭔가?"

"아, 그냥 소설입니다."

"소설?"

"로맨스 소설인데, 언젠가 이런 결혼을 해보고 싶어서..."

"결혼... 결혼에 낭만이 있나?"

"아무래도 인생의 절반은 함께하게 되는 일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환상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럴 법도 하겠군. 가족이란 말에 집중한다고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네.

내가 결혼을 일찍 했더라면 지금쯤 자네 나이쯤 하는 딸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조금 나이차가 있기야 하겠지만 아마 그럴 것이다.

"어디로 모실까요?"

"브리깃 가로 가세나. 약속이 있으니까. 거기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지?"

"족히 4~50분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지. 하여튼 그 노인네도 미쳐가지고 그 끄트머리에 집을 지었다니까."

로라는 그렇게 운전을 시작했고, 정말 꼭 한 시간이 걸려 우리는 저택앞에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흠... 신경쓰지 말게. 여유는 있었으니까. 다만 자네도... 아니지, 자네는 앞으로 운전기사로 쓰고 싶네.

나보다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은 못봤네. 하지만, 나보다 운전을 편안하게 하는 사람은 방금 찾은 것 같군.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게 되면 헤이나 하녀장에게 내가 지시한 사항이라고 전하고 운전기사로 업무를 바꾸게.

따로 거기에 값을 붙여주지."

"알겠습니다..."

"내가 그정도도 모르는 사람은 아니네. 빨리 오는 방법은 많았지만, 내가 든 커피와 진저브레드를 하나도 떨구지 않고

안정적으로 가지고 올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운전을 하는 사람은 단언컨데 없었다네.

자네의 보직 변경이후 첫 임무이니 부디 잘 수행하길 바라네. 나는 한동안 이 저택에서 대화를 나누다 올걸세.

4시 쯤 여유가 날 것 같다고 생각하네. 그때까지 세차를 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겠나?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여유롭게 대기해도 좋고,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다 와도 좋네."

"아,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가지."

나는 그녀에게 지시한 내용을 그녀가 잊지 않기를 바라며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는 하인이 문을 빼꼼 열고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시지요. 약속시간보다 일찍 오셔서 미리 준비를 마치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리며. 안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주인님께서는 현재 업무를 보고 계시므로 잠시 기다려 주시면 금방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집사가 들어왔다.

제라드였다.

"반갑구만 제라드. 오랜만이야."

"다시 뵙게 되어 기쁩니다. 인사드립니다. 제라드입니다."

"그래, 에스테릭스는 뭘 하고 있나?"

"간단한 서류정리를 하고 계십니다. 안그래도 남부쪽에서 말이 맞지 않아서

서류를 대조하시며 이번 안건 관련해서..."

"이번 안건?"

"네, 노예의 수와 기본 실태따위를 조사하는 중에 남부쪽에서 말이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사실 듣기로는 숨겨진 시설도 워낙에 많기도 했고,

왕께서도 이번 개혁때 신고되지 않은 노예에 대해서는

차후 국정결과에 관계 없이 신분을 자유로이 하겠다고 하셨다보니

여기저기서 신고를 하지 않는 이들과 이제껏 숨긴 노예를 신고하는 이들이 모여

형언하기 어려운 아수라장이 되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구만. 뭐든 고지식하게 자기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심도 못하는 성격...

자네도 맞춰주느라 꽤나 고생하겠군?"

"저야 그게 일이고, 주인님을 모시는데 기쁨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아들놈도 종종 보러 갈 여유가 생겼고 말입니다. 여러모로 배려해주시기에 이 늙은이도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렇구만. 자네 아들도 있었던가?"

"네, 있지요. 아들놈은 제가 이곳에서 일을 하는 것은 그닥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아무래도 타지에서 일하는 아비라 자식새끼 얼굴 보기도 그리 쉽지 않았으니까요.

이제 최근 들어 숨이 좀 트이기는 했다지만서도, 일반적인 가정과는 다르다보니..."

"집사들은 대개 그렇지. 나도 그래서 이번에 노엘에게 휴가를 줬다네."

"과연 6귀족분들께서는 자비로우십니다.

이 늙은이도 그런 자비 아래서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에스테릭스는 오래 걸릴 것 같은가?"

"아닙니다, 지금 하고 계시는 것도 3번째 검토이기 때문에..."

"그런가. 세 번씩이나 같은 안건을 검토하는 건, 나는 도무지 못할 일이네."

"누군가는 그런 일을 전담하실 분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네는 에스테릭스를 상당히 좋아하는 모양이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종의 자부심 따위도 느끼는 모양인지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네, 직업부터 결혼 알선에 자식놈 학비까지 지원해주셨으니까요."

"자네 가족은 에스테릭스가 이어준 거였나?"

