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262화 (262/303)

〈 262화 〉 그가 남긴 이야기

* * *

할 말이 없었다.

마치 안개가 걷히듯 촤르륵 모여드는 낱장의 종이들이

마침내 손 안으로 사그러드는 감각.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내 손에 들린 한 권의 노트에는

아까 그대로 자그마한 새가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대체..."

나는 조용히 노트를 챙겨 일어섰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거둔 모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름이 자글자그하고 머리는 하얗게 변했고

그 얼굴에는 어딘지 모를 조용한 만족감이 묻어 있었다.

이 모든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어딘가 불쾌한 일들이 남게 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새로운 일들이 생겨났지만 내게는 그런 것들을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우선 어떻게든 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로 넬리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할아버지?"

"여보세요."

"어? 에리아 언니? 무슨 일이에요?"

"모건이 죽었어."

"네?"

상황을 따라오지 못한 그녀의 천진한 물음 이후에 다시 침묵이 깔렸다.

"금방 갈게요."

그 말이 전부였다.

빠르게 그녀가 이쪽으로 달려올거라는건 명백했다.

솔직히 이 한순간에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았기 때문에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던져진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전혀 없다는 것이 난감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넬리스가 찾아와 모건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그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녀를 위로하는 것 말고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그의 집을 나가려고 했을 때, 뭔가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마지막까지 그가 한 손에 쥐고 있는 작은 종이였다.

그의 손을 조심스레 열면 거기에는 찢어진 종이 한장에 그의 글씨체가 아닌 정갈한 글귀로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 미안해.]

라고 써 있었다.

이제와서 그게 누구의 글씨체인지 모를리 없었다.

에드먼드의 글씨체였다.

내가 종이를 주워들면 넬리스가 말했다.

"모건의 마지막을, 함께 해 주신거죠?"

"응. 어쩌다 보니."

"표정만 봐도 알겠네요. 편안하게 간 것 같아요."

"미안해. 나도 이렇게 될 거라고는 예상 못했거든."

"괜찮아요. 모건은 이렇게 될 거라고 늘 말했으니까요."

"말했다고?"

"누구네 삼촌인데요. 적어도 언제라도 자기가 사라질 거라고 대비는 하고 있던 모양이더라고요.

자기가 언제 어떻게 눈을 감을지 모른다고. 저한테 있는 상식 없는 상식 다 가르치던 사람이에요.

참... 무책임한 사람이죠? 여러 사람을 휘말리게 해 놓고서 이렇게 자기만 편한 표정으로 가버리고.

진짜... 이럴거였으면.... 오늘.... 커피라도 한잔 하고 가지...."

나는 그녀를 안아 등을 토닥여 주었다.

"고마워요. 삼촌도 그렇게 생각할 거에요.

자기 죽음도 대비하던 사람인데 그게 언제 다가왔다고 해서 원망하지는 않겠죠.

어쩌면 그 순간 마저도 스스로 선택한 걸지도 몰라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애써 웃어보였다.

"그래서 원하던 것은 찾으셨나요?"

넬리스의 질문에 나는 멍 하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마 그 해답에 삼촌이 원했던 답이 있는 거였겠죠?

그랬으니까 이렇게 웃고 있는 거겠죠?"

"응. 분명 그럴거야."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진정한 그녀는 방을 정리하기 위해서 한동안 바빠질 것 같다며

내 여행을 응원해주고는 잠시 혼자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내가 삐삐를 안고 조용히 방 문을 닫고 집 밖으로 나오면

그제서야 안쪽에서 참았던 것을 터뜨리는 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주 길고 슬픈 절규였을 것이다.

그제서야 삐삐는 조심스레 눈을 떠 내 등에 업힌채로 내 어깨를 꼬옥 물고

졸다 깨서 흘린 침을 닦는다.

모건의 죽음은 엠페레스 내에서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엠페레스에 몇 없었던 괴짜 기자였기도 했으며

사후에 그의 집에서 대거로 발견된 일기장과 그가 여태껏 조사한 엠페레스 수뇌부에 대한 이야기.

그런 것들이 세간에 공개되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화제가 되지 않았다.

단순한 장난이라고 치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곧 그가 조사한 사항의 진위 여부를 하나씩 짜맞추는 사람이 등장했고

3일이 지나자 엠페레스의 모든 국민은 그가 조사하고 숨겨둔 정보들이 모두 진실임을 깨달았다.

엠페레스는 뒤집어졌다.

허울로만 남아있던 6귀족은 그대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에그니아 가문에서 승계되어 유지하던 지하 투기장은 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진압되었다.

엠페레스는 미리타엔과 달리 그런 것들에 대한 합법적 규제가 없었으므로

지하에서 진행되던 투기장 사업을 포함해서 경매장, 암시장 따위는 그날로부터 단속을 시작했다.

코탈에 엮인 귀족들은 자신들이 어떻게든 그런 시설과 연관되어있지 않음을 주장했으나

모건의 일기에 적힌 증거들은 그들이 부정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 일로 단언컨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겔데어스 상단이었다.

이제껏 하나의 부정적 여론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겔데어스 상단의 비리는

신성시되던 무역왕 케이 겔데어스의 이면이 폭로되며 공개되었다.

노예상, 마약상 따위의 불명예스러운 일들이 수면위로 고개를 들었고

그 과정에서 밀수업을 전문으로 하던 귀족가, 상인들이 꼬리를 밟혔다.

내가 조사했던 술집을 제외하고서도 마약을 비밀리에 거래하던 가게들이 상당했는데

그 가게들 역시 하나같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모건의 집에서 발견된 유서 한장은 또 한번 엠페레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자신이 정보 및 수완으로 벌어들일 자신 몫으로 떨어지는 모든 재산은

엘리마네와 그 오빠의 이름을 딴 네빌리온 제단을 만들어 달라고 적혀있었기에

사람들은 엘리마네 사건에 대해 다시 관심을 모았다.

