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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경찰-2화 (2/75)

〈 2화 〉 2화. 대림 지구대 순경 강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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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대림 지구대 순경 강동하

“야! 이 씨발새끼야!!”

초여름, 저녁. 대림2동 영등포경찰서 대림지구대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흥분한 경찰이 취객이나 잡범을 닦달하는 소리라고 생각하기 쉬웠지만 놀랍게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수갑이 채워진 두 손으로 조서를 받던 젊은 경찰관의 멱살을 틀어잡은 것은 길림파의 행동대장 리길상이었다.

길림파는 중국 교포들이 모여 사는 대림2동 차이나타운과 중앙시장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조선족 조폭이었다. 토착 조직인 대림파를 신길동 쪽으로 밀어내고, 차이나타운과 중앙시장에 터를 잡은 교포들을 상대로 보호비를 뜯거나 매춘, 마약, 불법사채는 물론 청부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악질 조직이었다.

“하, 씨발! 대한민국 경찰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면 무고한 시민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다가 현행범으로 연행된 조폭새끼한테 멱살을 잡히냐?”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리길상을 기가 차다는 듯이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은 이파리가 딱 두 개 달린 순경 강동하였다. 민중의 지팡이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경찰학교를 졸업한지 어언 두 달!

전국의 경찰들이 부임하길 가장 꺼려한다는 대림지구대로 부임하면서 민중의 지팡이가 되겠다는 동하의 꿈도 물거품이 되었다. 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대림동 차이나타운을 소재로 한 범죄영화가 무색할 정도로 대림동은 살벌한 동네였다.

일단 조선족 조폭들은 한국경찰을 물로 봤다. 절대적 권위를 지닌 공안이 조폭들을 곤봉과 발길질로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공권력에 저항하는 조폭은 언제든 총으로 쏴 죽여 버릴 수 있는 대륙에서 숨죽이며 지냈던 조폭들에게 범죄자의 인권조차 철저하게 챙기느라 총질은커녕 욕 한 마디 시원하게 못하는 한국경찰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경찰관이 조선족 조폭에게 뺨을 처 맞았고, 재수가 없으면 칼침을 맞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조폭들은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풀려났다. 이런 일이 일상화 되다보니, 짙은 패배감이 대림지구대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부임한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강동하 순경만은 무기력한 선배들과는 조금 달랐다. 원래 타고난 성질이 지랄 맞았던 그는 조선족 조폭들의 횡포를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다툼을 벌였다.

오늘 오후 중앙시장을 순찰하다가 보호비가 밀렸다며 자기 아버지뻘 되는 조선족 상인을 잘근잘근 짓밟는 리길상을 선배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테이저건까지 발사하며 체포해온 것도 바로 그 타고난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였다.

“어이~ 리길상 씨! 폭행죄에 공무집행 방해죄까지 추가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짜져 있지?”

“하……! 뭐 이런 꼴통새끼가 다 있니?”

리길상이 헛웃음을 흘리며 지구대 소장 김인철 경위와 신동우 경사, 박대식 경장 등을 돌아보았다. 평소 그들에게 용돈도 챙겨주고 다달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단란주점과 안마방에서 술도 빨고 떡도 치게 해주었던 것이다.

리길상이 눈빛으로 압력을 가하자, 동하의 사수 박대식이 은근슬쩍 한 마디를 거들었다.

“강 순경아, 지구대 시끄러워서 안 되겠다. 리길상이 그만 내보내자.”

“안 됩니다!”

동하의 단호한 대답에 박대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야 인마! 선배한테 말하는 꼬라지가 왜 그래?”

“왜 그러긴요? 길림파 애들을 현행범으로 잡아와도 번번이 풀어주니까 그러죠. 이 자식들이 왜 우리를 우습게 보겠습니까?”

“뭐 이 새끼야?”

까마득한 후배에게 면박을 당한 박대식이 동하에게 삿대질을 했다.

“얀마, 너만 경찰이야? 너만 정의롭고 선배들은 다 병신으로 보여?”

박대식이 짬을 내세우며 핏대를 세웠지만 동하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누가 병신으로 보인다고 했습니까? 저도 선배님들 존경하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제발 존경할만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요 쫌!”

“헐……! 저 새끼가 진짜 뭘 잘못 먹었나?”

자신의 말빨이 먹혀들지 않자 박대식이 김인철과 신동우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다.

“야, 강 순경! 살살 좀 하자. 살살 좀!”

“신참의 패기도 좋지만 선배들을 너무 쌩까면 곤란해.”

신동우와 김인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마디씩 했다.

두 사람을 쏘아보는 동하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아 씨!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소장과 선배들은 늘 이런 식으로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려는 그의 의지를 꺾어 버리곤 했던 것이다.

리길상이 화가 치밀어 벌겋게 상기된 동하의 뺨을 툭툭, 두드렸다.

“아가야, 엄마 젖 좀 더 빨고 와라. 너 같은 핏덩이는 아직 이 형님의 상대가…….”

“씨발 새끼야! 손 치워!”

