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3화. 내 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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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내 안의 너!
“흐어어억!”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있던 동하가 눈을 번쩍 떴다. 얼굴과 가슴에 복잡한 생명유지 장치를 덕지덕지 붙인 채였다.
막 그 장치들을 떼어내고 동하의 임종을 선언하려던 의사와 간호사는 경악했다.
“으허헉!”
“까아아악!”
의학적 관점에서 동하는 분명 사망 상태였다. 그런 동하가 눈을 떴으니, 의료진이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가, 강동하 씨! 정신이 드세요?”
“이봐요!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의사와 간호사가 연이어 물었지만 동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이상하게도 입조차 벙긋 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눈꺼풀도 깜빡할 수 없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으으으……, 으어어어......!”
두려운 마음에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는 그의 가슴을 간호사가 토닥여주었다.
“진정하세요. 강동하 씨는 정확히 한 달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어요. 아직 의식이 완전하지 못한 게 당연합니다.”
“아아......!”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편안하게 들린 탓일까? 동하는 그만 스르륵 눈을 감았다.
다시 의식을 잃은 듯한 그를 지켜보며 의사와 간호사가 소리 죽여 대화를 나누었다.
“휴우우……,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임종 직전의 환자가 깨어나다니, 저도 깜짝 놀랐어요.”
“나 참, 살다보니 이런 일이 다 있군.”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이 환자 소생하긴 힘들겠죠?”
“수십 방을 난도질당해 장기란 장기가 다 망가졌어. 잠시 깨어났지만 이대로 식물인간이 될 확률이 높아.”
‘내, 내가 식물인간이 된다고?!’
동하의 귀에 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는 제발 살려달라고 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마음만 간절할 뿐 입술이 움직이질 않았다.
“우린 그만 나가지. 어쨌든 환자 상태에 아주 작은 변화라도 생기면 꼭 알려달라고 했으니까, 대림지구대에 연락부터 해줘.”
“네, 알겠습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을 빠져나가며 나누는 대화를 듣고 동하는 한 가닥 희망을 품었다. 김인철 소장이나 신동우 경사, 박대식 경장이 온다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상태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됐을까? 설마 돌아가신 건 아니겠지?
‘선배들, 제발 빨리 와서 나 좀 살려줘요!’
선배들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동하는 설핏 잠이 들고 말았다.
* * *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깨어났네.”
“아 씨발! 이 새끼 이거 끝까지 속을 썩이는구만.”
“강 순경이 의식을 완전히 되찾으면 어떡하죠?”
“으음…….”
박대식의 마지막 질문에 김인철과 신동우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만에야 김인철이 착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어떡하긴 뮐 어떡해? 그날 밤처럼 리길상을 불러서 확실하게 처리해야지.”
‘흐억! 그날 밤도 저 인간들이 리길상을 지구대로 불러들였구나……?!’
그제야 동하는 선배들이 자신을 죽이려 했음을 깨닫고 경악했다.
저런 인간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니! 강동하, 이 한심한 새끼야!
그나마 선배들 중 가장 마음이 여린 신동우가 가늘게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꼭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아까 간호사의 말을 들어보니, 강 순경이 완전히 깨어날 확률은 희박하다고 하던데요.”
김인철을 대신해 박대식이 면박을 주었다.
“신 경사님, 왜 그리 약한 말씀을 하세요? 만에 하나 강 순경 이 새끼가 깨어난다고 생각해 봐요. 자기 엄마까지 죽었는데 우릴 그냥 두려고 하겠어요? 우리가 리길상을 보호하려고 이 사건을 단순 원한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무마한 걸 알면 당장 우리부터 의심할 겁니다.”
엄마가 죽었다고? 우리 엄마가?!
으아아아! 이 씹새끼들아, 너희들 싹 다 죽여 버릴 거야!
동하는 침대에 누워 울분에 차서 절규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목 안쪽에서만 맴돌 뿐, 소리가 되어 나오질 못했다.
눈을 꼭 감은 채 미동도 하지 못하는 동하를 내려다보며 신동우가 찜찜한 듯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죽다 살아난 애한테 다시 저승사자를 보낸다는 게 영……”
김인철 계속 갈등하는 신동우를 무시하고 쐐기를 박았다.
“리길상에게 연락해! 오늘 밤이라도 당장 강 순경을 편안한 곳으로 보내주라고!”
