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화 〉 결말
* * *
다른 차원의 배제된 것에 접촉하는 능력은 다시 말하면
다른 차원에서 허가되지 않은 것을 끌어온다는 것 외에도
이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보내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시간과 공간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지만,
내가 행동하는 것으로 인해 그 시간과 그 공간의 행동이 특정되었고
그렇다는 것은 내가 걸어온 행보가 흔적으로 남는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나는 되감기와 빨리감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 모든 것이 같은 규칙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특정한 시각과 특정한 장소에는 반드시 정해진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다른 차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몸을 구성하는 마력이 곧 그 연결체와 같았다.
앞으로 빨려들어가는 감각이 이어지고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확신했다.
똑같아보이지만 명백히 다른 공간.
내가 원래 존재하던 세계에서 어긋난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이 만든 세계였다.
동시에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맙소사. 이건 네게 허가한 권능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내 옆까지 다가온 남자는 도르테우스였다.
"언제 이런것까지 할 줄 알게 된거야...?"
"글쎄? 모르겠어요. 그냥 늘 그랬어요. 알잖아요. 날 지켜봤을 테니까.
난 붉은 여왕의 발목을 잡아채는 여자니까. 날 둘러싸는 환경이 변하면,
적응해내야 해요. 그래야 적성이 풀린다고요."
"못 당하겠네. 하하..."
"여기서라면 나는 원래 있던 차원에서 어디로 뛰어들지 정할 수 있어요.
X축과 Y축으로 이루어진 그래프 같은거죠.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내가 걸어온 기록이 분명히 거기에 선으로 남아 있으니까."
"그런 개념으로 접근해본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많이 무뎌지셨네요?"
"그래. 그런 것 같네."
"먼저 갈게요. 금방 다시 보죠."
"그래. 파이팅. 이럴 줄 알았으면 괜한 조언은 없어도 됐을 뻔 했네."
"아뇨, 필요한 조언이었어요. 고마워요."
바라본 것은 우주였다.
내 앞에 놓인 것은 우주와 수많은 별들이 구조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앞에 놓인 것을 선택했을 때.
내가 그걸 유동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점이다. 아주 작은 점. 그러나 그것이 움직이면 곧 선이 되고,
지금처럼 세계를 관망할 때 면이 되며, 경계를 뚫을 때 마침내 공간이 된다.
차곡차곡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작은 점에 충실하면 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채워지기 시작한 순간, 나는 움직인다.
마력이 마침내 몸을 채웠을 때, 나는 무언가가 더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마력? 몸?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존재 자체의 가벼움을 느꼈다.
깨끗하고 맑은 바다와 같은 청명함이 있었다.
다시 내가 공간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동굴 앞에 있었다.
삐삐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뭔가가 확실히 달라졌다.
나는 삐삐가 돌아오기 전까지 삐삐가 돌아올 자연공원의 초원으로 향했다.
천천히 걸어가서 그 장소에 도착한 후에, 내 안에 생겨난 가벼움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본다.
마력이 뭉쳐 그 구조를 변형시키는 모습이었다.
새로운 규칙과도 같은 형상이 거기에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꾸준히 생각했던 그 점. 마력의 일점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형용할 수 없는 것이 그저 존재한다는 것은 낯선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그걸 다룰 수 있었다.
알 수 있었다.
그건 기록을 일그러뜨리는 점이라는 것을.
마력을 꾸준히 회전시킨다.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면 그걸 꾸준히 한점으로 밀어넣는다.
마력이 모여가는 그 점이 그렇게 천천히 움직인다.
빠르게 마력이 고갈되기 시작하면 몸에서도 거부반응이 올라온다.
눈이 흐려지고, 주륵 떨어지는 코피와 급격하게 몰려오는 피로감,
통증은 이미 느껴지지 않을 정도까지 왔다.
하지만 죽지 않는다. 나는 죽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한번 더 해본다.
끝없이 반복하고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지 알아낸다.
결국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하늘이 어두워져있었고,
나는 초원 위에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쓰러져 기절했던 모양이다.
