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 블러디 메리
* * *
아침부터 베르가모트는 유레크로스의 국회로 쳐들어갔다.
왕정 체제를 내버리고 정치라는 것을 주도하기 시작한 이들에게
그녀가 처음으로 내던진 말은 전쟁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쟁의 폐해를 이제 막 수복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받아들일 것 같은가?"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베르가모트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선택권을 주는거야. 너희가 고르면 돼."
"우리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소! 전쟁을 치를 여력도 없단 말이오!"
"아아, 미안한데.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는 두개야.
미리타엔 땅에서 죽던지, 아니면 여기서 내 창에 뚫려 죽던지."
"유레크로스에는 움직일 수 있는 인원도 없소...
그리고 대체 우리가 왜 그대의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이오..."
"무슨 개소리야? 지원요청은 너희쪽에서 했다니까?
소식 못 들었나봐? 나도 시간 내서 일부러 온거야.
짜증나게 말붙이지 말라고. 필요한 인원만 움직이면 되잖아?"
"하아... 대체 누가 그런 요청을.... 알아서 하시오...
하지만, 지원할 수 있는 부분에도 한계가 있소."
"번거로운 새끼들."
그 길로 곧장 교회로 돌아간 베르가모트는 사람을 모으고 말했다.
"수녀들은 다 애새끼들 데리고 숨어있으라고 해.
그리고 신부들은 죄다 손에 총 하나씩 들고."
그 말에 제임스가 그녀를 가로막고 말했다.
"잠깐, 우리쪽에서도 전쟁을 기피하는 인원이 있습니다.
강제로 모두 참전시키는게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직접 인원을 모아올테니 상관없는 사람은 이 일에서 배제시켜주시죠."
"웃기는 새끼네 이거. 도와달라고 부를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헛소리야?
그러려면 니들끼리 하던가. 사람 불러놓고 나한테 짬처리 몰아주려고 하는거냐?"
그 말에 피터가 그 둘 사이를 가로막고 말했다.
"장담합니다. 저희 셋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미쳤구나? 나라 하나를 뒤집겠다고 해놓고 지금 고작 셋이 가자고?
무슨 원정여행 다녀오는 것 같냐? 늙은이 하나에 아다새끼 하나. 니들이 짐덩이가 아니면 뭔데?"
"만에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제임스, 가서 지하실에 있는 내 지갑을 가져오거라."
"지갑 말입니까?"
"그래. 이제 너도 알 때가 됐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바벨 밑에 있을게다."
제임스는 그런 말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교회 지하로 걸어내려갔다.
교회의 긴 계단을 그저 내려가면 칠흑같은 복도끝에 신부의 방이 있다.
대기실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누군가는 고해실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그 방은
굳게 닫힌 문으로 잠겨있기만 했다.
그러나 이 날은 달랐다.
손에 힘을 주면 스르륵 열린 문 너머로 제임스의 눈에 든 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방의 구조, 크기 배치 하나까지 모조리 똑같은 방이지만, 물건이 달랐다.
늘 경전따위가 꽂혀있던 책꽂이에는 선반이 늘어서 그 안에는 총과 성물이 놓여있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들은 하나같이 무거워 보이는 철덩이였다.
그리고 무게가 표기된 묵직한 바벨은 몇 번이나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무거운 원판이 있었다.
독특하게 생긴 구조였는데, 원판이라고 할 수 없는 사각형 판이었는데,
상당히 두꺼워보이는 원판이 다닥다닥 붙어 겨우 손으로 들 정도의 공간을 남기고는
성인 남성이 껴안아도 모자랄 정도의 넓이로 버티고 있었다.
아마 굴러가지 않도록 그렇게 제작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제임스는 그 바벨을 바라보았다.
220kg이라는 무게는 오랜 시간 고정된 것이었는지, 꽉 물려있었다.
"역시 잘못 본게 아니군."
그리고 그 바벨이 아마 스승이 말한 그것이라고 생각하며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참 선생님도... 220kg이면 아무나 들 수준이 아닌데.
원판은... 뺄수가 없게 만들어 놓으셨군. 원형도 아니라서 균형잡기 애매한데."
그렇게 궁시렁대고 바벨을 잡으려던 제임스는 당황했다.
"이거... 두 손으로 들 수가 없는데?"
두 손으로 잡기에는 손잡이의 길이가 터무니 없이 작은 것을 보고 나서야
제임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기사, 어차피 두 손으로 들었다고 해도 밑에 낀 지갑을 빼내려면 손이 필요하지."