* * *
동료들이 중환자실을 떠난 후에도 동하는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과 엄마가 칼에 맞던 그날 밤에 동료들이 왜 약속이나 한 듯이 지구대를 비웠는지 알 것도 같았다.
‘으흐흐흑! 엄마……,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리길상의 칼을 맞고 숨져가면서도 끝까지 아들만 걱정하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라 동하는 피눈물을 흘렸다.
‘복수할 거야……,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리길상과 선배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사지가 벌벌 떨렸다. 하지만 지금은 분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김인철 소장이 오늘 밤 리길상을 병원으로 보낸다고 했던 것이다.
리길상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놈에게 찔린 상처들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일어나서 도움을 청해야 돼. 안 그러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뒤진다.’
동하는 죽을힘을 다해 몸을 움직여보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도록 용을 써봤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절망한 동하는 스스로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강동하 이 병신새끼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구나! 괜히 주체 파악도 못하고 설치다가 죄 없는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게 만들고!‘
머릿속에서 낯선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너무 자학하지 마라, 이놈아. 그러면 애써 네놈을 살려놓은 노부가 보람이 없질 않느냐?“
’헉! 누, 누구야?!‘
[노부의 이름은 이진산! 네놈을 살려준 은인님이시다.]
’영감이 날 살렸다고? 대체 어떻게?‘
[음……, 이건 설명하자면 얘기가 좀 길어지는데, 간단하게 얘기할 테니 귓구멍을 열고 잘 들어라. 노부는 세계 최고의 고수이니라. 그런데 제자들에게 배신당해 육신은 죽고, 영혼만 간신히 탈출하여 네놈의 몸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영감의 영혼이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고? 이게 말이야, 방귀야?‘
[이놈 말버릇이 아주 개차반이구나? 그건 차차 고치기로 하고, 어쨌든 노부의 영혼이 네게 들어오면서 내가 일평생 쌓아왔던 공력도 함께 들어왔다. 그 정순한 기운 덕분에 저승의 문턱을 넘었던 네놈이 이승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고.]
이게 다 무슨 개소리인가 싶어 동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공력이라면 혹시 무협소설에 나오는 내공 뭐 그 비스무리 한 건가?’
[오냐, 비슷한 개념이다!]
‘와 진짜! 이런 허무맹랑한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믿고 안 믿고는 네놈 자유이니라. 단,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만 명심해라.]
‘시간이 없다니요?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네 동료들이 널 죽이기 위해 오늘 밤 리길상인가 뭔가 하는 놈을 다시 보낸다고 하지 않았더냐?]
동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변했다.
‘맞아,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그런데 난 지금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는데 어떡하지?’
[호들갑 떨지 마라. 세계 최고의 고수인 노부가 있질 않느냐? 노부가 너를 벌떡 일으켜 리길상인가 하는 그 삼류 깡패를 한 주먹에 때려눕히게 만들어주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에 그런 허황된 말을 믿으라는 거야?’
[그럼 그냥 리길상의 손에 뒤지든가.]
노인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었지만, 일단 사는 게 급했던 동하는 넙죽 엎드리기로 했다.
‘아니, 뭐든 시키는 대로 할게! 그러니까 제발 나 좀 살려줘! 난 꼭 살아서 우리 엄마 복수를 해야 돼!’
[좋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너는 무술과 무공의 차이를 아느냐?]
‘엥? 둘이 똑같은 거 아닌가?’
[아니, 전혀 틀리다. 무술은 내공 없이 하는 격투술을 의미하고, 무공은 내공을 기반으로 하는 상승무술을 의미한다. 그리고 노부는 지금부터 너에게 이 무공을 가르칠 것이다.]
‘아, 네……!’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 없었던 동하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먼저 하단전에 정신을 집중시켜 보아라.]
‘하단전? 그게 어딘데?’
[하아……! 이 병신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난감하구나.]
‘아 씨! 너무 그러지 맙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도 있답니까?’
[끄응~ 말이나 못하면!]
신음을 삼키며 이진산이 말을 이었다.
[배꼽이 어디 붙어 있는 줄은 알지? 하단전이란 배꼽 아래 세 치 부분을 말한다.]
‘흐음……, 배꼽 아래 세 치란 말이지?’
[그곳에 정신을 집중시켜 봐라. 무언가 뜨거운 덩어리 같은 게 느껴지지 않냐?]