"아으 머리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나는 씩 웃었다.
모르는 것은 알아내면 그만이다.
이 곳에서 나는 어디라도 갈 수 있고, 어떤 순간이라도 잡아낼 수 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나보다 이 개념에 먼저 도달해낸 이를,
그리고 이 기록을 먼저 다룬 이를 찾아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어떻게든 다르말록을 찾아내야 하는게 숙제구나."
남은건, 삐삐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모르겠다.
명상 그리고 마력 수행의 반복이었다.
남는게 시간이니까. 며칠? 어쩌면 몇주?
앉은 자리에서 나는 삐삐를 기다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분명하게 마력이 느껴졌다.
삐삐다. 이건... 삐삐에게 걸어둔 비상용 호출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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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씨, 우리 오디가?"
안뇽! 나 앨리쑤!
마마랑 같이 이상한 데로 여행왔어.
여기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는데, 앨리스랑 똑같이 생긴 아저씨 아줌마가 있어.
그래서 엄마 허락받고 잠깐 소풍 왔어.
이 무리에서는 맨 앞에서 날고 있는 아줌마가 제일 대단한 것 같아!
그래두 다들 반짝반짝 안해서 삐삐 말에 대답 안해줘.
조금 삐칠 것 같아.
한참 날았는데 아직도 도착 안해서 조금 걱정이야.
마마가 기다리구 있을텐데.
마마랑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삐삐 한참 날았어.
아! 앨리스야. 삐삐는 취소.
한참 날았더니 이제 저 쪽에 땅이 보여.
사람들이 북적북적한것 같은데?
왜 다들 옷을 안 입고있지?
마마가 알려줬어. 운동을 하고 있는 거야.
근데 아줌마는 화내는 것 같아.
"이 더럽고 불결한 것들이 기어이 이 땅에서 주제도 모르고...!
동포를 죽인데 모자라서 이젠 자제할 줄도 모르고 밑도 끝도 없이 타락했구나."
"아줌마! 불겨리 모야?"
"가자! 전부 쓸어버리는거다!"
"대다패주라..."
말이 없어...
다들 화가 많이 나서 반짝반짝한거 몸에 두르고 있어.
반짝반짝인데 왜 삐삐 말에 대답 안해줘?
"불겨리 모야?"
"준비는 됐나?"
"대답 안해줄꺼야? 힝... 아라떠. 나중에 반네리 이모한테 물어보지 머."
그래도 다들 반짝반짝한거 두르길래 삐삐도 했어.
근데 삐삐는 노란색인데 다른 아저씨 아줌마는 흰색이야. 왜지?
하긴, 다들 까망색이랑 회색만 있어. 삐삐 이거 배웠는데...
뭐더라... 아! 그래. 부채색이야. 다들 부채색이라서 어두워.
"응?"
뭐가 이상한데... 삐삐 알수있어. 아줌마랑 아저씨들 반짝반짝한데...
너무 반짝반짝해. 이러면 안되는데. 아야해. 삐삐도 날개 만들때 말고는 안했는데...
삐삐는 마마가 맛있는것도 먹여줬었는데...
맛있는거 없으면 많이 아야해... 어..?
"아줌마...?"
"으그윽..."
"아지씨? 우리 모하는거야?"
"그으윽..."
"다들 힘드러보이는데 모하는거야...?"
이미 표정이 많이 아파보여.
이거 알아. 앨푸 아저씨들이 했던 표정이야...
시도라 할머니도 저 표정 했어. 삐삐 잡혀갔을때.
"이거 아나면 안댈까? 앨리쑤도 힘든대...?"
아무도 대답을 안해줬어.
"가자!"
어? 다들 막 아래로 내려가.
엄청 빠르다.
저거 쾅 하면 많이 아플텐데... 어...?
일단 따라갔어. 근데 이거... 어...
사람들... 아파해.
"천각룡이다!! 막아라!! 저 괴물새끼들이 기어이 여길!"
"뚫어라! 인간들에게 천벌을 내려라!"
"이 씨발 좆같은 도마뱀 새끼들이!!"