철썩!

동하가 분을 참지 못하고 휘두른 손등이 리길상의 뺨을 후려쳤다.

“허억!”

박대식과 김인철과 신동우는 물론 동하 본인도 깜짝 놀랐다.

아 씨! 때릴 생각까진 없었는데.

얼굴이 반쯤 돌아간 채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리길상이 동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지금……, 날 쳤니?”

“이, 이건 실수였어.”

“간나새끼, 멱을 따버리갔어!”

동하에게 달려드는 리길상을 박대식과 신동우 그리고 김인철까지 필사적으로 붙들었다.

“워워~ 리길상이 진정해!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

“우리 막내가 아직 뭘 몰라서 그래요!”

“빨리 길상이 수갑부터 풀어주고 내보내! 빨리!”

리길상이 핏발선 눈으로 동하를 쏘아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간나새끼야……, 길을 걷다가 시원한 느낌이 들면 배때기에 이 형님의 사시미가 박힌 줄 알고 있어라. 알았니?”

리길상이 온몸으로 내뿜는 살기에 질식할 것 같았지만 동하는 끝까지 버텼다.

“그 전에 내가 너란 쓰레기를 교도소에 처넣어 한 십 년쯤 콩밥을 먹게 해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흐흐흐흐! 그래, 결국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겠지? 누가 먼저 죽는지 한번 보자고, 순경 나으리.”

“그래, 해봐! 해보라고, 씨발아!”

“이 미친 새끼를 그냥 콱!”

당장이라도 동하와 주먹다짐을 벌일 것 같은 리길상을 깅인철과 신동우와 박대식이 지구대 밖으로 억지로 끌고나갔다.

“자자!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라니까.”

“부임한지 두 달 밖에 안 된 순경이 뭘 알겠어?”

타아악!

리길상이 지구대를 빠져나가고 문이 닫히는 순간, 동하가 절규하듯 악을 질렀다.

“아 씨발!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

* * *

쏴아아아!

“아직 초여름인데, 뭔 비가 장마처럼 쏟아지냐?”

그날 밤부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강 순경아, 지구대 잘 지키고 있어라.”

“우리는 비도 오고 파전에 막걸리나 한잔 빨고 들어갈게.”

그날따라 선배들은 막걸리 회식을 한다며 일찌감치 지구대를 빠져나갔고, 당직이었던 동하 혼자 지구대를 지키고 있었다.

무료해진 그는 출입문 앞으로 걸어가 멍하니 비 구경을 했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도 없었던 것 같은데……?”

번쩌억­­!

순간 번갯불이 번쩍하며 문 밖에 서 있는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의 모습을 비추었다. 맨 앞쪽에서 시퍼렇게 날 선 사시미를 들고 있는 리길상을 알아본 동하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으아아! 씨발 깡패새끼들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동하가 악을 쓰며 출입문의 잠금장치부터 잠그려고 했다. 그러나 리길상이 한발 앞서 문짝을 걷어차 버렸다.

꽝!

“크흑!”

경첩이 뜯겨나가 너덜너덜해진 문 사이로 걸어 들어오는 리길상을 피해 동하는 정신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지구대 안쪽으로 도망치며 그는 급한 김에 아무 말이나 막 던졌다.

“리길상, 일단 진정해! 진정하라고! 경찰을 해치면 너도 끝장이란 거 알지? 여기서 멈추면 오늘 일은 나도 모른 척 해줄게! 정말이야!”

“배때기에 사시미가 박혀도 계속 지껄일 수 있나 있나보자, 간나새끼!”

그러거나 말거나 리길상은 동하와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오고 있었다. 시퍼렇게 빛나는 그의 두 눈은 이 밤이 가기 전에 반드시 동하를 죽여 없애겠다는 살의로 가득했다.

“미친 새끼야! 다 같이 죽자는 거냐?”

동하가 자신의 책상을 지나치며 그 위에 놓여 있는 테이저건을 힐끗 보았다. 몸을 날려 건을 잡을 수만 있다면 리길상을 제압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통박을 굴리자마자, 그는 책상을 향해 붕 몸을 날렸다.

“잡았다! 리길상 꼼짝하지.....”

푸우욱!

동하가 테이저건을 겨누는 것과 동시에 리길상의 칼이 옆구리에 박혔다.

“끄허억!”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동하가 바닥을 굴렀다. 책상에 등을 기대고 가까스로 일어나 앉으며 그가 옆구리를 내려다보았다. 상처를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꿀럭꿀럭 새어나오고 있었다.

“으아아! 피…… 이 피를 좀 봐……!”

부들부들 떠는 동하 앞에 버티고 서서 리길상이 이죽거렸다.

“어떠니? 칼빵 한 방 맞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지 않니? 이제야 니가 누굴 건드렸는지 인지를 하겠니, 종간나 새끼야?”

“켁... 케헥...! 미, 미안해. 자, 잘못했어.”

동하가 가래 끓는 소리로 사과했다. 그는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이파리 두 개짜리 순경 주제에 리길상처럼 무시무시한 조폭을 건드리다니!

