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 슬픈 귀족의 이야기 두 경찰
* * *
"그러고 보니까 우리 저번 휴가때 뭐 했었지?"
"휴가가 늘 거기서 거기지 뭐. 언제 맘 편히 쉰 적이나 있고?"
"그렇긴 하지. 뭣 좀 해볼라고 하면 바로 복귀니 비상이니..."
그렇게 말하며 헤럴드는 모건의 어깨를 툭툭 쳤다.
헤럴드 네빌리온, 그리고 모건 제이미. 둘은 엠페레스 중앙 경찰서의 형사과 소속이다.
둘은 늘 2인 1조로 팀을 꾸리고 현장에 출발하곤 했는데,
대부분의 사건에서 그들이 함께 다닌 주된 이유는 엘리마네라는 여성 때문이었다.
조금은 순박해보이는 외모에 독서를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이었던 그녀는 흔히 말하는
'외톨이'였다. 친구도 별로 없고 조금은 음침하다는 평도 잦았다.
그녀를 찾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책을 빌리기 위함이거나 헤럴드 네빌리온에 관한 일을
그녀에게 대신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모건의 경우도 그와 비슷했다. 사랑이라면 조금은 진부할지도 모르는 그들의 관계는 어느날 급격하게 진전되었다.
그 원인이라고 하면 단언컨데 한권의 책이었는데, 이제는 금서로 지정된 엠페레스의 걸작이라고 평하는
'종치는 자들의 기억'이 그 주인공이었다.
우연히 책을 수거하던 그가 마주한 여성은 조금은 음침해보이고 머리는 길어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몇 달째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 처럼 쓰레기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좁은 방에서 단지 책만 수북히 쌓아두고
한 손에는 금서로 지정된 책을 들고 허둥지둥하며 한번만 봐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겠지만 왠지 모르게 모건은 그녀를 봐주었다.
단, 읽고 나서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달라는 말만 남길 뿐이었다.
둘은 급격히 가까워졌고 엘리마네의 삶은 빠르게 변했다.
외향적인 모건을 만나면서 그녀가 점점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주요한 이유라고 하겠다.
그녀는 스스로를 관리하기 시작했고, 머지 않아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그녀의 입이 트이기 시작했고,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후로 그들이 직접적인 교제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들의 앞길에는 행복만 남은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행복이 오래 지속하지 못한 것은 자명했다.
그것은 그녀가 끝내 버리지 않았던 한 권의 금서 때문이었다.
헤럴드는 자신의 동생을 사회에 뛰어들게 해준 데에 대해서는 모건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건에게 자신의 동생을 선뜻 넘겨줄 수는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성에 차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엘리마네가 브리깃 가의 하녀로 들어가게 되고 나서부터 두 경찰은 제각기의 방식으로
브리깃을 찾았다. 헤럴드 네빌리온은 동생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알아내기 위해서
미술을 좋아하는 젊은 브리깃의 아들을 찾았고, 모건은 에스테릭스 브리깃과 친분을 만들었다.
"자네는 질리지도 않고 오는구만. 이름이 모건이라고 했나? 뭐, 내 영지를 보호해주는 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네.
혹시 괜찮다면 순찰범위를 확대해 줄 수 있나?"
"순찰 범위 말입니까?"
"저택 외부의 땅을 일구는 농민들도 많아서 말이네. 그들도 안심하고 밤잠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네."
"아, 그렇습니까."
원래 그의 순찰은 상부에서 지시하지 않았던 사항이다.
그가 짬짬이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것을 굳이 헤럴드가 상부에 보고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부로 명분이 생긴 모건은 즉시 경찰서에 이 일을 보고했고, 헤럴드와 모건의 담당구역은
브리깃의 영지를 포함하는 외곽 지역으로 변경되었다.
엘리마네와 모건의 적극적인 만남을 보고 헤럴드가 마음을 접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차라리 무턱대고 반대하는 것보다 둘의 사이를 응원해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꽤나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기는 했다.
모건은 절대 그녀를 허투루 대하지 않았고 엘리마네 역시 어느새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해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날이 되었다.
엠페리어 왕이 장미공원에서 죽어있었던 사건.
사건에 대한 수사는 빠르게 진전되었다.
6귀족들이 주도적으로 수사를 진행시켰고, 범인이 6귀족 내부에 있다는 이야기도 흘렀다.
