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265화 (265/303)

〈 265화 〉 블러디 메리

* * *

"확실히 눈에 띄는 성과인건 맞아. 이제껏 어디서도 하지 못했던 일이니까.

솔직히 말하면 여기까지는 예상도 못했다고.

대체 어떤 방법을 써서 그 교국의 문을 연 건지도."

플로라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교국에 침투했다는 연락을 받았어.

덕분에 우리 군도 교국의 앞전까지 대기시킬 수 있었고,

백색의 고원에 진을 치고 근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기동대를 보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뭐라도 건져올테지만, 우리도 여기서 넋놓고 볼 수만은 없지?"

플로라는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엔시온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말대로입니다. 그 때문에 교국 측에서도 불순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알고 있어. 보고서로 받았으니까."

"확언할수는 없지만 분명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 겁니다."

그녀들의 대화를 멈춘것은 노크였다.

문을 두드리는 조용하고 선명한 소리에 문을 열면

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실례했습니다. 지금 황제폐하를 만나뵙고 싶다는 자가 있어서..."

"나를? 왕성 문이 그렇게 가벼웠던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철퍼덕 하고 바닥에 쓰러진 집사는 바르르 떨더니 숨을 거두고 말았다.

엔시온이 놀라 고개를 돌려 플로라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시선의 끝에는 죽어버린 집사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플로라의 눈이 있었다.

명백히 동요하고 있는 눈빛은 그녀가 범인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플로라는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쾅 소리가 나며 의자가 내동댕이쳐진다.

품에 안고 있던 애니는 벌써 사라졌고 그 커다란 궁의 불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이건..! 폐하...!"

"알아, 누군가가 도전장을 던진거야.

감히 건방지게 말이지."

"도전장이라... 누구일까요?"

"모르겠어. 확실한건 일단 집사를 죽이고 내 궁까지 침입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은걸로 봐서 상당히 악취미인 모양이야. 마음에 안들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던대로 진행해줘. 나는 그 녀석들을 써야겠네.

키워놓고 묵혀두기만 하면 아깝잖아?"

"드디어... 말이군요."

플로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묵념했다.

그리고 쓰러진 집사를 안아들었다.

"얼마나 죽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반드시 갚아줘야지."

그리고 동시에 불이 꺼진 궁의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플로라는 개의치 않고 천천히 죽은 집사를 안고 황궁의 입구까지 내려갔고

그곳까지 가는 모든 길목에 빛이라고는 없었다.

창문은 검은 그림자에 막혀있었고, 어둠이 드리운 곳에서 발에 채이는 것은

끈적하고 짙은 감각 뿐이었다.

마침내 엔시온이 궁의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작은 고양이 한마리만 울고 있었다.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복도에 쓰러진 것은 모두 왕성에 있던 자들이었다.

플로라는 손을 떨며 물었다.

"애니, 이거... 전부..."

그 목소리를 받아낸 것은 어느새 쭈그려 앉아서 시체를 조사한 엔시온이었다.

"아뇨, 진정하세요. 이녀석들 하나같이 목 뒤에 십자가 문신이 있습니다."

"뭐...라고?"

"아마 우리가 눈치채기도 전에, 이미 침투했다는 거겠죠."

"어떻게..."

"미리타엔은 모든 문화가 섞입니다.

노예도 존재하고 도박장도 존재하며 콜로세움까지 성행하고 있어요.

누구라도 노예로 이곳에 섞여들고 말초적인 쾌락에 흘러들어올 수 있고

한번 그렇게 섞여버리면,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럼..."

"솎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평화는 깨진 것 같습니다."

"좋아, 난 인원을 모을게, 넌 무령님께 이 일을 전해줘.

분명 그분이라면 뭔가 하실거야."

플로라는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

엔시온이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에 목소리가 들렸다.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군요."

플로라가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나이든 마운틴 엘프와

블러드 엘프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실눈을 하고 가늘게 미소짓고 있는 정장차림의 남자가 있었다.

"제가 전해도 괜찮겠죠?"

"어... 네...."

"이 친구들이 제 대신 일처리는 확실히 해 줄 겁니다.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이쪽에서도 문제가 생겼다고."

"아마도요."

"거리상 아무리 짧아도 하루는 족히 걸릴 겁니다.

그때까지는 버티셔야 할 거고요."