"그렇게 되었습니다. 타지에서 일하고 있다 보니까 말입니다.

제가 본디 지내던 곳은 북부 지역 국경 넘어 자리한 교국입니다. 이미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교국? 그 추운 지역을 넘어 왔다는 말인가? 백색고원이 아마 거기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네만."

"춥고 신앙이 넘치는 나라입죠. 거기서 오랜 기간을 주교가문으로 지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제는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 전에 그곳을 떠났습니다.

가문은 이전에 비해서 점점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고 몰락해가고 있었고,

주변에서 몰리는 눈초리가 저희 가족에게는 부담스러웠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과감히 교국을 떠나 엠페레스로 넘어온 겁니다.

이곳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아내는 임신 후에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있게되어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으므로, 교국의 가문으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

교국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제 부모님과 함께 지낸다고 하더군요.

물론 아내도 엠페레스에 가족이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은,

주인님께서 일가 모두를 교국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셨습니다."

"상당히 많은 돈이 들었겠군."

"네, 그래서 저는 그분께 인생을 바치고자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거기까지 이어지자 문이 드르륵 열리며 목소리가 섞인다.

에스테릭스 브리깃 공작이었다. 깡마르고 가로로 긴 얼굴, 그리고 총기가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순해보이는 눈까지.

"그랬나? 그런 일도 신경쓰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고맙게 생각하네 제라드. 난 그와 둘이 이야기를 할 테니 잠시 자리를 비켜 주게나."

"아, 그러지요.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에스테릭스는 내게 말했다.

"그래 오랜만에 찾아왔군. 이번에는 무슨 일로 온 건가?"

"그냥 이야기나 하고자 해서 찾아온 걸세.

자네도 알다시피 이 나라는 지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려 하고 있네.

이건 단순히 정책의 변화가 아닐세.

앞으로의 국면을 전환시킬 개혁이지."

"아아, 미안하네. 그 이야기는 됐네. 머리가 아파서 말이야.

나도 조사해 볼 만큼은 조사해 봤다네. 안그래도 에그니아와 관련한 사업은

하나같이 노예를 숨기고 있었다는게 드러났네. 그 노예들이 모조리 등록된다면

그것도 국가의 형국을 뒤집을 거고, 그렇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일은 아주 중요한 걸세. 우리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 수도 있다네."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에게서 동정심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이 남자처럼 나도 언제라도 버려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슬쩍 힌트를 흘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내 말을 힌트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됐네. 안그래도 머리쓸 곳이 많다네.

사실상 자네나 나나 노예를 많이 쓰지도 않는 편이니 말이지,

정식으로 고용하면 될 것을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는 사람들이니까.

다만 문제라고 하면, 에그니아를 비롯한 코탈은 이번 정책에 상당히 타격을 입겠지."

"후우..."

에스테릭스는 지긋이 눈을 뜨고 재떨이를 자리 앞에 가져다 두더니

담배가루를 잘게 부숴 놓고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불을 붙이며 한숨을 뱉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괜히 물었다.

"괜찮은가?"

"괜찮고 말고. 아, 그래서 말인데 시그릿. 잠시 기다려주겠나?"

그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더니 봉투를 하나 들고 돌아왔다.

두터운 봉투에는 묵직할 정도로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이것 말인데, 이번달도 부탁하네. 기왕 자네가 여기까지 왔으니 직접 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더군."

"아, 자네 아들에게 줄 용돈 말인가? 그런거야 뭐 자네가 직접 전달하지 그러나?

왜 매번 번거롭게 사람을 사이에 끼워서 그러는건가?

나야 뭐 자네가 별도로 전해주는 돈이 있기야 하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게 다 얼마인가?"

"나도 정확히 센 적은 없네. 월 수입의 40%를 넣었으니 결코 적은 수준은 아닐 걸세.

늘 벌어들이는 돈의 40%는 꾸준히 따로 빼놓고 있으니 말이야. 적어도 그 아이가 사는데 불편함은 없겠지.

다만 그 돈으로 그 망할 여자도 먹여살리고 있다는게 천추의 한이다만은... 어쩌겠나. 그 애 어미인것을."

"부인에게 말이 심하구만."

"부인? 아아, 그래. 부인이고 말고. 내가 자네한테 말한 적이 없었구만.

내가 왜 자네를 통해 에둘러 자식새끼 용돈을 주고 있는지를.

에드먼드 브리깃, 그러니까 자네가 매달 돈을 주고 있는 그 아이는 사실, 내 아이가 아니라네."

"뭐?"

"그 말대로지. 내 아이가 아니야.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일세.

나는 벌써 20년도 전부터 서지 않았으니까."

"오...맙소사. 그럼 그걸 보고만 있었나? 아니 대체 그럼 양육비를 매달 지급하는 이유는 뭔가?"