말단 경찰이 뭘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이 맡게 된 임무는 아주 간단하기 그지 없는 것이 되었다.
에스테릭스 브리깃의 저택에 찾아가서 그 곳을 수색하면 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그리 어렵겠느냐고 여겨 찾아간 곳은 스산할 정도로 어두웠다.
늘 봤던 장소의 익숙한 전경이었으나 사람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고
이제는 보일러 하나도 오래 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저택에서 그마저 남은 몇 안되는 하인들은
취조 자체를 거부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잠깐이라도 대화를 요청하면 그들은 별 다른 아는 것이 없다며 고개를 돌리고 제 갈길을 가버렸다.
그런 하인들 사이에서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엘리마네 뿐이었고 엘리마네는 그들의 요구에 충실히 따랐다.
그들이 1차 조사를 마치고 서로 복귀했을 때, 서에서는 한동안 그 곳을 주시하라는 말만 남겼다.
그리고 연이은 방문에서 그들이 낌새를 느낀 것은 사건 발생 이후 한동안 접근할 수 없다고 말이 내려온 시기였다.
왕이 사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브리깃의 아내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장례가 치러지기 시작했고, 온갖 행렬이 그 앞을 막고 있었다.
엘리마네는 그날부터 퇴근하지 못했다.
숙식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말은 전해들었지만 두 경찰은 아무래도 불안했다.
헤럴드가 몇 번인가 일을 그만두라고 말했을 때도 그녀는 웃으며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 했었고
모건도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곤 했다.
그러던 와중에 장례를 목적으로 저택내의 인원을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통제하게 되면서
걱정은 치솟아만 갔다.
빠른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둘은 수사와 별개로 더 자주 저택에 방문해 조사를 이어갔고,
그 넓은 저택의 수많은 방들도 이제 하나 둘 끝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수사가 2일째 진행되던 밤이었다.
저택 내의 사람은 대부분 잠자리에 들었거나 장례를 위해 마련된 거처로 옮겨간 밤.
헤럴드와 모건은 여느 때처럼 저택 내에 머무를 수 없겠느냐고 사정사정해 에스테릭스의 허가를 받은 채였다.
원래대로라면 저녁시간이 되면 나가기로 약조한 상태였지만 둘은 순순히 나가지 않았다.
모건의 주장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우리가 낮에만 수사하는 걸로는 증거를 잡을 수 없을거야.
밤에 증거를 처리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난 엘리마네를 봐야겠어."
"후우... 그래, 뭐 나보다 네가 더 엘리마를 걱정하는 것 같네."
그리고 부스럭 대는 소리가 들리면 둘은 곧장 소리의 진원으로 발을 옮겼다.
서재였다.
서재의 두터운 문 안쪽에서 무언가가 끊임없이 바스락대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에 과감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헤럴드가 바로 총을 발포하면 모건이 외쳤다.
"안돼!"
하지만 이미 늦었다.
늦어있었다. 그가 발포한 총에 맞아 바닥에 쓰러진 이가 허덕이며 내뱉은 숨소리는
그가 여린 여성임을 알게 했다.
처음으로 들리는 그 목소리는 가늘었다.
"오빠..."
길지 않았다.
즉사였다.
벌벌 떠는 손으로 맥을 힘없이 짚은 모건이 그렇게 말했다.
오히려 차분해보일 정도로 모건은 떨지 않았다.
하지만 그 표정에 보이는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은 분명히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대로 숨을 거둔 엘리마네의 눈이 감기고 그들은 그제서야 그녀가 들고 있던 책이 표지가 다 뜯어진 금서였음을 알았다.
"책을 가지러 돌아왔던 것 같네."
"ㅁ...모건.... 에...엘리...엘리마네가...."
"늦었어. 이미 죽었다고.
하아... 씨발... 대체 왜 그런거야? 내가 쏘지 말라고 했잖아.
그렇게 대책없이 총을 쏘면... 아니 이미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의미가 없나.
우선 상황을 정리하자. 엘리마네는 데리고 가자고. 숨길 장소를 물색해보는게 좋겠어.
지금 여기에 놔둘수도 없으니까. 일단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네가...네가 뭘알아! 혹시 모르잖아. 그렇지? 그렇잖아... 빨리 데려가면 살수 있을지도..."