밝혀진 사실은 그들이 받아들이기에 충격적이었다.

고작 5일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 한 명이 만들어낸 파장이라기에는 너무나 컸다.

시민들은 들고 일어섰고, 결국 노쇠했던 페트리나 국왕은 탄핵당했다.

여왕의 마지막 한마디는 그것이었다.

"그래, 결국 원하던 대로 되었구나 그대여."

그게 누구를 향한 말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진정하지 못했다.

적록 기사단은 이전과 달리 힘이 없어 그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

꾸준히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엠페레스의 적록 기사단은 분명 최후의 보루이자 최강의 검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빨빠진 호랑이만도 못하게 되어버린 검에

화난 군중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제인 역시 이 일로 안전할 수는 없었는데,

그녀는 정보상단의 모든 인력을 동원해 자신에게 날아오는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그녀가 실질적으로 행한 비리와 악행은 정치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정보상단의 꼭대기로서 행한 일들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정보상단의 꼭대기라는 사실이 발각되지 않은 한은

그녀를 몰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부친의 뒤를 이어 정계에 발을 들인 것은

피의 장미 사건 이후, 그리고 엘리마네 사건 종결 이후였다고 주장했고

사람들의 눈초리를 사기는 했으나 그녀의 증언을 뒤집을 무엇도 발견되지 않아

그저 욕을 듣는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곧장 죽은 모건의 집을 찾아 빈소에 목례를 하고

그 노트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그녀가 발견한 것은 에드먼드의 자필로 남은 찢어진 종이 쪽지 뿐이었다.

엠페레스는 빠르게 무정부사태로 진입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 혼란이 있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고

그저 귀족이라는 자들을 더이상 신임하지 못하게 된 이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귀족을 몰아냈다.

제인은 그 자리를 결국 내려놓게 되었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그저 부호라는 이름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생쥐굴 뿐이었다.

어차피 현재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있었던 6귀족 자체가 워낙에 드물었기 때문에

큰 논쟁없이 6귀족은 사그라들었고 정말 6귀족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형식상 존재하던 것이라고 해도 존재하는 것과 없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결국 무너진 체제 아래 코탈은 구심점을 잃고 흩어졌으며

대다수의 귀족은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야 했다.

그들의 화려한 저택에서 한발짝도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으니

결국 귀족들은 지위를 내버리고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고작 2주가 채 되지 않았다.

13일째 되는 날의 일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국경을 봉쇄하던 교국과도 일이 틀어지게 되었다.

엠페레스 내부의 상황조차 통제가 되지 않으니 교국으로 몰래 넘어가려는 사람을 포함해

국경을 지키던 병사 따위도 전부 해산해버리고 말았고

결국 교국 입장에서는 내부 통제도 불가능한 상황에 인접국가에서도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아직 회수하지 못한 실마리가 많았을 교국 입장에서는 결국 국경을 개방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도 걸어잠그지 못한 국경을 열어젖힌 데에는 명분이 있었다.

하나는 엠페레스의 주민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을 때 엠페레스에 심은

자신들의 치부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엠페레스와 교국 사이에 이미 인구 이동량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엠페레스의 귀족이던 자들이 상당수 교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한 점이다.

그들을 내치면 그들은 교국으로 보내던 원조와 신앙을 끊고 등을 돌릴 것이다.

그래서는 이전처럼 생산해내던 성수와 교구의 단가와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 이슈가 바로 워커 제라드였다.

그는 감사관으로 활동함과 동시에 교국 내부에서 불안감을 키워가고 있었고

엠페레스의 붕괴와 더불어 이를 터뜨렸다.

엠페레스의 쿠데타와 국경을 봉쇄한 교국, 그리고 연이어 일어나는 사고는 교국민들에게

단순히 엠페레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게 했다.

명확하게 드러나는 증거가 존재했던 것이다.

엠페레스에서 오는 인구를 통제했을 뿐인데 성수의 공급량이 대폭 감소했다는 것이다.

물론 둘 사이의 상관관계는 없었다.

정확히는 연구소가 파괴되었기 때문이지만

혼란이 가중된 상황에서 그걸 믿을 사람은 잘 없었다.

그러나 그 판단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었는데

엠페레스 내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만들어낸 원인 제공자가

하필이면 너무나 우수했던 기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 어떻게든 발작하며 상황을 저지하려는 자가

정보상단의 여왕이라는 점이었다.

모건이 폭로한 사건의 중점은 하나같이 교국과 케이 겔데어스 사이의 커넥션이 있었고

그걸 덮으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히려 이 상황에 국경을 개방했다는 것이 그들에게 연관성이 있다는 확신을 심었다.

그들은 명확히 목표를 자국의 정치인으로 두고 있었으나 절대로 이전의 사건에서

시야를 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둘이 결국 일맥상통하는 '같은 사건' 이기 때문이었다.

교국에서 회수해야 했을 마약은 이미 한 마녀에게 전부 빼앗겼다는 대답만 돌아왔고

중간에서 마약을 채간 여자는 미리타엔의 무령이라고 했다.

섣불리 트집을 잡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제공받기로 한 인력들은 대다수가 코탈 휘하의 노예였고

일처리를 진행하던 것은 겔데어스 상단의 사람들이었으니

아무것도 모르고 파견을 빌미로 국경을 개방해버린 교국에서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한번 개방된 국경을 넘어 치투하게 된 것은 하나의 작은 새끼용과

그 용을 안은 마녀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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