"쏴라! 멸절마법을 준비해! 대륙봉쇄진도 바로 발동시켜라!"
뭐하는건지 잘 모르겠어.
아저씨랑 아줌마도 아파해.
운동하는 사람들은 안아픈가? 왜 운동만 하지?
운동 안하는 사람들은 뾰족뾰족한거 들고왔어.
그리고, 어... 저거 아픈데... 삐삐는 맞아봐서 아는데...
"하지마!!"
어...?
어....
이상하다... 반네리 이모가 사이좋게... 지내라구 그랬는데...
왜 싸워? 삐삐... 아무것도 못하겠어...
무서워...
"ㅆ...싸우지 말자... 삐삐가 딸기사탕 주께."
어... 삐삐 말 안들어. 반짝반짝하는데... 왜...?
"사...사탕 시러? 그럼 지뽀 주까...? 지뽀도 마시써... 그러니까 그만 하면 안댈까...?"
어...?
"삐삐가 잘못했어... 그만 하자..."
무서워서 눈을 감았어.
삐삐는... 잘 모르겠어... 왜 삐삐말은 안들어?
싸우면 나쁜건데... 왜? 아저씨들도 하나 둘 쓰러지고 있어.
사람들도... 반짝반짝한거 쓰고있어...
언제.... 끝나? 왜...?
시간이 많이 지났어. 하루? 이틀? 아니야... 하나 둘 셋...여섯...
여섯 밤이나 지났는데... 왜 안그만해?
왜? 왜 그러는 거야?
"다들 싸워라! 물러서지 마! 반드시 여기서 승기를 잡아야 한다!
오늘 역사를 바꾸어야 한다!"
아줌마는 왜 싸우라고 하는거야? 싸우면 나쁜거잖아...
"여왕님!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이미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여기서 물러날 수 있나!"
"길을 내겠습니다! 빠져나가셔서 부디 대를 이어주십시오!"
"대를 이으라고? 내가 그대들 없이 살아남아 기뻐할 것 같은가!"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서 모두 당하면 뒤를 이을 수가 없습니다."
"하아... 미안하다! 다들 후퇴하라!"
"저희는 이미 늦었습니다. 인간들의 발을 묶어 놓겠습니다!"
"왜 당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동료들을 죽인 저들을 용서해야 하는가!"
아줌마 화가 많이 난 것 같아. 사실 이미 아줌마도 피투성이야.
너덜너덜해. 많이 아플 것 같은데... 날개도 이미 찢어졌고, 뿔도 부러졌어.
까드득 하는 소리.
저 옆에서 아저씨가 날아와서 부딫혔어.
이미 사방에 화살이 박혀있어. 한쪽눈은 왜 감고있는지 모르겠어. 무서워...
싫어... 안볼래...
"아줌마, 도망가자... 삐삐 무서워... 같이 도망가자...
삐삐가 마마 불러올게... 마마 엄청 쎄..."
아줌마가 날았어. 날개 다쳐서 비틀비틀하는데... 괜찮을까...
삐삐 따라가봐야해. 다친 사람 낫게 해줘야돼.
마마가 그랬어.
삐삐랑 아줌마랑 같이 날았어. 도망가면서 뒤를 봤는데
사방이 막 불타고 있어. 왜... 왜 아저씨들이랑 아줌마들은 안나와?
이러면 안되는데... 비틀비틀해...
겨우 산 하나 넘었는데...
어어...?
아줌마가 쾅 소리나게 떨어졌어.
아줌마 반짝반짝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나봐.
어떡하지... 삐삐도 도와줘야 하는데...
"아줌마... 울어...?"
아줌마 울고있어.
울지마...
"울지 마...."
삐삐가 아줌마 안아주께... 마마는 이거 좋아해...
근데 반짝반짝한데 왜 못 안아주지? 만질 수가 없어...
삐삐는 왜 마마처럼 못해?
삐삐는 왜 어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후우...후욱..."
아줌마 반짝반짝한다...
이거... 폰니모푸야...