‘…….’
[안 느껴져?]
‘어! 정말 뭔가 뜨끈한 게 느껴지는데? 설마 이게……?’
[옳다! 그것이 바로 노부가 일평생 쌓아온 내공의 실체다.]
‘아하!’
[내공이란 기의 응축된 덩어리를 말한다. 이제 응축된 기를 혈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 구석구석으로 흘려보내보는 거다.]
‘핏줄을 통해서? 대체 어떻게?’
[당연히 의념을 통해서 해야지.]
‘저기, 여보세요? 의념은 또 뭔가요?’
[…….]
이진산이 갑자기 말을 뚝 그쳤다. 숨소리만 쌕쌕 들려오는 것이 제대로 열이 받은 것 같았다.
‘저기……, 영감?’
[의념이란 말 그대로 너의 의지와 생각이다. 즉, 너의 의지로 하단전에 응축된 기를 온몸 구석구석으로 흘려보낸다고 생각하란 말이다, 머저리 같은 놈아!]
‘뭐, 머저리?’
[왜 꼽냐? 그럼 그냥 리길상 손에 한 번 더 뒤지시든가.]
‘아, 알았어. 할게. 하면 되잖아.’
동하가 눈을 질끈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끄응~ 끄응~ 끄으으응~’
[똥 싸냐?]
‘후아아악……! 이게 쉽지가 않네. 좀 더 자세히 가르쳐주면 안 될까?’
순간 이진산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로다. 사악한 제자 놈들의 마수를 피해 천신만고 끝에 영혼을 탈출시켰거늘, 하필이면 무공에 눈곱만큼도 소질이 없을뿐더러 머리까지 나빠 말귀조차 못 알아듣는 네놈에게 들어와 노부의 마지막 희망마저 물거품이 되게 생겼구나.]
이진산의 꾸지람을 들으며 동하는 내심 억울했다.
‘나 참! 지구대 순경이 무공을 모르는 게 당연하지. 뭘 좀 제대로 가르쳐주고 갈구시든가.’
이진산이 가까스로 화를 누르며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내공을 활용하는 무공의 가장 간단한 원리부터 설명해줄 테니, 귀를 열고 잘 들어라. 의념을 통해 기를 손끝이나 발끝으로 보내는 과정을 운기라고 한다. 운기에 성공하면 기가 맺힌 주먹이나 발이 차돌처럼 단단해지는데 이를 발경이라고 부른다.]
‘헉! 발기요?’
[죽고 싶은 것이냐?]
‘아, 아뇨.’
[발경이 된 주먹으론 바위를 깨뜨릴 수 있고, 발경이 된 발로 땅을 차면 높은 담벼락도 너끈히 넘을 수가 있다. 여기서 더 발전하면 기를 주먹이나 손바닥 밖으로 내쏘아 상대를 타격할 수가 있는데, 이를 탄기의 경지라고 부른다. 여기서 더 발전하면 기를 우리의 신체 밖에서 유형의 형태로 만들어 무기처럼 사용할 수가 있는데, 이를 강기의 경지라 한다.
흔히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검강이나 권강이 다 여기서 나온 말이다.]
‘아하, 그렇군요.’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동하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자, 이제 무공의 원리를 알았으니 배운 바를 펼쳐봐라.]
‘하단전에 쌓여 있는 기를 의념을 통해 손끝으로 보내라고 했죠?’
[그렇다.]
‘끄으으응~~’
한동안 똥 싸지르는 소리를 내던 동하가 무언가에 놀라 소리쳤다.
‘아앗! 방금 손가락 끝이 저릿했어!’
[기의 흐름이 느껴진 것이냐?]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손가락 끝에 전기가 통한 것 같았어요. 확실하게 느꼈거든.’
[흐음……. 미약하나마 운기가 시작된 모양이구나. 더욱 집중해라. 온몸에 퍼져 있는 혈관을 통해 몸 구석구석으로 기를 보내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끄으응~’
그때부터 동하는 입에서 단내가 풍기도록 하단전에 뭉쳐 있는 거대한 기의 덩어리를 풀어 온몸으로 퍼뜨리는 연습에 몰두했다. 이진산이 그의 의식 깊숙한 곳에서 끊임없이 재촉을 해댔다.
[서둘러라, 이놈아! 밤이 될 때까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 네놈은 또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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