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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이야기-261화 (261/303)

〈 261화 〉 슬픈 귀족의 이야기 ­ 두 경찰(B)

* * *

모건은 성에서 딱히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으나

당시 성내가 소란스러웟다는 이유로 상황이 종료된 후에야

겨우 보석금을 내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결국 이 상황에 발 하나도 얹지 못했다.

겨우 빠져나온 그가 집으로 돌아가 텅 빈 머리를 정리하고 있으면 저녁쯤 되어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제인이었다.

늘 시건방진 표정으로 말을 걸던 그녀 역시 어딘가 넋이 빠진 얼굴로 멍하니 들어와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소파에 기대 한숨을 푹 내쉴 뿐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냥... 너무 많은걸 알아버려서."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그래, 너는 알 권리가 있지. 이야기해줄게.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네.

두서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잘 들어둬.

공개적으로 이런걸 대중에게 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네가 나보다는 낫지 않겠어?"

"그래 뭐든 일단 할 말은 있을거 아냐?"

"내가 확언할 수 있는건 이제 엠페레스의 6귀족 체제는 무너졌다는 거야."

"6귀족 체제가 무너져?"

"내가 어렸을때 내 위로 언니가 하나 있었어."

"아 그건 들어서 알지."

"언니는 내가 자라면서 사라졌어. 자연스럽게.

당연히 만날 일은 없었고.

해외로 나갔다고 들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나봐.

너, 내가 말하는 거 아무에서도 말하면 안돼."

"그래. 그러기로 했으니까."

"에네도르 가의 가주로 살아있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에네도르 가문은 남자 뿐이라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그러면 에네도르의 가주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건데?"

"에네도르는 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가문이었다는 거지.

직접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아니 여기까지 온 시점에 의미가 없구나."

"아냐,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돼. 알 것 같으니까.

그럼 에드먼드는 어떻게 된 건데?"

"결국 에드먼드는 현 체제에 굴복했어."

"굴복했다는건...?"

"왕의 제안을 받아들였어. 힘이 쭉 빠져 보이던데."

"뭐? 에드먼드는 지금 어디있어?"

"글쎄. 아마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너... 이 미친년이...!"

모건은 그녀를 밀치고 일어나 곧장 택시를 잡았다.

브리깃 저택이 있는 곳까지 달려가는 그의 뒤를 제인 역시 바로 뒤따랐다.

불길한 예감이 빗나가길 바라며 도착한 저택 외곽에서 느껴지는 묘한 불쾌함.

그리고 그 안에는 피를 흘리는 에드먼드가 있었다.

"아...아니... 이건... 난... 아냐... ㅁ...모건... 이건 어떻게 해야..."

"비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그렇게 늘 그의 곁을 떠났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남긴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행해진다.

에스테릭스 공작과 했던 약속마저도 자신은 끝내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무거웠다.

모건은 죽은 에드먼드를 들쳐안았다.

움푹 들어간 머리를 어떻게든 끌어안고 불렀던 택시에 다시 올랐다.

"시내 병원으로! 빨리!"

그러나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천천히 식어가는 에드먼드의 체온은 결국 싸늘하게 굳은 손으로 남았다.

제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에 눈물을 가득 안고서도 뭐라고 차마 말조차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서 덜덜 떠는 그녀에게

모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난... 나는..."

"우리가 죽인거야 이건. 신경쓰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

"아..아니 내가 아냐... 이건..."

"닥쳐."

제인을 버려두고 모건은 그의 장례를 준비했다.

에드먼드의 장례식은 초라하게 치러졌다.

온 사람도 고작 네 명 뿐이었다.

모건과 제인, 그리고 그레고리.

마지막으로 힐끔 그 자리를 보고 간 페트리나 국왕이 말 대신 흰 국화를 하나 던지고 갈 뿐이었다.

얼마 후에 홀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의 자택으로 도착한 에드먼드의 노트를 그가 받아들었을 때

마침내 모건은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건지 이해했다.

상황의 불합리니 하는 것들은 차치하고, 그저 그 주변에 있어주지 못해

또 누군가를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것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이제껏 그에게 호감을 핑계로 짜증만 안긴

그 재수없는 여자가 더 증오스러워졌다.

둘의 사이가 서먹해지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제인은 그 뒤로도 꾸준히 왕성에 출석하며 입지를 늘리고 있었다.