"네. 걱정 마세요."

에스트로는 손을 두어번 흔들었고,

멀리서 흰 색 자동차 한대가 멈춰섰다.

"가시죠."

에스트로의 말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여자가 대답했다.

"네, 오늘부터 상담소 에리아. 장기 휴업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플로라를 바라본 발레리아를 확인하고 플로라는 입꼬리를 올렸다.

플로라를 남겨둔 채 차는 덜컹이며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사라졌다.

플로라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린 듯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게비디와 데레코즈에게 연락을 돌리고 나서 엔시온이 말했다.

"성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보안도 장담할 수 없고요.

어디서 계획을 정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유능한 인재야 발레리아. 볼수록 탐난다니까."

"상담소...!"

"최적이지, 도청의 걱정도 없고, 공간도 넉넉한 편이고.

무엇보다, 그 무령님이 사는 곳이야. 여차할때를 대비한 준비는 되어 있겠지."

"모시겠습니다."

"그 전에, 우선 여기서 할 일은 마쳐야겠지.

시도라, 연구소는 이제까지 처럼 가동해. 그리고 모든 약품은 이제부터 전면 판매 중지야.

모두 창고에 쌓아두도록. 그리고 그 창고는 너희가 맡는다. 할 수 있겠지?"

그 말에 블러드 엘프들이 하나같이 기합을 다졌다.

그들 역시 태세를 갖추고 난 이후에 그들은 상담소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게비디와 데레코즈도 그 앞에서 모였다.

엔시온은 그들을 마주하자 마자 피곤하다는 듯 툴툴댔다.

"데레코즈, 그 담배 좀 끌 수 없어?"

"아 미안하네. 입에 붙어서 말이야.

끊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라서."

"변명이나 듣자고 한건 아닌데 말이야."

"까칠하구만. 나도 황제께서 계시는데 면전에서 담배를 피울 생각은 없다네."

그렇게 말하며 데레코즈는 담배를 비벼 껐다.

그렇게 버려진 담배꽁초는 게비디가 주워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게비디는 태연하게 머리를 뒤로 빗어넘기며 물었다.

"그래서 황제께서는 어떤 연유로 저희를 모두 소집하셨습니까?"

"콜로세움을 비롯해서 암시장, 도박장 같은 시설은 한동안 영업을 중지할 생각이야."

그 말에 게비디가 조용히 침묵했다.

데레코즈가 소파에 천천히 앉으며 말했다.

"상황이 심각한가 봅니다."

"미리타엔은 이제 교국과 전면전을 준비해야 해.

저쪽에서 먼저 선전포고를 걸어왔다고."

"선전포고 말입니까?"

엔시온이 펜을 집어들고 종이에 글씨로 써내려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모르는 사이에 이미 미리타엔의 각 부처는 교국의 끄나풀이 잠입해 있어.

교국의 국민 대다수는 노예로 이루어져 있지. 병사들도 실험체거나 기타 준하는 결과물이고.

우리가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그 수를 전부 통제하는 건 불가능해.

아마 이번 사건은 우리가 교국쪽으로 무령님을 보내면서 저쪽에서도 발악을 시작한 거겠지.

일종의 경고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해. 우리에게 현재 제일 중요한 시설은 연구소야.

한번 시설이 멈춰버리면 재가동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당장의 부재가 큰 손실이 되니까.

연구소는 당연히 공장을 포함해서 말하는 거고."

"그럼 공장과 연구소에 대기 인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배치했어. 그 엘프들."

"확실히 그 엘프들이라면 외부에서 섞여들었을 가능성은 없겠군요."

"엘프로 커버 가능한 공간은 고작 그정도니까.

바꿔 말하면 연구소에 있는 인력도 이제부터 재검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고,

국가전반적으로 노예를 포함해서 확실히 신원을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지."

게비디가 잠시 고민하고 대답했다.

"쉽지는 않겠군요."

"그렇지."

"저희쪽에서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게비디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비디, 어디로 갈 생각이지?"

플로라의 질문에 게비디는 태연하게 말했다.

"콜로세움의 문을 닫기 전에 쥐새끼가 없는지 둘러볼 생각입니다.

콜로세움에는 무기를 비롯해서 본격적으로 전투에 필요한 요소가 많은 구역입니다.

마음먹고 이곳을 치려고 한다면 필시 큰 일이 생기겠죠.