"어쩌려고. 우리 차도 없이 여기 왔어. 병원까지 가려면 적어도 시내까지 차로 50분은 족히 걸린다고.
그리고... 지금 엘리마네를 데려가봐야... 범인으로 몰릴게 뻔해... 엘리마네를 범인으로 만들 수는 없어."
"넌...넌 시발 그럼 엘리마네를 이대로 버려두자는거야?"
"아니... 나도...아니...잘 모르겠어. 지금은 머리가 멍한데 잠시 혼자 있게 해주겠어?"
"하아... 난... 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겠어. 하다 못해 제대로 된 장례라도 치러줄 수 있도록.
바로 옆에서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엘리마네라고 안될게 뭐야?
같잖은 소리를 할 바에야 그냥 꺼져. 얼굴도 보기 싫으니까."
"정신차려! 현실을 보라고.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깨워서 뭘 어쩌자고.
여기서 사람들이 몰려봐야 엘리마네는 이 저택에서 한밤중에 금서를 들고 수상하게 서 있는 범인밖에 안된다고!
엘리마네를 두 번 죽일 생각이야?"
"두번 죽이다니. 말 함부로 하지 마. 누구 마음대로 엘리마네를 죽여.
누구 마음대로! 이 개새끼가!"
모건은 헤럴드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하는 소리가 들리고 헤럴드가 멍하니 초점 풀린 눈으로 그를 다시 노려보았다.
"좀 진정했어?"
"닥쳐. 죽여버리기 전에."
"진정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발의 총성이 또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 있어요?"
저택을 비우고 장례를 위해 떠났던 이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었다.
총소리가 결코 작지 않았던 탓이다.
뭐라고 변명할 겨를도 없었다.
모건은 빠르게 엘리마네가 가지고 잇었던 피 묻은 금서의 표지를 힘으로 뜯어냈다.
그리고 나중에 찾으러 올 생각으로 그 표지에 엘리마네의 이름을 적어 책장에 적당히 꽂아두었다.
억지로 공간을 만들어 꽂은 탓에 다른 책과 달리 조금 돌출되어있었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물밀듯 들어오고, 어둡던 저택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그 앞에서는 한숨을 푹 내쉬는 에스테릭스가 있었다.
"자네들... 나간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가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늦은 시각에도 경찰은 신속하게 찾아와 저택을 둘러쌌고,
너무나 빠르게 사건이 처리되기 시작했다.
죽은 엘리마네는 사건의 공범으로서 처리되었다.
그녀를 고용한 것이 에스테릭스라는 이유로 에스테릭스는 근신처분과 더불어
권력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모든 불명예는 엘리마네와 함께 형무소 사유지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헤럴드는 그날 이후 자책하며 모든 스트레스를 식욕으로 풀기시작했다.
그의 몸무게가 빠르게 불어나 이전의 날카로운 얼굴은 사라지고 후덕한 몸집에
이중으로 턱살이 잡히게 되었다.
그는 당시의 공을 인정받아 승진하게 되었으나 곧 무기력한 모습과
성과없는 일상의 반복으로 인해 금새 다시 좌천되었다.
그리고 모건은 무력한 소녀 하나 구하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며
경찰 제복을 벗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건을 더 조사해보려고 했으나 6귀족의 권한으로 모든 사건 관련 자료는 접근이 제한되었고
그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에스테릭스 공작이 유력한 용의자이나 증거가 없고, 그 증거는 아마 엘리마네가 암암리에
처분했으리라는 추측성 주장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며 엘리마네가 범죄자로 낙인찍혀 명에없이 죽었다는 결말이었다.
모건은 진실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후회하며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이를 알려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그래서 그 길로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신문사에 발을 드리고 말단에서부터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의 적나라하고 과격한 기사 타이틀은 몇 번인가 신문에 실렸으나
그 이후로는 압박이 가해져 그마저도 윗선에서 반려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피눈물을 삼키며 어떻게든 승진하기 위해 발악해야 했다.
한편 헤럴드는 자신과 함께 사건에 뛰어들던 모건이 자신을 버려두고 엘리마네에 대한 어떤 해명도 없이
그저 경찰을 그만둔 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괴리감이 혐오가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서로는 그렇게 말 못할 오해가 쌓여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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