아줌마 이쁜데... 안됐어... 웃으면 좋은데...
"마력이 느껴지는구나. 아주 작고... 미약한 마력이야..."
"어...? 삐삐 마리야?"
"하아... 죽을 때가 되기는 한 것 같구나.
내가 착각하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구나."
"이제 삐삐가 말하는거 들려?"
"나는 말이다, 천각룡의 여왕이었단다."
"들리냐구!"
"이름은 프렌데라라고 하느니라. 아니, 이젠 여왕도 아니로구나.
그냥... 아주머니라고 생각해도 되겠어."
"프렌데라! 아줌마? 삐삐는 앨리스야!"
"너라면 꼭 알아주겠지.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여섯날을 싸웠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더 밝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지.
우리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순혈 천각룡은 이제 나 혼자 남았단다."
"아냐! 마마가 삐삐도 청강룡이라고 해써!"
"그나마 다행인건, 나는 여왕이라는 점이었지.
여왕은 다른 천각룡에 비해 질긴 생명력과 강대한 마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말이야.
불행중 다행이지 않니?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까..."
다행 아니야... 아줌마 울고 있잖아...
왜 울면서 그런 소리 하는거야?
"하아... 저 나라는 이제 확실히 멸망할거다.
아르간티아가 떠난 후에 너무 많이 변해버렸거든.
이게 다 다르ㅁ...아니, 아니다. 너에게 말할만한 이야기는 아니구나.
그래, 작은 마력아. 너는 날 지켜보고 있는 거겠지..."
"작은 마력 아냐! 삐삐도 반짝반짝할수 있어!"
힘을 주면 삐삐도 반짝반짝해.
"아아, 조금 더 커졌구나. 그래, 그 마력은... 너도 순수한 마력을 지닌 거야.
어린... 천각룡인지도 모르겠구나."
"삐삐 안 어려!"
"아이를 밴 몸으로 전장에 무리해서 나서는게 아니었다.
덕분에 아이에게 줄 마력은 너무 많이 써버렸단다.
부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보이니? 내 날개와 뿔은 이미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단다.
이렇게 된 이상은, 죽을 각오로 알을 품어야겠지.
알을 내보내지 않을 거란다.
목숨이 다 타서 없어질때까지 품는다면, 이 알에게 온전히 내 전부를 담아줄 수 있겠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알이 부화할 수 있도록 말이야."
"아줌마...?"
"폴리모프를 할 정도의 마력은 남아서 다행이야.
이동중에 인간들에게 또 발각된다면... 정말 감당이 안될 것 같으니 말이야.
나는 이제부터 인적이 드문 텔레프란 대륙 북부로 갈거란다.
아마 오래 걸리겠지.
영원한 침묵에는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게 모야?"
"이야기가 길었구나. 함께 가겠니?"
"응..."
아줌마는 겨우 비틀거리면서 날개를 퍼덕였어.
삐삐도 같이 날았어.
받쳐주고 싶은데, 삐삐는 받쳐줄수가 없어. 무거워서 떨어질지도 몰라.
그리 오래는 안날았으면 좋겠는데...
어?
"아줌마...?"
떨어져버렸어. 아줌마 날개가 많이 다쳐서 못 나나봐.
어떻게든 도와줘야 하는데...
삐삐도 아줌마를 따라 내려가기로 했어.
마마가 아줌마한테 꼭 붙어있으라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아줌마 다치면 안돼...
여기는... 어... 바닥이 차가워..
뾰족뾰족한 얼음이 잔뜩 나있어...
"그래, 도착했구나. 이제 착륙도 함부로 못하겠어.
아마 네가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것 같구나.
내 마지막을 지켜주러 온 거겠지."
"아냐... 삐삐는..."
"난 여기서 영면에 들 생각이다.
아마 내 심장이 멈추기 전까지는...후우..."
"아줌마?"
아줌마는 눈을 감았어. 폰니모푸도 풀렸는지 다시 커졌어.
근데... 아줌마가 왜...
"아줌마...?"
움직이질 않아...
"마마... 도와줘... 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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