상대가 교국이라면 더더욱 늑대를 몰고 올 겁니다.

이 상황에 제가 그 자리를 비운다면 저의 명성을 보고 도전한 이들에게 폐가 됩니다.

예의와 체면보다 실리가 중요할 때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플로라는 한숨을 푹 쉬고 알아서 하라며 손으로 가보라는 듯 휘휘 내저어 게비디를 보냈다.

다만 엔시온이 차분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말했다.

"이 나라는... 이제 예전의 야만적인 폭력만이 존재하던 미리타엔이 아닙니다.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있습니다. 누차 이야기 해온 일입니다.

시대는 점점 하나의 보편적인 진리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눈을 흐리던 것들이 걷혀가고 있고, 사람들은 더이상 바보가 아닙니다.

더는 속지 않고, 더는 맹신하지 않으며, 더 나은 목표를 향해 발버둥칩니다.

모든 것은 과정에서 탄생하는 편린일 것입니다.

과거의 영광은 이제 대중화 되어가고 있고, 잊혀신 보편성이 다시 놀라운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았고, 때로는 퇴보하면서도 분명하게 변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 마지 않았던 변화이기도 합니다.

미리타엔의 대지는 버려진 것에서 시작하여 불신자의 싹으로 번성했고

마침내 그 기원을 몰아낸 땅입니다. 그 위에 세워진 것은 기술의 산물이었고

그 발전이 더는 과거의 미신을 허가하지 않습니다. 시대는 변합니다.

이 넓은 땅이 더 넓은 세계를 원합니다. 더 절대적인 진리를 바랍니다.

그걸 주도한건 무령님이지만, 그 시대를 이끌고 있는건 당신입니다 황제시여."

엔시온은 그렇게 손을 내밀었다.

플로라가 손을 맞잡고 데레코즈에게 시선을 돌려 묻는다.

"그대는 어쩔건가?"

"바라신다면 따라야지요. 그러기로 했으니까요."

미리타엔은 이후 연구소와 공장을 제외한 모든 시설을 중지했으며

공장은 생산하는 품목을 대폭 변경했다.

빠르게 노예를 기계화 보병으로 무장시켰으며 생체 병기와

개조인간을 찍어냈다.

오히려 그 준비과정이 너무나 평화로웠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정말 전쟁이 일어나기야 하느냐며 그들을 비웃기도 했다.

플로라는 과감히 배신자들을 찾아내는대로 숙청했다.

교국에서 건너온 이들중에 십자문신이 있는 이들은 모조리 처형당했고

늑대를 비롯해 국가 전복을 꾀한 자들 역시 목이 달아났다.

연구소에 침입한 이들은 모조리 사지를 비틀어 꺾어버렸으며

공장에 침투한 이들은 유전자를 조작하여 개조병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거리 곳곳에는 노예들이 넘쳤다.

이들 모두를 검사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저 그들이 시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콜로세움이 멈추고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드디어 일이 터졌습니다."

"예상했어. 데레코즈, 적의 규모와 소속은?"

"규모는 대략 15만에서 20만 정도로 보인답니다. 현재 해상로를 통해 접근 중이며

이대로라면 2시간만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속은... 유레크로스입니다."

"유레크로스...?"

"양동작전인 듯 보입니다.

이번 작전에서 선봉을 맡은 이가 베르가모트입니다."

"베르가모트... 교국에서 파견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플로라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승산은?"

"63%입니다."

"구체적이군?"

"하지만 교국에서 추가적으로 지원병력을 파견해 망치와 모루 대형으로 들어온다면

그때는 저희쪽도 상당히 곤란해집니다."

"괜찮다. 수는 써 뒀으니. 엔시온을 기다릴 뿐이다."

"엔시온은 어디 있습니까?"

"엠페레스로 보냈지.

분명 일을 알아서 잘 처리해 주리라 믿느니라."

"엠페레스에서 그녀가 할 일이 있었습니까?"

"원래라면 없었지."

"없었다...?"

"만든거다. 때를 기다릴 뿐이다.

효시가 분명히 보일 것이다.

교국에서 무령님과 에스트로가 쏘아올릴 반격의 효시 말이다."

"대체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신 겁니까..."

"별건 아니다. 저쪽이 망치와 모루라면, 이쪽도 단단한 망치를 준비할 뿐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