그렇게 말하고 그는 기어이 바벨을 잡아 들어올렸다.
핏줄이 강하게 서고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겨우 그것을 어떻게든 들어낸 제임스는
차마 한 걸음도 쉽게 옮기지 못하고 그것을 겨우 들쳐 옆으로 빼내는 게 전부였다.
"예전처럼 힘으로 해결하는 시대는 지났는데."
그리고 나서 바벨의 바닥을 보면 바벨이 가리고 있던 바닥에 땅이 파여 그 안쪽으로
가죽 지갑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바벨을 원위치로 돌려놓으면서 제임스는 이 공간이 피터 신부가 홀로 단련하는 공간임을 눈치챘다.
총이나 무기 따위가 늘어선 모양새 역시도 다른 수녀들이나 신부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다.
자신은 이 방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방의 존재를 자신에게 공개했다는 것을 이제는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제임스는 지갑을 들고 스승에게 돌아갔고
피터는 그런 제임스를 바라보며 한마디 할 뿐이었다.
"늦었구나."
"몸 쓰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네가 쓸만한 것들도 챙겨 뒀을게다. 잘 봤느냐?"
"네... 뭐."
"잘 보고 눈에 익혀두도록 해라. 네가 그 방을 받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튼 지갑은 잘 가져왔구나. 이제 좀 대화를 해 볼 수 있겠어."
"이 지갑이 뭔데 그러십니까?"
"너는 몰라도 된다. 아직은 말이야. 너는 이제 가서 네 제자들을 챙기거라."
"....알겠습니다."
제임스는 찜찜함을 남기고 자매들과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제임스가 사리지고 나서 피터는 바닥에 한숨을 내뱉고 지갑에서 작은 카드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그 카드를 휙 던져 베르가모트에게 건네고 말했다.
"둘이서 하시죠."
베르가모트는 카드를 받아들고 다시 그를 바라보더니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없던 태도였다. 다만 그 눈은 무언가 복잡하게 섞인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보였다.
"그렇게 해 그럼. 대신, 난 지금 당장 출발 해야겠어."
"마차를 준비해 뒀습니다."
"너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허허..."
그렇게 고작 단 둘이서 출발한 베르가모트와 피터는 스스로도 승산이 얼마 없음을 짐작했다.
그들이 항구에 도달하고 배에 오르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미리타엔까지 가는 최단로는 당연히 숲을 불태우고 안카숲을 통하는 것이지만,
두 명이서 그 숲을 불태우는 것은 어려웠다.
시간상으로 상당히 오래 걸리겠지만 피터는 이미 제임스를 따돌린 이후였다.
그가 쫒아오지 못하도록 일부러 베르가모트의 억지를 받았다.
여기서 교국의 원군을 기다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베르가모트의 성격상 어려워보였다.
단순한 기다림으로 일을 마치려고 했으나 결국 히트앤 런으로 도망치거나,
아니면 완력으로 전선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제자가 있으면 더 빨리 끝낼 수 있겠지만, 이제 그는 아래로 제자가 많다.
무엇보다 그 성격에 마녀라도 마주한다면 분명 계획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피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째 자신의 제자들은 점점 정통한 교회의 이념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다.
제임스에서 한번 어긋난 축이 데니스로 한번 더 꺾이고 나서
피터는 이제 자신이 늙었음을 짐작한 것이었다.
미리타엔은 조용했고, 마치 습격이 있을걸 대비하고 있는 것처럼 평온해보였다.
다만 그럼에도 주변에는 거리에 널브러진 노예들이 널려 있었다.
"변화랄게 별로 없어 보이는군요."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말투네."
"별건 아닙니다."
"여긴 뭐 시발 그냥 온 거리가 떡촌이네?"
"불경하다고 하겠습니다. 허허..."
그렇게 웃는 피터의 앞으로 한 여자가 다가와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미리타엔 내에서 이제껏 확인한 적 없는 얼굴입니다."
피터는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그저 여행객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그 여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난히 큰 엉덩이와 색기가 흐르다 못해 넘쳐보이는 얼굴,
그리고 유난히 큰 가슴까지.
어딘가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그 모습은 말 그대로 외설적인 육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일말의 노출이 없는 옷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여성은
흰 정복을 입고 있었다.
"군인이신가 보군요?"
그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여성은 그저 가만히 그와 베르가모트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뒤돌아섰다.
"목표, 발견했습니다."
그 말을 흘려들을 수 없던 베르가모트는 그녀의 어깨를 콱 붙잡았다.