한숨을 푹 내쉬고 모건은 그의 노트를 책상 한구석에 밀어넣었다.

제인이 다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나서였다.

그녀는 한층 더 수척해진 얼굴을 하고서 그의 집 문을 두드렸다.

모건이 문을 열면 말 대신 안쪽으로 성큼 들어와 물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불안하다고. 이제와서 이러는 것도 내키지 않는데,

6귀족들이 상당히 많이 죽었음에도 불명확한 죽음이 많아.

체제의 복귀는 불가능한 상황이고.

이런 상황에 귀족 체제의 재고가 진행되는 상황이야.

여기서 작은 흠결이라도 생기면 우리는 다 위험하다고.

내가 무사히 공작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

알지? 이제껏 잘 해온 것처럼. 입만 맞추면 된다고."

"뭘 이제껏 잘 해온 것처럼이라는 거야?"

"죽은 자리를 채우고 체제가 돌아가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당연히 지위의 재분배 과정이 생기기 마련이야.

이전의 연회에서 죽은 인물들을 추모하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어.

그들을 해하려고 한 이들은 마땅히 벌하는 과정도 포함해서.

그리고 이제껏 그랬듯 석연치 않은 죽음에는 수사가 있을거야.

현재로서는 겔데어스 가문과 브리깃 가문 정도야.

그리고 당연하지만 우린 제1 발견자야."

"미친년."

"나도 알아. 나도 내가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있는건 안다고.

하지만 너도 알잖아. 너도 엘리마네를 잃ㅇ..."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인은 쾅 소리가 나게 벽에 쳐박혔다.

그녀의 목에는 모건의 억센 손이 감겨있었다.

"상황을 봐가면서 말해. 사람 성질 긁지 말고."

"컥...커억...콜록... 하지만 어떤 의미로 말한건지는 알잖아 모건.

내가 한 말은..."

"너랑 같이 지내는게 아니었어. 좆같다고."

"뭐? 너 그건 분명 계약상으로..."

"아, 그래 닥쳐 줄게. 누가 조사를 나오던 아무 말도 안하면 되는거 아니야?

이제 찾아오지마. 에드먼드는 너 때문에 죽은거라고. 이제와서 착한 척도 못하면서

누굴 속이겠다고 같잖은 수작을 부리는지 모르겠지만.

에드먼드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해놓고는 그 애가 뭐 때문에 죽은지도 모르지."

"뭐?"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다시 바닥에 떨어진다.

"너 대체 뭘 알고 있는거야?"

"넌 모르겠지. 그 잘난 정보상이 사람 속은 몰랐으니."

"그...그래... 넌 에드먼드랑 친했었지...

난 네가 하라는 대로 했었다고. 그런데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

적당한 선물도 했었고, 부담스럽지 않게 농담도 했어.

그런데 이제와서 무슨 일인지도 모르게 에드먼드가 죽은게 다 나때문이라고?"

"그게 아니면 그냥 에드먼드는 너라는 사람 자체가 싫었을 수도 있지."

"개새끼.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함부로 지껄여?"

짝 하고 날아든 손에 모건의 뺨이 붉어진다.

모건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말했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이번에는 협조해 줄 테니까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찾아오지 마."

"재수없는 새끼."

제인이 떠나고 나서 모건은 조용히 중얼댔다.

"재수없는 새끼라는 말도 이제 못듣겠군."

그는 그렇게 말하고 방에서 조용히 기사와 편지를 작성했다.

널스페이지로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널스페이지 쪽으로 간 편지에는 한동안 재택근무를 요청한다는 짤막한 글이 쓰여 있었고

그 옆으로는 묵직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기사의 내용은 그가 여지껏 쓰고 싶어하던 것과는 다른 평범한 시장 경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병신이..."

결국 그토록 원하던 것조차 기어이 내려놓지 못하게 되어버린 모건은 노트에 적힌 에드먼드의 문장을 다시 천천히 읽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겁쟁이가 된 나는 내가 누구보다 싫어하던 비겁하고 재수없는 여자가

나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간단히 줄을 바꿔잡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끝끝내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녀를 보면서 나보다는 저런 사람이 나라에 필요할 것이라고."

물론 그게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에드먼드에게 남긴 것은 애정을 가장한 고통 뿐이었음을 이제는 모두가 안다.

모건은 그 공책의 사진을 찍어 반 가문의 저택의 주소로 부쳤다.

