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화 〉 망월의 조사대
* * *
도르테우스의 제단.
분명 아무것도 없었을 그곳에 놓인 꽃 한송이는 누가 공양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도르테우스..."
꽃을 살짝 집어 마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잠깐 심호흡을 한 후, 가방에서 곤히 자고있는 삐삐를 안아들었다.
"3일밖에 시간이 없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와.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직접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방법은 있어. 하지만 아주 까다로울거야. 번거롭고."
"지금 이 상황보다 어려울 수는 없을 거에요."
"그렇다면 임시로 차원의 영역에서 그 세계를 잠시 배제시켜둘게."
"그게 무슨 소리죠?"
"지금 세계에 네가 구애받지 않도록 해준다는 의미라고 이해하면 될거란다.
무엇과도 상호작용 하지 못하고, 현상을 받아즐이고 이해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하지만 분명 그게 너에게 도움이 될거야."
"그게 무슨 소리인지 난..."
"혼자가 될거라는 소리야. 적어도 네가 목적을 달성했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그건..."
"못하겠어? 못하겠다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삐삐는... 어쩌고요?"
"그 아이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해야 하니까 하는 거에요."
"그럼 그 아이까지 포함해서 보낼게.
하지만 명심해. 두명중, 하나라도 끝내기를 원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테니까.
영원히 거기서 헤매게 될 수도 있어. 둘의 의견이 조율되지 않으면."
"조율..."
"그럼, 다녀와. 앞으로도 꽤 긴 여행이 되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손을 흔든 그의 말과 함께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어딘가 이상한 감각이
몸을 스치고 있었다.
분명 도르테우스의 제단을 앞으로 두고 있는데,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다.
마치, 게비디가 이곳에 있던 미로를 철거하기 전과 같이.
"여기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나는 천천히 미리타엔을 향해 걸었다.
안개는 미리타엔의 구석구석까지 아주 짙게 끼어 있었고,
앞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흐리고 불쾌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선 상담소의 문을 열려고 한 내가 멈칫하게 된 것은, 상담소의 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그제서야 둘러본 주변은 어딘가 잿빛으로 변한 세상이었다.
마치 내가 없는 것 같은 공간에서 색이라고는 나와 삐삐 둘 뿐이었다.
그리고 벌컥 열리는 문에서는 발레리아가 모락모락한 죽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나왔다.
아마 아까 전까지 만들던 그 죽이었던 모양이다.
재료를 보면 매시키나의 고기, 각종 야채와 조갯살, 그리고 향신료와 삼따위가 섞여있다.
아끼지도 않은 것 같다.
"참... 어떻게 만든거지 대체?"
포션을 만드는 것과 요리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발레리아는 그런 면에서 나보다 능숙했다.
그녀의 요리에서 과정을 추측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런데에 관심이 생기곤 했다.
그때였다.
발레리아의 발걸음이 부자연스럽게 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문워크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어딘가 달랐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녀의 상황에 따라 발을 맞춰 상담소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죽을 담은 그릇을 다시 냄비로 옮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발레리아가 그걸 다시 냄비로 넣고 있는지
순간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국자를 들어 입으로 가져가고, 그 위로 발레리아가 무언가를 뱉는 것을 보면서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없는 국자를 입으로 가져가서 그곳에 무언가를 뱉는 것이 아니었다.
요리의 간을 보기 위해 국자를 입으로 가져가서 먹은 것이다.
그것이 지금, 반대로 역재생이라도 된 것처럼 흘러가고 있다.
알아냈다.
도르테우스가 차원에서 배제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것이었다.
세계의 과거와 현재까지도 직접 조사할 수 있도록 떨어뜨린 것이었다.
"발레리아...?"
대답은 없다. 내가 원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까지 되감기 된 모습.
다시 그녀가 처음 죽을 끓이려고 할 때까지 돌아가고 나서야 역재생되던 모습은 끝이난다.
단절된 공간에서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은 분명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과 모순,
그리고 정령왕의 봉인장소였다.
차원이 다르다는 조건 때문에 나는 지금 무엇과도 상호작용을 할 수 없었다.
미리타엔 시내를 멍하니 돌아다니고 있으면 안고 있었던 삐삐가 일어났다.
부스스하게 얼굴을 내 가슴에 비벼대고는 기지개를 켠 후에 말했다.
"안뇽!"