그리고 강하게 그 어깨를 돌렸다.
휙 돌아선 얼굴은 놀람이나 두려움 따위가 보이지 않았다.
베르가모트가 곧장 창을 내질러 여자의 배를 노리지만 창은 찔렀다는 느낌을 줄 뿐,
그 배를 뚫지 못한다.
"크윽..."
"너 뭐냐?"
베르가모트가 던진 말에 당연하게도 답은 하지 않는다.
"현재 미리타엔에서는 거수자를 발견하면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만 남기고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겨눌 뿐이었다.
그러나 그 손은 금방 관절의 반대로 꺾였다.
"뭐야... 할배...?"
베르가모트의 목소리가 의문에 섞여 뜬다.
어느 새 총을 겨누고 있던 여성은 바닥에 깔려있고, 그 위로 팔을 꺾어 붙잡은 노인이 있다.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노인은 여성의 양 팔을 구속하고
빠르게 복부를 가격했다.
아까 창으로 찔렀던 곳이었다는 것을 베르가모트는 곧장 알아냈다.
주먹을 빼내자 동시에 그녀는 기우뚱하더니 바닥에 툭 쓰러진다.
충격때문인지 먹은 것을 토해낸 것 같았다.
쓰러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곧장 골목에서 더러운 악취를 풍기는 노예들이
제 멋대로 튀어나와 쓰러진 여자를 끌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역겹군요."
그 말에 베르가모트는 창을 휘둘러 노예들의 앞을 정리했다.
팔이 뚝 떨어진 노예들은 놀라면서도 대들지 않았다
그저 팔을 부여잡고 도망치기 급급했다.
"미리타엔 치고 너무 간단히 들어온 것 같은데요."
"그게 뭐?"
"어딘가 다른 요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간과한 요소가 있을까요?"
"몰라. 그리고 있다고 해도 난 내 앞에서 떡치는 새끼들은 죽이는 주의라서.
저 정도로 봐줬으면 된거지."
"아, 그럼 제 비서를 저렇게 만든게 당신들이군요?"
어느 순간 시야를 가리는 그림자에 고개를 든 베르가모트의 위에는 거대한 오크가 있었다.
당황한 표정은 금방 가리고 침을 삼키며 묻는다.
"넌...?"
"수완 좋은 사업가 였었죠."
"였다?"
"지금은 조금 많이 불쾌한지라 사업같은 건 못하겠습니다."
"뭐야 괴물새끼가 허세는."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 뻐억 소리를 내며 묵직한 공격이 머리를 울린다.
"킬레리는 대체하면 그만이다. 날 위한 소모품이니까.
하지만, 내 소모품이 내 격을 깎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내 소모품을 감히 건드려서 망가뜨린 죄는 똑똑히 치러야 할거다."
묵직한 힘에 곧장 반응해 창을 꺼내 막아보려했으나 역부족이었고
오히려 바닥에 밀려 뒤로 밀려났다.
"뭐 이런 새끼가 있어?"
창을 고쳐잡은 베르가모트가 오크의 배를 노린다.
게비디는 그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기술 좋음, 목표 좋음, 후일을 기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기본적으로 약해."
다시 그 창을 한 손으로 꾸득 잡아낸 손에 힘이 들어간다
창이 까드득 소리를 내며 휘어지기 시작한다.
즉시 뒤에서 피터가 협공을 시작하고 나서야 창을 쥔 손이 풀린다.
"힘을 좀 쓰는 편이시군요?"
피터의 얼굴에 땀이 맺힌다.
여유부리면서 상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킬레리들, 현재 위치 좌표화 해서 엔시온 대공에게 전하도록.
나는 이곳에서 저지하겠다."
전화기 같은 것을 내려놓은 그가 겉옷을 벗어 던진다.
안쪽에는 와이셔츠와 붉은 근육 뿐이었다.
"최근 이쪽에서도 소식이 많아서 곤란하더군.
여기서 늑대, 저기서 늑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국에서 보낸 끄나풀들 말이야."
그 말에 베르가모트가 눈빛을 바꾸었다.
"뭐야, 너 알고 있었냐?"
그 질문에 게비디는 고개만 끄덕였다.
자신이 내지른 주먹이 노인에게 막혔다는 것을 의아해하지 않았다.
우연이라고 생각했거나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주도적이었다.
그래서 게비디는 시간 끌지 않고 노인을 보내기로 했다.
게비디는 바로 그 배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주먹은 한 손에 막혔다.
"아무 생각 없이 막을 주먹은 아니군요."