그녀에게 자세한 사정을 설명할 애정도 없었고 이제 무엇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할 계약이자신을 더 비참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불편한 것은

엘리마네가 죽었을 당시에 자신이 택했던 방식을 제인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었고

그녀의 방식을 내심 옳다고 느끼는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설프게 자신이 기사를 쓰는 일은 더 많은 희생자를 초래할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어서

모건은 무엇도 하지 않은 채로 에드먼드가 남긴 노트와 그 당시의 기록만을 따로 보관했다.

그 이후로 며칠간 제인이 늘 찾아와 그 노트를 넘기라고 말했지만

그때마다 모건은 차라리 노트를 불태울지언정 그녀에게 노트를 넘길 수 없다고 단언했고

결국 둘의 사이는 확 틀어져버리고 말았다.

제인은 그 노트의 존재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에드먼드의필체가 분명한 글씨로 적힌 사임 이유와

그가 그동안 겪은 일들은 모두 자신이 어떻게든 덮어 수습해놓은 이 나라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저것이 유출되는 순간 나라에서 어떻게든 덮어놓은 사실이 불거지며

국민들의 불신이 넘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의 입지와 이미지 또한 나락으로 떨어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를 물심 양면으로 구속할 수 있는 유일한 억제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섣불리 이를 공표하지 못하는 것은 모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기로 계약을 한 것이 걸렸다.

모건은 그 계약이 없었다면 분명 진상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건 제인 하나만이 아니라 자신을 밎어준 그레고리를 역시 배신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죄책감이 너무나 두려움으로 남아있었다.

어떻게든 삭히고담아두며 살아가려고 한 모건에게 당연히 꼬리처럼 따라붙게 된 것은

한번 손 댄 마약이었다.

어느날도 그가 거나하게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시점,

그에게 말을 건 이가 있었다.

"어휴, 댁까지 걸어가실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부축해드리죠.혹시 기억하십니까?"

"아...푸우우... 훌쩍... 누구...?"

"아간틴입니다. 소개받았던."

"아... 씨이발..."

모건의 대뜸 뱉어낸 욕설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차분하게 자택까지 인도하고 물을 떠다 건네며

그가 정신을 차리기를 유도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모건이 헛기침을 하며 그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당연했다.

"오랜만이군요. 분명 제인이 시켜서 보냈을테죠."

"다릅니다. 저는 그냥 제안을 하고 싶어서 온 거거든요."

"제안 말입니까?"

"그냥 저와 술을 한잔 하지 않으시겠냐는 겁니다."

"술이요?"

"제가 준비한 술이 있습니다.

그냥 서로 담아둔 이야기나 좀 할겸 해서요."

모건은 그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어딘가 수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이미 그가 마음을 털어놓은 사람은 없었고

이제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오히려 용기가 난 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별 건 아닙니다. 그냥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고 하는 것 뿐입니다."

"온전히 할 수 있게..?"

"솔직히 말하면 그냥 응원이죠."

"사실 그런 응원도 달가운게 현실이기는 합니다.

이제 제 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스스로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죠.

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분명 당신을 믿어줄 사람이 올 겁니다."

"하지만 내가 과연 그 사람에게 입을 열까요."

"열 겁니다. 분명.

아마 당신의 이야기를 모두가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은 그저 당신의 이야기를 모두가 알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스스로 그 이야기를 잘 지키기만 하시면 됩니다."

"지킨다...?"

"계약도 있으니까요. 우선은 언젠가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 거죠."

"믿는다라. 좋은 말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믿는다는건 너무 추상적입니다."

"당신은 추상적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시는군요."

"그럼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그건 당신이 정할 문제아닙니까?"

"그것도 그렇군요."

그는 조용히 입을 닫고 웃으며 잔을 건넸다.

술인지 모를 액체가 담겨 있었다.

"드시죠. 언젠가 당신이 다 이루었다고 생각되는 날에 그저 제 이름을 부르시면 됩니다.

기간은 당신이 정하면 되는 것이죠."

"그렇게 속편한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믿는건 당신의 자유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조용히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건은 자신의 방에서 눈을 떴다.

쓰러져 있었던 건지 잠을 잔 건지 모르지만

그의 앞에는 그가 두고 간 술잔이 남아있었다.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군요."

그는 술잔을 들었다.

그게 끝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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