"삐삐 일어났어?"
"삐익!"
그나마 대화할 대상이 생겼다는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마마!"
"응?"
"반쨕반쨕 업서..."
그제서야 나는 내가 마력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볍게 손에 마력을 두르려고 해 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손에 당황하며
이 상황을 잘 사용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 삐삐가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다가 말했다.
"지뽀?"
"쥐포? 갑자기?"
내가 되물으면 삐삐는 손으로 길거리를 가리켰다.
삐삐가 가리킨 곳에는 한 사람이 쥐포를 한손에 조심스레 숨겨 들고
주변의 눈치를 심하게 보고 있었다.
"쥐포...네?"
"응. 삐삐 지뽀 먹고시퍼 햇는대 아찌 나와떠."
"그렇구나...?"
삐삐가 쥐포를 먹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장소에서 쥐포와 연관된 사건이 있을 때까지
시간을 되돌려 부합하는 상황에서 멈춘 모양이다.
그래서 저 사람이 과연 쥐포를 가지고 있는 그 이유는 뭘까 생각하고 있으니 삐삐가 말했다.
"아찌!"
당연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아찌! 나 앨리쑤!"
반응이 없자 삐삐는 내 품에서 쏙 튀어나가 쥐포를 소매에 숨기고 눈치를 보는
남자에게 다가가 그 앞에서 폴짝폴짝 뛰며 양 손을 흔들었다.
"아찌!! 앨리쑤가 말하자나!!"
그러나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자 삐삐는 화가 난건지 그 작은 다리로
남자의 정강이를 꽁 걷어찬다.
그러나 별반 유효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야!!!"
삐삐는 화가 난 것처럼 빼액 소리를 질렀다.
브레스에 자그마한 불꽃이 섞였다.
그렇지만 쥐포와 남자에게는 그 무엇도 영향을 줄 수 없었고,
삐삐는 침울해져서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나를 돌아본다.
"마마아..."
곧바로 삐삐에게 달려가 삐삐를 품에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쁜 아지찌야!"
"그러네. 나빴네."
"미워."
"엄마가 나중에 쥐포 많이 사줄게."
"갠챠나..."
"괜찮다고?"
"지뽀 마니 이써."
"삐삐야, 지금 여기 반짝반짝한거 없지?"
"응...업떠..."
"그래서 그런거야. 반짝반짝한 사람들 만나면 그때 삐삐 말 들어줄거야.
알겠지? 삐삐 참을 수 있어?"
"할두잇더..."
"그래. 그럼 엄마랑 같이 다닐까?"
"언재까지?"
"엄마가 찾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만 찾으면 바로 나가자."
"찬는 사람?"
"응. 찾는 사람이 있어."
"반짝반짝이야?"
"음... 글쎄."
"빤니 착구 가야대?"
"그래."
삐삐는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일단 삐삐가 돌려놓은 상황을 가만히 바라보기로 했다.
솔직히 미리타엔에서 쥐포를 들고 선 사람이 거리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서 있는 상황은
아무리 보더라도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으니까.
가만히 들으면 그들이 떠드는 소리도 명백히 들렸다.
"허억...허억..."
숨을 고르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쥐포를 슬쩍 옷 아래로 숨기고는 골목을 돌아 사라지려 했다.
그러나 곧 뒤로 달려나온 거구의 남자에게 목덜미를 붙들렸다.
"너 이 새끼! 어린 놈 새끼가 벌써부터 도둑질이나 하고말이야!"
과거의 장면을 다시 바라보는 것은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으아악!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너 이름이 뭐야!"
"맨...데일이요..."
충격적인 소리에 순간 당황했다.
삐삐가 그런 나를 이상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맨데일? 아, 니가 그 애새끼구나? 애미랑 둘이 쌍으로 버려졌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마 이 쓰레기가!"
금방 쥐포를 품에서 내던지고 달려들어서는 남자의 귀를 물어뜯어버리고
쥐포를 챙겨 도망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들어 맨데일을 따라갔다.
당연히 내 존재를 눈치챌 수는 없으니까.
맨데일은 쥐포를 구겨 한입에 털어넣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골목사이를 돌아다니며
다음 타겟을 찾는 것 같아 보였다.
아마 그가 어렸을 때 악착같이 살았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얼굴에 가죽이 붙지는 않았으니 비교적 최근이거나, 아주 예전의 일이겠지 싶었다.