"그게 그렇게 막힐 주먹도 아니었습니다.
어르신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대체 미리타엔에 방문하신 목적이 무엇이십니까?"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대화가 굳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늑대들이 실패하기에 직접 나선 것 뿐입니다."
"교국에서 오신 분들이셨군요."
그렇게 게비디는 노인의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쾅 하는 무언가 폭탄따위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으나
노인은 멀쩡했다.
오히려 그 몸은 건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탄탄하게 그 주먹을 막아내고 있었다.
"노인이 막을 수준이 아닌데, 누구십니까?"
"허허... 이 상황까지 제게 존중을 담아 여쭤주시니 어찌 대답하지 못하겠습니까.
피터 헤븐타임즈라고 하는 늙은이입니다."
"영감? 미쳤어? 괴물새끼랑 태연하게 대화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 말에 피터가 눈을 가늘게 뜨고 게비디를 다시 바라보았다.
"괴물...?"
그리고는 천천히 거리를 벌린 그가 말했다.
"나이를 먹어서 눈이 침침해지니 문제구만... 괴물같은 새끼들과 말을 붙이다니..."
변한 분위기와 태도는 분명 이상했다.
"어쩐지 요사스런 몸뚱이를 들이미는 이가 많더라니... 너희는 살아있을 자격이 없다.
그분께서 사랑하신 유일한 존재에 대항하는 존재들, 존재해서는 안되는 이들.
너희는 금기를 어긴 것이다... 미리타엔의 추태를 알고도 너희와 대등하다고 여겨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룔서할 수 없습니다 신의 자비를 거절하고 인간을 위협하며 우리에게 혼란을 안기고..."
피터는 양 팔로 게비디의 팔을 꽉 붙들고 근력으로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게비디는 당연히 다리를 낮추고 무게중심을 내려 공격을 막아내려 했지만
그게 무색할 정도로 힘이 들어간 몸이 들썩였다.
"인간이 이런 힘을 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커억..!"
게비디의 패인은 단순했다.
상대가 둘이었다는 점.
자신이 아무리 근력으로 한 명을 묶어둔다고 해도 다른 하나가 빈 곳을 노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옆구리를 꿰뚫리고 게비디는 중심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옆으로 빠르게 피해 빠져나왔지만 날카로운 창에는 그의 피가 묻어있었다.
"정장 값은... 받아내겠습니다. 이거 비싼 거거든요."
게비디의 피부를 뚫어낼 정도로 강한 창은 드물었다.
게다가 게비디의 근력마저도 한 명으로 버텨내는 상황이니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던 게비디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죽어!!"
연이어 날아드는 창을 피흘리는 몸으로 피하기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와 버금가는 수준으로 그를 붙들어두는 이해하기 어려운 노인이 짐이었다.
창은 게비디의 팔을 찍었고, 그 근육을 끊어내며 피를 쏟게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팔에 힘이 빠지게 되며 게비디는 주춤하게 되었고
그대로 뒤로 밀렸다.
피터는 그대로 게비디의 중심이 흐트러진 것을 노려 그를 뒤로 내던졌다.
게비디는 처음으로 근력에서 밀려 뒤로 뒹굴었다.
오랜 안일함에 풀려있던 근육이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 달려드는 베르가모트에 게비디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부딫힌다. 베르가모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딘가 이상하다. 어색하고 이질적인 감각. 생물의 피부를 찌르는 경도가 아니다.
그제서야 보인 것은 자신의 창을 가로막은 십자창이었다.
그리고 붉은 갑옷을 전신에 두른 검은 머리의 여성이었다.
"이제 퇴물 다 됐네. 노인이랑 여자한테 지고 있다니."
"은퇴도 생각해 봐야겠군."
"치료부터 받지 그래?"
"자네도 상당히 친절해졌어 엔시온."
"...."
자리에서 일어난 게비디는 그렇게 말하고 무전기로 연락을 넣었다.
"킬레리, 엘릭서를."
그 말에 킬레리 하나가 골목에서 걸어나와 두꺼운 아타셰 케이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에리아가 만들었던 포션이 한 병, 영롱하게 찰랑이고 있었다.
그걸 대번에 들이키고 나서 게비디는 목을 양 쪽으로 꺾어 뚜둑 소리를 냈다.
이어서 팔, 그리고 손목, 손가락 마디 하나까지 확실히 뚜둑 소리를 내며 풀어둔 후에
그는 아타셰 케이스를 들고 말했다.
"이제야 각자 맞는 상대가 생긴 것 같군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