평소의 더러운 성질 따윈 칼에 찔리는 순간,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런 걸 생각하기엔 옆구리의 통증이 너무 심했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넘치는 피는 너무 두려웠다.

리길상이 날개를 뜯어 버린 잠자리를 가지고 노는 아이 같은 눈으로 동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이쿠야~ 이제야 주제 파악이 좀 되니? 그러게 진즉 고개를 숙였으면 칼빵 맞을 일도 없었지 않았니.”

찰싹! 찰싹!

리길상이 장난치듯 뺨을 때렸지만 동하는 모욕감을 느낄 새도 없이 같은 말만 반복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큭큭큭! 이제야 뉘우치니? 그런데 너무 늦은 거 아니니?”

끝을 내려고 사시미를 확 쳐드는 리길상의 등 뒤에서 동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도, 동하야?”

“어머니……?!”

동하는 리길상의 등 뒤 조폭들의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어머니를 질린 듯이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한 손에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닐우산이 들려 있었고, 나머지 한 손에는 보자기에 싸인 작은 국솥이 들려 있었다.

동하는 문득 초저녁에 어머니와 나누었던 통화를 떠올렸다.

“동하야, 니가 좋아하는 육개장 끓였으니까 엄마가 지구대로 가져다줄게.”

“아, 됐어요! 이렇게 비가 퍼붓는데 무슨 육개장이에요. 대충 배달시켜 먹을 테니까 절대 오지 마세요. 아셨죠?”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는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나이 서른에 과부가 된 어머니는 재혼 따윈 꿈도 꾸지 않고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다.

동하는 그런 어머니에게 늘 죄송했고, 마음과는 달리 그 미안함을 퉁명스러움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이었고, 그가 목숨처럼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기, 길상이 형님!”

꽈악!

동하가 리길상의 팔을 힘주어 잡았다. 그리고 절절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나, 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제, 제발 어머니만……, 우리 불쌍한 어머니만…….”

“하! 이거 눈물이 앞을 가리지 않니? 이런 효자를 내 손으로 꼭 조져야 하는 거니?”

리길상이 골치 아프다는 듯 칼을 잡은 손등으로 이마를 때렸다.

바로 그 순간 어머니가 육개장을 국솥을 던져 버리고 동하에게 뛰어들었다.

와창!

“이놈들아! 우리 아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두 팔을 벌려 아들의 앞을 막아서며 어머니는 절규했다.

“죽일 거면 차라리 나를 죽여! 우리 동하는 안 돼! 우리 아들은 절대로……, 커흐흑!”

스아아악!

무언가 예리한 것이 사람의 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어머니가 덜컥 진동했다.

“엄마……, 엄마……?”

“끄륵……, 끄르륵…….”

피핏! 피피핏!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돌아서는 어머니의 목에 깊게 베인 자상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엄마……, 엄마 안 돼……!”

동하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점점 창백해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동하를 향해 천천히 쓰러지며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아들 걱정뿐이었다.

“동하야, 살아라……, 너만은 꼭 살아야……!”

풀썩!

어머니가 자신의 품으로 쓰러지는 순간, 동하가 처절하게 악다구니를 질렀다.

“으아아아! 리길상 이 씨발새끼야! 귀신이 되어서라도 니 새끼를 갈가리 찢어죽이고 말 테다!”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 나도 부담 없이 니 새끼를 쑤실 수가 있지 않겠니?

푸우욱!

“헉!”

리길상의 사시미가 가슴에 꽂히자, 동하가 입을 떡 벌렸다.

푹! 푹! 푹! 푹! 푹! 푹!

칼이 박힐 때마다 동하의 상체가 덜컥덜컥 진동했다.

“끄어어어……!”

고통은 곧 사라졌다. 대신 짙은 슬픔이 동하를 감쌌다.

엄마, 미안해요.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그의 두 팔은 어머니의 시신을 꼭 안고 있었다.

그리고 시뻘겋게 핏물이 차오른 그의 두 눈은 리길상의 뚫어져라 쏘아보고 있었다.

“카악~ 개새끼! 끝까지 사람을 재수 없게 꼬나보고 있지 않니?”

동하의 얼굴에 침을 한 번 뱉어주곤 리길상이 부하들과 함께 지구대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짭새들 몰려오기 전에 철수하자우.”

리길상이 지구대를 빠져나가자마자, 칠흑처럼 어두운 하늘 한복판에서 먹구름이 사납게 소용돌이치는가 싶더니 그 한복판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빠자자자자자작!

하늘에서 쏟아진 벼락이 정확하게 지구대 지붕으로 떨어졌다. 피 웅덩이 속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끌어안고 주저앉아 있는 동하의 온몸이 강렬한 전파에 휩싸이며 푸들푸들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런 동하의 머릿속에서 낯선 늙은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켈켈켈켈! 대림지구대 순경 강동하……, 네놈의 한이 노부를 불러들였구나. 앞으로 잘해보자, 이 미련곰탱이 같은 놈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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