그래도 무력은 약해보였기 때문에 이전의 모습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 길거리를 걸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혹시 잠깐 시간 있어요?"
여자였다.
"누구...?"
"아, 저는 실종된 남편을 찾고 있어요. 미리타엔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학생, 아줌마 좀 도와줄 수 있나요?"
두근. 심장이 뛰는게 느껴졌다.
이건 맨데일이 최초로 노예를 팔았던 사건이었다.
그 시작이 이것이었다.
그는 미묘하게 표정을 바꾸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타엔은 처음이신거죠?"
"응. 맞아요."
"그럼 혹시 숙소는 구하셨어요?"
"아니오, 아직..."
그렇게 말하는 그가 만지작거리는 주머니의 피부. 이미 일은 흐른 이후였다.
나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삐삐의 교육상 좋지 않으리라 생각해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맨데일의 뒤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맨데일의 뒤를 티나지 않게 계속 밟고 있는 인물이 있는 것이었다.
내가 제 3자의 입장에서 누구와도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지금에서야 발견한 것.
수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늑대같았다.
아마 교국에서 보낸 것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그는 무전기를 꺼내 어디론가 연락을 건다.
"네, 아가씨. 여자가 이제 막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네, 계속 감시하겠습니다. 정보상단을 위해서."
늑대라고 생각했던 연결점은 정보상단이었다.
나는 그들의 전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네? 또 남부로 출장이라고요? 요즘같은 시대에 저처럼 아날로그로 뛰는 정보원이 어딨습니까.
아가씨께서도 다 아시는 정보아닙니까.
네? 국립 공원 말씀이십니까? 아니 저는 지금 거리가 멀다니까요.
미리타엔이에요 여기! 제가 지금 어떻게 거길 갑니까?
에헤이 현실적으로 따져주셔야죠.. 아가씨... 아가씨!!"
전화가 끊어지고 남자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베일슨 패거리도 돌아다니는 구역에 발을 들이라는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거기 봉인된거 찾기 전에 제가 먼저 봉인되겠습디다."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은 남자는 피곤한 것처럼 신발 끈을 묶는다.
내가 찾고 싶었던 정보에 한 걸음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들어 삐삐를 쓰다듬었다.
"삐삐야. 일단 출발하자."
"지금?"
"응. 좋은 단서를 얻은 기분이라서."
"아라떠...!"
따지고 보면 삐삐가 쥐포를 좋아해서 생긴 헤프닝이기도 했었다.
그 오래 전의 어느 시대부터 꾸준히 관찰당하고 있는 것에는 조금 불쾌했다.
그를 따라 걸으면서 드러나는 길목과 단서는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결국은 비고 베일슨의 구역으로 이동하고 나서 이전에 경험한 적 있는
무더운 태양이 내리쬐는 국립공원에서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은 꽤 낯설었다.
"아가씨, 제가 아무리 내일 모레 은퇴한다지만 너무 많이 시키시면 저 연골 나갑니다!
이제 막 행복 2막 시작이라니까 왜 절 가만 못 두십니까?"
그 사이로 들리는 제인의 고까운 목소리다.
지금내가 아는 목소리와는 달리 좀 더 젊은 것 같다.
"그게 마음에 안들어서인지도 모르고, 저게 마음에 안들어서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느 장단에 맞추는 것보다 나가기 전에 하나라도 더 시키는게 맞지 않나?
그 아들내미도 속도위반이라며?"
"그렇죠. 와이프랑 눈맞아서 불타올라 버렸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이제는 좀 다른 일도 해보고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면 좋습니다.
그리고 원래 고고학자를 부업으로 오래 하고 있기도 했고요.
정보상단 소속으로 일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저는 그게 더 재미있었습니다.
투잡뛰는 것도 이제 몸이 안 받쳐준다고요.
이제 저도 내일 모레부터는 정정당당히 남들 앞에서 무슨 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직업이 첩보원인 것보다는 고고학자가 더 좋으니까요.
예정 출산일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나는 이제서야 이 목소리의 주인 마저도 어디선가 본 적있고 들은 적있는
바로 그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얼굴이지만 그제서야 하나씩 비교해본 특징들이 들어맞는다.
"다니엘...?"
대체 이게 어떻게 이어지는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쥐포가 불러오는 나비효과가 이렇게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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