"나도 모르겠네. 그 아이에게 대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나는 아내를 사랑했고, 그래서 신분의 차이를 무릅쓰고서라도 갖은 반대속에 그녀와 결혼했네.

하지만 그녀는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나보지. 우리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알게된 일이네.

하늘도 무심하지. 기껏 결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의 씨를 받아 왔다는 것도.

그리고 내가 그걸 욕하면서도 그녀를 한번 안을 수도 없다는 것도.

모두 아주 개같은 일이었네. 아내는 울고 있었네. 내게 사과했네.

미안하다고 울면서 비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었어.

죽이고 싶었는지 죽고 싶었는지, 잘은 모르겠네.

확실한건 브리깃의 대는 내 대에서 끊겼다는 것이지."

"대체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럼 왜 그 아이의 이름을 브리깃으로 내버려둔건가!

하다못해 아내의 외도를 알릴 수도 있었고, 새로운 아내를 들일 수도 있었잖은가 에스테릭스.

가문의 영광이 그렇게... 아니지, 분명 6귀족으로서 그런 이슈는 치명적이니 말이야..."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네. 그냥 나는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네.

그래서 아이를 품기로 했을 뿐이네. 그 여자는 두번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았네.

천민이기도 했었고, 하는 수 없이 나는 에드먼드를 귀족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네.

그 여자의 바람맞아 낳은 아이가 아니라, 적자로서 기를 생각이었단 말이네.

귀족의 태도를 가르쳤고 품격을 잊지 않도록 교육했지. 하지만 그게 그 어린 것에게 구속으로 느껴졌나보이."

"자네는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건가...?"

"내게는 그 아이가 희망이었네. 어차피 서지 않는 나였으니까.

후대를 남기지 못하는 입장에서 눈물을 머금고 그 아이를 어떻게든 귀족으로 만들고 싶었네.

브리깃의 대를 잇게 하고 싶었어. 어릴 때부터 내가 가르치고 내가 길러온 내 아들이 되어주길 바랐다네.

하지만 어렵더군. 그 아이는 나처럼 얼굴이 길지도 않았다네. 둥근 얼굴이 꼭 제 어미를 닮았어.

나처럼 원칙주의적이지도 않았고,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네. 아마 제 아버지를 닮은 거겠지."

"오 시발, 그만. 그만하게."

"결국 자네도 아는대로 나는 그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여자를 내쳤네.

이 집에서 나가라고 매몰차게 말했지. 그리고 그 어린 에드먼드는 그 여자를 따라갔다네.

나를 싫어하는 얼굴을 하고서, 그 눈 가득 불쾌함만을 담고 나를 쳐다보았지.

그런 아이가, 내가 주는 돈을 선뜻 받을리가 없잖은가.

그래도 만약 기회가 되면 내가 그 아이를 정말 아꼈다고 말해주고 싶다네.

이젠 나와 절연을 하겠다고 말하고 나갔지만, 난 후계자로 그 아이를 지명할 생각일세."

"미쳤군. 완전히 미쳤어."

"그럴는지도 모르네."

"애 아빠는 알고 있나?"

"모르네. 알고 싶지도 않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 아이는 내 아이라네. 비록 남들이 볼때는 그리 보이지 않더라도.

내 아들이고, 적법하게 브리깃으로 만들거라네. 그러니까...

그러니까... 부디 비밀로 해주게.

그리고 이 돈을 에드먼드에게 전해주게."

"그게 자네에게 가족인가?"

"가족? 아아, 가족이고 말고."

"왜 그렇게까지 하는건가. 아내도 아들도 자네를 사랑하지 않는데!"

"알고 있다네. 하지만 여전히 기억하고 있거든.

사랑했던 날들 말이네.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했었단 말이야.

자고로, 엠페레스의 신사로서 사랑했던 여자와 아들을 버려둘수는 없잖은가."

"설령 그들이 자네를 버렸다고 해도?"

"설령 그들이 날 버렸다고 해도 말이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천천히 머리를 위로 쓸어올렸다.

뒤로 푸석한 머리칼을 넘기면서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파이프를 물었다.

"하지만 가끔씩은, 그저 그런 생각을 한다네.

그 아이가 내 아이였더라면. 내 옆에 아직 그 좆같은 여자가 있고,

내가 아직 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다면.

내 사랑이 되돌려받을 수 있는 형태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그의 눈가는 붉었다. 아주 붉었고 아주 축축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토할 것 같은 얼굴로 동공을 떨고 있었다.

나는 말 대신 담배를 꺼내 피웠다.

방이 뿌옇게 변할 때까지 그와 나는 말 한마디 없이 담배연기만 뻑뻑 뱉었다.

"시발..."

"시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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